근대성은 세계를 인간이 이해하는 지식 안에서 재구성하기를 원한다. 합리성이나 자유, 민주주의 같은 개념으로 세계가 온전하게 기술될 수 있다는 생각이 근대를 설계한 사람들이 꾸었던 꿈이다. 그러나 많은 경우 우리의 삶은 그런 개념들로 기술되지 않는다.
우리는 합리성이 작동한 결과가 아니라 ‘원인으로서의 선호’를 기초로 일상을 살고 있고, 필연을 구성하는 원인들이 아니라 우연적으로 발생한 결과를 지탱하느라 애를 쓰며 살고 있다. 우리는 ‘관리 가능한’ 세계 체제 속에 살아가는 것이 아니라 ‘공감할 수 있는’ 개인들의 삶과 우발적으로 손을 잡고 살아간다.
공개 블록체인을 보는 시각은 두 가지로 나뉜다. 하나는 이것을 또하나의 ‘대안적 체제’로 보고 전략을 구성하려는 시각이고, 다른 하나는 이를 현실의 문제들을 해결하기 위한 ‘돌파구’로 여기며 ‘가즈아’라는 구호를 외치며 몸을 던진다. 흔히 전자는 근대적 엘리트와 전문가들의 시각이고, 후자는 현실의 부조리에 억눌린 대중들의 시각이다. 근대성은 종종 엘리트와 전문가들의 시각을 지배적 시각이 되게 만드는 것이 왜 더 합리적인가를 주장한다.
하지만 인류의 역사는 매번 말해주고 있다. 진짜 희망은 단 한번도 엘리트들의 지성에 의해 완성된 적이 없다는 것을.
전문가인 크립토아나키스트들
인터넷의 탄생에서 활약한 전문가들이 미국방성 산하의 연구기관과 대학의 연구소들에 소속된 ‘제도권 내의 자유주의자’들이었던 것에 비해, 공개 블록체인의 탄생을 이끌고 있는 전문가들은 ‘아나키스트’에 더욱 가까운 ‘자유주의자’(Libertarian)들이었다. 비트코인의 창시자는 그 스스로 ‘익명’의 인물이었고, 그런 이유에서 비트코인 커뮤니티는 인터넷을 탄생시킨 전문가 커뮤니티와는 유사성은 있지만 매우 달랐다.
최초의 비트코인 수령자로 알려진 할 피니(Hal Finney)나 비트코인에 앞서 비트코인에 사용된 주요 기술들을 개발한 웨이 다이(Wei Dai), 닉 재보(Nick Szabo)는 전통적 의미에서 ‘조직에 소속된’ 전문가들이라기 보다는 해커들에 가까왔다.(물론 상당수는 대학이나 정부, 기업 연구소에 소속되어 있기는 했다.) 비트코인 논문이 발표된 메일링리스트였던 ‘Cypherpunks’는 단순히 암호학자들의 커뮤니티가 아니라 크립토아나키스트들의 커뮤니티였다.
PGP(Pretty Good Privacy)로 미국 정부의 암호제품 전략물자 지정을 비웃은 필 짐머만(Phil Zimmermann)과 Hashcash의 발명자인 아담 백(Adam Back), 익명 인터넷인 Tor의 개발자인 제이콥 아펠바움(Jacob Appelbaum), 비트토런트의 창시자 브람 코헨(Bram Cohen) 외에 프로젝트명만 대더라도 다 알 수 있는 수많은 크립토아나키즘적 프로젝트의 당사자들이 Cypherpunks의 멤버였다는 사실만으로도 비트코인과 공개 블록체인이 어떤 토양에서 태어난 기술인지를 쉽게 알 수 있다.
크립토아나키스트 전문가들은 분명 인터넷을 발명한 ‘제도권 내의’ 전문가들과는 달랐다. 그들은 기술을 혁신하기를 원한 것이 아니라 ‘사회를 혁신하기를’ 원했다. 그런 이유에서 비트코인이나 이더리움과 같은 초기의 공개 블록체인 프로젝트들의 첫 리뷰어들은 크립토아나키스트들이었다.[1] 그리고 그러한 전통은 공개 블록체인 생태계 안에 상당히 남아 있다.
