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니멀 라이프] 반짝반짝 화장실

사춘기시절 머리에 각질이 많이 나왔다. 하루에 몇 번씩 샴푸를 해도 막을 수 없었다. 아니, 오히려 더 심하게 각질이 나왔다. 이러다가 외할아버지처럼 머리가 벗겨지는 건 아닌지 심히 걱정되기도 했다. 가만히 있어도 머리가 얼얼해 참을 수 없어서 결국 병원을 찾았다. 내 머리를 살피던 의사선생님은 너무 자주 머리를 감으면 오히려 머리가 더 빨리 건조해져 좋지 않다고 했다. 더구나 샴푸에 들어가있는 각종 화학성분이 두피를 계속 자극하기 때문에 이틀에 한 번 꼴로 머리를 감으라고 했다.

착하고 말 잘 듣는 학생이었던 나는 의사선생님의 말을 잘 따랐다. 다행히도 두피는 안정이 되었고 각질이 벗겨지는 스트레스에서 벗어날 수 있었다. 그리고 샴푸보다 비누를 더 애용했다. 이 습관은 군대를 거쳐 지금까지 유지되고 있는데 여러모로 편리한 점이 많다. 첫번째는 샴푸에 비해 화학성분이 적어 두피에 자극이 적다. 나같은 경우 외모에 크게 신경쓰지 않는 덕분에 머릿결을 과감하게 포기했다. 사실 샴푸를 쓰면 머릿결 유지뿐만 아니라 좋은 향을 유지할 수 있어 사회생활에 더 유리할지 모르나 나는 그런 생활보다 건강과 환경을 생각하기로 결심했다.

두번째는 비누가 상당히 편리하다는 점이다. 린스를 할 필요가 없고 샤워할 때도 같은 비누를 사용하면 된다. 삼푸로 샤워를 하거나 바디워셔로 머리를 감는 불상사를 방지할 수도 있다. 게다가 화장실에도 샴푸, 린스, 바디워셔, 폼 등 불필요한 물건을 놓을 필요가 없다. 그런 공간이 줄어들수록 내가 사용할 수 있는 공간이 늘어나기에 공간효율면에서도 상당한 강점이 있다.

세번째는 비용 측면이다. 비누 하나만 사용하기 때문에 빨리 소진되기는 하지만 가격면에서는 훨씬 저렴하다. 또한 펌프식 샴푸류는 아이들 장난감으로 전락하면서 필요 이상으로 많이 소진되기도 하는데 이에 비례해서 아이들 야단치는 횟수도 증가한다. 펌프식 샴푸류가 없으면 아이들에게 불필요한 교육을 하거나 야단을 치면서 에너지를 소비하지 않게 되고 오롯이 아이들과 즐겁게 지내는 시간과 감정을 유지할 수 있다.

아이들이 사춘기가 되면 샴푸나 린스를 찾게 될지도 모르겠지만 적어도 지금은 우리가족 건강과 환경을 지켜주는 이런 생활이 좋다. 나에게 꼭 필요한 물건만 소유하는 삶, 그런 삶을 통해 물질보다 사랑과 행복이 가득한 공간이 되었으면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