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의 형제 곧 골육의 친척을 위하여 내 자신이 저주를 받아 그리스도에게서 끊어질지라도 원하는 바로라.<롬9:3>
바울이 진정으로 원하는 소원은 "나의 형제 곧 골육의 친척"의 안위입니다.그들의 구원입니다. 아버지나 어머니를 나보다 더 사랑하는 자는 내게 합당하지 아니하고 아들이나 딸을 나보다 더 사랑하는 자도 내게 합당하지 아니하면 또 십자가를 지고 나를 따르지 않는 자도 내게 합당하지 아니하니라(마10:37-38)
네 본토 친척 아비 집을 떠나라. 그래서 약속의 땅을 향해 가라(창12:1) 이것이 신앙의 깊은 세계입니다.마태복음10장 본문의 예수님 말씀이 의미하는 것이 바로 이것입니다. 예수님은 말씀은 인간의 도리를 말하는 것이 아니라,우선순위를 말씀하시는 것입니다.
이는 아버지 어머니보다도,네 가장의 어떤 사람보다도 주를 사랑하느냐?라는 것입니다.네가 사랑하는 이들보다 나를 근본적으로 더 사랑하느냐는 것입니다. 그리스도교가 간단한 것이 아닙니다. 그리스도교의 가르침 안에서, 말씀 안에서 문명의 큰 충돌이 일어납니다.
인륜의 모든 것을 다 초월해 있는 것이 그리스도교입니다.모든 것을 다 덮고,삼켜내고,풀어낼 수 있는 더욱더 큰 차원의 놀랄만한 사랑의 토대 위에 우리가 있습니다. 이 위대한 공동체, 이 위대한 교회에 우리가 있습니다.
주께서는 당신의 가르침대로 사셨습니다.주께서는 일차원적인 모든 혈연의 관계를 초월해서 사시고, 십자가상에서 제자들이 마지막에 드렸던 통으로 짠 세마포까지도 다 주시고, 더 나아가 소유의 모든 것뿐만 아니라 생명까지도 우리를 위해서 희생의 제물로 내어 주셨습니다.
우리가 먼저는 주님의 그 깊은 사랑을 알아야합니다.마태복음 10장37절은 우리를 이토록 사랑하시는 이가 하시는 말씀입니다. 사랑의 깊은 세계를 온몸으로 보여주신 주께서 우리도 그 사랑의 깊은 세계 위에 서기를 바라시는 것입니다. 우리의 신앙의 길은 육의 소중한 세계를 버리고 얻은 세계이기에 너무나 귀하고 그 어떤 것도 주님과의 사랑의 연합을 끊을 수 없습니다.
버림이라는 것이 사실 얼마나 어려운 것입니까?특히 사랑하는 것을 버린다는 것이 얼마나 어려운 것입니까?사랑이 깊어질수록 이 세계를 알게 됩니다.아브라함에게 자식을 버리라고 했던 깊은 세계를 알게 됩니다. "하나님이 세상을 이처럼 사랑하사 독생자를 주셨으니"(요3:16) 이것이 정말 중요한 성경구절입니다.자식을 낳아보면 이것이 얼마나 크신 하나님의 사랑인지 알게 됩니다.하나님 안에도 버림이 있었습니다.그것은 버림을 넘어서 사랑하느 독생자 예수를 받치신 것입니다.
하나님께서 우리를 찾으신 것은 뼛골이 사무치는 애절한 버림의 세계를 통해서입니다.내가 그렇게 찾아지게 된 것입니다.우리가 이것을 잊을 수 없습니다. 바울은 진정으로 확신하노니 그 어떤 것도 그리스도 안의 하나님의 사랑을 끊을 수 없다고 확신합니다. 그에게는 흔들리지 않는 확신이 있습니다.
그런데 또 뭐라고 했습니까?"내가 그리스도의 사랑에서 끊어질지라도"라고 했습니다.바울 안에 또 다른 세계가 있는 것입니다.끊어질 수 없는 그리스도의 사랑에서 끊어질지라도 그가 붙들고 가지 않으면 안되는 세계가 있는 것입니다. 오늘도 주신 말씀 깊이 묵상하며 주님의 사랑에 감사하는 하루가 되길 바랍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