산다는 게 뭘까 3/CJSDNS
요즘 며칠 사이에 삶의 회의를 많이 느낍니다.
언제나 나름 심지 곧게 살아왔지만 스스로가 깊은 자괴감에 빠지기는 이번이 처음이 아닌가 싶습니다.
어머니는 늘 그러셨습니다.
부모를 두고 자식을 두고 그 어떤 장담도 하지 말아라.
내 부모는 내 자식은 절대로 그렇지 않을 것이라 라는 장담은 하지 말아야 한다.
다만 최선을 다하는 것일 뿐이다.
생략하고 바로 본론으로 들어갑니다.
나는 장담한 것이 있습니다.
아버지는 몰라도 어머니는 절대로 요양병원이나 요양원 같은 곳에 모시지 않을 것이다.
이것은 나만의 각오가 아니라 아내도 같은 생각이었습니다.
그런데 그것이 하루아침에 무너져 버렸습니다.
내가 장남이다 보니 우리 부부는 결혼 후 부모님과 떨어져 산기간은 그리 많지 않습니다.
거의 대부분 특히 아버지가 50대가 넘으신 후로는 거의 한집에 살았습니다.
그 이유는 경제적으로 어려운 문제도 있었겠지만 동생들에게 부모님의 대한 짐을 지키지 않겠다는 생각이 컸습니다.
하여, 동생들에게도 장담하듯 확언하여 말했습니다.
내가, 부모님을 잘 모시겠다는 말은 못 한다.
그러나 우리 형편대로 모시고 살 테니 너희들은 너희들끼리 잘살면 된다.
부모님 연로하시면 서로 떠미는 것도 안 좋아 보이고 이 자식 저자식 몇 개월씩 돌아가며 사는 것도 처음은 보기 좋은 듯 하나 결국은 부모님을 오갈 데 없이 만드는 경우를 많이 본다.
그러니 우리 부모님은 내가 잘 모신다고 말은 못 하나 끝까지 내가 책임지고 모실 거라 말했습니다.
그리고 그렇게 나름 잘 살아왔습니다.
어머님을 요양원 같은 곳에 안 보낸다는 것도 잘 지켜 왔습니다.
그런데, 작년 이맘때 인도네시아로 한 달간 일정으로 애터미와 스티미언 후원과 응원을 갔습니다.
그런데 20일쯤 지난 어느 날 아버지가 외출하셨다고 돌아오시는 길에 넘어지셨다는 소식에 일정을 취소하고 급 귀국을 했습니다.
아버지는 병원에서 검사로 고관절이 부러졌다는 것을 알게 되었고 수술 후 입원 치료를 받다가 전원을 하는 과정에서 육이오 참전 용사이신 관계로 경기도에서 운영하는 경기 도립노인 재활 병원으로 이송되었습니다.
아무래도 도에서 운영하는 병원이니 안심이 되고 나름 시설도 괜찮아 보여 몇 개월이면 나아서 집으로 돌아오실 줄 알았습니다.
그러나 상황은 호전되는듯하다, 악화가 되어 이젠 집으로 오시기 어렵다는 판단에 이르게 되었습니다.
사실 아버지에게는 죄송한 말씀이나 집보다 병원에 계신 것이 아버지에게도 가족에게도 낫다고 생각하여 약간의 불편한 마음 이외는 크게 죄송한 마음은 없었습니다.
그런 가운데 어머니는 몸이 불편하시고 아들 내외 특히 며느리에게 고생을 시킨다며 요양원으로 보내 달라고 수차례 말씀 하시는데 우리 부부는 어머니는 절대로 그런 곳에 안 보낼 거예요,라고 말씀을 드렸습니다.
한집에 모시고 살지만 아버지가 병원에 입원 후 안 계시니 늘 외롭고 허전해하시는 모습에 마음이 편치 않은데 언제부터인가는 아버지가 입원해 계신 병원에 나도 가면 안 되냐는 말씀을 자주 하셔서 마음이 불편했습니다.
그러나 늘 평온하게 무사히 잘 지내며 아버지 면회도 어머님을 모시고 자주 다녀왔습니다.
그러나 일은 예기치 않은 날에 왔습니다.
그날이 바로 입춘 날 2월 3일입니다.
앞서 이야기했듯이 2월 3일 이른 아침에 집사람 오빠가 입원해 있는 강동 성심병원에서 전화가 왔습니다.
