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트코인을 만나다
"가난한 집에서 태어났고요. 배고프게 살다가 동생과 함께 대출을 받아서 장사를 시작했어요. 올해로 30세가 됐습니다. 가상화폐를 알게 된 것은 3년 전입니다. 지금은 카레 전문점과 조그만 술집을 운영하고 있어요. 가게를 정리하고 베트남으로 넘어가 프랜차이즈 사업 등을 구상 중입니다. 모든 게 가상화폐 덕분입니다. 가상화폐는 절대 사라지지 않을 겁니다. 화폐니까요."
암호화폐(일명 가상화폐)로 세상이 시끌벅적하다. '2030 세대'와 '4050 세대' 심지어 '6070 세대'에 이르기까지 '디지털 돈'을 둘러싼 갈등의 골이 깊어지고 있다.
비트코인(1호 암호화폐)으로 음식값을 낼 수 있는 카레 전문점의 30대 사장님을 만났다. 비트코인을 '투기 대상'으로 몰아가는 미디어가 불편했는지 표정과 말투가 건조했다.
미디어는 항상 자극적이다. 비트코인을 다루는 지금 미디어의 핵심 키워드는 '투기' '질투' '도박' '흙수저' '우울증' 등으로 보인다.
암호화폐로 돈을 번 이들이 무얼 잘못한 것일까. 그들처럼 벌지 못한 사람들에게 우울한 감정을 심어준다고 이들을 비난하기도 한다. 정말 우리가 우울한 것이 그들(나와 같이 못 살아야 하는데 잘 살아서) 탓일까. 암호화폐를 사고파는 행위가 한탕주의에 빠진 투기꾼 도박꾼으로 몰릴 만큼 암호화폐 생태계가 위험한 것인지 '그들'이 아닌 반대의 그들에게 묻고 싶다. 반대편에 선 그들 중에 부동산과 주식으로 수십수백 억 원을 번 그들에게도 또 묻고 싶다.
"투기와 투자의 차이점은 무엇인가요? 흔히 제도권으로 불리는 '그들의 세상'이 관여해야 하고 각종 증명 도장이 찍힌 문서를 가지고 투자해야 투기가 아니고 정당하고 떳떳한 행위인지요? 정부와 각 분야 전문가들이 인정해야 투자인가요? 그들이 가진 신뢰의 무게는 일반 대중이 서로 믿고 약속한 신뢰의 무게와 비교할 수 없을 만큼 우월한 것인지요?"
비트코인의 창시자 나카모토 사토시는 암호화폐를 무결점의 P2P(peer to peer) 거래 수단으로 소개했다. 중앙 서버가 존재하는 데이터 시대에서 커뮤니티 간 신뢰 시대로 넘어갈 수 있도록 다리를 놓아준 것이 디지털 화폐 시스템이란 얘기다.
암호화폐 거래를 가능하게 돕는 핵심기술이 블록체인이다. 블록체인은 모든 지불 또는 송금 기록이 사라지지 않는 블록에 새겨지고, 이 블록이 거미줄처럼 체인으로 연결되는 것을 말한다. 암호화폐의 등장 이전까지 거미줄에는 거미(중앙 서버)가 있었지만, 암호화폐 이후의 거미줄엔 거미가 없다.
'거미가 있는 곳에만 거미줄이 있다'라고 믿었던 것을 '거미가 없어도 거미줄은 있다'라고 커뮤니티가 약속하고 구성원이 믿으면 되는 것이다. '신뢰'와 '믿음'이란 토대 없이 기본적으로 암호화폐는 존재할 수 없다. 이러한 탓에 비트코인과 블록체인 뒤에 붙는 가장 많은 단어 중 하나가 '혁명'이다.
다만 정부가 발행하는 법정화폐가 아니라서 '5000만 원 한도 보장' 등의 예금자보호법 등은 기대할 수 없다. 한 번 결제되거나 송금될 경우 다시 되돌릴 수 없다. 물론 거래 상대가 다시 돌려주면 된다. 나와 그, 우리들 사이에 '신뢰'와 '믿음'이 없다면 불가능한 것이다.
영화 '1987'
영화 '1987'은 '6월 혁명'을 스크린에 담았다. '그렇게 한다고 세상이 바뀌니?' 하고 묻던 여대생은 세상을 바꾸려고 시청 앞 광장에 쓰러진 버스 위로 올라선다. 주먹을 불끈 쥐고 하늘을 찌르며 외친다. "군부 독재 물러가라! 박종철과 이한열을 살려내라!" 당시 중앙 정부와 기득권의 횡포에 맞서 목소리를 높이는 것 자체가 얼마나 큰 공포였을지 나는 상상이 안된다.
체 게바라가 정의하는 혁명은 얌전하게 토론해서 가능한 것이 아니다. 체는 때리고 부수고 점령해야 혁명이라고 했다. 그의 '혁명 DNA'는 판을 뒤엎는 것이고, 새로운 세상을 열어야 한다. 비트코인과 블록체인. 여기에 '혁명'을 붙여 '비트코인 혁명' 또는 '블록체인 혁명'이라고 부르는 이들은 지금 무엇과 싸우는 걸까.
