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끔은 나는 영화 속의 주인공이 아닐까하며 우스운 생각을 할 때가 있다. 인생은 영화 같고, 영화는 곧 우리의 인생을 표현한 것이니 어쩌면 흔한 말로 내 세상에서는 내가 주인공이니까. 그렇게 생각하곤 했다.
그녀와 나는 5월에 헤어졌다. 너무나 갑작스러웠던 이별 통보였다. 마지막이라고 생각했던 날, 나는 될대로 되라는 식으로 내 주장만 펴기 급급했고, 그녀는 갑작스럽게 헤어짐을 통보했다. 나는 순간 화가 나기도 했고, 믿어지지가 않아서 정말 진심이냐고 물었고, 그녀는 언제나 그랬던 것처럼 아무말 없이 생각하다가 고개를 끄덕였다. 그래, 잘 됐지 뭐. 어디 잘 살아봐하며 쿨하게 돌아섰던 게 어느덧 3개월이 흘렀고, 많은 상념이 들었지만, 쉽게 외면해버렸다.
그녀는 나와 참 닮은 점이 많았다고 생각했다. 아니 이따금씩 나의 거울이라고도 생각하기도 했다. 헤어지고 난 뒤 다시는 볼 수 없을 것이라고 생각했다. 헤어진 여자와 버스는 잡지 않는 것이라고 흘려들었던 것도 생각나기도 했고, 헤어지는 날 미처 하지 못했던 말들을 하지 못한게 아쉬웠지만, '이게 인생 아니겠어?' 혹은 '어차피 아픔은 한달이야'라며 스스로를 위안하니 시간이 훌쩍 지났다.
하지만 오래된 연인이 헤어지면 빈자리는 더욱 큰 법이여서일까. 온통 내 주변의 모든 것 속에 그녀가 있었다. 그런 것들이 나에게 다가올 것 같으면 나는 생각없이 이리저리 피하기만 바빴을 뿐, 제대로 직면하지 않았다.
그러나 쏟아지는 모든 것을 피할 수 없었다. 시간이 지날수록 나에게 쏟아지는 그녀의 빈자리와 추억들은 고스란히 내 마음 속에 그리움으로 커져만 갔다. 그리움은 때로는 아픔이 되기도 하고, 슬픔이 되기도 했다. 그리고 나의 잘못들이 선명히 드러나기 시작했다. 그녀를 섭섭하게 했던 말과 행동들. 그녀가 받았을 상처를 생각하니 마음이 쓰라려 왔다. 내 마음 속의 그리움과 보고 싶은 감정은 시간이 지날수록 점점 커져만 갔고, 나는 어느새 그녀와 함께 찍었던 다정한 사진을 보기도 했다. 그러다 문득 든 생각, '한 번 연락해볼까?'
'왜 나쁘지 않지 않나, 그냥 연락하는거지 뭐'하며 생각 했던 것이, 그동안 꾹 눌러왔던 감정이 물밀듯이 쏟아져 나와 '마지막으로 한 번만 붙잡고 싶다. 아직도 이렇게 좋아하는데..'로 바뀌어 갔다.
그래서 결국엔 그녀에게 연락을 하기로 마음을 먹었다. 정말 마지막으로 잡아 보고 안되면 묵묵히 받아들이자, 라고 생각하며 조심스럽게 그녀에게 메세지를 보냈다.
그녀의 답장은 전과는 확실히 다르게 차가워져 있었다. 내 마음이 너무 앞섰던 탓일까. 나는 어느새 나도 모르게 메세지로 붙잡는 내용을 보내고 있었다. 그녀는 냉정했고, 단호했다. 그럴 때마다 나는 좌절과 슬픔을 느꼈지만, 정녕 이것이 마지막이라면 얼굴 한 번은 꼭 봐야겠다고 생각을 했다. 그래서 그녀에게 만나서 정리하자고 보냈고, 그녀는 받아들였다.
오랜 만에 연락을 하고 붙잡았을 때 그녀가 마치 기다렸다는 마냥 바로 돌아올 것이라고는 생각안했다. 나의 진심을 보여줘야겠다고 생각이 들었고, 진심을 담을 수 있는 최고의 방법으로는 편지를 떠올렸다.
편지에 현재 내 감정과 반성, 그리고 후회와 돌아와주길 바라는 마음까지 모든 것을 적었다. 그녀를 기다리고 싶은 내 진심을 어떻게 보여줄 수 있을지 고민하던 찰나에 5월 1일이 유통기한인 파인애플 통조림을 모았던 어느 영화의 주인공처럼 매일은 못기다리더라도 그녀와 만난 시각과 같은 장소에 매주 기다려야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기간은 영화에서처럼 한 달. 만약에 그녀가 나오지 않는다면 나는 묵묵히 이별을 받아들인다. 그리고 마지막 말미에 이 내용을 담아 우리가 만났던 장소에서 매주 같은 시간에 기다리겠다고 썼다. 그리고 가을이 오는 9월에도 나오지 않는다면 받아들이겠다고 썼다. 그리고 편지봉투에 잘 담아 그녀를 만나러 갔다.
만약에 내 시나리오대로 된다면, 그러니까 다시 우리가 시작한다면 어디가 좋을지 생각하다가 그녀와 내가 함께 가기로 했었는데 한 번도 가지 못했던 그녀의 집 근처 카페가 좋을 것 같았다. 먼저 가서 그녀를 기다렸고, 나는 약속 시간이 다 될 때 쯤에 우리가 가기로 했던 카페에 있으니 여기로 오라고 전송을 했고, 그녀는 정확한 시간에 맞춰서 그 카페로 왔다.
