먼저 맛보기 글은 다음과 같이...
①<초기 고대 그리스 문장, 짝수 줄의 알파벳은 물구나무를 섰다>
②<12C까지 유럽은 묵독(默讀)하면 이상하게 쳐다봤다. 우리는?>
③<알파벳문자만이 문명문자라고 한 자 둘. 루소와 맥루한. 이런..>
④<한글은 문자. 찌아찌아어는 언어. 같이 가보려 했는데>
⑤<글로는 말을 다 전하지 못하고, 말로는 뜻을 다 전하지 못한다>
⑥<구텐베르크의 금속활자 발명은 왜? 면죄부 대량 판매로 돈벌려고>
⑦<중국에서 유럽 전래. 종이, 화약, 나침반. 금속활자는 빼야>
⑧<한자, 표의문자는 옛 인쇄술 발전에는 불리. 독특한 에크리튀르>
⑨<먹, 벼루, 붓과는 달리 종이는 기원 후에 발명되었다. 음...>
⑩<양피지는 고대 이집트의 파피루스 수출 금지땜에 탄생했다>
⑪<진시황은 분서갱유 당시 종이책을 불태우지 않았다>
1.∼8.
- 글쓰기와 글읽기
가) 흥미있는 서두 열기
이제는 뭘 쓰나? 이 글이 열번째 연작 글인데...
2016.10.1일 제가 올린 <시월이군요..시(詩)의 달이 되면 얼마나 좋을까요....
a) 뜬금없는 시에 관한 작은 얘기
시인,
글에 숨을 불어넣고
글로 음을 연주한다
시는 글로 공감각을 가져옵니다.
특이한 방법으로 공감각을 만는는 시인들이 있습니다.
구체시(구상시, concrete poem)
-일종의 시로 만든 조형물입니다.
-예로서 스테판 말라르메(Stéphane Mallarmé)의 《주사위 던지기 Un Coup de des》와
-기욤 아폴리네르(Giullaume Appollinaire)의 《칼리그람 Calligrammes》(1918) 등
-특히 기욤 아폴리네르는 《비가 내리네 Il pleut》라는 시를 구성하고 있는 글자들이 빗방울처럼 그 페이지로 조금씩 흘러내립니다.
그런데 한시(漢詩)에도 비슷한게 있지요. 보탑시(寶塔詩). 층시(層詩)는 옳은 말이 아니라고 는 하지만....
당근 한글시에도 가능하다는 것이지요.
b) 맨 윗글에 관한 작은 얘기
왜 시 이야기를 할까요?
① 아래의 시귀에 나오는 가시는 어디에 생길까?
입에, 말에, 글에, 마음에, 정신에, 혼에, 가슴에
하루라도 책을 읽지 않으면 입안에 가시가 돋는다.
-일일부독서 구중생형극(一日不讀書 口中生荊棘)
-추구(推句)에 나오는 글귀를 안중근 의사가 인용
추구(推句)는 오언(五言)으로 된 시 중에서 좋은 대구(對句)들을 뽑아 만들었기 때문에, 그리고 초학(初學)들이 『천자문』,『사자소학』과 함께 가장 먼저 익힌다고 하여 『추구』라고 부른다. 저자는 미상이고 편찬연대는 조선후기인 듯하며 많은 필사본이 있다.
2016.9.27 화요일 제가 페북에 올린 글이다.
<12C까지 유럽은 묵독(默讀)하면 이상하게 쳐다봤다. 우리는?>
이를 아래에 해설해 본다.
② 한번 생각해 볼 만한 것 - 성독(聲讀)과 묵독(默讀)
추구에서 인용된 안중근님의 글에서 왜 책을 읽지 않으면 ‘입’에서 가시가 생긴다고 했을까요?
왜 하필 입이냐고요.
입, 말, 글, 마음, 정신, 혼, 가슴...도 있는데...
추구가 조선 후기에 편찬되었다고 한다면 조선 후기가지 우리나라도 묵독(黙讀)보다는 성독(聲讀)이 일반적이었다는 것이 아닐까요?
소리내어 읽기.
바로 입은 성독(聲讀)을 말하는거지요.
<소리내어 책을 읽다>
지금도 한문 고전 성독 대회가 열리듯이...
패러디합니다. -일일부독서 구중생형극(一日不讀書 口中生荊棘)
이렇게....
<가을에는 하루라도 시(詩)를 읊지 않으면 마음에 가시가 돋는다>
-추일부영시 심중생형극(秋日不咏詩 心中生荊棘)
c) 글은 말을 떠날 수 없고, 말은 뜻을 떠날 수 없다.
원전은 다음과 같다.
<글로는 말을 다 전하지 못하고 말로는 뜻을 다 전하지 못한다>
이 글은 2016.9.24일 내가 페북에 올린 글이다.
書不盡言, 言不盡意. 《주역》 계사전에 나오는 글이라고 이미 애기했다.
세세한 설명은 페이스북 <황야설수야설(黃也說竪也說)의 작은 인문(人文) 카페(58)>(2016.9.24)에서 자세히 설명했다.
직전 글들에서 언어와 문자에 대해 이것저것을 다뤘다.
첨언하면
말의 시간성, 글은 반시간성
말은 시간따라 가야하네.
