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비스포의 전자제품 상점엔 예전과는 비교가 안될 정도로 물품이 많아지고 종류도 다양하다.
조금 깨끗해 보이는 외모의 쿠바인들이 상점 안에 가득하다.
‘우리는 평등을 이루었어. 가난으로.’라고 자조적으로 말하던 쿠바인들은
조금 더 윤택하게 살고 싶어서 기꺼이 자본주의를 조금씩 받아들이고 있다.
빈부격차가 눈에 띄게 늘어나고 있다. 그들이 피로 이룬 평등사회는 돈으로 깨질 것인가.
사회주의 체제를 버리진 않을 것이다. 현재 누리고 있는 의료, 교육, 사회적 복지제도 등을 한 번에 내려놓기는 힘들 것이므로.
그리고 나의 걱정 아닌 걱정만큼 급격하게 변하지도 않을 것이다.
그들에게는 효율을 학습할 시간이 아직 더 필요하다.
마늘을 사러 숙소 앞에 잠깐 나갔다.
1 뿌리에 5페소. 250원 꼴이다. 멕시코나 쿠바나 마늘은 다른 야채에 비해 그다지 싸지 않다.
시장이나 노점이나 가격은 같아서 야채는 되도록 집 근처 노점을 이용한다.
손에 마늘을 들고 (노점엔 봉투가 없다. 비닐봉투를 지참하고 가야 하는데 깜빡했다.)
다른 손에 담배를 들고 걸어오는데 마르고 키 큰 흑인 아저씨가 담배 피우는 시늉을 하며 뭐라 한다.
담배를 달라는 줄 알고 없다고 하니 본인의 담배를 꺼내며 불을 빌려 달라는 얘기였다.
라이터가 없어서 내 담배를 빌려주었다.
불 붙일 생각은 안 하고 수다를 떤다.
이름은 뭐냐.
어디서 왔냐.
한국인 너무 좋다.
어서 붙이고 달라고 하니 불을 붙인 후.
아이가 있냐고 묻는다. 없다고 하니 본인도 아이가 없다고.
내게 너무 착하다고. 자기는 무언가(못 알아들었다) 파는 일을 하고 본인의 집은 아주 크단다.
자기 집에 가보지 않겠냐고.
실소를 멈출 수가 없었다.
내가 웃으니 뭔가 긍정적인 뜻인 줄 아는지 더 적극적이다.
은근히 팔을 만지려고도 하고.
속으로 저리 꺼지라는 말이 뭐였더라 떠올리는데 생각이 안 난다.
또 다정하게 다가오는 순딩이 들에게 미국에서 처럼 시크하게 ’ 꺼져’ 하는 것은 좀 안 맞나 싶기도 하고.
난 간다 하고 돌아서 오는 내 뒤통수에 계속 떠든다.
‘나 너 너무 좋아해.
너 마늘 4개 있지?
난 8개 줄 수 있어.
또 봐, 내 사랑!’
길 한복판에서 빵 터질 뻔한 웃음을 삼키며 숙소로 돌아와 혼자 웃는다.
한 편으로는 귀엽기도 하지만 막상 현실에 혼자 그런 상황에 부딪히면 살짝 긴장되고 겁도 난다.
사랑하기 위해 태어난 사람들.
내가 본 쿠바인들은 그렇다. 사랑하기 위해, 사랑받기 위해 태어났다.
작은 소녀가 길을 지나가다 동네 청년들이 몰려 있는 곳을 지나려고 파고들면 그냥 빠져나오지 못한다.
아 예쁘다 하며 청년들의 볼뽀뽀 세례를 감당하고서야 지나올 수 있다.
이를 단체 성추행으로 간주하지는 않는다.
여자들은 어릴 적부터 길을 지나가기만 해도
예쁘다.
아무개야 예뻐졌네.
오늘 옷 멋지네.
이런 소리를 내내 듣는다.
그래서 쿠바나들이 초면에는 웃지 않는다. 그녀들이 시크한 데는 이유가 있었던 것.
그리고 콧대도 높고 자존심도 세고 정말 본인이 아름답다고 느낀다.
누구에게나 들이댄다는 건 누구에게든 자신이 있다는 것.
우리는 돈이 많거나 좋은 차를 뽑았거나 나름 노력으로 무언가를 이루었거나
하여튼 어떤 조건이 충족되었을 때 자신감이 비로소 생기기 쉽다.
