요즘엔 새로운 사람을 만날 기회가 적어
이런 질문을 받을 기회가 거의 없다.
언젠가 종종 받아봤던 질문 같은데...
무엇 전공하셨어요?
영화과 나왔습니다...
이런저런 얘기를 하다가 보면,
그러면 영화제도 많이 가보셨겠어요.
맞다, 나는 영화과를 나왔다.
영화를 꾸준히 좋아하긴 하지만,
영화제나 관련 행사에 열렬히 참석한 적은 별로 없다.
영화관에서 모르는 사람들이랑 같은 공간에 있는 것보다는
(좋은 의미의) 방구석에서 편안히
혼자 영화보는 것을 더 좋아하는 사람인 것이다.
이런 나는 그 유명한 부산국제영화제도 못가봤고,
전주국제영화제에 가서도 영화는 1편만 보고
먹거리를 집중 탐방했더랬다.
부천국제판타스틱영화제는 지난 직장에서
무료 출입증(?)을 준다고 해서 가본 적이 있는 것이고.
이런 내가 올해 열성적으로 기다린 영화제가 있었으니,
제천국제음악영화제! 인 것이다.
올해로 벌써 15회를 맞은, 역사가 있는 영화제에 이제야 가본다.
이유는 바로, 위 아 더 나 잇. 덕분이다.
위나잇 덕후인 나는 그들이 그곳에서 공연을 한다는 소식을 듣고는
바로, 제천. 가야겠다 싶었다.
충청북도 제천. 한 번도 가본 적 없는 도시.
결국, 나의 베프이자 운전을 맡아줄 엄마를 꼬셔
제천으로 짧은 여행을 떠나게 되었다.
(장롱 면허인 나는 어서 운전 연습을 해서
이 딱지를 떼어내야겠다고 다짐을 하기도.)
운전 경력이 오래된 엄마이지만,
네비가 말해주는 안내을
온전하게 바로바로 이해하지 못하는 나이이다.
그래서 난 옆에서 정신을 똑바로 차리고,
네비가 해준 말을 반복해서 말하고
오른쪽 왼쪽 손가락질을 해가며
안내를 돕는 역할을 맡았다.
4.6km 까지 직진, 1km 앞에서 우회전,
900m 앞, 500m 앞, 100m 앞.
엄마 이제 오른쪽.!
내가 잠시라도 긴장을 늦춘다면,
우린 제천이 아닌
그 어딘가로 충분히 빠질 수 있다는 걸 안다.
그리하여, 엄마의 졸음과 컨디션 등등을 살피며
중간중간 휴게소에도 들렀다.
엄마가 사고싶어한 충주 사과 '썸머킹'과(썸머킹은 위나잇인데....)
던킨 도너츠에서 파는 먼치킨(엄마는 이게 치킨인 줄 알고...),
말린 단호박으로 만든 간식거리를 사드렸다.
엄마는 아이가 된 듯 했다.
딸이 뭐든 다 사줄 것처럼 말하니
굉장히 흡족해하신 듯 싶다.
오히려 내가 더 기분이 좋았죠.
그래서 마침내 도착한 제천, 청풍호.
그늘진 곳에 돗자리를 깔고 미리 준비한
아이스박스 속의 시원한 맥주를 마시며
공연을 기다리려고 했으나,
너무나 더운 날씨에
엄마랑 난 차에 에어컨을 틀고
차 안에 우산을 펴 햇빛을 가렸다.
엄마는 주무시고, 나 혼자 맥주 타임.
곧 얼리버드 입장이 시작되고, 3번째 줄에 자리를 잡았다.
20시, 공연에 앞서 1920년대 무성영화 <이기주의자>가 상영되었다.
어느 퍼포머의 연주와 함께 나는 지난 밤 못잔 잠을 보충했다.
엄마는 2번 정도 나를 깨우고는 쯧쯧 하셨다.
(엄마, 저는 영화가 아닌 위나잇을 보려고 온 거라고요. :) )
그리고 영화가 끝나기만을 졸면서 기다린 나는,
나의 예상과 다르게
첫번째로 등장한 위나잇 5명의 천사들을 보고는
행복에, 엄마 팔을 붙잡고...
누구보다도 크게 환호성하고
노래를 따라 부르다보니 어느새 마지막 곡.
시간이 아까울 정도로 참 즐거웠어요.
그리고 죠지, 휘성, 하하 n 스컬의 공연까지 마치고 나니,
자정을 넘은 시간. 그리고 내 눈에 띈 아름다운 달.
달 사진을 찍고, 위나잇을 생각하며
엄마와 여주 휴게소에서 눈을 좀 붙이고는
새벽, 다시 달려 아침에 스윗홈에 도착했다.
집으로 돌아오는 길에 본 하늘, 일출.
그리고 기쁨으로 충만된 덕후의 마음.
오래도록 좋은 추억으로 남을 것이다.
이렇게 많은 사람들이 보는 블로그에 글을 올리기까지 하다니.
나도 참 많이 변한 것 같다.
나는 위아더나잇 팬이라는 것이,
거북이라는 것이 참 자랑스럽다.
그리고 나 역시 자랑스러운 팬이 되기 위해,
알게 모르게 조금씩 나아가고 있다.
거북이처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