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마도 20세기 들어서 광학렌즈 발전에 가장 지대한 공헌을 한 사람을 한 명 꼽으라면 렌즈의 난반사억제를 위한 내부코팅을 개발한 Alexander Smakula를 들 수 있을 것이다. 당시 렌즈개발에 있어서 가장 난제였던 것은 광학수차의 교정이었다. 이를 위해서는 여러장의 광학유리를 사용해야했는데, 문제는 유리의 매수가 늘어날 수록 빛의 투과율이 5%씩 떨어졌고 렌즈의 내부반사가 심해진다는 것 이었다. 이는 사진의 선명도를 극적으로 저하시켰기 때문에 광학수차의 교정과 화질의 개선은 동시에 해결하기 매우 어려운 문제였다. 따라서 당시의 광학렌즈 메이커들은 최소한의 유리로 광학수차를 교정하는데 골몰할 수 밖에 없었고 그런 점에서 4매의 광학유리만을 이용하여 광학수차를 교정한 테사 디자인이 인기일 수 밖에 없었다. 하지만 짜이즈는 이 즈음 불소박막을 얇게 유리표면에 도포하여 코팅을 하면 렌즈의 내부반사가 극적으로 줄어다는 것을 발견하게 되었다. 이것이 바로 그 유명한 ‘T코팅’ 이며, 짜이즈는 이 기술로 1936년 특허를 취득하게 된다. 당시 광학기술은 당지 사진 뿐만 아니라 망원경, 쌍안경, 조준경이나 적진을 비밀리에 촬영하기 위한 항공용 렌즈 등 전쟁과 큰 연관이 있었다. 보다 멀리 있는 상대진형을 정확하게 오차없이 볼 수 있는 기술은 전쟁의 향방에 결정적 기여을 하게 되었다. 이에 따라 독일군은 이 T 코팅 기술이 도입된 렌즈들을 비밀리에 생산하였다고 한다. 사실 이 T코팅 기술은 전쟁 이전에 이미 개발이 완료되었으나 일반에 판매되는 렌즈에는 이를 도입하기를 피했다고 한다.
한편 이와 동시에 1934년 짜이즈의 엔지니어였던 S. Huber는 오직 2군의 렌즈로 내부반사를 획기적으로 줄이는 설계에 성공한다. 이것이 바로 2군 4매 그리고 2군 5매로 이루어진 Herar 렌즈였다. 문헌에 따르면 당시 전면 렌즈군에는 3매의 렌즈를 그리고 후면 렌즈에는 1매 또는 2매의 렌즈를 도입하여 조리개 밝기를 f2.8 그리고 f/3.5로 개발을 하였다. 테사 타입의 디자인에 비하여 구면수차가 다소 크게 나타났기 때문에 망원용 렌즈에는 적합하지 않다고 여겨졌고 35mm 렌즈용으로 프로토타입이 생산되었고 그 중 f/3.5의 렌즈만 실제 생산이 되었다. 여러 테스트 끝에 테사 디자인에 비하여 월등한 성능을 가진 렌즈라는 것이 밝혀졌고 전쟁전에 극소수의 렌즈들을 시험생산하게 된다. 당시 이 렌즈를 향한 광학렌즈업계의 관심은 지대했다고 한다. 아직 내부반사 코팅이 도입되기 전이라서 모든 이들이 난제로 생각했던 문제를 해결한 이 렌즈는 많은 이들의 기대를 한몸에 받았다. 하지만 이 렌즈가 시장에 안착될 틈은 비좁았다 비오곤은 반스탑 더 밝은 f/2.8의 조리개를 선보이고 있었고 한발 앞서 개발된 오쏘메타의 경우 비록 조리개는 f/4.5로 더 낮았지만 저렴한 가격으로 좀 더 대중적인 인기를 얻고 있었기 때문이다. 더구나 전쟁 중반 짜이즈의 공장이 있던 곳이 점령되면서 코팅기술이 외부에 유출되게되었고 덕분에 많은 다른 광학렌즈 메이커들이 이 기술을 습득하게 된다. 