하지만 자신감은 그 어떤 조건이 충족되건 충족되지 않건 그저 생각하고 마음먹기 나름인 것이고
나라는 존재는 언제나 그대로인데
어떤 때는 자신감이 충만하고 어떤 때는 자신감이 소멸하게 된다는 것은 단지 느낌일 뿐인 것 아닐까.
외국의 여자들이 쿠바노들에게 매력을 느끼는 것은
물론 그들이 여자를 매우 사랑하고 아끼고 항상 여자에게 잘 보이려 애쓰고 매너가 좋고 사랑스러운 표정과 잘생긴 외모 때문이지만
그 모든 것을 앞서는 것이야말로 쿠바노의 자신감이 아닐까 한다.
할 줄 아는 말은 쿠바식 에스파뇰뿐이고 많은 돈을 버는 것도 아니고 차도 없고 옷도 유럽에서 넘어온 세컨드 핸드를 몇 년째 빨아서 입고 있지만
그들은 항상 자신감에 차 있다.
‘나는 좋은 사람이다.’라는 자신감.
얼마나 순수하고 아름다운가.
결핍에서 오는 곤궁함, 지질함이 전혀 느껴지지 않는다.
만일 다른 세계의 여자들이 어떤 쿠바노에게 홀딱 반했다면 나는 그가 누구인지 몰라도 납득할 것이다.
그는 인간적인 자신감 하나로 당당하게 자신의 삶을 어떤 형태로든 살아내는 사람일 것이기 때문이다.
나와 사랑을 하지만 알고 보면 부인과 애가 있더라...... 는 것은
아주 흔한 일이고 항상 염두에 두어야 한다.
그들은 언제나 사랑에 빠질 준비가 되어있으니까.
쿠바노에게 여행자와 사랑에 빠진다는 것은
그 여행자는 나를 다른 세계로 인도해 줄 엘리베이터 이거나
조금 길어야 몇 주, 그 여행자의 여행기간 동안 좋은 애인과 가이드가 되어 쿠바 생활에서 도움을 주고 약간의 돈을 받을 수 있다거나
혹은 사귀어 보지 못한 나라의 여자와 연애를 해 보았다는 자랑거리.
물론 개중에 진짜 운명적인 사랑에 빠지는 사람들도 당연히 있을 것이나,
혹여 그 여행자와 결혼을 한다고 해도 또 다른 사랑에 쉽게 빠지기도 한다는 것이 현실인 것이다.
하지만 그 사랑에 모두 이유가 있을까.
기간이 짧건 길건
그 마음이 모두 진짜일까 아니면 목적을 위한 연기인 것뿐일까.
매번 말도 안 되는 상황에서 고백을 받고 ‘됐어요’하며 남자를 차 버리는 것이
이 곳에선 이틀에 한 번 꼴로 일어나는 일인 것인데.
마음은 진짜인 듯하다. 아무리 짧더라도 말이지.
그들의 자신감이 진짜이듯.
이들이야 말로 마음 흘러가는 대로 '잘' 살고 있는 듯하다.
그래서 길에서 만나는 모든 사람들이 그렇게 아름답게 웃을 수 있는 것일까.
“쿠바에서 살고 싶다면서요. 그럼 쿠바 남자를 만나요. 연애를 해요. 스페인어도 늘고 얼마나 좋아요.”
라는 이야기를 많이 듣는데
언제나 답은 같다.
내 개인적으로는
쿠바노와 사귈 생각은 없다. 아직은 연애를 할 만한 사람을 보지 못했다.
일단 스페인어와 행정적 서류의 이점과 이런 것들의 수단으로 연애나 결혼을 사용한다는 것이 내겐 영 탐탁지 않다.
결혼제도 자체도 100% 찬성을 못하겠는데 다른 목적을 가지고 연애나 결혼을 한다는 건
왜인지 비겁하다는 생각이 지워지지 않는다.
그리고
그들은 정말 할 수 있는 모든 몸짓과 표현을 다 동원해서 여성을 사랑하지만
아니, 숭배한다고 해야 맞을 것이다. 그렇지만
나를 여성으로서만 사랑해주는 남자는 싫다.
욕심이어도 괜찮고
뭐 다 좋고.
사랑만 할 사람이라면 쉽게 찾을 수도 있겠지만
나라는 ‘인간’을 사랑할 줄 아는 사람을 만나고 싶은 거다.
사실 그동안의 행보도 그래 왔다.
대충 끌려서 만나는 일은 없었으니.
너무 진국들만 만나와서
헤어지고 인간적으로 아쉬움이 남는 만남이 얼마나 많았던가.
차라리 연애하지 말고 계속 친구로 지낼걸.