글은 시간을 붙들어 맬 수 있네. 허니 책은 시간을 담아둘 수 있네.
언어는 우주이나, 문자는 지구이다.
언어는 청각 세계이나, 문자는 시각이다.
그런데, 직전 글에서는 두 가지 주제를 다뤘다.
① 문자가 있느냐 없느냐? 그게 뭣이 중한디?
② 문자가 ‘알파벳’이냐 아니냐가 후진성과 선진성의 기준일까?
거기에서 글쓰기와 글읽기도 다룰 것이라고 약속했다.
d) 글쓰기와 글읽기 - 어느 것이 먼저인가?
아니 그보다 먼저 이 둘은 문자를 전제로 하는가 아닌가?
도대체 쓰기와 읽기가 문자에 선행할 수 있는가?
말도 안되는 질문이지만 선행할 수 있다. 암튼...
쓰기는
ⓐ 글 자체를 쓰기가 있고
ⓑ 뜻을 쓰기가 있다.
읽기는
ⓐ 글 자체를 읽기가 있고
ⓑ 뜻을 읽기가 있다.
구분되시는가? 엄연히 다르다.
그러니 후자의 경우(ⓑ)는 뜻보다 언어가 선행할 수 있다.
후자의 경우(ⓑ)는 또한 두 가지로 나눠진다. 계속 나눠지는 구먼...
① 우선, 형이상학적이다. 철학적이라는 말이다.
이는 뜻>언어>문자의 선후행 관계를 다르게 보는 사유와 연결되어 있다.
현대 철학의 새로운 흐름과 관련이 있다.
② 첨언하여, 이렇게도 얘기할 수 있다. 인문학적이다 이것은.
<글자를 읽고 쓴다는 행위(literacy)는 단순히 문장을 읽고 쓰는 것이 아니라 세상을 '쓰고 읽는’ 행위이다>
그래서 나는 이 둘(①과 ②)을 아직 다룰 능력이 없으니 앞의 것(ⓐ), 즉 ‘글 자체’만을 다룬다.
그래도 ①에 관해서는 조금은 페북에 <황야설수야설(黃也說竪也說)의 작은 인문(人文) 카페(59)> (2016.9.25)에 적어놓았다.
오늘 다루고자 하는 쓰기와 읽기는 문자에 선행하지 않는 바로 ‘글 자체’에 관한 글이다.
그러니 당연히 <쓰기>가 먼저, <읽기>가 나중이다.
그래서 페이스북에 이렇게 올렸다.
<초기 고대 그리스 문장, 짝수 줄의 알파벳은 물구나무를 섰다>(2016.9.27)
<12C까지 유럽은 묵독(默讀)하면 이상하게 쳐다봤다. 우리는?>(2016.9.27)
앞은 글쓰기, 뒤는 글읽기.
<글쓰기>에 대하여 먼저 다룬다.
그런데 오해하지 마실 것.
⒜ 글 <잘> 쓰는 법에 관한 글이 아니다.
언어(말)을 어떻게 표기하는가에 관한 글이다.
⒝ 그렇다고 문자학 일반에 관한 것이 아니라 직접적인 쓰는 법에 관한 글이다.
물구나무 쓰기법이나 소몰이 쓰기법(부스트로피돈, boustrophedon)이나 우횡서나 좌횡서나 우종서나 좌종서 등에 관한 얘기이다.
.........continued
목차
- 정보의 저장고
가) DNA
나) 대뇌피질
다) 문자, 책, 도서관 - 뭘 더 알아볼 것인가? (이번 글)
- 정보의 저장 방법 - 소리 전달 이후의 글쓰기
가) 어디에다 글을 썼을까?
나) 책(冊, book)이란 낱말은 어디서?
다) 책의 형태는? - 정보의 대량 생산
가) 인쇄 기술의 발전과 배경
나) 종이와 인쇄술 - 인쇄가 역사적 의미를 가지려면 - 대량생산과 보급
- 무엇을 쓰고, 인쇄하나 - 언어와 문자의 구분
- 정리된 ‘언어’와 ‘문자’의 구분 기준과 ‘언어’의 외연
- 문자성과 문자의 우월성이란 실체인가 허상인가?
- 글쓰기와 글읽기
.가) 흥미있는 서두 열기 (이번 글)
나) 먼저, 글쓰기
a) 서론
b) 고대 그리스 글쓰기 시작 - 문자의 도입
c) 고대 그리스 알파벳의 글쓰기 - ‘물구나무 쓰기’부터
d) 고대 그리스 알파벳의 글쓰기 - 소몰이 쓰기법
e) 로마자(라틴 문자)의 시작
f) 로마자(라틴 문자)의 변화 - 소문자 등의 등장
g) 로마자(라틴 문자)의 변화 - 오늘날의 글쓰기 시작
h) 한자문화권의 우종서와 좌횡서
다) 이어서 글읽기
a) 글읽기와 관련된 몇 가지 개념
b) 글읽기와 관련된 몇 가지 관점
c) 성독과 묵독에 관한 맛보기 글
d) 글읽기의 대상 – 문자의 종류
e) 글읽기 – 성독
f) 한자문화권의 글읽기
g) 여담 몇 가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