그들은 ‘암호’의 보편성이 이 세상을 ‘자유롭게’ 만들게 될 것이라고 기대했다. 그리고 그들은 자신들이 만들려는 세상을 단순한 몇 가지의 원칙으로 ‘환원’시키거나 최소한 ‘공통분모’로 도입하는 비전을 꿈 꾸었다. 그들이 원한 것은 ‘자유로운 세상을 위한 강한 토대주의’였다. 그들은 다른 Libertarian 아나키스트들과 마찬가지로 국가 보다는 시장을 신뢰했기 때문에, 그들의 미래 비전 안에는 오스트리아 학파의 자유주의 경제학이 녹아들어 있었다. 이들은 ‘암호’와 ‘시장’으로 국가나 규제, 법과 같은 다른 사회시스템들을 환원시키는 토대주의에 기대를 걸고 있었다. 그들에게 ‘자유’의 가장 큰 적은 ‘자본’이나 ‘시장’ 혹은 ‘공산주의’가 아니라 국가였기 때문이다.[2]
전문가들의 공간 vs. 대중의 공간
공개 블록체인이 ‘전문가’들에 의해 탄생한 공간이라는 사실은 너무나 명백하다. 이는 인터넷이 전문가들의 손으로 만들어진 공간이라는 것과 마찬가지다. 미국의 기술사가인 자넷 어베이트는 인터넷이 어떻게 ‘전문가들’에 의해 만들어졌는가를 기술(description)해주었다. 그리고 그 과정이 ‘핵전쟁에서 살아남을 수 있는 네트워크를 만드는 과정’으로 축약되기에는 너무나 다양한 우연적 계기들이 작동한 결과라는 사실도 보여주었다.[3]
그러나 인터넷을 현재의 인터넷으로 만든 것은 전문가들이 아니다. 인터넷은 대중들의 공간이 됨으로써 현재의 모습으로 진화했다. 페이스북과 같은 SNS가 대중들에 의해 만들어진 것은 말할나위 없고, 인터넷 진화의 초기에 가장 큰 영향을 끼친 ‘기술적 혁신’이라고 불리는 ‘검색’ 영역에서도 대중들의 기여는 결정적이다. 자신들이 읽은 웹 문서의 링크를 앵커 텍스트와 함께 남긴 ‘웹 독자’들이 없었다면, 구글의 검색 알고리즘인 페이지랭크는 작동할 수 없었을 것이기 때문이다.(이 문제에 대해서는 <구글 검색엔진의 성장에 대한 ANT적 분석>을 참조하시길…)
현재의 인터넷이 만들어지는데 ‘대중’의 기여가 결정적이라는 것과 같은 의미로, 공개 블록체인이 질적으로 다른 단계로 진입하는 계기는 ‘대중’들이 공개 블록체인 위에서 보여주게 될 ‘전형적 행위’들이 축적됨으로써 만들어지게 될 것이다. 공개 블록체인의 역사에서 지금과 같이 날 것의 프로토콜이 주목을 받는 시기는 곧 잊혀지게 될 역사다. 인터넷과 비교를 한다면 지금의 공개 블록체인은, 구글의 탄생 전에 있었던 많은 인터넷 서비스들의 역사나 ARPANET이 Internet이 되는 과정에 대한 역사와 비슷하다.
하지만 지금의 공개 블록체인 생태계에서 미래에 가장 큰 영향을 줄 프로젝트가 무엇일 것인가를 평가하려고 하는 순간, 우리는 또 착각 속으로 들어간다. 그 착각이란, 공개 블록체인을 기능적, 성능적 측면에서 한 단계 끌어올린 혁신을 주도하는 프로젝트가 미래를 결정하게 될 것이라는 믿음 혹은 기대를 말한다. 단기적으로 ‘개발 생태계’를 끌어모은 이더리움이나 TPS를 극적으로 개선하고 사용자 비용을 낮춘 EOS가 주목받는 것은 당연하다. 그러나 아직 공개 블록체인은 많은 대중들이 생태계 안으로 들어와 뿜어내는 전형적 행위와 그것의 패턴화를 기초로 한 혁신이 씨를 뿌릴 수 있는 한 줌의 흙도 쌓이지 않은 상태다. 이런 시기에 횡행하는 것이 바로 ‘전문가들의 비전 과잉’이다. 전문가들은 ‘내가 대중들의 욕망을 이해하고 있으며, 그들은 이런 것들을 좋아할 것’이라는 예언을 쏟아낸다. 그리고 실리콘밸리의 유명인이 쏟아낸 그런 예언들은 많은 투자를 몰고 다닌다. 하지만 대개 그들의 예측은 실패한다.
