거울

😂 좌절요

.
다시올리기
.

어린시절에는 누구나 어디선가 들어봤음직한 이야기를 그대로 믿어버리는 경우가 있다. 나 같은 경우는 그것이 거울에 대한 것이었는데. 두 개의 거울을 마주보게 해서 거울속에 거울속에 거울을 수십개 만든다. 그리고 그 중 스무번째 거울. 그러니까 작디 작아 내 형체 정도는 알아볼 그 즈음에 내가 아닌 귀신이 서 있다는 이야기를 믿었다.

그래서 나는 가끔 내 뒷모습이 보고 싶거나 옆모습이 보고 싶었던 초등학교 시절에 작은 방에 걸린 전신거울과 그 옆 서랍장 위에 놓인 내 얼굴만한 둥그런 탁상거울을 이용해 내 얼굴을 유심히 관찰 할 적이 많았다. 스무번째의 거울이 되기전까지만 기울여서 관찰하는 습관. 어차피 그렇게 인위적으로 만들기도 힘이 든 일이라 사실상 아예 의식하지 않고 본다고 생각하면 된다. 아... 나라는 사람은 이렇게 생겼구나하면서 말이다.

그 다음 내가 믿었던 미신은 한밤중에 불을 다 끄고 거울을 계속 보다보면 자신이 아닌 새로운 얼굴을 볼 수 있게 된다는 얘기였다. 이 이야기는 꽤나 흥미로웠으며 나는 한창 초등학교 고학년 즉 사춘기 시절로 접어들었기에 나라는 정체성에 대해 곰곰히 생각할 시기였다. 그래서 아무날 아무시에나 이유없이 거울을 보기 일쑤였다.

되도록이면 밤에는 보지 않으면서 말이다. 밤에는 거울 앞을 곁눈질로라도 쳐다보지 않는 생활 중에 기묘한 체험을 하게 된다. 순전히 습관이라는 무서운 놈 덕분인데, 밤인데도 불구하고 내 몸이 낮처럼 거울앞에 우뚝 서 버리는 일이 발생했던 것이다. 내 발걸음은 정확했고, 사위는 어두웠으나 거울속에 내 얼굴은 아파트 밖의 가로등 불빛과 달빛을 받아 다른 사람의 모습을 하고 서 있었다.

낮과는 다르게 색감부터가 어둡고 파랬으며 온기라고는 전혀 없는 모습. 분명 나는 변한게 없는데 같은 표정이지만 좀 이질적이랄까. 정말 밤에 거울을 보면 나의 또다른 얼굴을 보게 되는걸까. 그런뒤 처음이 어려웠지 그 다음부터 나는 밤에 거울앞을 지나는건 별로 큰 일은 아니라고 생각하게 되었다. 그냥 밝을 때나 어두울 때나 나는 나일 뿐이었다.

그렇게 거울 보기 좋아하는 한 어린여자애는 어느날 새벽에 목이 말라 거실로 향하는 길에 자연스레 거울앞에 서게 된다. 그런데 그날따라 발걸음이 과했는지 몇 센치 정도 더 앞으로 나아가게 되었고 나는 거울과 불과 2센치 거리에 서게 되었다. 코끝이 거울에 닿을듯 말이다. 그때 내 눈과 마주친 거울속에 다른 아이의 눈을 보고 놀랐다.

한순간 거울과 너무나 가까워져 마치 제3자와 갑작스레 마주친듯 놀랐기도 했고, 밤이 주는 서늘함과 두 눈 가득 꽉 찬 내얼굴이 마치 내가 그 거울에게 끌어당겨져서 앞에 서게 된 것 처럼 소름이 돋았다. 밤에 눈을 뜨고 가만히 나를 쳐다보는 한 여자아이. 그렇게 나는 거울 앞에서 옴짝달싹 할 수 없는 몇 초간 온몸에 돋은 소름때문에 잠이 확 달아나 버렸다.

누군가 이 거울과 나 사이로 비집고 들어와 떼어놔 주길. 서서히 뒷걸음질로 거울과 멀어지는 내 눈에 비치는 여자아이는 어두운 밤에 발견한 죽은 시체처럼 무표정이었다. 어째서인지 거울이 자꾸 나를 따라오는 느낌마저 들었다. 나는 뒷걸음질 치는데 거울속에 모습은 아직도 처음 가까웠던 모습 그대로. 자꾸 나에게 앞으로... 앞으로 더 가까이 오라고 재촉하는것 같은 느낌.

곧장 고개를 돌려 동생들이 자는 방으로 뛰어갔다. 내 뒤로 거울이 따라올지도 모르니까. 동생 곁에 누워 이불을 뒤집어 썼다. 내일 아침까지 절대 나가지 않을 거라고 생각했다. 물론 시간은 천천히 흘렀고 어느덧 고개를 다시 들어 바라본 천장에는 아무것도 없었다. 휴. 다행이다. 거울이 어떻게 움직여.

