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_lucid_dream 님의 트윗을 여기에 옮겨놓으며, 한 수 배운다. 숫자는 내가 순서를 위해 덧 붙인 것.
내 의견:
- ghost author in authorship에 대한 것만 알고 있었는데, ghost writer에 대한 것을 알게 되어 착잡함.
- 대학 입시를 위한 준비가 이렇게 치밀하게 미쳐간 세상이 현재 같이 보고있는 하늘 아래라서 마음이 아픔.
- 다른 세상에서 사는 이들이 왜 현재 세상 사람들의 자원을 약탈하고 사는지 화가 남.
연구경력은 물론이고, 학과 공부를 하는 학부 3학년 정도 되면 경험했을 preprint repository에 대한 개념도 없으신 것 같아, 어디부터 설명해야 할지 좀 고민이 됩니다만, 하나씩 님 같은 분도 이해하실 수 있도록 말씀드려 보겠습니다. 일단은 academic journal, open access journal의 개념부터.
통상 연구자들이 “논문 쓴다”, “R&R 결정 받았다”고 할 때 그 논문이 실리는 학술지가 academic journal입니다. 정교수 chief editor가 출판과 게재 관련된 모든 업무를 관장하고, 박사 이상 연구자들이 제출된 논문을 익명으로 심사하여peer-review 게재/수정 후 게재/게재불가 결정을 내립니다.
大家가 아닌 이상 일단 이 심사과정을 뚫는 것도 쉽지 않고, 좋은 저널일수록 경쟁도 치열하기 때문에, 학계에서 인정을 받는 학술지에 논문이 실리는 것은 모든 연구자들이 바라는 바입니다. 이에 반해 open access journal은 다음과 같은 특징을 갖습니다. 1) 최소한의 형식만 갖추면 심사가 없다:
말 그대로 open인데, 학계 밖 특허청 공무원이었던 아인슈타인이나 정규 교육과정을 밟지 못한 패러데이 같은 사람도 자유롭게 논문을 올릴 수 있다는 원론적 장점이 있으나, 연구실적 숫자 그 자체를 부풀리거나, “학술지 게재”라는 겉모습이 필요한 사람들에게 악용될 위험 또한 매우 큽니다.
- 열람에 별도 비용이 들지 않는다: 유명 출판사가 간행하는 학술지 논문 열람에는 돈이 듭니다. 연구기관에 소속된 사람은 기관이 구독하므로 문제가 없으나, (후보자의 장녀가 자처한) 독립 연구자에게는 일종의 장벽이 됩니다. open access는 자유로운 열람이 가능한데, 이 쪽이 본래 취지에 부합.
그런데 (보통은) 이 둘 모두에 해당하면서 겉보기에는 그냥 학술지인데, 실제로는 학술적 가치가 거의 없는 논문이 대다수이며, 좋은 연구 그 자체보다는 논문출판의 대가로 게재희망자로부터 받는 돈이 (유일한) 목적인 journal이 있습니다. 이걸 약탈적 저널predatory journal이라고 합니다.
한동훈의 장녀가 게재한 ABC research alert의 경우, 흔히 통용되는 약탈적 저널의 판정기준에 부합하는 저널입니다. 보통 이런 저널일수록 良貨 대신 惡貨가 몰립니다. 즉, 전문 연구자가 쓴 좋은 논문 대신, 한이 스스로 인정했듯이 학교 과제 수준의 글이 “학술지 게재” 명목으로 실립니다.
좋은 학술지에 실리는 최신 연구를 follow up하기에도 바쁜 연구자들은 이런 약탈적 저널 따위는 신경쓰지 않습니다. 그러나 학문 기준과 윤리가 엉성하고 제도가 미비된 국가에서는, “논문 숫자”를 채우기 위해 기꺼이 돈을 내고 자신의 목적을 달성하고자 하는 사람들이 있습니다.
한동훈의 장녀가 개인 메모 정도에 해당하는 글을 굳이 이런 저널에 올린 것도, 포트폴리오에 “학술지 논문 게재”라는 구색을 갖추려는 목적 때문입니다. 한 본인은 계획이 없다고 하지만, 이는 “들켰기 때문”이죠. 명백한 predatory journal이라서 과연 좋은 미국 대학에 효과가 있을지도 의문이지만.
