울었다.
마지막 두 장 정도는 눈 앞이 부연 상태여서 제대로 읽지도 못했다.
사실 다시 생각하면 뻔한 구조다.
아랍인 소년과 유태인 노파의 사랑
아우슈비츠로 상징되는 전쟁통 속의 비극과 전쟁 후에도 다른 형태로 일상적으로 진행되는 프랑스(뿐만이 아닌 유럽 혹은 제 1세계의) 내에서 다른 인종들이 겪어야하는 비극들의 반복
소외된 자들이 만들어내는 (의식적이지 않은, 하지만 본능적인)연대와 이해
도입부에서는 그의 놀라운 유머에 감탄했었다.
하지만 유머는 그가 언제나 그러하듯 낚시에 불과하다.
유머가 점점 진지해지더니... 끝내 이 지경으로 사람을 끌고 왔다.
썅! 그래! 좋다!
아드래날린 보다 에스트로갠이 많이 분비 될 나이가 되었다.
섬에 있고, 섬에는 지금 미친 바람이 부는 계절이다.
무언가를 다시 설정해야하는 상황이고, 하지만 지금까지의 모든 것이 허망하고 헛되다는 것이 명확한 시점이다.
그래 그리고 정말 말하기 싫었는데 하나로 마트에서 사온 방어 한 팩과 한라산 두병을 먹었다.
그 전에 김밥도 먹었다. 속 쓰리면 안되니까.
그렇다 하더라도 사람을 이렇게 울리면 안된다.
사람 마음을 이렇게 황량하고 끝간데 없이 만들어 놓고 마지막 문장은 뭐? "사랑해야한다" 라고?
이 봐요! 이런 식이면 당신도 예수랑 다를 바가 없잖아!
하긴 뭐 인생을 누가 구원해 주는 것도, 어떤 책에서 위안을 받는 것도, 어떤 희망에서 근거을 찾는 것도 다 말 안되는 이야기인 것은 다들 알 것이다.
그러니 "사랑해야한다"는 허망한 문구는 아무 말도 안하는 것보다는 그래도 다소 위안이 되는 말이라는 건 알겠다.
(약간의 유머를 다시 첨가했다. 그에게 배운 것은. 또 오래전부터 나 또한 동의했던 것은. 어떤 순간에도 유머는 필요하다는 것 이니까. 그리고 그것은 정말 진실이니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