“신랑은 어때? 가고 싶은 곳 있어?”
오키나와 여행을 떠나기 며칠 전에 아내가 물었다. 오키나와에서 우리가 가게 될 코스가 거의 다 정해진 모양이다. 가족 여행을 계획할 때면 말미에 아내는 내게 가고 싶은 곳을 묻는다. 내 대답은 언제나 한결 같았다. 중고 서점.
여행 가는 도시에 있는 중고 서점에 가는 것이 내 유일한 요청이자 낙이다. 하지만 이번엔 좀 달랐다. 여행지가 해외다.
“이번엔 중고 서점 못 가겠네.” 내가 대답하기 전에 아내가 먼저 말한다.
“음. 얼마 전에 책을 하나 빌렸는데. 오키나와에 헌책방이 하나 있어. 세상에서 제일 작은 헌책방이라나. TV에도 나오고 꽤 유명하대.”
“거기서도 헌책방을? 일본 책만 팔 거 아니야?”
“책방 주인이 쓴 책 한 권은 한국말로 번역된 게 있다나봐. 관광객들도 많이 가더라고.”
“위치가 어딘데?”
“국제거리에 있다던데.”
“거긴 남부잖아. 우리 코스는 주로 북부와 중부에 있는데. 거긴 마지막 날 묵는 호텔에서도 꽤 먼 거린데.” 아내의 최종 결정을 기다리며 난 눈만 끔뻑거린다. “동선이 꼬일지도 모르겠는데. 가서 생각해보는 걸로 해.”
얼마 전에 도서관에서 우연히 우다 도모코의 「오키나와에서 헌책방을 열었습니다」 라는 책을 발견했다. 대형 서점에서 근무하던 저자가 오키나와 지점이 새로 문을 열게 되자 자진해서 오키나와로 발령 받아 온다. 서점 개점 후 저자는 대형 서점을 그만두고 시장 안에 있는 1.5평짜리 헌책방을 인수해서 운영하게 된다. 책은 이런 일련의 과정을 담은 에세이집이다.
이 책을 읽으면서 오키나와 나하시 고쿠사이 거리의 공설시장 안 ‘세상에서 제일 작은 서점’이라는 수식어가 붙은 이 ‘울랄라 서점’을 가보고 싶었다. 이번엔 책을 안 사게 될지도 모르지만, 그 작은 서점을 직접 보는 것만으로, 그 앞에 서서 책 몇 권을 뒤적거리는 것만으로도 여행의 피로가 싹 가실 것 같았다. 모든 여행의 마지막 코스이자 나를 위한 코스는 중고 서점이라는 공식을 깨고 싶지 않았던 건지도 모르겠다. 그 공식이 깨진 여행은, 좋은 식당에서 맛있는 음식을 실컷 먹고 나서 아끼는 우산을 놔두고 온 것처럼 뒷맛이 개운치 않은 일정으로 남을 것이다.
아내가 짠 계획에 따르면, 우린 오키나와 남쪽 나하시에 있는 국제공항에 내려서 북쪽으로 먼저 이동한 다음, 위에서부터 중남부로 내려오게 되어 있었다. 북부에 있는 호텔에 3박하면서 ‘부세나 해중공원’, 오키나와에서 가장 긴 다리인 ‘코우리 대교’, 고래상어가 압권인 ‘츄라우미 수족관’, 가로수로 마을 전체가 둘러싸인 ‘비세 마을’ 등을 둘러보고 중남부로 내려오면서 ‘만좌모’, ‘비요스 언덕’을 거친다. 호텔에서 2박하며 오키나와 놀이터와 쇼핑몰인 이온몰, 동물원 등을 가는 코스다. 아이들도, 어른들도 모두 만족스러운 일정이었다. 하지만 내 여행의 마침표를 찍을 헌책방 방문은 여행 마지막 날까지 불확실했다. 마지막 날 일정에 여유 시간이 생기기를 바라면서 기다릴 밖에.
정해진 코스 중에 마지막 코스인 오키나와 동물원에서 코끼리에게 1m까지 접근해서 300엔을 주고 산 당근 먹이를 주는 쾌거를 이루고서야 헌책방 방문이 확정되었다. 우린 남하하여 국제거리에서 헌책방을 방문하고 규모가 큰 할인 마트격인 돈키호테에서 내가 먹을 곤약 젤리를 잔뜩 산 다음, 저녁을 먹고 숙소로 들어가기로 했다.
동물원에서 헌책방이 있는 국제거리까지는 차로 40분 거리였지만, 국제거리 근방은 유동 인구가 많고, 차가 얼마나 막히는지에 따라 시간은 더 늘어날 수 있었다.
“이제 곧 퇴근 시간이야. 차가 많이 막히지 않아야 할 텐데.” 출발하는데 아내가 말했다.
“별로 안 막힐 거야.” 난 아무런 사전 지식도, 근거도 없이 대꾸했다.
