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브런치] 휴대폰은 멀리, 마음은 가까이

퇴근 후 샤워를 하고 나왔는데 부재중 전화가 들어와 있었다. 오랜만에 형의 전화였다. 예전에는 자주 통화했었는데 서로 일하고 아이들을 키우느라 바쁘다보니 연락이 뜸해졌다. 그 간극을 매우기라도 하는 듯 최대한 밝은 목소리로 전화를 걸었다.

"전화했었네? 별 일 없제?"
"어, 다 잘 지내고 있다. 다름이 아니고 내일 엄마 무릎관절 수술 하신단다. 전화 한 통 해드려라."
"아...... 맞나. 알겠다. 지금 전화해 볼게."

평소라면 편안함을 느낄 형의 차분한 목소리가 그날따라 내 마음에 무겁게 내려앉았다.

코로나19로 거리두기가 시행되기 한참 전부터 나는 휴대폰과의 거리두기를 하고 있었다. 현대인의 필수품이라는 핑계로 어찌나 게임과 웹툰을 생활화했는지 나를 거쳐가지 않은 것은 손에 꼽을 정도였다. 한 번은 아내 친구가 집에 방문했을 때였다. 어색함을 없애기 위해 이런 저런 이야기를 나누던 중 웹툰을 좋아한다는 말에 하나만 추천해달라고 부탁했다. 'OO의 세포라고 이건 남자분들이 잘 안보시기는 한데, 나름 재미있으니 한 번 보세요.'라고 소개한 웹툰은 이미 보고 있던 것이었고 우리는 한동안 웹툰 이야기를 하며 아이스브레이킹에 성공할 수 있었다. 비록 아내의 눈에서 뿜어져 나오는 광선에 다시 얼어붙기는 했지만......

이랬던 내가 휴대폰과 거리두기를 결심하게 된 이유는 무엇일까 곰곰이 생각해 보아도 특별한 것은 없다. 그저 우선순위에서 밀렸다고 해야할까? 폰게임을 하는 것보다는 아이들과 노는 것이, 웹툰을 보는 것보다 책을 읽는 것이 더 우선이 되면서 자연스럽게 변한 것 같다.

휴대폰과 거리두기는 내가 생각했던 것보다 훨씬 좋은 성과를 거두었다. 첫째는 시간을 더 유용하게 사용할 수 있었다. 게임과 웹툰 대신에 책을 들었고 글을 쓰면서 여가생활을 보낸 덕분에 조금씩 글쓰기 능력이 향상되었다. 가족과 함께 있을 때는 온전히 가족에게 집중할 수 있었기에 진정한 의미의 소통을 깨달을 수도 있었고 동시에 가족간 관계도 더 끈끈해졌다.

둘째는 휴대폰 중독으로부터 탈출할 수 있었던 점이다. 나는 휴대폰을 진동으로 해놓는데 가끔 주머니 속에서 울림이 느껴지는 경우가 있다. 그런데 막상 확인해 보면 아무 일도 없는 경우가 더러 있었다. 어느날 우연히 본 기사에서는 그런 현상을 '휴대폰 중독에 의한 정신적 착란 증세'라고 표현했다. 큰 충격이었다. 그런데 나 외에도 이런 현상을 겪고 있는 현대인들이 많다는 사실에 또 한 번 놀랐었다. 휴대폰과 거리두기를 하고 나서도 한동안 멀리 떨어져 있는 핸드폰 진동이 느껴지는 현상을 겪어야 했지만, 현재는 그런 증상이 전혀 없다. 오히려 감이 더 좋아져서 전화가 온지도 모르는 아내의 휴대폰을 찾아 건네주기도 한다(같은 기종 휴대폰이라 아내는 가끔 자신의 것인지 어떻게 알았냐며 신기해 한다. 사실 나도 내가 신기하다).

그 외에도 주말에 듣기 싫은 상사의 전화로부터 자유로워질 수 있는 점과 치아보험에 가입하라는 상품홍보 전화로부터 스트레스를 피할 수 있는 점 등 휴대폰 거리두기는 이점이 많았기에 앞으로도 꾸준히 거리를 두어야겠다고 생각하고 있었다. 그러나 전화기 넘어로 들려온 형의 목소리에 퍼뜩 정신을 차렸다. 어쩌면 나는 외부로부터의 단절에 편안함을 느낀 나머지 소중한 사람들과의 관계마저 단절하고 지낸 건 아니었는지...... 즐겨찾기 두 번째 줄에 떠있는 엄마 전화번호가 낯설게 느껴져 더욱 죄송스러운 밤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