무술 연구 제 2장 해설 (上)
0. 신체 쓰기의 문제
신체(the body)라는 살아있는 감각적인 경험을 학술적으로 써나가는 일은 결코 쉬운 일이 아니다. 물론 스피박이 신체를 통해 드러나는 ‘실천’에 대해 나름대로 “개념-은유(concept-metaphors)”를 제시하긴 했다. 신체를 통해 드러나는 실천이, 담론에 든 개념을 은유한다고 본 것이다. 일례로 태극권의 동작들은 어떤 감각에 대한 비유로 가득 차 있다.“ 맨 땅에서 헤엄치듯 움직여야 한다.”
문제는 학술적 연구에 이런 태극권의 용어를 그대로 쓸 수는 없다는 점이다. 학문적 담론은 무술의 언어가 아니라 학술의 언어로 구성되어야 한다. 헌데 분과학문마다도 그 언어(혹은 질문 및 가치)가 마냥 동일하지 않기에, 다음의 질문을 반드시 고려해보아야 한다. “무술 연구는 어떤 언어로 쓰여야 하는가?”
태극권을 중심으로 논해보자.
1. 역사와 이데올로기: 탈식민 담론의 몇 가지 도구
저자 폴 바우만은 태극권에 관한 민족 및 탈식민 문제를 논하기 위해, 기존 탈식민 연구의 몇 가지 개념을 끌어오고자 한다.
① 변색주의(allochronism): 요하네스 파비안(Johannes Fabian)이 제시한 개념이다. 한 문화가 다른 문화를 접함에 있어, 상대 문화에 어떤 영구적인 특징이 있다는 식으로 판타지를 투사하는 경향을 의미한다. 일례로 서구인들은 아마존의 부족들이 기본적으로 ‘원시적’이라고 본다. 그들이 첫 접촉 이후 많은 변과를 겪었지만 말이다.
② 본질주의(essentialism): 한 민족 집단의 변하지 않는 본질을 상정하는 사고방식이다. 변색주의 또한 일종의 본질주의이다. 이러한 본질주의는 오리엔탈리즘과 상관있다. “순수한 중국문화” 같은 개념처럼, 어떤 집단의 순수성을 상상하고 지향하기 때문이다.
그 결과, 레이 초우(Rey Chow)가 지적하듯, 순수성을 만족시키지 못하는 토착민(native)은 서구인 등에게 불순하거나 열등한 것으로 비춰진다. 현대화된 아마존 사람을 순수하지 못한 것으로 인식하는 것은, 본질주의의 예시 중 하나다.
③강압적인 모방주의(coercive mimeticism): 이런 본질주의적 담론은 학술에도 영향을 미쳐, 담론의 대상들은 –중국인, 아마존 사람 같은 원주민 등- 적절하게 행동하기를 기대 받는다. 이런 강압적인 사고방식은 인종뿐만 아니라 젠더적인 대상에게도 적용된다.
무술연구에서도 마땅히 주의해야 할 바다.
2. 역사와 이데올로기: 태극권의 예시
더글라스 와일(Douglas Wile)이 지적하듯, 태극권의 종래 연구는 그 역사적, 경제적, 정치적 조건을 무시한 채, 태극권이라는 무술 자체와 몇몇 대가들에게만 초점을 맞춰왔다. 흔히 태극권의 계보도를 제시할 때 고대에서부터 내려오게 하는데, 사실 정확한 계보는 19세기부터 내려온다. 이 점에서 종래연구는 일종의 신화(myth, 거짓된 믿음)으로, 변색주의, 오리엔탈리즘, 자기-오리엔탈리즘의 문제와 상관있다. 때문에 태극권의 문화, 이데올로기, 정치적인 면을 이해할 필요가 있는 것이다. 이는 태극권의 유명인들이 무술을 배운 이유나 창시한 이유와 연관되어있다.
