삶의 곳곳에서 완급조절이 필요하지 않은 것은 거의 없다.
서두를 건 서두르고 느긋할 건 느긋하게 처리해야 일처리든 사람과의 관계든 원만하지 않을까? 여기 그렇지 못해 실패한 사례가 있다.
건설업체가 질환 진단용 소재를?
2016년 봄, 서울에서 개최한 사업화 유망기술 설명회 이후 한 달쯤 지나서 모 기업 대표로부터 한통의 전화가 왔다. 우리 기관의 질환 진단용 소재 관련 특허기술에 대해 기술상담 받기를 희망했다. 한국기업데이터(Cretop DB) 조사 결과, 황당하게도 이 회사는 인천에 있는 모 건설업체로 연매출 수백억 원대의 꽤 규모가 있는 중견기업이었다. 그런데 건설과는 전혀 상관없는 의료바이오분야 특허기술에 대해 기술상담을 희망하니 황당할 수밖에.
기술수요기업을 찾는다는 게 얼마나 어려운지를 익히 알기에 굴러들어온 복을 어찌 걷어찰 수 있겠는가! 무작정 만나기로 했다. 발명자인 P박사에게도 참석해줄 것을 요청했다.
미래 먹거리 창출을 위해 생뚱맞은 특허를 찾다
발명자의 기술설명에 앞서 그 기업에 대한 이런저런 사항을 묻다가, “도대체 왜 잘나가는 건설업체 대표님께서 이 회사의 사업분야와 전혀 관련도 없는 이 특허기술에 관심을 갖게 된 이유가 뭔지요?”라고 정중히 물어보았다. 쉽게 수긍하기 어려운 답이 되돌아왔다. “앞으로 10여 년간은 이미 확보된 물량이 있어서 회사 살림에는 별 문제가 없습니다. 그런데 그 이후 회사의 미래 먹거리 분야를 찾다가 우연찮게 지난 기술설명회 행사에 잠시 들렀는데 그때 이 기술을 처음 접하고 관심을 갖게 되었습니다.”라고 했다. 내심 “요즘 한치 앞도 내다보기 힘든 시국에 10년 후 먹거리를 찾다니...”하며 다소 의아했지만 그러느니 하는 수밖에. 한참 후에 들었는 즉 생물학을 전공하는 대학생 아들이 있다고 한다.
사려는 자는 열정적인데, 팔려는 자는 시큰둥~
가벼운 얘기를 주고받은 후 P박사가 자신의 특허기술에 대해 설명하기 시작했다. 기업 대표가 이 분야엔 문외한이라고 미리 밝힌 탓에 P박사는 자신의 기술을 가급적 쉽게 설명하려고 무진 애를 썼다. 그런데 P박사의 표정을 보니 영 시원치 않았다. 열정이 보이지 않은 것이다.
기업 대표에게 전화가 온 틈을 타서 잠시 휴식시간을 가졌다. P박사에게 말했다. “기술에 대해 아주 쉽게 설명해줘서 저 또한 이해하기가 좋기는 한데, 왠지 열의가 보이지 않네요. 혹시 무슨 문제라도 있는지?” 대답인 즉, “건설업체 대표님이 왜 이 기술에 대해 관심을 갖는지 모르겠어요. 기술이전을 해달라고 해도 문제고요.” 다시 물었다. “왜 문제가 되지요?” P박사 왈, “이 기술을 제대로 이전시키려면 상당 시간 노하우도 전수시켜야 하는데 그 노하우를 받을 조직도 사람도 현재 그 회사에 없잖아요.” 듣고 보니 맞는 말이었다. 결국 그 기업에 이 기술을 이전하면 문제가 될 것도 같아서 기술이전을 하지 않는 방향으로 대화를 유도하기로 둘이 합의했다.
짧은 휴식시간을 마치고 기업 대표에게 직설적으로 말했다. “전화하실 때 밖에서 둘이 잠시 얘기를 나눴는데, 대표님 회사는 건설분야라 아무리 회사의 미래 먹거리 창출 때문에 필요하다고 해도 이 기술은 도저히 기술이전하면 안될 것 같네요. 죄송합니다.” 잠시 냉랭한 기운이 흘렀다. 그러나 참으로 선량한 인상을 가진 기업 대표는 이내 미소를 머금으면서, “고맙습니다. 우리 회사를 염려해서 그렇게 말씀해주시니까. 알겠습니다. 그렇지만 아쉽네요. 좀 더 깊이 생각해보고 다시 연락드리겠습니다.” 1차 미팅은 그렇게 끝났다.