그럼 평생 좋은 친구가 되었을 텐데.
사람 욕심 많은 내겐 아쉬웠던 일들 중 가장 큰 비중을 차지한다.
오래 알던 사람도 좋고
어제오늘 만난 사람도 좋다.
남자여도 좋고 여자여도 좋다.
내가 여자에게서 성적 매력을 못 느끼는 것이 문제가 된다면 그때 가서 또 어찌 해결될 것이고
사랑의 힘으로 취향이 바뀌어도 괜찮고
정 적응 못하면 거기까지가 내 한계인 것을 받아들이면 된다.
할아버지, 할머니여도 상관없고
10대, 20대여도 상관없다(가능성은 희박하지만.. 말 통하는 이 찾기가 아직은 힘들더라..)
누구라도 상관은 없지만
아무 나는 못 만나는 게 내 성향인 건 확실하다.
만일 나와 많은 이야기가 통하고
나를 인간적으로 존중하고
내가 인간적으로 존중하고 사랑하는 사람을 만나게 되면 바로 연애를 하겠지.
게다가 내 아이의 아비(혹은 공동 어미여도 좋다)가 될 자로 손색이 없다고 느끼는 사람을 만난다면
난 아마 또 가정을 꿈꿀 테다.
10년 이 전에도 같은 생각을 하긴 했으나,
역시 그건 이상이지.. 하는 마무리 생각이 있었다.
또 곧 의례 그렇듯 미친 사랑질의 소용돌이에서 자아고 뭐고 다 잊고
내 존재, 자존감도 없어진 채 감정에 휘둘리다가
폭풍우 뒤에 너덜너덜해진 시신 조각을 수습하기만 반복이었지.
시간이 조금 흘러보니 내 생각이 맞고
나의 방향이 맞다는 생각이 굳어진다.
아.. 생각이 굳어지는 건 위험하다.
지금은 거기까지 꾸득꾸득하다.
그게 이제야..
비로소 1년 반을 연애감정 없이 조용히 살아낸 후 내려지는 이성적인 결론이라니.
예전의 그 결론이 지금도 똑같다니!
어쨌든
그때 까지는
외롭게
깔끔하게
그저 존재한다.
길을 가다가 팔이 없는 장애인을 보았다.
지나가는 나를 보며 여지없이 ‘치나~ 린다~ 흐흐흐’하고 웃으며 인사를 한다.
깜짝 놀랐다. 이상하게 다른 이들이 인사를 할 때와는 달랐다.
내가 느끼는 이 특별한 감정의 반응은 무엇인가.
저 사람에게 한쪽 소매는 필요가 없겠군.
어딜 가는 길일까 어떻게 살까 힘들게 살진 않겠지. 장애인 복지는 어느 정도 일까.
이런 드라이한 생각 이 전에 드는 그 ‘놀람’은 무언가.
그는 쿠바노다. 여지없이 쿠바에서 평생을 살아온 남자다.
여자를 보면 인사하고 예쁘다고 하고 아이를 보면 귀엽다고 하고 동네 사람들과 구성원의 하나로 살아가고 있을 터였다.
그런데 왜 나는 다른 쿠바노와는 다른 느낌을 받는가.
왜 놀라는가.
키가 아주 큰 트랜스젠더가 자신보다 약간은 왜소한 애인과 길을 가고 있었다.
나는 너무도 자연스레 눈이 갔고 관찰을 했고 계속 지켜보는 게 멋쩍어서 흘깃거렸다.
그녀는 그 날 한껏 치장을 하고 높은 구두를 신어 키는 더욱 거대해 보였고 충분히 눈에 띄었다.
약간은 남의 시선을 즐기는 듯도 보였다.
시선과 표정에 솔직한 쿠바인들도 그녀를 나처럼 관찰하지는 않는다.
나는 왜 그녀를 유심히 더 보게 되는가.
길거리에서 만나는 쿠바인들은 지난 오랜 기간 동안 흑인과 백인과 약간의 동양인의 피가 섞인 물라토로 지내왔고
아직 남아있는 순수 백인과 흑인들은 그들과 너무도 자연스레, 숨 쉬듯이 함께 살아낸다.
그들간에 문화적 차이도 있고 개인적 차이도 있고 이제는 빈부격차도 생기기 시작하지만
어디에서든 볼 수 있는
약간 쳐지는 쪽의 상대적 박탈감은 느껴지지 않는다.
차별이 없는 곳.
평등한 사회의 이상향을 이룬 곳.