비트코인과 블록체인의 창시자 사토시는 사라졌다. 사토시가 개인인지 개발그룹 인지도 알려지지 않고 있다. 그야말로 신비의 존재다. 비트코인과 블록체인을 깃발에 매달고 금융자본주의에 맞서 칼을 빼 든 혁명의 주동자를 찾을 수 없는 것이다. 중앙집중식 금융 자본주의자와 또 그들과 가까운 곳에 있는 중앙 정부가 규제하고 가두려는 대상을 잡을 수 없는 것이다. 사토시의 혁명이 '보이지 않는 혁명'으로 불리는 이유가 여기에 있다.
영화 '1987'이 담은 6월 혁명의 체 게바라는 박종철과 이한열이다. 반드시 판을 엎어버려야 했던 기존 체제에 일반 대중이 스스로 반기를 들게 이끌었고, 거리로 쏟아져 나온 학생들의 분노와 열망이 한 데 뭉쳐 거대한 커뮤니티를 형성했다. 이 커뮤니티는 에너지로 가득 찼고, 희망과 울음으로 범벅이었다. 1987년, 아버지 세대에 대한 반항이 6월 혁명을 일으켰고, 30년이 지나 꺼지지 않는 '촛불 혁명'으로 다시 살아난 시기에 영화 '1987'이 관객들의 눈물 위에서 흘러갔다.
비트코인과 블록체인의 혁명은 인터넷 네트워크 세상에서 커뮤니티를 형성했고, 기존의 중앙 서버(데이터 베이스 집중 기관 등)에 반기를 들었다고 보면 무리수를 둔 것일까. '투기꾼' '도박꾼'으로 내몰린 암호화폐 보유자와 사용자들을 구하려고 사토시가 다시 등장한다면 어떨까. 그리고 그가 보유한 비트코인을 25억 명에 이르는 은행계좌 없는 불평등한 금융서비스의 사각지대에 기부한다면? 비트코인과 블록체인은 그래도 투기이고 사기이고 신기루일까. 알 수 없는 일이다. 알 수 없는 일인데 비트코인과 블록체인의 미래를 장담하고 비난하는 이들은 무엇을 본 것일까. 본 게 아니라면 무엇이 두려운 것일까. 무질서와 비정상적인 암호화폐 커뮤니티의 에너지가 그냥 싫은 걸까.
그들은 왜 비트코인과 블록체인을 '혁명'이라고 생각하는 시선에 돌을 던질까. 그 시선이 우리들 모르게 비트코인과 블록체인에 투자하거나 거래를 하고 있어 불손한 투기 조장 세력이라고 단정 지을까. 무엇을 본 것일까. 한 사람의 '평판'을 들여다보지 않고 자기가 경험한 세상을 바탕으로 상대방을 단정하고 판단하는 것은 옳은 일일까. '평판'도 블록체인과 같은 것이라서 암호화폐의 생태계는 진짜 투기꾼과 사기꾼을 솎아내고 벌줄 것이다. 암호화폐 커뮤니티가 즉 '우리'가 스스로 그렇게 할 수 있다고 믿지 못하는 이들은 도대체 무엇을 확신하는 것일까.
영화 '그것만이 내세상'
영화 '그것만이 내세상'에도 편견으로 함부로 이야기하는 장면이 나온다. 경찰청장도 자신의 집 앞 정원에서 잡초를 뽑아준다는 대단한 집안의 부잣집 주인은 허름한 체육복을 입고 온 사내를 무섭게 노려본다.
'너 같은 부류의 인간을 잘 안다. 그렇게 해서 돈을 얼마나 뜯어냈는지 모르지만 감옥에 넣지 않고 치료해 주고 밥 먹여 보내는 걸 고맙게 생각해라'
'돈 달라고 할까 봐 쫄아가지고 시발. 나 권투 하는 사람이에요.'
이 부잣집 주인은 왜 돈 뜯어내려고 왔다고 이 사내를 단정지은 것일까. 이 사내처럼 옷을 입고 사고를 당한 사람들 가운데 그간 돈을 뜯어내려는 사기꾼이 많았다는 경험에서 비롯된 단정일 것이다. 하지만 이 경험은 '다름'을 인정하지 않아 틀렸다. 암호화폐의 커뮤니티 혁명이 투명하고 사기꾼 없는 신뢰의 거래 시스템을 만들겠다고 주장하는 논거가 이것이다. 투명한 커뮤니티의 생태계를 조성하고 살아온 평판을 바탕으로 신뢰의 세상을 꿈꾼다는 것이다.
영화 마지막에 흐르는 들국화의 노래 '그것만이 내세상'을 반복해서 듣고 있다. '이 세상'도, '저 세상'도, '그 세상'도 가능하고 키울 수 있는 세상이라면 그것만이 내세상이지 않을까. 내가 속한 세상, 그것이 암호화폐 생태계라면 그것 역시 내세상이지 않을까. 그곳이 아니라 이곳으로 와야 한다고 규제하고 속박한다면 나만의 평판은 남으로 인해 변질되고 낙인찍힐 것이다. 그렇게 되면 행복한 커뮤니티란 어느 곳에도 어느 시기에도 자생할 수 없을 것 같다.
비트코인과 블록체인이란 단어 뒤에 혁명이란 단어가 붙게 된 이유를, 그 이유를 편견 없이 들여다볼 줄 알아야 법정화폐와 금융자본주의 그리고 중앙집중식 정부 아래서 불평등하게 고개를 숙인 이들을 어루만지고 헤아릴 수 있지 않을까. 혁명은 뜨겁고 서서히 차올라 뒤덮는 것이기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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