와일은 고고학적인 작업을 통해, 현재의 태극권과 고전적인 태극권을 비교하여, 태극권이 어떤 순수한 게 아니라 시대를 거쳐 변천된 것임을 밝혀낸다. 여기서 와일은 역사적으로 보았을 때, 태극권의 이데올로기적 성격은 중국 지식인들이 서구 지식이란 위협에 맞서기 위해 만들어낸 것임을 지적한다. 근대 초기 중국 지식인들은 도교적인 원리를 내장한 태극권을 중국적인 무언가로 인식하기 시작한 것이다.
이와 더불어, 와일의 계보학적인 연구에 따르면, 근대적인 태극권은 ‘조상들’이 존재한다. 태극권과 운용원리가 상이한-느림, 감각성, 유연 등의 면에서- 여러 내가권(內家拳)이, 근대 이전의 계보로 존재하는 것이다. 다만 와일은 태극권이라는 전통이 근대에 들어 재구축 된 것임을 명확하게 하고 있다.
여기서 와일은, 태극권을 ‘순수하게 중국적인 가치와 세계관이 생존할 수 있는 공간’을 창조하려는 시도로 이해해주길 요청한다. 근대 중국에 있어 서양의 오리엔탈리즘은 중국을 일종의 여성적인 것으로 본질화시켰다. 이에 대해 태극권은 수련자의 몸을 통해 협소하게나마 나름의 주권을 되찾을 수 있는 방식이었다. 서양의 진보와 기술에 대해, 중국은 ‘자연’ 같은 방어적이고 노스텔지어적인 대응을 –기호학적으로- 해낸 것이다.
3. 역사와 이데올로기: 태극권과 근대/민족
와일은 19세기 중국의 태극권 운동을, 비슷한 시기 일어난 유럽의 낭만주의와 비교하였다. 태극권처럼 유럽의 낭만주의 또한 “자연으로 돌아가는 신체”를 지지했다는 것이다. 둘 다 ‘서구화를 거부하며 어떤 문화적 뿌리로 철수하는 복고적 반응’을 보였는데, 태극권이 도교로 돌아갔다면 낭만주의는 그리스신화로 돌아가려했다.
이런 ‘토착주의(nativism, 원주민 문화 보호주의)’는 기본적으로 근대국민국가와 관련되어있다. 낭만주의는 민족국가의 신화 –켈트, 게르만 등-를 구성해냈고, 태극권 또한 ‘중국인 됨’에 대한 강력한 감각을 이끌어냈다. 태극권은 민족을 위해 만들어진 전통이자, 민족이 되어가는 실천이다.
다만 태극권은 단순히 민족주의적이고 오리엔탈리즘적인 게 아니다. 태극권을 통해 민족의 일원이 되어가는 것은, 중국인이 근대성을 자신의 방법으로 받아들이는 것이기도 하다. 이상의 사유는 20세기 태극권에도 똑같이 적용된다.
공원에서 태극권을 하는 중국인들의 모습은 20세기 초 근대화의 결과이다. 그 일부는 마오이즘과 연결되어있는데, 마오이즘은 태극권이 집단적이면서, 서구적이지 않고, 스포츠적이지도 않기에, 이를 중국 이데올로기 체화의 대상으로 선정했다. 특히 기공(氣功) 개념은 이데올로기적 목적으로 재편된 면이 크다.
태극권의 기공은 중국의 전통을 보여준다고 이야기되지만 데이비드 팔머(Daivid Palmer)에 따르면, 기공 개념은 1949년 중국정부가 그 개념을 재정비하여 민족주의화하였다고 보아야 한다. 민국 이전에도 기공에 해당하는 여러 동작은 있었다. 허나 그 동작들이 기공이란 이름으로 체계화된 것은 신중국 이후의 일이다. 그리고 그때부터 기공은 중국적인 신체 기술로 이해되는, 일종의 ‘만들어진 전통’이 되었다.
이렇게 ‘만들어진 전통’들은 19~20세기에 만들어진 여러 무술의 계보나 개념들을, 고대로부터 내려오는 영구불변의 무언가로 만들어버린다. 요즘의 역사적인 연구들은 이런 변색주의적 신화에 대항해 중국무술 담론을 파헤치고 있다. 여기서 무술연구가 대답해야 할 문제는, 역사와 이데올로기 사이에서 무술에 대해 (역사학과는 구별되는) 어떤 새로운 지식을 세워야 한다는 것이다.