우리는 안팔겠다는데 굳이 사겠다고 하니 원~
1주일 후 기업 대표로부터 다시 연락이 왔다. P박사의 기술을 꼭 이전받고 싶으니 다시 만났으면 좋겠다고. P박사에게 다시 연락했다. 이 기업의 대표는 P박사의 기술을 정말로 이전받고 싶어하는 것 같으니 이번엔 진지하게 긍정적으로 검토하기로 했다. 며칠 후 다시 만났다. 1차 미팅 때와는 달리 비교적 활기차게 대화가 오갔다. 기업 대표 역시 궁금한 것을 잔뜩 정리해와서 꼼꼼히 질문했고, P박사 역시 성실하게 답변했다. 기술상담이 끝나자 곧바로 기술료 협상에 돌입했다. 필자는 정액기술료 2억원에 경상기술료 3%를 제시한 반면, 기업은 5,000만원에 3%를 제시했다. 양측이 제시한 정액기술료가 꽤 큰 차이였음에도 기술료 협상은 불과 5분여 만에 끝났다. 정액기술료 1.5억원에 경상기술료 3%.
기업 대표는 기술실시계약을 체결하기에 앞서 인천에 있는 자기 회사를 방문하기를 희망했다. 자신은 도저히 자기 직원들에게 이 기술에 대해 설명할 능력이 없으니 P박사가 와서 몇몇 임직원들에게 직접 설명해주면 좋겠다고 하였다. 우린 기꺼이 그리 하겠노라고 하여 미팅일정을 잡았다.
굳이 사겠다기에 회사를 방문하다
5월 어느 날 P박사와 함께 그 회사를 방문했다. 그 자리에 참석한 여러 회사 직원들과 가볍게 인사를 나눈 후 P박사가 자신의 기술을 설명했다. 참석한 사람 중 이 분야를 아는 사람은 아무도 없었기에 최대한 쉽고 자세하게 설명해나갔다. 기술 설명이 끝난 후 내가 P박사에게 물었다. “이 기술의 노하우를 전수하는데 어느 정도의 시간이 걸릴까요?” P박사 왈, “이 분야를 어느 정도 아는 사람이라면 대략 3~6개월 정도면 노하우 전수까지 가능합니다.”라고 했다. 나는 기업 대표에게 이 회사에서 이 기술을 어떻게 전수받아서 사업화할 것인지에 대해 물었다. 곧바로 관련 전공자 3~4명 정도 뽑아서 조직을 만들고 P박사로부터 노하우를 전수받아 사업에 착수하고 싶다고 하였다. 이를 위해 P박사에게 좋은 사람을 추천해달라고도 하였다. 순간 기술사업화를 너무 쉽게 생각하는 건 아닌가 하는 우려도 있었지만, 이미 기업을 큰 규모로 운영하고 있는 분이기에 그럴 수도 있겠지 했다. 조만간 기술실시계약서 초안을 작성해서 보내드릴 테니 꼼꼼하게 검토한 후 연구원에서 계약을 체결하기로 하고 자리에서 일어났다. 나와 P박사는 비교적 쉽게 기술실시계약이 이루어진 것에 다소 의아하면서도 기쁜 마음으로 나왔다.
지연되는 회신, 불길한 조짐이 일다
얼마 후 나는 계약서 초안을 작성하여 P박사의 검토까지 마치고 기업 대표에게 이메일로 보낸 후 전화로 그 사실을 알렸다. 기업 대표는 고맙다고 하면서 계약서를 검토한 후 회신을 주겠노라 하였다.
근데 어찌된 일인지 며칠이 지나도 기업 대표로부터 연락이 오질 않았다. 1주가 지나도 소식이 없자 다시 전화를 했더니 아직도 검토 중이라 하였다. 뭔가 불길한 느낌이 들었다. 자주 전화하는 것도 결례인 듯 싶어서 계속 기다렸다. 한 달쯤 지나도 연락이 없자 다시 전화를 했다. 불길한 예상은 어김없이 들어맞았다. 몇몇 지인들과 관련 전공분야 교수에게 자문을 받아보았는데, 사업성을 확신할 수 없다는 결론을 이미 내렸는데 미안한 마음에 연락을 하지 못했다고 전했다. 결론은 꽝!
아쉽지만, 차라리 다행
차라리 인천의 회사 방문 때 계약서를 미리 작성해서 가지고 갔더라면... 아니 그 전 미팅 때 곧바로 계약체결 준비를 했더라면... 하는 아쉬운 여운이 남았다. 서둘러 마무리할 것을 충분하게 검토할 시간을 준답시고 여유롭게 처리한 바람에 계약이 결렬되고 만 것이다. 어찌 보면 우리 기관으로서는 다소 씁쓸하지만 회사 입장에서는 차라리 다행일지도 모른다. 아직 제대로 준비된 임자가 아닌 듯싶은 까닭이다. 물론 기술이전계약이 체결되었다면 기업 측에서는 어떻게든 이 기술을 제대로 사업화하고자 최선의 노력을 기울일 수도 있겠지만 말이다.
가입인사: 똑.똑.똑. 처음 인사드려요~
기술-기업 만남의 설렘과 두려움
기술이전협상 성공사례 #1: 2개 기술을 묶으면 기술료도 2배!
기술이전협상 성공사례 #2: 산 넘어 또 산이 있을 수도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