곧바로 처형에게서도 전화가 온가 같습니다.
통화를 하는 모습이 급해 보였습니다.
이럴 땐 다른 말이 필요 없습니다.
자동차 시동부터 걸어놓고 옷을 입고 나섰습니다.
처남은 입춘날 아침해가 떠오르기 시작할 때에 운명을 하셨습니다.
다행하게도 임종을 두동생과 메제가 지켜드렸습니다.
병원을 도착한 지 한 시간쯤인가의 일입니다.
장례 절차 등 급한일을 대강 한 뒤에 집으로 왔습니다.
어머니가 혼자 계시니 당연히 와야 했습니다.
그리고 저녁때 다시 장례식장에 갔다 밤 11시에 집에 왔습니다.
어머니 방부터 들어가 보니...
다음 달 이른 아침에 119의 도움을 받아 병원으로 후송하여 엑스레이 찍으니 이상 소견이 없다며 시티 촬영을 하자 하여 촬영 후 보니 고관절 회전 부위가 아닌 장대 뼈인가 기다란 뼈의 끝부분 3센티 정도 부위에 골절이 나타납니다.
의사의 설명은 이렇습니다.
다행히 뼈가 움직이는 부위가 아니고 장골뼈인지 장대뼈인지 긴 뼈를 가리키며 골절부이를 알려 줍니다.
수술은 필요 없고 한 이주정도 가만히 누워있으면 통증도 사라지고 저절로 붙습니다, 그러니 집으로 가시던 입원을 하시던 알아서 판단하세요, 말하고는 바쁘다는 시늉을 하고 사라집니다.
어떻게 해야 하나 생각을 하다 입원을 결정하고 수속을 밟아 입원실로 갔으나 이제 간병인 문제가 나옵니다.
24시간 지켜야 한다는데 아내의 오빠 상중이니 당장도 문제가 되었습니다.
그렇다고 각자 자기들의 생활이 있는데 병원에 와서 24시간 간병활 자식도 없습니다.
이러니 동생들에게 이야기해 볼 필요도 없고 간병인을 구하게 됩니다.
그런 과정에 간병인을 알선하는 한 사람을 만나게 되는데 수술을 할게 아니면
이 병원에 있는 것보다 요 영 병원으로 가는 게 환자를 위해서도 훨씬 좋습니다라고 이야기를 합니다.
이야기에 솔깃해서 소개해주는 요양병원엘 가봅니다.
시설을 둘러보고 설명을 들으니 그간 가지고 있던 생각과는 조금 다르구나 하는 생각이 듭니다.
그래서 막내 동생에게 이렇다고 전화를 하니 동생이 하는 말이, 전원을 할 거면 아버지 계신 병원을 알아볼까 말합니다.
그래, 그렇게 되면 좋지, 그렇지 않아도 며칠 전부터 아버지 병원에 당신도 가시면 안 되겠냐 말씀이 많으셨다고 하니 동생도 그런 말을 진작 어머니에서 들어서 알고 있다고 합니다.
동생이 도립병원으로 알아봅니다.
입원은 가능한지, 가능하다면 같은 병동으로 되는지 등등을 알아보겠다고 합니다. 같은 병동이 아니면 굳이 의미가 없고 같은 병동이면 간병인이나 간호사들의 도움으로 아버지 어머니가 자주 만날 수 있을 거란 생각에서 입니다.
일은 잘 진행되었고 어머니를 2월 4일 오후 늦게 경기도립 노인 재활병원으로 전원 하여 입원시켜 드리고 돌아왔습니다.
그런데 돌아오는 그 길에 여러 생각이 듭니다.
그렇게 맹세하듯 했던 요양병원 같은 곳에 모시지 않겠다고 했는데 지금 이유야 어떻든 그렇게 했구나 싶어 마음이 착잡함 그 이상의 무엇이 계속 따라다닙니다.
다시, 다음날 일찍 장례식장에 가서 발인하여 화장장을 거쳐 고인의 유골을 안치까지 하고 늦게 집에 옵니다.
집에 돌아오는 길에 아내가 말합니다.
내일은 어머니를 뵈어 가자고, 만사 제치고 다녀와야 한다고, 마음이 너무 무겁고 죄송스럽다고, 하필 본인이 집에 없는 날 일이 생겨 더욱 마음이 아프다고, 자책하는 아내를 달래야 했습니다.