어느덧 그 거울이 많은 집을 떠나 나는 19살 어린나이에 기숙사가 있는 제조회사에서 일하게 되었다. 기숙사는 2층침대였고 4명이 잘 수 있는 방이었다. 그 방에는 옷장에 붙은 정사각형 모양의 거울이 있었다. 그러나 그 거울은 상반신만 비출 정도였으며 나는 서서 화장품을 바를수는 없었기에 고향에 있던 둥글고 큰 원형으로 된 탁상거울과 똑같은 것을 샀다.

우리는 같은 방을 썼지만 교대가 달랐다. 그리고 나는 유독 내향적이고 소심해서 무리들과도 잘 어울려 놀지 않았다. 주말에는 대부분 고향으로 내려갔지만 한번씩 기숙사에 남을 적이 있었다.

토요일 새벽. 모두가 떠나버린 그 방에는 어제까지 입던 룸메이트들의 옷가지들. 다닥다닥 붙은 4개의 책상위에 놓인 화장품과 향수, 책, 악세서리, 사진, 필기구 따위의 작고 작은것들. 그것들이 빽빽하게 놓인 책상앞 4단수납장. 각자가 좋아하는 화장품과 향수향이 섞이고, 뜨끈한 방온도, 널려 있는 옷가지들의 습한 냄새와, 방안에 작게 있는 신발장의 흙냄새, 세면도구냄새, 문 앞 작은 쓰레기통에서 나는 냄새. 이 모든것들이 한대 뒤섞여 시큼하고 상온에 오래놔둔 우유를 멀찍이서 부터 알아챌 때 느끼는 그런 비린듯한 향을 냈다.

그 날은 퇴근직후부터 원없이 잠만 자다가 눈을 떠보니 새벽이었다. 이미 며칠전에 그녀들이 각자 주말에 스케줄이 있다는 것을 알았기에 방에는 나 혼자 였다. 잠에서 깬 나는 창문부터 열어젖혔다. 그리고 노트북을 켜고 영화나 한편 봐야겠다고 생각하고 인터넷을 뒤적거렸다. 그러다 문득 누군가가 나를 보는 시선같은 것을 느꼈다.

나는 붙어있는 4개의 책상들 중에 왼쪽에서 두번째 책상이었고, 노트북 옆에는 둥근 거울이 내 얼굴의 왼쪽 절반을 그리고 나머지는 반대편 2층침대의 제일 위쪽을 비추고 있었다. 거기에 왠 또래 여자아이가 이불을 뒤집어 쓰고 누워서 이층침대의 나무 칸막이 사이로 나를 쳐다보고 있었다.

잠시 그대로 몇 초간 얼어있었다. 사람인가... 사람일까? 그러기엔 눈에 미동이 없는 그 창백한 얼굴의 여자는... 전혀 사람처럼 보이지 않았다. 귀신? 그런 생각이 들자 또 온몸에 소름이 돋았다. 괜히 말을 해봤다. 언니... 집에 안갔어? 그러나 그 여자아이는 미동도 없이 날 쳐다보고 누워있다.

나는 자리에서 일어났다. 그리고 눈을 질끈 감고 침대로 곧장 걸어갔다. 온 몸에 돋은 소름때문에 지금이라도 당장 문밖으로 달아나고 싶었지만 여기에는 내가 무서워서 뛰어가도 곁에 있어줄 가족이 없었다. 그렇게 실눈을 뜨고 다가갔는데

그냥 옷이었다.

장난으로라도 만들기 힘든 상황. 베이지색 옷과 검은옷 그리고 룸메이트가 자고 일어나 대충 겉어져있는 이불이 삼위일체 하여 한 여자의 모습을 만들어낸 것이다. 어쩌면 여전히 무서운 미신따위를 믿는 내가 상상으로 그녀를 만들어냈는지도 모르겠다. 예전 거울속에 내 얼굴처럼.

내가 무서웠던건 현실에 상상을 더해서 더욱 공포를 확장시키는 내 생각이었다. 그래서 책을 읽으며 몰입하기에는 좋았으나, 가끔은 혼자 있는 밤에 그 누구보다도 소름돋는 환영을 내게 보여주곤 했다. 이 일 말고도 또다른 환영을 본 기억이 있는데 그건 스팀잇 부계정으로 3년즈음 전에 썼던 기억이 있다. 그것도 현실에 내가 지어낸 상상이 더해져 과히 괴기스런 일화가 되어버렸지만.

여담을 말하자면 그때의 그 둥근 거울은 어떻게 된 영문인지 나와 인연이 깊어 결혼하고 나서도 거실 한켠에 계속 있었다. 그러다 딸이 장난을 치며 던져버린 덕분에 거울과 그것이 끼워져 있던 플라스틱 몸통이 분리되어 버렸지만. 지금은 이사 준비를 하며 버린지 오래다.

글쎄. 지금도 그 거울은 누군가에게 환영을 보여주고 있을지도 모르겠다. 쓰다보니 약간 소름돋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