젠트리피케이션에 대한 고찰
젠트리피케이션은 신사를 뜻하는 단어 ‘gentry’에서 파생된 말로 "낙후된 지역을 고급화하다"라는 뜻을 가지고 있다. 하지만 우리 사회에서는 상대적으로 낙후되어, 임대료가 비교적 저렴한 지역이 발전하면서 기존의 원주민들을 밀어내는 현상을 말한다.
기존에 해당 지역에 살던 저소득층 원주민들이 다른 지역으로 옮겨가고, 그 빈 자리를 비교적 고소득을 버는 새로운 이주민들이 채운다는 점에서 소득이 많지 않은 원주민이 밀려나는 것과 비슷한 양상을 보인다. 이러한 방식을 통해, 대중들에게 유명세를 얻은 지역은 기존보다 더 많은 수요를 가지게 된다. 하지만, 기존의 낙후지역이 재개발이 되지 않는 한, 건물/점포 등의 공급은 어려우니 수요-공급의 불균형으로 ‘젠트리피케이션’의 결말은 명확해진다.
대중에게 유명세를 얻어, 매출이 좋아진다고 하더라도 이윤의 한계는 명확하기 때문에 폭발적으로 증가한 임대료를 감당할 순 없다. 이렇게 쫓겨난 원주민들은 또 새로운 삶의 터전을 찾아 떠나는데, 애석하게도 또 다시 젠트리피케이션이 일어나서 다시 쫓겨나는 현상이 반복된다.
전 세계 음식을 맛볼 수 있었던, 개성이 넘치던 '한국 속 외국'이자 이국적 풍경을 자랑하던 이태원거리는 대표적인 젠트리피케이션 지역으로 꼽힌다. 불과 5년전만 해도 이 곳에는 유명 식당이 즐비하여, 식당에 줄을 서던 대기자들이 1~2시간을 기다리던 곳이다. 특히 SNS에서 입소문을 탄 '핫플레이스'로 불리는 맛집과 카페 덕에 젊은 사람들의 발길이 끊이지 않던 이태원. 'O리단길'이라는 신조어까지 만들어내며, 서울지역을 대표하는 명소가 되었지만 이 곳도 젠트리피케이션의 여파를 이기지 못했다. 이태원은 젠트리피케이션 1세대 지역으로 꼽히며, 점차 점포들이 높은 임대료를 견디지 못하고, 점차 빈 점포가 늘어나면서 이제 상권이 완전히 침체되었다.
이태원을 대표하던 맛집 '마이타이'와 '마이치치스'를 운영하던 방송인 홍석천의 식당도 젠트리피케이션을 견디지 못해 2018년에 모두 가게를 폐업하게 되었다. 해당 지역에서 오랜 시간 자리를 지키며, 장사를 하던 '이태원의 터줏대감'들도 결국 높은 임대료에 무릎을 꿇었다. 이러한 사태가 반복되자, 용산구 이태원 상권의 중대형 상가 공실률은 2013년 2분기 3.3%에서 2018년 4분기 21.6%로 급증했다. 급격히 놉아진 공실률로, 이젠 이태원의 어느 거리를 가도 빈 상가를 쉽게 볼 수 있게 되었다.
이처럼 젠트리피케이션은 '높은 임대료'의 영향으로 상권쇠락의 원인으로도 꼽힌다. 타 지역과 차별화되는 작고 개성있는 식당 대신 작은 평수의 매장에서도 고정적인 이윤을 창출할 수 있는'프랜차이즈 형'식당 및 카페가 우후죽순 늘어나게 되면서, 해당 지역만의 색깔을 잃게 되었다.
상권을 활성화하려면, 재방문율을 높여야 하는데 이태원이 가진 여러 엔터테인먼트 요소나 컨텐츠 등을 고려했을 때, 이태원 상권은 이제 성장기에서 성숙기를 넘어 쇠퇴기에 접어드는 것으로 보인다.
현재, 전국 지차체들은 상권쇠락을 막기 위해 젠트리피케이션을 방지할 수 있는 다양한 대책을 마련하고 있다. 서울시는 연 5%이상 임대료를 인상하지 못하도록 금지조항을 만들었고, 전주시는 역세권 건물주와 세입자 간 상생 협약을 추진하고 있다.
지자체의 젠트리피케이션 방지 대책 중, 선도 사례로 꼽히는 것은 바로 '성동구'이다. 성동구는 젠트리피케이션을 막기 위해 공공안심상가를 만들고, 주변 시세보다 30%이상 저렴한 임대료로 가게 운영을 할 수 있도록 했다. 또한 임대차 기간과 재계약 및 갱신을 포함하여 최대 10년간 안정적으로 가게 운영을 할 수 있도록 보장해주고 있다.
개인적으로, 임대업자들에게 상생을 강요하는 것은 효과가 없다고 생각한다. 임대료가 곧 수입인 사람들에게, 우리가 안정적으로 장사를 할 수 있도록 본인의 수익을 적게 가져가라고 요구하는 것과 다를바가 없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임대인-임차인이 아닌, 지자체의 노력을 통해 젠트리피케이션을 방지하고, 이해관계자 간 상생을 도모할 수 있도록 여러 대책 마련이 필요할 것이다. 젠트리피케이션을 막지 못하면 결국 도시재생 사업도 무의미하기 때문이다. 지자체를 주 축으로 하여, 임대인과 임차인의 협조를 통해 ‘장사하기 좋은 대한민국’을 꿈꿔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