하여, 집에 도착하자마자 병원에 전화를 하여 면회 예약을 했습니다.
어제 면화를 다녀왔습니다.
어머니는 며느리에게 미안하다 하시고 며느리는 어머니에게 죄송하다, 하고
역시나 시어머니 며느리는 여전히 서로를 아끼고 염려하고 서로의 사랑을 확인합니다.
어머니는 매일 한 개씩 윌을 드시는데 혹시 몰라서 일주일치를 가져갔습니다.
담당 간호사에게 물으니 드려도 된다고 합니다.
어머니도 혹시 그거 가져왔냐 하시기에 예 가져왔어요 하며 입에다 흘려 드리니 아주 좋아하십니다.
아버지와 동시에 면회를 하니 두 분이 서로 손도 잡고 이런저런 이야기도 하십니다.
우리 아버지 어머니가 이렇게 다정하셨던 적이 있나 싶게 여태껏 보지 못한 풍경이 보입니다.
그런 모습에서 일반 요양 병원보다 비용이 배가 더 들어도 이리로 오기를 잘했다 싶은 생각이 듭니다.
일반 요양 병원은 환자가 받는 등급이라는 것이 있어 그 혜택을 볼 수 있으나 도립 병원은 그 혜택이 없다고 합니다.
면회시간이 40여분 흘러가니 어머니가 말씀하십니다.
큰일 치르고 피곤할 테니 너무 걱정하지 말고 이제 가거라, 나도 이제 들어가야겠다 하십니다.
어머니도 아들 며느리 보고 낭군까지 보시니 흡족하신가 봅니다.
그간은 병원이라면 경기를 느끼시던 분이 이곳 병원을 생각보다 덜 부담스러워하시고 아버지보다 적응을 잘하시는 거 같아 안심이 되기는 합니다.
돌아오는 길에 아내도 말합니다.
어머님을 병원에 모신다는 게 마음이 불편하기는 해도 오늘 뵈니 안심이 되기는 한다며, 그런데 사람이 산다는 게 뭔가요 합니다.
오빠 네 분이 계셨으나 이제 다 가셨고 칠 남매 중에 언니와 단 둘만이 남았다며 이젠 우리 차례가 오고 있다며 힘이 없는 자조적인 말을 합니다.
그렇습니다.
아직 아버지 어머니가 계시니 이런 말하기는 경망스럽기는 합니다.
그러나 분명한 건 이젠 싫어도 그때가 다가온다는 것입니다.
산다는 게 뭔지 잘 모르겠습니다.
70년을 살았어도 잘 모르겠고 더욱 어려운 게 삶인 거 같습니다.
자부할 수는 없으나 나름 잘 살아왔다고 생각했는데 그렇지 못한 거 아닌가 싶습니다.
어머니의 가르침에 따라 소신껏 열심히 살아왔는데, 내 인생의 큰 스승이신 어머니를 두고 한 나의 약속, 하늘나라 가실 때까지 집에서 모시겠다 했는데 그 약속이 허물어졌다.
빨리 나으셔서 집으로 오시면 좋겠다고 생각하지만 노인분들의 골절은 자식들의 생각을 외면하기를 잘한다니 마음이 여전히 불편하다.
그러나 한편 생각에 병원 침대에 누워 계실지언정 아버지 가까이 계신 게 그렇게 좋으신가 싶은 야속함도 있다.
산다는 게 뭘까?
사실 알 거 같으면서도 모르겠는 게 삶이다.
그러니 더욱 어려운 게 잘 산다는 것일 게다.
어쩜 잘살겠다는 생각마저 하지 않고 사는 게 잘 사는 것인지도 모르겠다.
요즘 세상 돌아가는 것을 보면 잘 사는 게 어떤 것인지 정말 모르겠다.
내가 혼돈 속에 빠진 것인지 세상이 혼돈 속에 빠진 것이지 모르겠다.
산다는, 잘 산다는 게 뭘까?
이 물음에 진심이 담긴 답글을 기대하며 산다는 게 뭘까,라는 주제를 마칩니다.
감사합니다.
2025/02/07
천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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답변을 이렇게좀하시지요
잘못한게없습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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심지 곧게 답변피하시네요
멋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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https://steemit.com/zzan/@maikuraki/jjy-1
이것좀 설명해주세요
너무 궁금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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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wan1
이것도 이벤트에서 1스팀 탄뒤에
다시 스팀을 보내고잇네요
돌려막기인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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