테이블 위에 거꾸로 놓여진 술잔

in culture •  7 years ago  (edited)

얼마 전 부장의 주제하에 부서 티타임을 갖는 시간이 있었다. 그 자리에서 타 지사에 외국 유학경험이 있는 신입사원의 회식 일화가 이야기거리로 나왔다.
맨 처음 외국 유학생 출신의 신입사원이라는 단어를 들었을때부터 보수적인면에서 둘째가라면 서러운 우리회사에 입사한 그 청년이 겪었을 고충이 예상 되었다. 더구나 이 사회에서 회식이라는 단어에 내재된 폭력성을 생각한다면 앞으로 나올 이야기의 내용은 뻔하였다.
일단 사건의 내용인 즉 회식 중 여느때와 같이 직원들은 자연스럽게 서로의 술잔을 돌리기 시작했고 그 모습을 목격한 그 신입사원은 자신의 술잔을 테이블에 엎어 놓고 그 의식에 동참하지 않겠다는 의견을 표현했다고 한다. 난 그 이야기를 듣자마자 '역시 유학생', '그분 최소 배우신분', '왜 난 그런 생각을 하지 못했지?' 등의 감탄과 존경심, 그리고 자괴감이 들었다.
우리 회사는 아직까지도 회식때 활발하게 술잔을 돌려댄다. 몇년전 메르스의 광풍이 불었을 때는 잠시 이 문화를 자제하는 분위기가 있었다고는 하지만 어쨌든 지금 현재에는 그러했던 기억조차 사라지고 조직의 단결력 제고라는 변명하에 여전히 술잔을 당연하게 돌려대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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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처 : 조선일보)

그 광경을 맨 처음 목격했을 땐 마치 옛날 TV프로그램인 ' 도전 지구탐험대' 에서 본 오지 부족들의 특이한 풍습을 보는 것 만큼이나 거북하고 역겨웠다. 이렇게 이야기 한다면 누군가는 나를 인종주의자나 문화의 차이성을 이해하지 못하는 몰상식한 인간으로 볼 수 도 있을 것이다. 하지만 거기에 대한 나의 변명을 하자면 나 또한 문화의 차이성을 존중하려 노력하는 사람중의 하나이다. 개고기를 먹는 대표적인 나라의 국민으로서 그러한 노력을 하지 않고 남에게 삿대질만 한다면 그것 또한 모순일 수 있기 때문이다.
하지만 나의 회사에서 벌어지는 이러한 술잔돌리기 문화를 문화의 다양성이라는 이름으로 감싸 안기에는 다소 무리가 있다는 것이 그 문화의 경험자로서의 나의 의견이다. 일단 이 문화의 참여자중 절반이상은 타의에 의해 자의에 반하여 억지로 참여 당하고 있다. 우리부서 회식을 보더라도 15명중 거부감을 비공식적으로도 드러내지 않은 사람은 6명 뿐이다. 그 6명이 자신들의 직장내 권위를 앞세워 나머지 9명에게 술잔돌리기를 강요하는것이다. 근본적인 문제는 나머지 그 9명은 회식 자체를 싫어 하는 것이지만 그 9명중 어떤사람들은 술잔돌리기 때문에 회식을 싫어 할 수도 있겠다는 일말의 가능성을 두고 일단 술잔돌리기라는 문제에 집중하여 이 글을 이어나가도록 하겠다.(물론 나는 술잔돌리기와 상관없이 내 개인시간을 침해당하는 회식 자체를 싫어하고 나머지 8명의 동료들도 그렇다고 믿고있다.)
이러한 상황은 지구상의 어떤집단에서 벌어지는 여성할례와 마찬가지로 인권의 문제지 문화다양성의 문제는 아니라고 본다. 다만 피해자가 당하는 고통의 강도가 다르고 거부할 수 있는 여지의 차이가 있을 뿐 본질적으로는 같다는 것이다.
다시 부서 티타임시간으로 돌아가 보겠다. 우리 부장은 그 일화에 대해 약간 어이가 없고 그 신입사원이 회사에 잘 적응하지 못하는 것 같다는 걱정 아닌 걱정을 표하였다.(참고로 우리 부장은 고지식하고 눈치가 없는 편이지만 사람자체가 굉장히 악날한 사람은 아니다. 어쩌면 악의 없이 정말 순수하게 그 신입사원을 걱정하는 마음에서 그런 이야기를 꺼냈을 수도 있다.)
그러한 의견에 술잔돌리기를 싫어하는 9명중의 대다수는 부장의 뜻에 동의한다는 의견을 내놓았다. 아이러니도 이런 아이러니가 없다.뒤에서는 이 문화를 극도로 혐오하면서도 공식적으로는 그러한 뜻을 표현하는 것 조차 하지 못하는 것이다.
회사에선 사장부터 공식적으로 술잔돌리기를 자재하라고 지침을 내리지만 현장에선 신경조차 쓰지 않는다.
부장자신은 사장의 말을 거역하면서, 부하직원이 자신의 말을 거역하는 건 있을수 없는 일이라 생각하고, 노조 지회위원장도 사측의 뜻에 반대하는 것이 자신의 의무인양 솔선수범하여 술잔을 돌린다.
나 또한 차마 부장의 의견에 동의를 하진 못했지만 그렇다고 적극적으로 그 문제의 신입사원을 변호하지도 않았다. 그저 그 자리에선 조용히 앉아 있다 이렇게 인터넷 상에서 익명성이라는 보호막에 기대어 글이나 쓰고 있는 것이다.
혹자는 이렇게 뒤에서 이야기 해본들 변화는 없고, 앞에서 적극적으로 자신의 주장을 펼치지 못하는 것은 그저 방관자나 조력자가 되는 것이라고 말한다. 그 말에 일부는 동의한다.
하지만 직장에서 인생의 대부분을 보내야 하고 그래야만 생계가 유지되는 노동자들에게 그러한 것을 강요한다는 것 또한 한편으론 가혹한 일이다.
누군가는 말했다. '천하는 쉽지만 집안일은 어렵다'라고.
요즘같은 민주주의 시대에서 대통령을 비판하는 건 쉽지만 나의 부서장을 비판하는 건 굉장히 어렵다.
여기까지 두서없이 글을 쓰다보니 어떻게 마무리를 해야할지 고민스럽다. 하지만 생각을 해보면 답은 명확하다.
아무리 어렵더라도 앞에서 표현을 해야 한다는 것이다. 그리고 술잔돌리기라는 전통을 지키려는 사람들도 이러한 글을 본다면 의도적으로 눈을 감지 않고 내가 누군가에게 불행을 강요하고 있지는 않은지 한번쯤은 생각해 보길 바랄 뿐이다.
다음주에도 분명 회식은 있을 것이고 그 자리에는 나와 나의 동료 8명도 있을 것이다. 그리고 또다른 동료 혹은 상사 6명도 있을 것이다.
나부터 '회식의 분위기를 망치고 싶지 않다'는 변명 뒤에 숨지 않고 이야기 하겠다.
나 자신부터 가만히 있는데 누가 나의 삶을 개선시켜주려 발벗고 나서겠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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