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 짧은 글] 삶의 흐름

in zzan •  4 years ago 

나는 인류가 모든 존재의 판단 기준이라고 생각하지 않는다. 심지어 제법 많은 것들의 판단 기준도 아니라고 생각한다. 나는 인간이 뭔가의 종말이나 정점이라고 생각지 않으며, 뭔가의 중심이라고는 더더욱 생각지 않는다. 우리가 어떤 존재인지, 누구인지, 어디로 가는지는 전혀 모르며, 또한 자기는 안다고 주장하는 사람들의 말도 전혀 믿지 않는다. 아마 최후의 교향곡의 마지막 선율을 작곡한 순간의 베토벤 정도만 제외하고. 내가 아는 것은 우리가 이곳에 있으며 그 사실을 알고 있는 이상, 주변에 주의를 기울여야 마땅하다는 것뿐이다. 우리는 객체가 아니기 때문이다. 중요한 것은 그것이다. 우리는 주체이며, 우리의 일부이면서 우리를 객체로 간주하는 사람은 비인도적이며 그릇된, 자연의 섭리에 반하는 행동을 하고 있는 것이다. 그리고 우리와 함께 있으면 자연이라는 위대하고 궁극적인 객체는, 지치지 않고 무수한 태양을 타오르게 만드는 힘도, 은하계와 행성을 회전시키는 능력도, 그 안의 바위와 바다와 물고기와 양치식물과 침엽수와 작은 털북숭이 동물조차도, 전부 주체가 된다. 우리가 자연의 일부이기 때문에, 자연 또한 우리의 일부가 되는 것이다.

어슐러 K. 르 귄, 《밤의 언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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좋은 책 읽으시는군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