늦장steemCreated with Sketch.

in zzan •  last year 

늦장/cjsdns

깨어 보니 3시가 다 됐다.
이건 너무 일러 더 자자.

다시 깨어 보니
4시 반, 이것도 일러
다시 잔다.

암행어사가
거지랑 길가는 이야기에 깨어보니
5시 10분, 적당하다 싶어 일어나
커튼을 제쳐보니
비가 내린다.

그래, 이 시간에 나가 빗속을 걸으면 청승이지
더 자자, 그리고 한 시간 비몽 사몽
아내가 일어나서 분주하다.

왜 아직? 하는 말에 비가 와서 청승 떠는 것처럼 보일 거 같아
우리 모닝커피 한잔 하자, 말을 건네고 기다리니
헤모힘에 인삼차를 타서 먹자고 한다.

그것도 좋고, 오랜만이다.
이른 아침에 마주 앉아 찻잔을 기울여 보기는...

서둘러 나서며 차 타고 가시겠소 하니 걸어간단다
늦었으니 차 트고 갔다고 올 때만 걸어오세요 하니 좋단다.
이 또한 오랜만이다.

이른 아침이면 두 시간 걷는 나
한 시간 걷는 아내
운동장까지 걸어가고 걸어오는 아내
차 타고 가서 걷고 차 타고 오는 나
운동장만 걷기는 지루해 걸어서 가고 오는 아내랑
시간 맞춰서 같이 갇는 게 쉽지 않다.

천천히 걷는 나, 조금은 빨리 걷는 아내
휴대폰으로 글을 쓰거나 읽어주는 책을 듣는다.
시를 외우거나 황창연 신부의 유튜브를 듣는 아내
이 또한 같이 걷는 게 어려운 조합이다.

대부분 부부인 줄도 모른다.
살짝 아는 사람, 사이가 나쁜가 한다.
나쁠 것도 없거늘
오히려 늘 붙어 다니는 부부가 이상한 거 아닌가

그나마 오늘은 없다.
비가 오니 다정한 부부도 씩씩한 부부도 보이지 않는다.
오직 운동장 저만치에서 파란 우산 들고 걷는 사람
빨간 우산 들고 걷는 나
우주의 반대쪽에 서있는 것처럼 보이기도 한다.

채만식 작가의 팔려간 몸에 견우와 직녀가 안타깝다.
모리무라세이이치의 인간의 증명은 박진감이 넘치기는 하는데
처음 등장인물에서 예견한 대로 뻔한 스토리다.

늦장을 부리게 한 비는 여전히 내리고
비 덕분인지 소식이 없는 게 역시 늦장을 부리는 거 같다.
혼자 돌고 도는 운동장 트랙
평소 아침이면 누군 뛰고 눈군 걷고 누군 아주 천천히 걷고
그런 사람들 모두
나처럼 늦장부리거나 포기하고 안 나오는 듯하다.

감사합니다.

2023/09/27
천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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I dont speak Korean but I want you to know I think thats a beautiful shot that is very rare to get, you're so lucky! This is happy photography. (UwU) Thanks for sharing.