만나기 전에 마음을 먹었던 두 가지는 첫 째는 절대로 만나서 매달리지 않을 것, 둘째는 마지막일지도 모를 그녀의 모습을 최대한 눈에 담는 것이었다. 그녀는 어느덧 완전한 직장인이 되어 있었고, 나는 만나서 절대 매달리지 않았고 그녀의 근황들만 물어봤다. 이따금씩 냉정한 마음에서도 표정은 꽤나 다양했고, 내가 물어보는 말들에는 단답으로 돌아왔지만, 다시 이렇게 만나서 이야기할 수 있는 것 만으로도 기뻤다.
더이상 헤어진 연인이 다시 만나서 할 수 있는 이야기들을 다 소진해버렸기에 나는 이만 나가자고 했다. 버스정류장 방향이 그녀의 방향과 같아서 자연스럽게 그녀의 집 앞까지 오랜만에 다시 가게 되었다. 그녀는 집 앞에 도착하자마자 가겠다고 말하며 휙 돌아서려고하자 나는 그녀의 이름을 불러 멈춰 세웠고, 편지를 건네 줬다. 그리고 꼭 읽어달라는 당부와 함께 엘리베이터가 올라갈 때까지 기다리다가 집으로 가는 방향으로 돌아섰다.
이제 나는 매주 25%의 확률을 갖고 그녀를 기다린다. 매주 그 때와 같은 시간, 같은 장소에서 그녀를 기다린다. 그녀를 3개월 만에 재회 했을 때보다 앞으로의 매주마다 기다림이 더 떨린다. 그녀는 나올까? 편지를 읽고 어떤 생각을 했을까? 나는 그 카페에서 무얼하지? 책을 읽을까? 어떤 모습을 하고 있어야하는 걸까? 등등 너무나 많은 고민과 생각들이 스쳐간다.
이런 떨림은 모두 기대에서 오는 것이기에 나는 25%의 확률을 기대하며 매주 그녀를 기다릴 생각이다.
가끔씩 영화 속 주인공이라 생각했던 내가 또 어떤 영화의 주인공이 된 것만 같다. 영화 속 주인공이자 각본을 쓴 사람은 알고 있다. 모든 영화의 결말이 해피엔딩은 아니라는 것을. 그리고 또 무언가를 기대하며 살아가겠지.
가을이 오는 9월 전에 그녀를 다시 만날 수 있을까? 아직은 알 수 없지만, 분명한 것은 영화는 결말을 향해 달려가고 있다.
글을 쓰면서 글쓰기 실력이 부족함에 너무나 부끄러웠습니다만, 백일장은 꼭 참여하고 싶어서 이렇게 또 저의 경험을 글로 담았습니다.
저의 부족한 글 읽어주셔서 정말 감사합니다. ^^
글 잘 읽었습니다. 글쓰기 실력이 전혀 부족하지 않은데도 부족하다고 느끼시는 건 마음에 담아내야할 이야기가 많아서겠지요. @zeroseok님의 그 진심이 그분께도 고이 전달됐으면 좋겠습니다. 모쪼록 해피엔딩이길 바랍니다. 두분께 모두.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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감사합니다. 모든 영화가 해피엔딩이 아니듯, 저 역시도 아니였네요. 좋은 말씀 너무 감사합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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먼저 궁금한 것으 아직 현재 진행형이신가요?? 너무 안타까운 마음으로
글 을 읽었습니다. 진심은 통한다고 하던데요.. 마음으로 쓰신 글이라
실력하고는 전혀 상관이 없지 않았나 싶습니다. 아직 현재진행형이라면
꼭 다시 만남을 가졌음 하는 바램입니다.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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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재진행형이었는데, 오늘 갑자기 과거형이 되어버렸네요. 연락이 왔습니다. 기다리지 말라며.. 묵묵히 받아들여야겠습니다. ^^ 댓글 정말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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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 그러셨군요.. zeroseok님 앞날에 더 행복한 인연이 있으시길
바래봅니다.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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파인애플 모으는 그 중경삼림. 제가 제일 좋아하는 영화랍니다.
그나저나 닮은점이 참많은 상대를 떠나보내는건
그냥 제가 없어지는것과 같은 심정일것같아요.
모든 이별이 참 힘들지만 둘이 같이 등돌리는 이별보다
저만 남겨진이별은 결말이 없는것같아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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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도 참 좋아하는 영화입니다. ^^ 그런데 오늘 결말이 벌써나버렸네요. 아쉬워서 잠을 못자겠습니다. 하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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돌아서 버린 마음은 다시 돌리기 쉽지 않지요. 저는 사랑이 화학 반응같다고 생각합니다. 한번 구성 성분이 변해 버리면 이전으로 돌아가려면 엄청난 에너지와 노력을 투입해야 하고, 그렇다고 해도 다시 돌아갈 것이라는 보장이 없는 것처럼요.
맨 처음 읽었을 때 잘 되기를 바랐는데 이런 결과가 나오다니 슬프네요. 어려울 거라고 생각은 했지만 칼같이 끊어서 말해버리다니.
어쩌면 이게 더 나을 것일지도 모릅니다. 좋은 분을 만나셨었네요. 감정에 솔직하고 자기 감정이 어떤 지 알 수 있는 분이셨나봐요.
언제나 후회는 나중에 찾아오더라구요. 후회하지 않도록 살아야겠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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