4. 역사와 이데올로기: 태극권과 민족지/정체성
아담 프랭크(Adam Frank)는 무술을 연구함에 있어 민족지 방법론을 사용했다. 이 연구(이하 태극권)에서 그는 탈구조주의적으로 “태극” 개념을 책 구성의 원리로 사용했다. 그에 따르면 정체성은 타자와의 차연(différance)을 통해 나타난다.
(번역자: 데리다의 차연(différance) 개념은 다르면서 지연되는 것을 지칭한다. “미국인”이라는 개념은 누군가를 미국인으로 지칭하지만, 사실 그 미국인이라 불린 (흑인이나 아랍인이나 동양인 같은) 존재는 온전히 미국인이라는 개념에 포섭되지 않곤 한다. 개념이 대상을 지칭할 때 생겨나는 어떤 미끄러짐, 다름과 지연됨을 데리다는 차연(延異)이라 지칭했다.)
물론 프랭크의 연구에도 한 가지 숙고해야 할 지점이 있다. 문화적 차이가 정체성의 근원이라면, 이 ‘차이’는 상상된 것인가, 아니면 진실한 것인가? 프랭크는 이 문제를 해결하지 않고, “문제를 문제로 남겨두는 것”을 선택했다. 상황은 물론 자기 자신까지 해석해 나가면서도, 여러 가능성들을 유동적으로 다루려 하는 것이다. 이런 과정을 통해 프랭크는 정체성이라는 개인적인 부분이 항상 정치적, 역사적, 사회학적 부분임을 드러내려 한다.
프랭크의 접근은 정체성의 복잡성을 보아낼 수 있다는 장점도 있지만, 정체성에 집중하여 다른 것을 보지 못한다는 단점도 있다. 다시 말해, 프랭크는 정체성이 미디어, 문학, 정치 같은 비인간적인 요소 –담론적인 요소-에 의해 생산되는지 파악했다. 허나 그 비인간적인 요소가 어떻게 생산되었는지, 그 구성과 해체의 논리를 이해하지는 못했다.
5. 문화의 담론적 국면: 람보, 이소룡, 척 노리스
정체성의 문제를 탐색하는 방법에는 여러 가지가 있을 수 있다. Wacquant가 미국에서 쓴 방식이, 프랭크가 연구한 상하이에는 맞지 않을 수도 있기 때문이다. 다만 여기서 본고는 실비아 휴이 총(Sylvia Huey Chong)이 역사와 담론에 대해 지적한 부분을 통해, 무술과 정체성의 문제를 더 탐구하고자 한다. (The Oriental Obscene: Violence and Facial Fantasies in the Vietnam Era, 2012)
역사는 단순히 사건의 모음집이 아니다. 역사에는 수많은 힘들이 복잡하게 작용한다. 또한 역사를 보는 눈은 결코 중립적이지 않으며, 이데올로기에 의해 좌우된다. 이데올로기에는 여러 뜻이 있지만, 여기서 말하는 이데올로기는 “가짜 믿음”을 의미한다.
첨언으로 지젝은 이렇게 말하기도 했다. “이데올로기란 문화와 사회의 근본으로서 그 바깥을 상상할 수조차 없는 말”이다. 우리는 이데올로기 속에 살기 때문에, 그 바깥을 상상조차 할 수 없다는 말이다.
실비아 총은 영화를 통해 1960~80년대 남성성과 인종에 관한 한 국면(conjuncture)을 드러낸다. 실베스터 스탤론의 람보 시리즈 첫 작 퍼스트 블러드(First Blood)(1982)는 단순히 미국 특수부대의 힘을 전시하는 게 아니다. 그것은 베트남전을 트라우마로 이해하는 것과 연결되어 있으며, 그렇기에 1960~70년대 베트남전이라는 역사를 1980년대 시각문화에서 재조직한 것이다.
