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836년 6월 26일 루제 드 릴의 죽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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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테판 쯔바이크라는 작가가 있다. 그는 뛰어난 소설가이지만 그의 능력이 넉넉히 발휘된 것은 전기 분야라고 한다. 꼼꼼한 고증 속에 사람의 숨결을 불어넣고 인간적 체취와 독특한 해석까지 곁들인 그의 전기 문학은 많은 이들을 팬으로 거느리고 있거니와, 나 역시 그의 팬이기도 하다. 그의 저서 가운데 한국판 제목 <광기와 우연의 역사>는 역사 속의 한 순간과 그 무대 위에서 주연 또는 조연으로 섰던 이들의 이야기를 짤막하지만 흥미넘치게 서술해 낸 작품이다. 그 가운데 한 인물이 등장한다. 루제 드 릴. 쯔바이크의 이야기를 토대로 이 사람을 소개해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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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단 그는 위대한 역량을 지닌 군인도 아니었고, 예술적 영감을 발휘하는 비범한 음악가도 아니었으며, 불굴의 의지로 인간의 진보와 혁명의 성취에 앞장선 사람도 아니었고, 하다못해 돈이라도 많이 번 사람도 아닌, 그야말로 장삼이사의 프랑스 인 중 한 명이었다. 오히려 조금 찌질해 보이는 단면을 지적한다면 귀족 가문도 아닌 주제에 굳이 ‘드’를 넣어 자신을 루제 드 릴이라 지칭했던 일일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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프랑스 전역이 혁명의 열기에 휩싸여 있던 1789년 그는 독일과의 국경 스트라스부르의 라인강 수비대의 공병대 대위로 있었다. 혁명의 열기를 차단하려던 주변국들이 프랑스를 위협했고 이에 프랑스 왕 루이 16세는 자신의 권리를 회복시켜 주려고 애쓰는 오스트리아 프로이센 연합군에게 내키지 않는 선전포고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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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포고령이 스트라스부르에 도착하자 국경지대 특유의 열정이 끓어올랐다. 귀족이지만 혁명 지지파였던 디트리히 시장이 열변을 토하며 선전포고문을 읽었고 무장한 수비대와 군중은 삼색기를 흔들며 환호했다. 이때 시장은 가끔 흥얼거릴만한 노래를 짓는 재주가 있던 공병 대위를 생각해 냈고 그에게 라인 수비대의 노래를 지어 줄 것을 청한다.
루제 드 릴 대위는 이 부탁을 받아들이고 집으로 돌아가 단 하룻밤 사이에 어떤 노래를 만들어 냈다. 시장이 그 신속성에 놀랄 정도였다. 노래는 괜찮았다. 시장도 맘에 들어했고 사람들도 고개를 끄덕였다. 루제 드릴은 상관 루크너 장군에게 이 노래를 헌정했다. 딱 그 정도였다면 루제 드 릴의 이름이 역사에 남을 일이 없었을 것이다.
그런데 어느 바람에 실려 갔는지 프랑스 남부의 격정적인 도시 마르세이유에서 이 노래가 불리워진 순간 뒤늦게 폭발한 포탄처럼 혁명기의 프랑스를 뒤흔들어 놓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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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 리듬은 항거할 수 없는 힘으로 그들을 이끌어 무아지경의 열광으로 데려갔다.” 마르세이유에서 출발한 500명의 의용병들은 파리까지 900킬로미터의 거리를 이 노래를 반복하며 행진했고 <라인강 수비대의 노래>는 간곳이 없이 <라 마르세예즈>라고 개명된 이 노래는 프랑스 국민과 군대 전체의 노래가 되어 버렸다. “혁명은 자신의 고유한 음성을 알아보았고 자신의 고유한 노래를 찾아낸 것이다.” (쯔바이크 - 광기와 우연의 역사, 자작나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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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러나 루제 드 릴은 정작 이 혁명가를 부르는 이들을 혐오하기 시작했다. ‘드’를 넣어 귀족인체 할 정도의 속물이자 혁명의 대의 따위에 목숨을 거는 축도 아니었던 그는 자신이 지은 노래를 부르는 폭도들이 루이 16세를 끌고 나왔을 때에 이미 칠색팔색을 하고 있었다. 그리고 로베스피에르의 공포정치 기간에 자신에게 노래 짓기를 부탁했던 디트리히와 자신이 노래를 헌정했던 루크너, 최초로 이 노래가 불리워질 때 환호했던 장교들 대부분이 목이 달아나는 것을 목격해야 했다. 루제 드릴 자신 국민공회에 불만을 토로하다가 옥에 갇혔고 여차하면 단두대에 오를 상황에 처하기도 했다. 그 기간에 툭하면 울려퍼지는 라 마르세예즈가 그는 얼마나 황망하고 듣기 싫었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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역사를 바꾼 노래를 만들었지만 그는 그 노래에 걸맞는 인물이 못되었다. 불평불만만 그득했고, 빚쟁이가 되어 감옥도 경험했고, 변방 지역에 숨어 살았다. 황제가 된 뒤에는 과격하다고 라 마르세예즈를 금지곡으로 만들었던 나폴레옹이 이 도무지 평범해만 보이는 전직 장교에게 도움을 주려고 했지만 꼬일대로 꼬인 이 전직 장교는 뿌리쳐 버렸다
자신이 하룻밤.새 지은 노래는 국가가 됐다가 금지곡이 됐다가를 반복했다 이 미욱한 전직 장교는 어느 장단에 춤을 춰야 하는지 모르겠다며 투덜거렸을 것이다 부르봉 왕조를 끝장낸 7월 혁명에서 다시금 이 노래가 시민들의 합창으로 메아리쳤을 때 그는 또 무슨 일이냐고 짜증을 냈을지도 모른다 덕분에 조금의 연금을 받을 수 있었지만 .
1836년 6월 26일 그가 죽었을 때 그는 별반 예우를 받지 못한다. 그러나 1차대전 독일군과 악으로 깡으로 맞붙어 싸우던 프랑스군들에게서 이 노래가 화려하게 되살아나면서 단 하루를 제외한 평생 별볼일 없었던 루제 드.릴은 별안간 나폴레옹급으로 격상되어 그 유해가 프랑스의 영융들이 모셔지는 곳으로 옮겨지게 된다 루제 드 릴 대위는 이건 또 뭐하는짓이냐고 투덜거렸을까 아니면 자기 가치가 비로소 입증되었다고 좋아했을까.
가끔 역사는.악동처럼 짖궂다. 전혀 적임도 아니고 무게도 없는 인물의 어깨에 덥석 짐을 올려 놓거나 감당할.수 없는.일의 주인공으로 캐스팅하기도 하는 것이다. 그래서 자신도 모르는 사이 역사를 움직이는 바퀴살이 되기도 하고 그 첫불을 쏘는 방아쇠가 되기도 하는.것이다 그 짖궂음이 누구를 향할지는 아무도 모른다 루제 드 릴처럼. 루제 드 릴의 하룻밤은 역사를 바꾸었지만 결코 자기 자신을 바꾸지는 못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