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장, 법치주의, 비탈릭 부테린

in blockchain •  7 years ago 

비탈릭은 이더리움을 기초로 사회가 처한 여러 문제를 해결하려는 혁신가다. 그리고 그는 자신의 정치적 입지를 구축했고 그것은 쉽게 무너지지 않을 것이다. 이더리움에 기대를 갖고 있는 사람들은 은연중에 비탈릭의 정치적 지지자가 된다. 

최근 비탈릭은 우리에게 책 한권을 소개했다. 시카고학파의 법경제학자인 에릭 포스너와 글렌 웨일의 ‘급진적 시장’(Radical Market)이라는 책에 대한 비탈릭의 코멘트는 그 자체로 ‘정치적 효과’를 만들어내고 있다. 이 글은 비탈릭의 생각을 평가하려는 목적을 가진 것은 아니다. 다만 비탈릭이 그 책에 관심을 가지게된 ‘배경’에 대한 해석을 시도하는 것이다.     


시카고학파와 크립토아나키즘   

시카고학파는 ‘국가 충만론’의 가장 진지한 지지자다. 그들은 ‘시장’이 제대로 작동하기 위한 전제로 ‘법치주의의 확립’을 주장한다. 그들은 다양한 시장 실패의 원인은 ‘시장에 대한 비시장적 개입’과 ‘시장에 대한 합리적 예측을 파괴하여 시장의 작동을 가로막는 법치의 불안정’이라고 믿기 때문이다. 

그들은 전세계가 ‘남김없이’ 국가로 충만하고 개별 국가 안에서는 ‘법치주의’가 작동하는 상태를 시장이 문제를 해결할 수 있는 이상적 상태라고 생각한다. 따라서 국가의 역할은 오직 ‘법치’를 확립하는 것만 하면 된다. 만약 국가가 달성하려는 ‘정치적 목표’(저소득층에 대한 지원과 같은 ‘사회주의적 목표’ 조차도)가 있다면, 국가는 그것을 위한 ‘법률’을 만들고 그것이 온전하게 작동하는 환경을 조성하면 된다. 분배는 시장에서 일어나야 하며, 가격 결정 메카니즘에 정부가 비시장적으로 개입해서는 안된다는 것이다. 그리고 종종 이들의 주장은 ‘신자유주의’의 이론적 배경으로 지목되고 비난을 받아왔다. 

‘급진적 시장’은 시장의 실패에 대한 이러한 시각을 ‘근본적’으로 확대 적용할 것을 제안한다. 저자들은 ‘시장 실패’의 이유를 ‘당연히’ 시장의 구성요소라고 생각했던 ‘사유재산권’이라는 오래된 법률적 관념으로부터 찾아낸다. 이러한 접근법이 충격을 주는 이유는 너무나 명백하다. 가장 자유주의를 옹호한다고 생각되어 온 이론을 기초로 '자유주의'의 핵심원리라고 여겨져 왔던 '사적 소유'라는 가치에 정면으로 도전하는 것과 같이 느껴지기 때문이다.

 그들은 ‘시장’이라는 신성한 기관이 ‘법률’에 의해 선험적으로 수용된 ‘관습적 관념’인 ‘사유재산권’과 같은 법률적 걸림돌로 인해 완전하게 작동하지 못하고 있으며, ‘관습적 관념’의 내부까지 ‘시장화’를 밀어붙임으로써 ‘실패’를 극복할 수 있다고 주장한다. 또한 지금까지 이와 비슷하게 ‘법률적 개념’으로 정의되어 있던 많은 것들을 ‘시장’으로 대체할 수 있다는 주장으로 이어진다. ‘법률’의 많은 것이 ‘시장’으로 환원 가능하다는 뜻이다.    

그런데 만약 ‘국가’가 없이도 ‘법치’가 작동할 수 있다면 어떨까? 누구도 예외없이 적용받는 ‘알고리즘’이 만들어내는 시장에 대한 합리적 기대를 기초로 시장이 작동된다면? 시카고학파와 크립토아나키즘이 만나는 위치는 바로 이 지점이다.   

공개 블록체인으로 뛰어든 크립토 아나키스트들의 일부는 기존 사회 시스템과 크립토아나키즘의 화해를 시도한다. 그 동기의 밑바닥엔 현재의 '사회 시스템 구성 요소'에 크립토아나키즘의 '도구'를 결합하여이 사회개혁의 강력한 수단을 만들 수 있을 것이라는 기대가 들어있다. 그것은 바로 ‘시장’과 ‘조작 불가능성’이다. 그도 그럴 것이, 공개 블록체인의 원조인 비트코인은 ‘시장’과 ‘조작불가능성’을 활용하여 크립토아나키즘의 기본 원리를 어떻게 작동시킬 수 있는지를 보여주었기 때문이다. 

