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은 밤꽃이야기입니다.
참나무과에 속하는 교목성 낙엽과수입니다.
학명은 Castanea crenata S.et Z.이며 아시아, 유럽, 북미, 북아프리카 등의 온대지역에 분포되어 있습니다.
밤나무는 다른 과수에 비하여 조방(자연의 힘을 빌려 노력이 적게 듦)적인 재배관리가 가능하고 경사가 급한 지형에서도 비교적 용이하게 재배할 수 있으며 수송 및 저장성이 크기 때문에 교통이 불편한 산간지에서도 유리하게 재배할 수 있는 특징이 있습니다. 우리 나라는 전국적으로 식재가 가능하며 식재시기는 봄에 심는 것이 좋습니다.
밤나무는 암수한그루로 6~8월에 꽃이 달리는데 수꽃은 새가지 끝의 잎겨드랑이에서 꼬리모양의 화서에 많이 달리고 암꽃은 그 밑부분에서 2~3개식 한군데 모여 난형으로 작게 달립니다.
꽃말은 '호화로움, 정의, 공평, 포근한 사랑'입니다.
밤나무에 대한 율곡 선생님의 이야기를 퍼왔습니다.
율곡 이이 선생의 아버지인 감찰공 이원수와 어머니 신사임당은 혼인하여 5년 되던 해 이원수는 공부를 위해 10년 작정을 하고 서울로 떠납니다.
10년이 지나 아내가 있는 강릉으로 한달음에 달려가던 이공(이원수)은 며칠을 걸은 끝에 강원도 대화땅 지금의 평창에 이르러 주막에 묵게 되었습니다. 이공이 곤한 잠에 떨어진 야심한 시각 방문이 열리고 소복단장한 주막주인이 주안상을 차려 들어오며 하룻밤 가연 맺기를 간절히 청해오는 것이었으나 단호히 뿌리치고 부부는 10년만에 재회하였답니다.
그 후 신사임당은 흑룡이 어린아이를 안겨주는 꿈을 꾸고는 태기를 느꼈는데 그즈음 이공은 과거를 보기 위해 다시 서울로 가게 되었습니다. 평창 근처를 지나던 이공은 이전 주막집 여자에게 너무 몰인정하게 대한 것이 마음에 걸려 그 집을 다시 찾았습니다.
그날 밤 이공이 여인을 불러 사과하고 같이 지내자고 하자 그녀는 정색을 하고 "비록 주막을 하여 먹고 사나 그런 여자는 아닙니다. 제가 배운 것은 없지만 오가는 사람을 많이 보아 기색을 대강 살필 줄 아는지라 그날 선비님의 얼굴에 좋은 기운이 서린 것을 보고 귀한 자식을 낳아볼까 하는 욕심에 여자로서 부끄러움을 무릅쓰고 그리하였으나 지금은 그런 기운도 사라졌을 뿐더러 이미 부인의 몸에 귀한 아드님이 잉태되어 있사온데 제가 공연히 정조만 더럽힐 필요가 있겠는지요" 하고 딱 잘라 거절하는 것이었습니다.
그러면서 "그 아이가 인시에 출생하게 되므로 일곱 살이 안되어 재앙을 당하게 될 터인 즉 그것이 걱정이올시다" 하니 이공은 그 여인이 범상치 아니함을 깨닫고 그때까지의 무례를 정중히 사과한 후 재앙을 면할 방도를 간곡히 묻자 "천 명의 생명을 살려야 하는데 대신 밤나무를 천 그루 심으면 그 화를 면할 수 있을 것이외다. 다만 아이가 일곱 살 무렵 늙은 중이 와서 아이를 보자 하거든 아이를 숨기고 밤나무를 보이면 무사할 것입니다" 하는 것이었습니다.
이공은 그 길로 다시 집으로 돌아가 신사임당에게 전후 사연을 말하고 고향집인 화석정 주위에 부지런히 밤나무 천 그루를 심었답니다. 과연 그해 12월 어느 날 인시에 아들을 낳았으니 이공은 특별히 밤나무를 키우는 일에 전심전력하였는데 아이가 다섯 살 되던 해 여인의 말대로 늙은 중이 찾아와 아이를 찾으니 이공은 여인이 시킨 대로 "나는 이미 밤나무 천 그루를 심어 적덕하였으니 내 아들에게 손대지 말라" 고 호통 치고 뒷산의 밤나무 숲을 보여주자 그 중은 천 그루가 맞는지 일일이 세어 보는 것이었습니다.
그런데 소를 매었던 한 그루가 말라 죽어 천 그루를 채우지 못하자 그 중은 천명을 거역하려느냐며 화를 내는데 갑자기 어떤 나무가 "나도 밤나무"라고 소리치며 천 그루를 채우더랍니다. 결국 화를 면한 이공의 아들은 잘 자라서 임진왜란을 예견하여 '십만양병설'을 주장하고 밤나무 식재론을 제창한 당대의 성리학자 '율곡 선생'이 되었다는 것입니다.
그렇게 위인이 탄생 했군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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