특히 람보 시리즈의 후속작 중 하나인 <람보 : 퍼스트 블러드 파트 2>는, 로날드 레이건이 지적했듯, 베트남 참전을 자랑스럽게 인식할 수 있도록 이데올로기적인 작용을 하였다. 레이건은 연설에서 이렇게 말했다. “람보 정신과 함께, 우리는 이번에야말로 이길 것입니다.” 이는 남성상을 구축하는 것이자, 영화를 통해 역사를 이데올로기적으로 기억하는 것이다.
람보가 상연되던 80년대는 미국이 아시아 무술 또한 재현하기 시작한 시기이다. 당시 유명작으로는 척 노리스 시리즈와 랄프 마치오의 가라테 키드 등이 있다. 물론 옛날부터 일본인 배우 소니 치바(Sonny Chiba) 등이 유명하긴 했다. 하지만 그들이 어떤 정체성을 상징하지는 않았다.
그에 반해 70년대에 주로 활동한 이소룡의 경우, 독특하게도 오리엔탈리즘적인 폭력이 –아시아로 인종화되지 않고- 아메리칸 바디로 인식되었다. 이소룡은 인종적으로 중국이면서도 명예 백인이었고, 그렇기에 남성적 힘을 형상화할 수 있었다. 여기서 이소룡에 대한 여러 이야기들은 인종주의, 특히 ‘중국적 인종주의’ 문제와 엮여 있곤 했다. “당시만 해도 중국인이 아닌 사람에게 쿵푸를 가르칠 수 없었는데, 이를 이소룡이 깼다더라” 같은 부분이 대표적이다.
1980년대 척 노리스와 실베스터 스탤론으로 대표되는 포스트 이소룡 시대는 이소룡 때와 다소 다른 국면이 펼쳐진다. 일례로 노동계급 서사를 가진 영화, 특명 어밴저(No Retreat, No Surrender)(1986)를 이야기 할 수 있다. 주인공은 이소룡의 혼을 통해, 아버지가 거세됨으로써 잃었던 백인적 특권을 되찾는다. 단순히 이소룡을 명예 백인으로 미국화한 게 아니라, 주인공이 이소룡을 일종의 따거(大哥)로 모심으로서 오리엔탈한 관계를 맺게 된 것이다. (허나 이 영화는 홍콩의 배우들이, 홍콩의 경극 기술을 활용하여, 홍콩의 스태프들과 함께 찍은 영화였다. 중국인을 할리우드에 들여왔다는 의의가 크다.)
여기서 척 노리스나 실배스터 스텔론 같은 특수부대 캐릭터는 베트남전에 의해 만들어진 것이긴 하지만, 이소룡 영화에 상당히 미학적인 빚을 지고 있다. (신체 형상 면에서, 아놀드 슈왈제네거 보다는 이소룡에 가깝다.) 헌데 척 노리스는 한 인터뷰에서, 자신의 롤모델을 이소룡에서 존 웨인으로 대체했다. 이는 이소룡 시기보다 할리우드가 오리엔탈리즘적으로 퇴보하는 모습을 드러내는 것이다.
사실, 척 노리스와 실베스터 스탤론, 이 두 군인-영웅은 서로 다른 방식으로 오리엔탈화된 몸을 전시했다. 그리고 그 표면은 백인의 신체일지언정, 그 근본은 오리엔탈적이었다. “그들은 황인의 얼굴을 한 음유시인으로 황인종의 노래를 불렀으며, 1970년대 잠시 헤게모니적 권력을 잃은 백인성 및 그 남성성에 활기를 불어넣어줬다. 허나 이러한 행위는 초기만 해도 아시아 문화에 대한 오리엔탈적인 반영이라기보다는 차라리 일종의 미적 절도에 가까웠다.” 또한 그 점에서 백인성은 아시아 무술과 같은 타자성으로 가득 차 있다고 말할 수 있다.
