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가 발리를 택한 이유

in bali •  7 years ago 

한국을 떠나야겠다고 생각한 것은 1년 6개월 정도 됐다. 딱 이전 대통령 탄핵과 맞물린 시기였는데, 그때는 나라에 대한 환멸과 미세먼지 걱정이 주된 이유였다. 새로운 대통령이 뽑히고 또 여름에 접어들며 대기질이 좋아지자 이주 생각은 차차 옅어져갔다. 막상 떠나려고 하니까 생각보다 힘들고 어렵고... 쉽지 않았기 때문에 그냥 현실에 자족하며 살자 라는 마음이 컸다. 그러다 다시 찬 바람이 불어오고 긴긴 지난겨울을 보내며 난 그야말로 이민병을 앓았다. 머릿속에는 24시간 내내 빨리 여기를 떠나야 한다는 생각밖에 없었으니까. 지금 내가 한국을 떠나려고 하는 이유는 오직 한 가지. 공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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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세먼지 수치가 나쁨 이상의 수치를 기록하는 날이 연 300일가량 되어버렸고, 매일같이 뿌연 날씨에 점차 둔감해져만 간다. 살기 위해 숨을 쉬는 본능적인 행위가 내 몸과 정신을 갉아먹는 일이 됐다. 두통이야 늘 달고 살았지만 감기와 호흡기 질환은 생전 걸려본 적 없던 내가 작년부터 누런 콧물 때문에 휴지를 달고 산다. 감기약 때문에 정신은 늘 아득하고 조금이라도 깨고 싶어 창밖을 바라보면 선명하지 못한 내 정신보다 더 뿌옇고 흐린 광경이 나를 내려다본다. 아이들은 또 어떻고? 두말하면 입 아프다. 일단 떠나야 할 이유는 확실하다. 건강하게 살기 위해.

공기 좋은 곳을 찾아본다. 호주, 뉴질랜드, 캐나다, 스웨덴, 브루나이... 많은 나라가 나온다. 찾으면서 알게 된 건데 생각보다 동남아는 공기가 지저분하다. 환경이 받쳐줘도 의식과 제도의 미비로 속수무책으로 오염되고 있는 것이 현 실정. 가까운 태국과 말레이시아, 싱가포르는 인도네시아 일부 지역의 화전으로 인한 헤이즈 때문에 1년에 2~3개월은 공기질이 안 좋다. 일본은 방사능 때문에 탈락.

다음, 백인 중심 사회는 제외. 어른들이야 인종 차별은 나쁜 것이라는 교육을 받았으니 성인들 사이에서는 인종 차별이 없을 수 있지만 아이들은 다르다. 미성숙하기 때문에 아이들이 얼마나 악랄해질 수 있는지는 언론과 미디어를 통해 충분히 접했다.

다음, 이슬람 문화권은 제외. 이슬람 문화권에서 난 딸을 키우고 싶지 않다.

이런저런 고심을 통해 찾아낸 곳이 바로 인도네시아 발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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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본 요건

  1. 대기질
    사실 발리의 공기질에 대해서는 말이 많다. 좋다는 사람 반, 안 좋다는 사람 반. 몇 가지 확인할 점이 있었다.
  • 헤이즈의 영향: 없음 - 산불을 일으키는 인도네시아 지역과 멀어서 발리까지 안 온다.
  • 화산재의 영향: 있으나 미미 - 화산이 아예 폭발하면 모를까.
  • 쓰레기 소각 및 오토바이 매연으로 인한 대기 오염: 있음, 심각한 곳은 심각

아궁산 때문에 화산재의 영향이 있느냐 없느냐가 발리 거주민들 사이에서도 큰 이슈다. 검색을 하다 하다 짱구에 사는 한 외국인이 자기 집 앞 마당에서 미세먼지 (PM 2.5) 수치를 재서 기록한 페이스북 그룹을 찾았다. https://www.facebook.com/groups/168895073850572/about/

무슨 일이 있는지 지난 1월이 마지막 포스팅이긴 한데 외국인이 많이 사는 나름 번화한 마을 짱구의 초미세 수치가 15를 넘는 날이 별로 없다. 아주 깨끗하다고는 못 해도 이만하면 준수한 수준인 듯싶다. 쓰레기 소각 및 오토바이 매연은 분명 심각한 수준인데 이건 미세먼지에 비하면 국소적인 문제라 거주지를 잘 선택하면 큰 문제없을 것 같다는 생각.