그럼 이제 님이 “논문올린 저널”과 혼동한 “심사전 논문 저장소”, 즉 ssrn에 대해 설명하겠습니다. ssrn은 사회과학 학부 전공자라면 구글 학술검색으로 논문을 찾다가 한 번쯤은 들어가 보게 되는 곳입니다. 이런 저장소는 다른 분야에도 있는데, 수학/자연과학의 arXiv가 가장 유명합니다.
arXiv나 ssrn에는 말 그대로 보통 정식 출판 전, 아직 다듬는 중인 논문의 draft가 주로 올라옵니다. 이런 저장소의 목적은 다음과 같습니다: 1) 논문 작성단계부터 다른 연구자들과 의견을 나누고 이를 논문 수정보완에 반영; 2) 자신의 (대략의) 연구결과를 공유하여 타인들에게 빠른 도움을 줌;
- 해당 페이퍼의 내용에 관한 credit을 선점함으로써, 갈수록 심해지는 학계 내 연구경쟁에서 자기 권리를 확보하기 위함 등. 사회과학은 아직 정식 출판이 중요시되지만, 이론물리학 같은 분야의 대가들은 arXiv에만 페이퍼를 올리는 경우도 있다고 들었습니다. 또한 원칙상 열람이 무료라서,
접근이 편리하기도 합니다. 반면 peer review 없이 누구나 글을 올릴 수 있기 때문에, open access journal과 마찬가지로 페이퍼의 질이 보장되지 않으며, 정식 sci나 ssci, scie 등의 연구실적으로 취급되지는 않으므로, 정식 학술지에 등재되는 최종본이 보통 따로 존재한다는 단점도 있습니다.
한의 장녀가 ssrn에 자기 과제(?)를 올린 것은 바로 이 단점을 악용하기 위함입니다. 한 본인 말처럼 “논문이라고 하기 어려운 학생 과제 수준”의 글이므로, 정식 동료심사 과정을 거치는 학술지에 도전하기보다는, 연구자들이 선의로 활용하는 ssrn 같은 repository에 올리는 abusing을 함으로써,
이후 진학 과정에서 “널리 활용되는 사회과학 게재 전 논문 저장소에 글을 게재함”이라는 타이틀을 얻는 것이 목적이라는 말입니다. 한동훈이 지금 택한 변명, 즉 “논문이라고 부를 만한 수준이 아니다.”는 그 자체로 맞는 말이기도 하면서, 학계 밖 일반인들의 인식(대단한 연구가 논문)을 악용하여
“뭐 그렇게 대단한 것도 아닌데 열을 내냐”는 여론을 형성하기 위함과 동시에, 혹시 모르는 법적 문제에서 퇴로를 확보하기 위함입니다. 그러나 많은 분들이 지적한 바, 학계에서 이 문제는 절대 간단한 것이 아닙니다. 표절/대필 의혹이 1순위 치명타이지만, 이런 abusing은 1.5순위쯤은 됩니다.
미국의 좋은 연구대학에서는 매우 경원시되며, 심할 경우 징계의 대상도 될 수 있는 이런 abusing을 한 한 장녀 측을 제가 이해하기 어려운 것도 이 때문입니다. 입학사정관이 제대로 지원서를 review한다면, 가점이나 기본점수는커녕 오히려 감점, 탈락을 면하기 어려운 행동입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결국은 입시라는 목적 이외에는 일련의 행위를 설명할 수 없습니다. predatory journal이나 repository에 고등학생이 고교 과제를 올려 봤자, 자기 갈 길 바쁜 학자들의 comment는 기대할 수 없으니까요. 해당 국제학교 교사들의 지도를 받는 것이 효과적이고 올바른 길입니다.
그런데 교사나 (흔히 쓰이는) 전문 교정업체의 도움이 아닌, 방글라데시의 학부 졸업생이나 (ghost writer를 자처하는) 케냐의 학부 재학생과의 연결고리가 등장하고, 기 출판된 연구의 표절 의혹도 강하니, abusing의 악영향과 이에 비례한 비난의 필요성도 그만큼 클 수밖에 없는 것입니다.
한동훈의 변명은 점차 후퇴하다가 마지막 저지선인 “그래도 불법은 아니다.”까지 왔는데, 전자책 표절과 “대필된 페이퍼가 abusing뿐만 아니라 국제학교에도 제출되었을 가능성”을 고려하면 이마저도 장담할 수 없습니다. 이와 별개로 제가 한과 님 같은 옹호자들에게 화가 나는 부분은, 모르겠으면
차라리 그냥 모르겠다고 하든지, 문제가 되는 지점을 인지했다면 그 부분에서 인정하고 물러서야 할 것을, 학계에는 씨도 안 먹힐 궤변을 변명이라고 늘어놓으면서 적반하장으로 행동하고 있기 때문입니다. 누구보다도 정의와 공정을 앞서서 외친 법무부장관 후보자의 언행치고는 참 구차하지요.
그러니 후보자 본인의 “名言”을 인용하면서 타래를 마치겠습니다. 앞으로는 트위터에서 공연히 이 건에 대해 방어할 생각은 접으시고, 디씨에서 실베를 노리시든, 펨코 정게에서 포빨이를 하시든, 그건 좋을 대로 하세요. 님은 거기 애들과 노는 것이 이 사회를 위해서도 좋은 일일 것 같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