이상을 통해 실비아 총이 미국화된 무술 미학의 계보를 분석한 것은, 역사와 이데올로기가 복잡하게 얽혀 어떤 미적 담론을 생산함을 보여준다. 여기서 실비아 총이 역사적 분석에 사용한 몇몇 작업 방식은 한 시기의 문화적-역사적 국면(conjuncture)을 해석하는 데 있어 유용하리라 기대된다.
6. 무협문학의 지위 : 민족 개념을 중심으로
역사, 이데올로기, 정체성의 문제에 있어 민족(nation)은 핵심적으로 중요한 개념이다. 페트러스 리우(Petrus Liu)는 최근 저작에서 무협 문학 및 문화에 대해 다루는데, 이는 몇 가지 면에서 주목할 만하다. (Stateless Subject: Chinese martial arts literature and postcolonial history, 2011)
A. 해당 저서는 근대 중국에서 무협문학의 지위를 재고하길 요구한다.
B. 동시에 문학과 영화의 관계에 대해 부각한다.
C. 긴 문화적-지적 전통을 가진 무협문학이 20세기에 들어 역사적으로 간과된 지점을 논한다.
D. 무협문학의 형식이 중국의 사회 및 역사에 관해 비평적 관점을 제공할 수 있음을 지적한다.
요컨대 지금까지 무시되던 무협‘문학’은, 리우가 보기에 중국에 관해 비평할 수 있는 어떤 가능성을 지니고 있는 분야였다.
서문에서 리우는, 무협문화를 다룸에 있어 학자들이 장르의 역사, 클리셰, 인기 등을 모두 ‘민족주의’로 해설하고 있다고 비판한다. 이 비판은 크리스 햄(Chris Hamm)의 김용소설 연구를 겨냥한 것이다. (Paper Swordsmen: Jin Yong and the Modern Chinese Martial Arts Novel, 2005)
리우가 보기에 햄의 연구는, 김용소설이 민족주의적이기에 대중에게 인기를 얻었다고 본다. 영국 식민지의 홍콩 사람들은 정체성이 불안한데, 김용 소설이 중국문화를 통해 내셔널리즘을 제공하여 그들에게 안정감을 준다는 말이다. “영웅적이고 에로틱한 내셔널리즘”은 햄의 평가를 압축한다.
또한 햄은 베네딕트 앤더슨의 인쇄-자본주의 개념을 끌어온다. 앤더슨은 신문 같은 인쇄-자본주의의 산물이 같은 민족이라는 소속감을 가져다준다고 지적했다. 같은 언어로 된 책-이나 신문 및 문서-을 함께 읽어나가기 때문이다.(상상의 공동체 참고) 헌데 김용의 소설은 신문에 연재되던 것이니, 이 인쇄-자본주의를 통해 민족주의를 촉진시키기 좋았다.
요컨대, 햄이 보기에, 무협문학이란 영국 식민지인들의 식민지 열등 콤플렉스가 빚어낸 산물이며, 그 장르의 인기란 작품의 지적인 깊이보다는 이데올로기적 추구에 의해 설명된다.
허나 리우가 보기에, 무협문학에 대한 기존의 국가 중심적 해석은 무협에 관해 중국인이라는 정체성 문제와 국민국가의 역할을 지나치게 강조한다. 허나 무협 문학에 있어 사실 ‘국가’는 정의를 결정하지도 않고, 도덕적인 공간도 아니다. 그럴 수 밖에 없다. 무협 문학의 “강호(江湖)”에는 국가가 비어있기 때문이다. 그 점에서 무협소설은 “비국가의 주체(stateless subjects)”에 관한 것이다.
폴 바우만이 보기에도, 무협에 대한 기존의 국가중심 해석은 ‘우리로 하여금 이러한 문학들의 흥미롭고 복잡한 부분들에 대한 역사적 설명을 발전시키는 것을 막아왔다.’ 무협문화에는 미적 관습, 철학적 기반, 제도적 역사, 주제적 동일성 등 살펴볼 부분이 많다. 단지 대중문화로 간주하는 시선이 무협문학에 대한 비평을 빈약하게 만들었을 뿐이다.