물론 인터넷과 공개 블록체인이 발달하는 과정에서 ‘전문가’들의 역할은 필수적이다. 폐쇄적으로 운영되던 네트워크들을 연결하는 TCP/IP를 발명해 주어야 하고, 저렴하면서도 로컬 네트워크의 속도를 극적으로 개선하는 Ethernet을 만들어 주어야 하고, FTP와 같이 파일이 다 다운로드되기 전에는 내용을 볼 수 없는 프로토콜이 아니라 전송된 정보를 부분적으로도 계속 표시해주는 Web을 선보여야 하기 때문이다. 그러나 전문가들이 할 수 있는 혁신은 딱 거기까지다. 일단 대중들이 생태계 안으로 진입하는 순간, 대중들이 제시한 방향을 따라 잡는 혁신은 과거의 상상력 한계를 뛰어넘는다. 그런 점에서 공개 블록체인은 ‘아직은’ 전문가들의 공간이다.
그리고 언젠가 공개 블록체인이 도약을 겪게 된다면, 그것은 다음과 같은 것을 의미할 것이다.
공개 블록체인을 사용하기 위해 대중들이 그것이 무엇인지 알 필요가 없고
공개 블록체인이 자신이 해결할 모든 문제를 해결해 주지 않는다는 것을 대중 대부분이 알며
공개 블록체인 기반의 서비스들의 특성을 활용하지만 공개 블록체인을 굳이 알 필요가 없는 파생적 서비스가 빠르게 성장하는
이 말은 공개 블록체인이 Cypherpunk로부터 태어났지만, 공개 블록체인의 미래는 그것만으로 환원되지 않는 많은 계기들이 뒤엉키면서 우발적으로 발생한 사태일 것이라는 의미다. 지금은 ‘탈중앙화’가 이데올로기로 존재하지만, 미래의 ‘탈중앙화’는 ‘세력’으로서만 의미를 갖게 된다. ‘무엇이 옳은가?’라는 질문은 ‘무엇이 작동할 것인가?’라는 질문으로 대체된다.
Libertarian 아나키즘과 Cypherpunk라는 근대적 기획은 분명 비트코인이라는 탈국가적 프로젝트가 탄생하는데 결정적 기여를 했다. 그러나 공개 블록체인의 미래가 그러한 이념을 따라 갈 수 있을 것인지를 묻는다면, 나는 ‘알 수 없다’와 같은 모호한 답이 아니라 ‘아니다’를 선택할 것이다. 조만간 대중들이 이 생태계 안에서 자기 행위로써 목소리를 내기 시작하고 ‘세력’을 형성하기 시작하면, 공개 블록체인은 Cypherpunk와 괴리되기 시작할 것이다. 그 시점에 우리는 다시 한번 새롭게 질문해야 한다.
공개 블록체인이란 무엇인가?
[1] 닉 재보는 2017년에 이더리움의 의사결정 구조가 비탈릭 부테린에게 집중화되어 있음을 비판하기도 했다.
[2] 미국의 정치지형에서 Libertarian들은 베트남 전을 전후로 분화하여, 그 중 일부가 ‘네오콘’이라는 신자유주의자가 되었음을 이해할 필요가 있다. 그들은 개별 국가 단위로의 정의가 아니라 ‘글로벌한 법치’와 ‘시장’을 실현하기 위해 세계화를 밀어붙이고 있다. 참고할만한 문헌으로는 ‘미국 보수주의 운동의 기원과 변화’(강명세, 국가전략 2009년 제15권 2호)가 있다.
[3] 기술사학자 자넷 어베이트의 저서 <인터넷의 발명>(Abbate, J. (2000). Inventing the internet. MIT press.)은 국내에 잘 알려져 있지 않으나 인터넷의 초기 역사를 기술한 가장 정통적 문헌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