평강불초생, <강호이인전> 서문

in wuxia •  4 years ago 

#무협

설자(楔子)

이 소설을 쓰는데 들어간 자료의 10분의 2는 내가 직접 본 것이다. 나머지 8할은 성실하여 믿을만한 친구에게서 얻은 것인데, 지금 그 이야기들을 자세히 쓰고자 한다.

관원(官們)들의 관점에서 이 소설은, 무용지물일 뿐인 당나라의 신괴한 글들 마냥 “되는 대로 말하고, 되는대로 듣는(姑妄言之,姑妄聽之)” 대단찮은 것으로 보일 터이다. 마치 <봉신연의>나 <서유기>를 보는 것과 같은 마음이리라.

허나 지금 이 순간 나는 그 이야기들을 써내려감에 있어, 가슴 속에 세 가지 한(恨)이 있다.

그 세 가지 한이 무엇인가?

첫 번째 한은 내 글 실력이 영 조잡하다는 것이다.

매번 붓을 들어 글을 써도 그 뜻을 이루지 못하는 부분이 너무 많다. 구구절절한 이야기가 많아도, 내 이 조잡한 글 실력으로는 치밀하게 그려낼 수가 없으니, 관원들이 글을 보고도 어떤 미감을 얻을 수가 없을 터다.

평소 같으면 이렇게 아무래도 상관없는 소설을 쓰며 종종 소품문으로 즐기고, 순식간에 써내려간 일을 되는대로 떠들 것이니, 반쯤 신기루라 할 터다.

그때라면 글 실력이 도달할 수 있으면 그대로 써내고, 실력이 될 것 같지 않으면 또 안 쓰면 그만일 터. 글이 사실에 미안할 일이 별로 많지 않다.

다만 기억에 있는 이야기라면 내가 붓으로 마구 휘갈겨서는 안 될 일이다.

내 글 실력이 이리 조잡한 이상 있는 일을 써내려가는 건, 필히 관원들에게 별 미감을 주지는 못할 것이니, 내 글이 그 사건들에게 면목 없을 뿐이다.

내 글이 사실에 죄송한 것은, 나 본인이 그 일에 관련된 사람들과 몇 명의 성실하고 믿을만한 친구에게 죄송한 것이다. 그렇기에 나는 이 몇 편의 글을 씀에 있어 그것이 한이다.

둘째 한은 내가 일찍이 신학을 연구하지 않은 것이다. 이 몇 편의 글을 씀에 있어, 그 이유를 말하지 않을 수 없다.

나는 관원들로 하여금 이 글에 신뢰를 주기 위해, 심지어 <서유기>, <봉신연의> 등을 일종의 신화 같은 것으로 여겼었다.

셋째 한은 내 인연이 박하여, 이 글들에 쓰인 이인(異人)과 교제하지 못한 것이다.

듣고 본 일에는 한계가 있으니, 그저 사건들을 써내는 것은 사건 내용에 비해 대단찮은 일이다.

나는 다만 이 일들을 먼저 써두지 않았을 뿐인데, 이미 이리 큰 세 가지 한이 생겼다. 허나 좋지 않다고 그만 둔 채 쓰지 않을 것인가? 그럴 수도 없으리라.

왜냐하면 나는 호기심이 가득하여 시시각각 그 마음을 내려놓지 못한 채 휘말렸기 때문이다.

언제고 친척이나 친구와 왕래할 때 이러한 일들을 하나하나 꺼내놓으니, 곧 청담의 자료가 되었다.

친우들은 늘 굶주림과 자는 일을 잊으며 들었는데, 툭하면 밤을 새웠다. 다른 사람은 어쩌면 고생스럽다 여길 수도 있지만, 나는 부풀어 오른 호기심에 사로잡혀 기꺼이 즐겁게 이야기했다.

상하이에 글 짓는 고된 노동을 한 이래, 지난날 모여 이야기를 나눴던 친구들이 모두 이리저리 흩어져 몇 년 동안 얼굴 한 번 볼 수 없었으니, 소식조차 드물었다.

내 호기심의 결과로 한 바탕 기이한 이야기들을 얻었으니, 곧 털어놓지 않을 도리가 없으리라.

<서상기>에 좋은 말이 있다. “종이와 붓을 써 말을 대신하니, 천 가지 그리움 누구에게 말하리오?”

나는 지금에 이르기까지 종이와 붓을 써 말을 대신하니, 이 천 가지 기이한 이야기를 누구에게 하고 있는가?

내가 글을 쓴 뜻이 이미 설명되었다. 과연 이인(異人)이란 누구인가? 어떤 기이한 이야기들이 있는가? 하나씩 하나씩 갈라, 아래에 써내려 갈 것이다

번역자: 1920년대 소설이 되놔서, 꼭 번역이 완벽한 것은 아닙니다. 너그럽게 양해 부탁드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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