리우는 무협소설을 근대 문학 운동으로 간주하여 정치가 언제나 국가 정치라는 선입견에 도전하고자 한다. 여기서 리우는 두 가지에 집중했다.
① 무협 장르의 변별적인 미적 특징을 써내려가는 것.
② 무협을, 가장 중요한 비국가적 정치적 책임을 고안해낸, 20세기 중국 지성사에 있어 창조적이고 진보적인 문화운동으로 재위치 시키는 것.
리우는 무협문학의 “강호(江湖) 담론”을 중국의 전통적인 정치 개념인 “민간(民間)”과 “천하(天下)”의 대비 사이에서 파악하고자 한다. 그에 따르면 무협소설의 주인공은 ‘비국가적 주체’로, 국가의 법으로 규명되는 게 아니라, 다른 인간 존재에 대해 윤리적인 책임을 짐으로써 구성된다. 그 결과 무협은 일종의 사고실험이 되어, 국가적인 부분을 넘어선 정치가 공적 책임 하의 개인에게 무슨 의미인지 묻는다.
7. 무협문학과 근대성
미국에서 무협소설은 가장 연구가 될 된 근대 중국학 분야 중 하나다. 근래 학계는 무협소설에 대해 세 가지 가정을 하곤 했다.
① 무협소설은 홍콩 영화에서 역사적으로 유래하여 신체적 스팩타클을 재현한다.
② 무협소설 장르는 제국주의 시기 중국인들에게 심리적 안도감을 주는 도피주의적 판타지였다.
③ 무협소설은 중국문화의 위대함을 찬양하는 애국주의적 색채가 짙으며, 이는 주로 중국 콤플렉스나 식민적 근대 등의 문제를 보여준다.
리우가 보기엔, 모두 틀린 가정이다. 여기서 리우는 무협소설을 일종의 근대화 이론에 대한 지적 해석으로서 간주했다.
일단 ①에 대해서는 무협문화는 현대 홍콩이 아니라 근대 중국에서 시작되었다. 영화가 아니라 소설로 시초기에, ‘신체’와 ‘시각(스크린)’이 아니라 ‘신체’와 ‘문자’이다. 따라서 무협문화의 중핵은 영화가 아니라 소설이다.
② ③ 무협은 도피용 환상이 아니라, 중국 근대사의 향방을 결정지은 지적 개입이다. 무협이 정전에서 빠진 역사적 원인은 민족주의적(이면서도 서구적인) 근대화 담론이 무협을 배제했기 때문이다. (그 점에서 민족주의와 그렇게 호응하지 않는다.)
5.4 신문학으로 대표되는 민족주의 (서구) 근대화 담론은 무협이 봉건 중국을 상징한다고 보았다. 무협소설가들은 중국의 전통적인 지적 요소들을 끌어다 썼기 때문이다. (도교, 불교, 유교, 전 근대적 문학형식 등)
허나 아이러니하게도 전근대 중국에서 무협문학은 시, 사, 한문 소설 등 문학적으로 ‘고급’에 위치해 있었다. 단지 그게 1920년대 이래 로우브로우 대중소설로 빨려들어간 것일 뿐이다. 사실, 그들의 한문투 문체는 별로 대중적이지도 않았다.
신문학자 같은 근대화 세력은 무협소설이 20세기에도 존재하는 것을 강하게 비판했다. 그 결과 무협소설은 로우브로우의, 반근대적이고, 시대착오적이며, 정치적으로 억압적인 무언가로 낙인 찍혔다. 1932년 무협영화는 중국에서 금지당했으며, 1949년에는 무협소설이 신중국에서 금지 당했다. 특히 신중국에서는 1949년 사회주의 리얼리즘에 따른 근대중국문학사를 세우면서, 무협소설과 같이 리얼리즘적이지 않은 것을 문학사에서 지워냈다.
1980년대 이후 대륙 학자들이 김용을 재평가한 것은, 단순히 문학 정전을 수정한 게 아니라, 중국인들에게 자리 잡은 근대화에 대한 상상을 재고하는 일이기도 하다. 중국인들은 자신의 전통을 부수어야만 근대화를 이룰 수 있다는 ‘식민화된 상상’을 가지고 있었다.
