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독서잡기 20-24] 구멍가게, 오늘도 문 열었습니다(이미경)

고모님은 마을 어귀에서 구멍가게를 하셨다.
마을 전체가 논이나 밭에서 나는 것으로 먹고 사는 동네에서
국민학교 선생님 댁을 제외하면 유일하게 다른 직업을
가지셨던 것이다.

고모님네 진열장에는 나의 영혼을 흔드는 많은 물건들이
있었다. 각종 과자와 빵, 겨울에는 빨간 사과 여름에는 하드,
그리고 아저씨들을 위한 막걸리.

그것이 연중무휴 얼마나 고된 일인지, 더구나 남편을
일찍 여읜 여인에게 얼마나 퍽퍽한 삶이었는지, 이미
고인이 되신 지금에서야 조금 알겠다.

그럼에도 그 구멍가게는 늘 선망의 대상이었다.
지금은 번듯한 편의점이 들어선 그 곳.

이 책의 이쁘고 섬세한 그림들은 바로 그 고모네 가게를
떠올려 주었다. 한적한 삼거리, 또는 오래된 골목 입구를
지키고 있는 슈퍼나 구멍 가게.
하나 둘 자취를 감추더니 지금은 어찌된 게 잊고 있던
친구를 만난듯 반가울 정도가 되어 버렸다.

모든 게 변하는 건 진리인데 왜 예전 것을
그리 반가워 하는지 모를 일이다.
슈퍼 앞 마당에 꼭 있었던 비닐장판 씌운 평상, 아무도
편지 쓰지 않는 시대지만 빨간 우체통, 무심한 화분,
자전거, 아이스크림 냉장고.....

책장을 넘기자니 오래된 골목길을 걷고싶다는 충동이
인다. 거기 담틈에 피어난 꽃이나 낙서, 평상에 널린
곡식을 사진에 담아 두어야겠다.

모든 것이 너무 빨리 변해 버린다.
옛것이 너무 빨리 버려진다.

이미경 / 남해의봄날/ 2020/ 23,000원/ 인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