사토시는 비트코인 세계 안에서 화폐 추구 활동을 하는 행위자 즉 시장행위자를 정의하고, 어떤 행위자도 조작할 수 없는 ‘알고리즘’을 확립했다. 온체인 상에는 어느 누구도 시장을 통하지 않고 화폐이익을 만들 수 없다. 그것은 오직 ‘알고리즘’이라는 ‘법률’에 의해서 보장된다. 그런 점에서 비탈릭이 포스너와 웨일의 ‘급진적 시장’(Radical Market)에 주목하는 것은 너무나 당연하다.   

포스너와 웨일은 오프체인에 있기 때문에 시장의 구성요소에 대한 법률적 개입을 통한 ‘시장화’를 필수적인 것으로 인식하는데 비해, 비탈릭은 온체인 상에(그것도 창조자의 위치에) 있기 때문에 ‘시장화’(정확히는 경매를 스마트 계약에 의해 조립되는 새로운 권리 유형)를 ‘법률적 과정’으로 인식할 필요를 못느끼고 있다. ‘온체인’에서 ‘시장’과 ‘법률’은 명확히 구분되지 않는다.     

근대인 비탈릭   

근대인의 꿈(혹은 환상)은 세계의 보편적 원리를 ‘지식’으로 만들고, 그 지식을 기초로 ‘합리성’을 구성하며, 이를 글로벌화하여 인류 보편의 가치를 실현할 수 있는 단계로 인류를 진화시키는 것이다. 자유주의나 사회주의, 아나키즘 모두 근대적 기획들이다. 그러나 20세기 이후 인류의 지적 성취들은, 세계의 보편적 원리를 담는 ‘유일한 지식’을 만드는 것이 불가능하며, ‘합리성’은 인간의 의사결정이나 행동을 매우 부분적으로 결정하며, 인류가 가진 가치는 ‘보편성’ 보다 ‘특수성’에 더 많이 담겨 있다는 것을 밝혀냈다.    

비탈릭은 ‘시장’과 ‘스마트 계약’이 ‘암호’ 만큼이나 ‘보편적 장치’가 될 가능성에 기대를 걸고 있으며 몰입 중이다. 그는 EOS 리더인 댄 라리머와의 DPoS 논쟁에서도 ‘원칙주의자’로서의 면모를 드러낸 바 있다. 탈중앙을 훼손하는 시도에 대해 타협하지 않고 원칙을 고수한다. 비탈릭이 보편성을 ‘실용적 도구’로 여기는지 '궁극적 이념'으로 여기는지는 알 수 없지만, ‘급진적 시장’에 대한 커멘트 안에 있는 문구를 통해 그의 ‘선호’를 들여다 볼 수 있다.   

대개의 경우 나는 시장과 명확한 인센티브 배치를 좋아하고, 정치와 관료, 허접한 해킹은 싫어합니다. 나는 경제학을 좋아하는데, 경제적 통찰력을 사용하여 더 잘 작동하는 시장을 설계함으로써 정치와 관료, 허접한 해킹의 역할을 최소화할 수 있기를 바랍니다. 그래서 나는 당연하게도 이 비전을 좋아합니다. 그래서 나는 훌륭한 지성적 시민이 됨으로써 그런 것들에 대항하는 대안을 만들기 위해 최선을 다할 것입니다. (비탈릭 부테린, On Radical Markets, https://vitalik.ca/general/2018/04/20/radical_markets.html)   

비탈릭은 ‘국가’라는 현실에 의해 방해받지 않는 공간인 ‘온체인’에서 ‘완벽히 작동하는 법률’과 ‘시장’을 동시에 새로 만듦으로써 현실의 문제를 ‘보편적’으로 해결하는 꿈을 꾸고 있는 것으로 보인다. 여기서 비탈릭에게 필요한 것이 ‘실용주의’라고 주장하는 것은 섣부른 조언이 될 수도 있다. 아직 포스너의 ‘글로벌 율법주의’에 대한 그의 관심이 실용적 수준의 문제인지 철학적 수준의 문제인지는 불명확하기 때문이다. 기대와 우려가 교차하는 이유다.   

철학자 비트겐슈타인은 젊은 시절의 자기 업적을 중년 이후에 거의 다 스스로 해체했다. 하지만 그렇다고 해서 비트겐슈타인이 젊은 시절에 이룬 것이 쓸모없는 것이 되지는 않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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좋은 글 보고 갑니다~

네^^ 감사합니다^^

페북 따라왔습니다. 알려주신 링크 http://hankookilbo.com/v_print.aspx?id=1615de810e8f47a48d12438e8ca3c71b

법경제학 분야 전문가들이 블록체인에 관심을 갖고 더 많은 지식이 공급되어야 하는데, 그 전에 마중물 노릇 정도가 제 역할이라고 생각하고 글을 쓰고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