특히 무협문학은 언어의 유럽화가 –언문일치나 표음문자- 중요하다는 우상숭배로부터 벗어나게 하며, 서구와 그 합리주의를 갈망하는 중국 지식인의 식민화된 의식을 폭로한다. 류짜이푸(Liu Zaifu)는 김용의 소설언어가 신문학 세력에 대비하여 ‘반-유럽적인 중국어 쓰기’에 있다고 지적했는데, 그 의의는 여기서 빛난다.
8. 무협 클리셰의 특징
또한 리우는 무협의 내적 구성, 서사, 장르 특징에 주목했다. 무협의 구조를 논하지 않고 친/반-민족주의니, 친/반-자본주의니로 해석해서는 안 된다. 이에 따라 두 가지 지점이 지적된다. ① 무협 문학의 작품성, 그리고 ② 그 문학성이 참여할 수 있는 관계, 그룹, 정체성, 실천의 가능성이다.
리우가 보기에, 무협의 문학성에 있어 비급(秘籍) 모티프는 중요하다. 무협에서는 흔히 대단한 무공이 담긴 고대 경전을 ‘비급’이라하는데, 이 책을 다투는 게 소설의 중심 플롯인 경우가 많다. 여기서 비급은 중국 한문(혹은 산스크리트어)으로 쓰여 있으며, 내적인 성찰을 통해 어떤 변천을 이루게 한다. 문제는 여기서 주인공을 글을 알아야만 하고, 이것이 실제 세계에 있어 지배적인 계급의 교육 자본에 접촉한다는 걸 의미한다는 점이다.
요컨대, 무협 장르는 무력을 배우는 원천으로 책을 지시한 것이다. 이는 무협 장르가 교육 받은 층에게 읽혔을 뿐만 아니라, 스스로 그 문학성을 지시함을 드러낸다. “무협은 자기의식적인 문학 담론으로, 언어의 미적 자산에 관심을 가져왔다.” 또한 무협은 중국 고문과 우주론적 개념을 쉽고 이해할 수 있게 인용한다. 그 결과 문학을 대중적 문화영역으로 옮겨놓는다.
이런 무협소설의 전통은 현대 중국문화에 큰 영향을 미쳤다. 비급의 서사전통은 2004년 쿵푸 코미디 <쿵푸허슬>이나 비슷한 시기의 <와호장룡>에서도 찾을 수 있다. 때문에 무협문학의 전통은 일종의 미적/지적 자본으로 작용한다.
9. 리우에 대해 제기하는 문제들
폴 바우만이 보기에, 리우의 주장은 그 탁월함에도 불구하고, 무협문학과 민족(nation) 간의 관계를 이해하는 데 있어 다소 문제가 있다. 리우는 중국과 홍콩의 무협문화를 민족적인 것으로 읽는데 반대하는데, 이 지점에서 무협문학에 관한 ‘민족적 알레고리’ 독해를 지나치게 과소평가하는 경향이 있다. 리우는 무협이 민족적 생산물이라는 주장에서 해방되기 위해 ‘비국가적 주체’라는 개념을 탐구했고, 중요한 지적이기는 하지만, 지나친 면이 있다. 여기서는 민족이라는 주류적 작용 옆에서, ‘비국가적 주체’라는 부가적인 작용을 드러냈다고 보는 게 맞다.
리우는 20세기 중국의 근대화-민족화 세력을 서구화를 통해 근대화와 민족화를 열망했던, 사실은 무협소설가보다 더 반동적인 어떤 세력으로 인식했다. 그리고 김용 현상이 우상숭배되던 신문학의 위치를 재고시켜줄 것이라 주장했지만, 사실 무협을 통한 전통에 대한 재발견은 “노스탤지어한 내셔널리즘”의 기미가 있다.
