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산

in abortion •  6 years ago  (edited)

by 더미

“같이 살 거면 아무 말도 하지 마라.”

정확한 문장이 기억나지 않지만 어머니는 적어도 시집에서, 저 표현으로 요약되는 삶을 사셨다. 어둑해질 무렵 시작된 이야기는 시간이 지날수록 얇은 실이 굵게 뭉쳐지듯 구체적인 형상을 띠며 귓속을 파고들었다. 처음이 아니었다. 그렇다고 그런 이야기를 자주 한 것도 아니었다. 어머니는 어쩌다 가끔, 나와 깊은 이야기를 할 때마다 시어머니에 대한 서운함, 남편에 대한 원망, 시누이에 대한 미운 감정을 털어놨다.

어머니는 두 번의 유산 경험이 있다고 말했다. 첫 번째 유산은 예전에도 들은 적이 있었지만 두 번째 유산은 이번이 처음이었다. 무엇 때문에 유산을 할 수밖에 없었는지 어머니는 담담하게 이야기를 이어나갔지만 당시의 감정을 특정한 단어로 표현하지는 않았다. 나도 묻지 않았다. 아니 물을 수 없었다. 큰 감정이 섞이지 않은 담담한 어투의 이야기만으로도 마음이 요동치는 상황에서 유산 당시 어머니의 감정을 물을 용기가 나에겐 없었다.

내 마음이 저렇게까지 요동친 건 동생이 되었을 뻔한 존재를 잃었다는 분노 때문이 아니었다. 오히려 유산이라는 사건에 함축된 고단함과 한스러움이 너무도 생생하게 다가왔기에 울렁거리는 마음을 붙잡을 수 없었다. 나는 어머니의 말을 그만 멈추고 싶었다.

“할머니는 지금 벌을 받고 계신 거야.”

몇 해 동안 내가 할머니를 찾지 않은 것, 할머니가 편찮으신 것을 나는 ‘벌’이라는 단어로 표현했다. ‘벌’은 어머니의 말을 멈추기 위해 급작스레 입 밖으로 꺼낸 단어였지만 어머니의 담담한 목소리가 귓가에 울릴 때마다 나는 인과응보를 떠올렸다.

할머니는 아버지의 나이만큼이나 오랜 기간 원불교를 믿으셨다. 그리고 그 종교에서 당신의 가족이, 또 자손들이 잘 살아가기를 언제나 빌고 비셨다. 내가 지금껏 무탈하게 살아온 것도 어쩌면 할머니가 수십 년 동안 빌어온 소망의 결과일는지도 모른다. 하지만 나와 달리 어머니는, 할머니 당신이 구축한 가족 구성원에 들어올 수 없는 이방인으로 존재할 뿐이었다.

어머니의 이야기가 끝난 뒤 나는 평생 답을 찾기 힘들지 모르는 의문에 사로 잡혔다. 인과응보를 핵심으로 삼는 원불교의 교리 속에서 어머니는 할머니의 인과의 사슬에 걸리지 않는 존재였던 걸까? 할머니는 어머니에게선 어떠한 응보도 발생하지 않으리라 믿으셨던 걸까? 할머니와 나 사이에 어머니라는 고리가 있다는 사실을 미처 생각지 못하셨던 걸까?

며칠이 지난 지금 그때를 떠올려 보면, 어머니의 이야기 속엔 시집에 대한 원망보다 할머니에게 가족으로 인정받길 바라는 마음이 더 강하게 담겨 있었던 것 같다. 필요한 존재지만 환영 받지 못하는 이방인이 아니라 따뜻하게 환대 받는 가족의 일원이 되기를 바라는 마음 말이다.

Authors get paid when people like you upvote their post.
If you enjoyed what you read here, create your account today and start earning FREE STEEM!
Sort Order:  

@deomi, I gave you an upvote on your post! Please give me a follow and I will give you a follow in return and possible future votes!

Thank you in advance!