점차 시간이 흐르며 코팅이 도입된 비오곤이나 테사 디자인을 도입한 니꼬르 렌즈들에서도 충분한 성능을 보이게 되어 더이상 Herar에서 사용된 고급접합 기술과 디자인을 고집할 필요가 없게 되었다. 기존의 더 복잡하고 불충분한 렌즈 디자인도 내부반사방지 코팅기술로 간단히 극복할 수 있게 되었기 때문이다. 결국 짜이즈는 35밀리 렌즈의 아성을 비오곤을 통해 계속 이어나가게 된다. 이미 비오곤의 명성이 널리 퍼져있기 때문에 생산도 어렵고 아직 덜 알려진 Herar를 발전시킬 필요성을 느끼지 못했기 때문이다. Herar는 너무 늦게 태어난 비운의 렌즈라 할 수 있다. 어찌보면 2차대전을 전후하여 인류가 개발해낸 최고의 성능을 가진 렌즈였지만 명성이 없다는 이유로 폐기된 프로젝트인 셈이었다. 당시 짜이즈가 비오곤이 아닌 이 Herar 설계를 발전시키고 코팅도 도입하여 개발을 지속했으면 어땠을까 하는 상상을 해보게된다.
Hartmut Thiele의 문헌에 의하면 Herar는 대략 1000개 정도의 개체가 생산되었다고 한다. 하지만, 시리얼번호 2641,000 에서 시작되어 2641,417의 시리얼번호가 현재까지 발견되었고 그 이상의 시리얼 번호는 여지껏 알려진 바가 없다. 그렇게 보면 실제 생산대수는 500개를 넘지 않는 셈이니 렌즈 역사에서 극히 희귀한 렌즈인 샘이다.
흑백필름으로 한 롤 그리고 디지털 바디에 연결하여 잠시 급하게 찍어보고 난 첫 소감은 이전의 비오곤이나 오쏘메타랑은 완전히 다른 성격의 렌즈라는 것이었다. 보통 올드렌즈들이 개방조리개에서는 소프트하다가 조리개를 조이면 상당히 샤프해지면서 콘트라스트도 높아지는데, 이 렌즈의 경우는 개방조리개 부터 상당히 샤프한 면모를 보여준다. 조리개를 조일수록 콘트라스트가 올라가기는 하지만 여느 올드렌즈와 달리 처음부터 콘트라스트도 꽤 높은 편이어서 그 변화의 폭이 적다. 다만, 조일 수록 마이크로 콘트라스트는 확실히 더 향상되는게 느껴지고 채도도 더 강해진다. 기본 채도는 비오곤 보다는 플라나쪽에 더 가까운 것 같다. 발색은 전반적으로 밝고 화사한 편으로 비오곤이나 오쏘메타가 보여주는 묵직한 톤과는 다소 상반되며 발색에 있어서 호불호가 나뉠 것 같다. 가장 재미난 점은 빼어난 해상도에도 불구하고 구면수차가 꽤 많이 보인다는 것이었다. 이런 점은 녹틸럭스 f/1 렌즈를 연상시키는데 밝은 조리개를 가진 렌즈들의 전유물인 소위 회오리 보케가 쉽게 보였다. 이런 묘사를 좋아하는 이들에게는 꽤나 강점인 것이 보통 회오리 보케가 잘 보이는 렌즈들이 대게 소프트하고 해상력도 낮은 편인데 이 렌즈의 경우는 중심부 해상력과 콘트라스트가 꽤 높아서 회오리 보케를 연출하면서도 주제부는 뚜렷하게 강조할 수 있는 것 같다. 한가지 아쉬운 점은 비오곤, 6군8매 같은 류의 명기들과 비교해서 입체감이 다소간에 떨어져 보인다는 점이다. 사실 사진의 입체감이라는 것은 촬영시 빛 조건에 절대적인 영향을 받고 렌즈의 기여분은 다소 적은 편이니 더 많은 경험이 쌓여야 온전한 평가를 할 수 있을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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