그럴 것이라는 사회주의 국가에 대한 이미지가 애초에 있긴 했다.
이 곳은 경제적으로 성공했다고 보기는 힘들지만 사회주의의 이상을 일부분은 효과적으로 실현하고 있다고도 들었다.
정작 와서 받은 문화적 충격은 내 안에 있던 차별의식들이 이끌어내 진 것.
누구나 사람은 똑같이 존엄하고 나는 사람을 차별하지 않는 사람이라는 스스로의 얄팍한 믿음은 여지없이 깨진다.
철저하게 자본과 계급으로 차별하는 사회에서 살아온 내게
‘나는 평등주의자야’라는 생각만으로는 깊이 젖어있던 차별의식이 없어지지 않는 것이다.
인정하고 생각을 다시 시작해야 한다.
사람을 만나는 태도부터 바꿔야 한다.
그 사람의 옷, 향수, 신발, 시계, 보여주고 싶어 하는 표정.. 에 뺏긴 눈길을 거두어야 한다.
먼저 눈빛을 보고 목소리를 듣고 진짜 감정을 읽고 체온을 느껴야 한다.
내가 무시당하기 싫어서 상대를 존중하는 것이 아니라 사람은 누구나 무시당하면 안 되므로, 누구도 누구를 무시할 수 없으므로 상대의 자존감을 인정해주어야 한다.
내 자존감이 박약한데 남의 자존감만 인정한다면 그것은 인정이 아니라 복종에 가까울 것.
내가 나를 존중해야 한다.
한국의 서열 사회가 참 싫었다.
사람을 만나면 나이부터 물어보고 많은 이가 본인보다 어린 이에게 반말을 하고
서열 안에서 안정을 찾으려는 그 심리가 싫었고 지금도 마찬가지이다.
상대가 편해서가 아니라 낮 추이 보고 반말을 하려는 자가 존댓말 들을 자격이 있는가.
모르겠다. 서열이 편한 그대들은 그 안에서 편함을 추구하시라
난 그저 인간의 품위에 대해 더 고민하겠다.
존대어라는 아름다운 언어 풍습과 완곡한 표현이라는 편리한 배려 방법을
효율과 이익이 아닌 존중을 위해 사용하겠다.
일 년 넘게 한국어는 존댓말만 하다가 2년여 만에 만난 동생에게 존대를 하니 어색해한다.
헌데 내가 원래 그 친구에게 존대를 했었는지 반말을 했었는지 잊어버렸다.
그냥 기분 좋게 서로 존대를 하기로 했다.
중요하지 않다.
지구 반대편에서 2년 만에 알던 이와 재회한다는 것은
그 우정이 비록 얄팍할지라도 반가움의 크기는 비교가 안 되는 것이므로.
어떤 이들은 내가 공부하기 싫어서 규모가 작은 대학에 억지로 들어가서 다녔고 30이 훌쩍 넘어 방송대를 다녔다거나 파산했었다거나 수입이 변변치 않아서 두세 가지 일을 한다거나 지금은 집도 차도 없어서 월세에 산다거나 그럼에도 본인보다 나이가 많다고 하면 없던 걱정을 끄집어내며 불안해했고
그들은 또 내가 서울 출신이라거나 어떤 큰 회사들에 잠시 다닌 적이 있다거나 예전에 돈을 좀 벌었었다거나 본인보다 나이가 어리다는 이야기를 들으면 약간 안심했다.
몇몇 곳을 여행했다는 이야기를 하면 좋겠다 부럽다라고 하다가
돈이 없이 저렴하게만 다녔고 그 곳의 유명한 리조트는 못 가봤다라고 하면 멋지긴 하지만 본인은 그렇게 못 다닐 것이라고 했다.
예전 그 어느 시점에 있는 나와 현재의 나는 둘이 아니다.
같은 사람에 대해 포장을 바꾼 것 만으로도 희비가 엇갈린다는 것은 어떤 불안감을 말하는 것이 아닐까.
깊고 깊은 일반화의 오류에서 벗어나지 못할 양이라면
그 기준을 조금 더 근본적인 것으로 바꿔보는 것은 어떻겠는가.
소멸될 것들에 기대지 말고
모든 것을 다 던져도 던져지지 않는 그 사람만의 것을 찾는 시각에 눈을 뜨는 것이 중요하다.
내가 소멸되고 나서도 남는 것은 무엇인지 알고 싶다.
누가 알아주길 바라며 남는 어떤 것 말고 누구도 몰라주지만 존재를 부정할 수 없는 그것.