현재까지 전쟁과 평화에 대한 경구중에서 가장 대표적인 것은 클라우제비츠와 베게티우스가 아닌가 한다.
클라우제비츠는 전쟁을 정책의 연속이라고 하면서, 전쟁은 의지와 의지의 대결로 나의 의지를 상대방에게 강요하는 것이라고 했다. 동로마제국의 베케티우스는 그 유명한 ‘평화를 원하거든 전쟁을 준비하라'고 말했다.
서양역사에서 전쟁과 평화는 거의 예외없이 클라우제비츠와 베게티우스의 경구로 설명이 가능한 것 같다. 국가와 국가간의 관계에 대한 내용으로는 마키아벨리의 군주론을 들 수 있을 것이다. 서구적 사고방식은 국가와 국가간의 갈등과 전쟁을 피할 수 없는 것으로 보았던 것 같다는 생각을 하기도 했다.
그런 점에서 동양과 서양은 차이가 있다고 생각한다. 동양에서의 국가와 국가의 관계는 마키아벨리적 의미와 조금 다르다고 생각한다. 동서양의 국가와 국가의 관계에 대한 문제는 여기에서 논의할 성격은 아니라고 생각하므로 여기에서는 생략하겠다. 전쟁에 대한 생각도 다르다. 손자는 군사는 국가지대사라고 했지 정책의 연속이라든지 나의 의지를 상대방에게 강요한다든지 평화를 원하거든 전쟁을 준비하라는 식의 주장은 하지 않았다. 동양 특히 중국에서 보이는 전쟁에 대한 생각이 서양과 다른 것은 그들의 전쟁사상이 서양에 비해 떨어진 것이 아니라 사고의 방향과 중점이 달랐기 때문이 아닌가 생각한다.
클라우제비츠와 베케티우스의 경구가 중요한 의미를 지니게 된 것은 역사를 주도하는 세력이 서구이기 때문일 것이다. 그러나 역사의 전환점에 직면하여 기존의 전쟁에 대한 생각을 뛰어넘을 필요가 있지 않나 생각한다. 사실 서구에서 전쟁을 반대하고 평화를 본격적으로 주장한 것은 사회주의 사상이 등장하면서 부터였다. 군비감축 19세기 초중반 이후 사회주의 사상가들이 주장에서 출발했다.
군인들과 한국의 우파세력들이 금과옥조로 생각하는 베게티우스의 ‘평화를 원하거든 전쟁을 준비하라'는 경구는 동로마제국의 상황에서 비롯된 말이다. 그리고 베케티우스의 사상은 스파르타로 이어진다. 스파르타는 군사학의 전통을 동로마제국으로 이어갔다. 그렇게 보면 평화를 원화거든 전쟁을 준비하라는 말은 지극히 스파르타의 군사주의적 전통을 이어받은 것이다. 스파르타식 군사사상의 절정을 이룬 것은 피루스의 승리다. 모든 전투에서 승리하지만 결국 아무것도 남지 않는 것이다.
미국이 국제정치적 갈등을 외교와 협상이 아닌 군사적 방법으로 해결하려는 가장 큰 이유는 그들이 스파르타적 전통의 연속선상에 있기 때문이라고 생각한다. 미국의 군사주의에 대한 설명은 다양하다. 원래 제국주의적이라든가 군산복합체의 문제라는 해석도 가능하다. 그러나 미국의 국가건설의 전통이 스파르타-로마-미국으로 이어지는 군사주의에 바탕한 공화주의적 사상의 연장선에 있기 때문이 아닌가 하는 생각도 해본다. 많은 사람들은 아테네를 미국의 정치적 기원으로 생각하기도 하는데, 그와 반대로 미국 건국의 아버지들은 아테네적 상황의 재현을 가장 우려했다.
평화를 원하거든 전쟁을 준비하라는 경구는 아주 협소한 계층에게 의미를 지니고 있다. 군인들에게만 옳다는 것이다. 베게티우스의 경구를 정치인들이 깊이 마음에 새기면 오히려 모든 문제를 전쟁으로 해결하려는 경향이 생긴다. 오늘날 한국의 윤석열 정권에서 볼 수 있는 현상이다. 정치인들은 평화를 위해서 평화를 이야기해야 하는 법이다. 필자는 문재인 정권 당시의 9.19 군사합의를 적극적으로 지지했다. 군인들이 전쟁에 대비하는 것과 정치인들이 평화를 만들어가는 과정은 다를 수밖에 없다. 그런점에서 윤석열 정권의 군인들이 군사작전의 필요성을 들어 남북간 정치적 협상을 무위로 만들어간 것은 정치의 군사에 대한 우위의 원칙에서 한참은 벗어난 것이다.
물론 윤석열 정권이전에 문재인 정권이 먼저 9.19 군사합의를 무력화시키는 조치를 했다는 점은 부정할 수 없다. 조선이 남북관계의 전면적 재검토를 하게 된 근본적인 이유도 문재인 정권의 약속과 합의 파기를 보면서 앞으로 한국의 진보정권과의 합의와 대화자체가 불가능하다고 보았기 때문이라고 생각한다.
클라우제비츠가 말한 전쟁은 의지와 의지의 대결이라는 말도 정치인들에게는 부분적으로 받아 들여야 한다. 의지와 의지의 대결이라는 말에는 전제조건이 필요하다. 더 이상 서로 의견의 조정을 볼 수 없을 때라는 말이다. 문론 의지와 의지의 대결이라는 말에는 서로간의 의견조정이 불가능하다는 의미를 포함하고 있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의지와 의지의 대결이라는 경구에 대한 비판은 여전히 필요하다.
정치인은 나의 의지를 상대방에게 강요하기 전에 나와 상대방의 의지를 조정하고 정리하는 과정을 반드시 생각하여야 한다는 것이다. 의지를 강요하는 것은 쉽지만 의지를 서로 조정하는 것이 매우 서툰 것이 서구의 외교사가 아닌가 생각한다.
현시기는 역사적 전환점이다. 역사적 전환점에는 그에 합당한 사고방식과 가치기준이 필요하다. 그런 가치기준과 사고방식을 만들어가는 세력이 역사를 주도한다. 새로운 사고방식과 가치기준을 위해서는 기존의 가치와 사고방식을 뛰어넘어야 한다고 생각한다.
토요일 아침 지금 전세계는 전쟁의 도가니로 뛰어들고 있다. 이런 상황에서 탈피하려면 어떻게 해야할까를 생각하면서 클라우제비츠와 베게티우스를 극복하는 노력이 필요하다는 생각을 해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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