출발하고 얼마 되지 않아서 첫째가 갑자기 쉬가 누고 싶다고 한다. 아, 출발할 때 그렇게 화장실에 갔다가 가자고 했는데 거부하더니만. 애가 금방 쌀 거 같다고 계속 외치는 바람에 황급히 도로 샛길로 빠져 들어갔다. 차를 길가에 대고 주택가 골목으로 아이를 안아 들고 쭈그려 앉았다. 아이의 얼굴은 이내 평온을 찾았다. “담엔 꼭 화장실 먼저 갔다가 차에 차야 해!” 자못 엄중한 아빠의 말에, 네! 대답은 잘한다.
국제거리에 가까워지면서 도로도 넓어지고 차도 많아졌지만, 다행히 막히진 않았다. 아내는 작은 헌책방 하나를 보자고 아이 둘을 주렁주렁 매달고 40분을 달려간다는 것이 영 마뜩치 않은 눈치였지만, 내 간절한 열망을 알기에 저녁을 먹기로 예정한 초밥집 대신, 국제거리에 있는 스테이크 가게로 식사 장소를 변경해주었다.
“아, 초밥 먹고 싶었는데.” 아내가 무심코 내뱉는 한 마디 한 마디에 마음이 뜨끔뜨끔했다.
1시간 10분 정도가 걸려서 국제 거리 유료 주차장 한 곳에 차를 세웠다. 난 아기 띠를 했다. 우리는 여행의 마침표를 찍을 곳을 향해 이동했다. 국제거리는 한국에서 흔히 볼 수 있는 번화가였다. 맛집과 쇼핑몰들이 자리 잡고 있었고, 오가는 사람들이 많았다. 특히 한국인을 많이 볼 수 있었다.
공설시장 입구로 들어서니, 보도 양쪽으로 작은 가게들이 다닥다닥 붙어 있었다. 난 주위를 두리번거리면서 검은 색 바탕에 하얀 올빼미가 그려진 간판을 열심히 찾았다. 시장 속으로 꽤 깊이 들어왔다고 느꼈을 때, 울라라 서점을 발견했다. 아! 이런. 너무 늦게 온 건지, 헌책방은 문을 닫혀 있었다. 눈치와 설움을 견디며 달려왔는데.
예상치 못한 결말에 아내도 헛웃음을 지으며, 셔터가 내려진 헌책방 앞에 서보라고 했다. 난 씁쓸한 표정으로 사진을 찍었다. 아기 띠 속 둘째는 사진을 찍는 엄마를 손으로 가리키며 버둥거렸다. 내 마음도 버둥거렸다.
탐방기랄 것도 없다. 내가 본 것은 먼지 낀 셔터와 외벽에 붙어 있는 포스터와 게시물 몇 가지다. 용기 있는 서점 여주인도, 일본어가 잔뜩 적힌 책도 보지 못했다. 하지만 이상하게 돌아가는 발걸음은 무겁지 않았다. 잠시 잠깐, 난 책의 세계에 접속되었고 헌책방이 발산하는 에너지를 아주 조금은 몸으로 받아들인 것 같았다.
우리는 돈키호테 마트에 가서 곤약 젤리를 잔뜩 사고, 가성비 갑이라는 스테이크를 먹었다. 호텔로 돌아와서는 수영장에서 마지막 물놀이를 했다. 오키나와의 밤은 그렇게 깊었고, 난 그 날도 다른 날처럼 책을 읽고 글을 쓰겠다는 다짐을 지켜내지 못한 채 잠이 들고 말았다.
이 글은 스팀 기반 여행정보 서비스
trips.teem 으로 작성된 글 입니다.
덕분에 저도 몰랐던 오키나와의 새로운 장소를 알게 됐네요 ㅎ
마지막엔 얏빠리 스테이크를 드셨나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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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호. 얏빠리 스테이크 맞아요!ㅎㅎ 이름이 생각 안나서 적지는 못했거든요. ㅋ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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짱짱맨 호출에 응답하여 보팅하였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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감사합니다ㅎ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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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키나와 언젠가 한번은 가보고 싶어요.ㅎ 항상 제주도에 밀려서 안 가게 되지만.ㅋ
뭔가 많이 다르겠죠?ㅎㅎ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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겨울엔 제주도보다 오키나와를 추천합니다ㅎ 초여름, 가을 날씨라서 가벼운 복장으로 다니기 좋습니다. 비수기라 항공, 숙박도 싸구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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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 웃어서 죄송합니다.
저는 왜 쏠매님 마음이 버둥거리는게 느껴지죠?ㅎㅎ
먼길을 달려왔는데 셔터 내린 헌책방을 보고 많이 아쉬우셨겠지만 거기서라도 에너지를 얻었다는 쏠매님 특유의 해악과 긍정이 느껴지는 유쾌한 여행기라고 생각됩니다^^
편안한 저녁시간 되시길 바라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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ㅋㅋㅋ 저도 헛헛하게 웃었습니다ㅋ
그나마 제가 선택한 유일한 코스였는데, 그리돼서 아쉬웠지만 왠지 그 앞에 간 것만으로 위안이 되더라구요^^
아쉬운 일이 생겨도 여행은 즐거운 거니까요.ㅎ
팥쥐님도 즐거운 저녁 되세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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흠... 이쯤되면 거의 책중독자이십니다.