리우는 폴 리쾨르, 프레드릭 제임슨 등의 주장을 끌어들여, 무협문학이 “유토피아 충동” -자본주의의 실패가 전개됨에 따른, 계급 없는 사회에 대한 집단적 소망“-을 보여준다고 지적하며, 무협문학이 내부화된 식민주의 논리에 대한 서발턴의 저항이라고까지 보았다. 허나 폴 바우만이 보기에 이는 다소 편중된 논리이다.
①라캉을 인용하자면, 무협이 드러내는 노스탤지어틱한 신화는 소급적으로 구성된, 실제로는 존재하지 않는 것이다. (예를 들면 에덴동산 같이, 강호가 그렇듯.) 그 노스탤지어는 무엇을 의미하겠는가?
② 또한 리우의 말대로 만약 무협문학이 전 근대적인 무협문학에서 이어 내려오는 것이라면, 이를 ‘서발턴적인 저항’이라고 표현하는 데는 다소 무리가 있다.
③ 게다가 레이 초우의 말처럼, ‘저항으로서의 문학’은 “억압적인 가설”의 기미가 있다. 문학은 어디까지나 관료적이며 합리주의적 언어인데, 이런 언어로 저항한다는 건 무슨 의미가 되겠는가? 그래서 초우는 포스트모던 페티쉬로 문학을 과대포장하는 것을 해체해오고자 했다.
⓸ 무엇보다, 리우는 근대 이전의 어떤 총체성을 암시하는 듯한 모습을 보이곤 한다. 그에 따르면 무협의 신화적인 시간-강호-은 ‘자본 이전의 시간’에 속해있다. 이는 주체와 대상이 근대 자본주의로 인해 파편화되기 이전의 이상화된 공간으로 구성되어있다.
여기서, 폴 바우만이 보기에, 독자가 주의 깊지 않다면 무협의 ‘신화적인 시간’을 ‘대상이 근대 자본주의로 인해 파편화되기 이전의 이상화된 공간’과 같은 것으로 여길 수 있다. 물론 이런 신화적 완결성 및 총체적인 감각은, 현재의 시점으로 재구축 된 것이다. 리우야 이를 알겠지만, 읽는 이로써는 혼동될 여지가 지나치게 많다.
⓹ 첨언으로 ‘저항’, ‘서발턴성’ 등의 언어는, 리우의 저서에 적절한 것 같지 않다. 리우의 주장과 반대되는 방향으로도 무협문학은 발현될 수 있다.
10. 중국 너머
폴 바우만은 리우의 대안적인 접근이 빛을 발하려면 중국 밖이나 문학 밖을 볼 필요가 있다고 주장한다.
리우는 저서에서 메간 모리스(Meaghan Morris)의 “마이너 시네마” 개념을 끌어왔다. 모리스는 마이너 시네마라는 개념을 통해 글로벌한 메이저 시네마를 대신하는 트랜스내셔널한 시네마를 포착하고자 했고, 리우가 보기에 무협영화는 마이너 시네마의 좋은 예시가 될 수 있다.
허나 이런 접근은 무협‘문학’이 아니라 영화에 대한 것이며, 무협을 ‘마이너’라고 단정 짓는 것도 다소 문제가 있다. (중국과 홍콩에서 무협영화는 마이너하지도, 민족주의적이지 않은 것도 아니다. 미국이나 유럽에서나 그렇다.)
그리고 리우는 비재이 프라샤드(Vijay Brashad) 등을 통해 무협영화가 중국인-흑인 연대에 어떤 영향을 주었는지 논했었다. 홍위병과 블랙팬서의 유대감에 대한 부분인데, 물론 이는 그 자체로 중요하지만, 리우의 지적은 ‘문학’이나 ‘중국’과는 동떨어져있다.
이는 어쩌면 논의 초점 문제거나, 이 정도로 다이나믹한 예시가 문학이나 중국 범위에는 없었을 수도 있다. 하지만 어쩌면 이 동떨어짐은, 무협문학과 영화를 빨아들이는 내셔널리즘의 힘 때문일수도 있지 않겠는가? 광범위하고 강력하게 영향을 미치는, 내셔널리즘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