  1. 아시아
    외국인이 많이 오가는 휴양지라 다인종에 대해 관대한 편이고 같은 아시아라 서구권 국가보다는 정서적인 접점이 많은 편이다.
  1. 힌두교
    사실 인도네시아는 이슬람이 주된 종교인데 발리만은 다르다. 여러 신을 섬기는 종교이니만큼 타인에게 관대하고 포용적이다.

이상의 요건들을 충족하는 나라가 또 있을 수야 있겠지. 근데 아직 못 찾았다. 발리로 잠정적으로 결정을 내린 후 이런저런 정보를 찾아보니 발리만의 매력이 또 보이더라.

발리만의 매력

  1. 외국인 장기 체류자들이 많다. 이건 큰 장점이자 단점.
  • 보낼 만한 국제 학교가 많다: 그 작은 섬에 10군데는 되는 것 같다, 물론 학비는 매우 비쌈(1인당 연 1천만 원 정도)
  • 외국인 대상의 국제 병원이 있다: 2~3군데, 물론 병원비는 매우 비쌈, 보험 필수, 현지인 대상 병원은 안 가느니만 못하다 하더라.
  • 영어만 알고 가도 대충은 살 수 있다: 물론 오래 살려면 인니어를 배워야 한다
  • 앞서 언급했지만 다인종에 관용적이다
  1. 물가, 인건비가 상대적으로 싸다.
    인도네시아 내에서 물가 높기로 유명한 발리지만 공기 찾아 이주하는 입장에서 다른 나라에 비하면 (특히 호주, 뉴질랜드) 감지덕지다. 전체적인 생활비는 한국에서 생활하는 비용과 큰 차이 없다고 한다. 물론 현지인처럼 살면 당연히 생활비는 적게 들겠지만. 용인 가능한 생활 수준을 유지하려면 그래도 돈이 든다. 인도네시아에서 절대적으로 싼 건 딱 하나, 바로 인건비. 가사도우미와 기사 월급이 월 30만 원이 채 안 된다. 30만 원 주면 많이 주는 거더라.

  2. 준수한 치안

근데 또 좋은 점만 있는 건 아니다. 막상 살기 위해 준비하다 보니 거슬리는 점들이 좀 있다.

발리의 비호감 포인트

  1. 체류 비자(KITAS) 얻기가 까다롭다
    인도네시아의 비자 체계는 외국인에게 굉장히 적대적이다. 그래서 비자 문제를 잘 처리하는 게 중요한데... 합법적으로 현지 법인을 설립해서 KITAS를 취득해 들어가려면 4인 가족 기준 첫해에만 1,500만 원 정도가 들고 그 후 매년 1천만 원 정도가 유지 비용으로 든다. 취업 형태를 가장해서 KITAS를 취득해 들어가는 경우 4인 가족 기준 첫해 600~700만 원, 그 후 매년 500~600만 원 정도가 유지 비용으로 든다. 그렇다고 사회문화 비자, 일명 소셜 비자로 살아가기에는 제약이 너무 많다. 일단 계좌를 못 트고 차량 구입을 못 함. 6개월마다 해외에 나갔다 와야 한다. 체류를 위해서 비자를 유지하는 데 매우 비용이 많이 든다.

  2. 외국인으로 살아가는 데 드는 비용이 많이 들고 가성비가 안 좋다.
    앞서 언급한 국제 학교, 국제병원. 말은 좋은데 터무니없이 비용이 높고 개도국이다 보니 시쳇말로 가성비가 안 좋다.

  3. 우기 때 바다가 쓰레기장이 된다.
    해류에 쓸려오는 거라고 하는데 사진 보면 토 나온다. 환경 때문에 떠나는 거라 환경 문제에 매우 예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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혹시나 이주를 준비하는 분들이 계시면 도움이 될까 해서 적어본다. 내 생각을 정리하는 기회이기도 하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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