그걸 또 잊지않고 챙기시는 어부인도 대단하시고...
그런데 자동차 랜트해서 다니셨어요?
대단하십니다. ㅎㅎ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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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방에 가고 책 사는 것만큼 읽진 못해서 문제입니다ㅋ 책 중독이라기보다 책방 중독이 더 맞는 말인듯요.
오키나와는 렌트해서 몰고 다니기 좋습니다. 한국이랑 좌우가 바뀌어서 좀 헷갈리지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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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 그렇군요. 랜트하는 방법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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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터넷에서 예약하면 오키나와 공항에 도착하면 렌트카 업체로 픽업해줍니다. OTS라는 곳이 제일 크고 많이 선호합니다ㅎ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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솔메님은 여행 마무리로 헌책방을 방문하시는군요. 정말 솔메님과 잘어울리면서 참 낭만적인 취향이시네요 :D
이 느낌 너무 잘 알겠어요. 생생한 비유 ㅎㅎ
초밥도 포기하고 무리해서 들른 울랄라 서점인데 닫혀있다니 또르르르.. 제가 다 아쉽네요. 아무래도 다음의 또 오키나와에 오라는 하늘의 뜻이 아닐까요?
그와중에도 좋은 기운 받아가려는 긍정적인 솔메님 대단하십니다^_^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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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족여행의 마지막 코스로 그 지역 헌책방엘 가는 건 어느 새 저만의 의식이 되어 버렸습니다ㅎㅎ 대신 다른 코스는 아내나 아이들을 위한 장소로 정하지요.
지금까진 마지막 코스 실패한 적이 없었어요,,ㅋ
이번이 오키나와는 두 번째인데, 그땐 거기 헌책방이 있는지도 몰랐어요. 언제 다시 가게 될지 모르지만 그땐 제대로 보게 되겠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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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마도 마음이 풍요로우셨을 듯합니다. 언젠가 다시 가면 되지 않겠습니까? 아내분이 더 미안해 하셨지 않을까요? 미리 결정을 해주시었어야 하는것데! 하시면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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네 닫힌 문 앞에서 마음이 풍요로웠어요^^ 안가도 여한이 없을 정도로요.
아내도 안타까웠던지, 다른 제안을 해줬지요. 다음 글에서 얘기할 거 같아요ㅎ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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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가 다 아쉽네요ㅠㅠ 저도 여기 가보고 싶었는데, 태풍때 가서 돈키호테 말고는 거의 다 문을 닫았던 기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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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 태풍오면 정말 호텔에만 있어야 하겠군요. 날씨를 잘 타는 것도 행운이지요. 저흰 날씨는 좋아서 다행이었네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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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행의 마지막에는 항상 헌책방으로 향하시는군요. 아쉬우셨겠지만,,, 여행의 묘미라고 해야 하나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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네 저만의 루틴입니다ㅎ 헌책방 문을 닫은 건 그야말로 생방송의 묘미같은 거네요ㅠㅋ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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멀리까지 가셨는데 너무 아쉬우셨겠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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의외로 괜찮았어요.ㅎ 아쉬움보다 그 앞에 갔다는 사실에 만족스러웠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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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쉬우셨겠어요. 거기까지 갔는데..
각자가 원하는 게 다르니 모두를 만족시키는 여행 일정을 짜기란 참 어렵네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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ㅎㅎ 우선은 아이에 포커스를 맞춰서 일정을 짭니다.
그리고 딱 한 곳은 저를 위한 코스지요. 미리 이렇게 생각하면 일정 짜기가 쉽습니다.ㅋ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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쌩유ㅎ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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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본엔 좋은 책방이 많다던데... 우선 일본부터 가야...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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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방 가는 건 재미있겠지만, 죄다 일본말이니 책 고르는 맛은 떨어지겠지요ㅎ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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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키나와를 다녀와서 그런지 더 몰입이되고 재밋게 읽게되네요. 국제거리에 책방이 있었군요~~ 아고~ 문이 닫혀서 무척 아쉽네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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네 오키나와 한 번 다녀오면 웬만한 곳은 다 알게 되죠ㅎㅎ 열렸다면 더 좋았겠지만 그 앞에 간 것만으로 만족했어요ㅋ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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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 일본여행이 그리워지는 밤이네요.
헤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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본토엔 무서워서 못갑니다ㅋㅋ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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li-li님이 kyslmate님을 멘션하셨습니당. 아래 링크를 누르시면 연결되용~ ^^
li-li님의 평론가들의 도서리뷰 # 62 (19020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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굿잡ㅎ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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