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후가 되면 피곤이 밀려오는 계절. 매주 목요일마다 몇몇 동료들과 노는셈치고 하던 야근도 건너뛴 지 두어 달 쯤 되는 것 같다.
오늘도 일찍 가겠다고 몇 번이나 다짐했는데, 결산해 보니 이미 금액은 천만원 가까이 나는 상황이라 결국은 9시까지 딱 하고 집에 가는 걸로.
7시가 넘으니 배도 고프고 지치기 시작한지라, 점심에 먹던 음식들도 있고 저녁으로 컵라면을 하나 깠다. 무슨 부귀영화를 누리겠다고 먹으면서 일하다가 서류로 컵라면을 그대로 엎어버렸다. 살짝 엎었으면 좋으련만, 아, 정말 제대로 쓰리쿠션을 치는 참사가 벌어졌다.
아직 먹지도 않은데다가, 물도 찰랑찰랑 부었으니 날은 제대로 잡았다. 아래를 내려다 보니 옷에도 쏟고, 의자에도 쏟고, 심지어 탁자 무릎이 닿는 곳을 때려 마치 라면 고드름이라도 매달린 듯 일렬로 국물들이…
쓰리쿠션을 쳤는지라 책상 건너편까지 으아…
라면을 쏟는 이런류의 참사가 벌어지면 나는 생각한다.
나는 어른이다… 어른이다… 어른이다…
망연자실하거나 얼어버리거나 내게 왜 이런 일이 생기냐고 화를 내거나 이런 태도를 보이는 건 애들이나 그러는거지.
나는 어른답게 핸드타올 두 장으로 열심히 치웠다. 치우고 또 치웠다. 제대로 닦지 않으면 두고두고 끈적이며 냄새를 풍기겠지. 결국은 내가 감당해야하니 정말 열심히 세 번, 네 번을 치웠다. 허리가 아프다. 무릎도 아프다.
(뭐 한 때는 밤 12시에 여친이 지하철에 토한 것도…치웠었…) 애고 별 생각이 다 든다. 그래도 카펫이 아닌게 어디냐싶다. 핸드타올을 십수차례 빨아서 커피소독탕에 넣어서 삶아서 의자에 널어놓고 허리를 펴니 이미 8시가 다 되어간다.
아, 그냥 집에 갈 걸 그랬나… 허겁지겁 뒷마무리를 하고 기차역으로 뛰어왔다. 8시 50분 기차 자리를 간신히 하나 잡았다. 기차를 타고 있으니 지난 2시간동안 있었던 일이 주마등처럼 스쳐간다. 이제 집에가는 30분 간 꿀잠자야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