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타깝지만 부천은 규모와 인구수에 걸맞지 않게 파인다이닝 쪽으로는 척박한 곳이다. 연말에 제대로 예약할 만한 식당도 찾기 힘들다. 그나마 몇 군데 식당이 부천을 파인다이닝의 사막지대화를 막고 있다. 여기도 그중 하나다.
부천에는 '이태리백반'이라는 퓨전 이탈리아 음식점이 있다. 평가도 좋아서 '블루리본 서베이'에도 리본 하나로 등재된 곳이다. 이곳 운영자가 연 한(韓)식당이 '구) 꽈리식당'이다. 덮밥과 전골을 전문으로 해서 평가가 나쁘지 않았다고 알고 있다. 최근 오마카세의 붐을 타고 구) 꽈리식당을 한식 오마카세로 컨셉을 바꾼 곳이 '온심재'다. 식당 안은 좌석 8개의 바 타입이 전부고 룸은 없다. 이날은 연말 특선으로 평소와 다른 메뉴가 나온다길래 방문해 보았다.
처음 나오는 음식은 '주전부리 3종'이다. 앞의 노란 것은 예상한 대로 호박죽이다. 왼쪽은 트뤄플이 올라간 맥적이다. 그 옆은 조개관자가 올라간 크래커다. 맛은 괜찮았다. 음료수나 술은 필수로 주문해야 하므 술을 좋아하지 않은 나는 음료를 주문했다. 음료 이름은 홍시와 사과를 섞은 무언가로 기억한다. 음료 맛은 독특하고 중독성 있다.
두 번째로 나온 대방어회다. 방어도 쫄깃하고 고소하다. 방어가 제철이다. 옆의 소스와도 잘 어울린다. 맛있다.
'옥돔연잎찜'이라는 요리다. 아래에 무가 깔려 있고 그 위에 옥돔 그 위에 흰목이버섯이 올려져 있다. 연잎은 보이지 않으니 조리 과정에 사용되었나 보다.
직원이 옥돔에 뼈가 있을 수 있으니 한 번에 먹지 말라고 주의를 준다. 고급 음식점을 내세운다면 뼈를 다 제거하거나, 뼈가 없는 부위만을 요리에 사용해야 하는 게 원칙이다. 실제로 생선에서 잔가시가 씹힌다.
무, 생선, 버섯이 잘 어울리려면 이를 하나로 연결하는 소스가 있어야 한다. 좋은 비유는 아닐지 몰라도 고등어조림의 무와 고등어를 생각해 보라. 이 요리의 소스는 그런 역할을 하지 못한다. 때문에 무는 익힌 무 맛이고, 옥돔은 생선 맛이고, 버섯은 버섯 맛이다. 아래 소스가 도대체 무슨 맛일까 떠먹어 보니 슴슴하면서 약간 비린 맛도 난다. 이 요리는 예쁘게 보이기 위해 만든 요리지 맛있으라고 만든 요리는 아니다.
'들기름 육회 국수'라는 요리다. 맨 아래에 국수가 있고, 그 위에 육회, 그 위에 살얼음처럼 만든 육수가 올려져 있다. 이를 섞어서 먹으라고 직원이 알려준다. 실제로 섞어 보면 얼음 때문에 잘 섞이지 않는다. 우선 이날 기온이 영하 10도에 육박했다. 살얼음에 국수와 육회를 한입에 넣으니 입이 얼얼하다.
얼린 폴라포를 상상해 보자. 어느 부분은 그냥 물맛이고, 어디는 진한 단맛이다. 이처럼 얼린 음식은 맛이 고르게 배지 않는다. 게다가 얼음은 미각을 마비시킨다. 결과적으로 이 음식은 들기름 국수의 독특한 향과 맛을 전혀 보여주지 못하고 손님만 고통스럽게 한다. 냉면처럼 차가운 육수에 약간에 살얼음만 있었어도, 아니면 따듯한 육수였어도 훨씬 먹을 만했을 것이다. 이 음식도 모양에 신경 쓰느라 맛의 본질적인 면을 포기한 음식이다.
'광양식 불고기와 수란'이다. 양념된 고기와 수란이 섞이니 맛이 기가 막히다, 양념 소스 맛도 음식과 잘 어울린다. 난 이 음식이 제일 맛있었다.
'진갈비 스테이크와 블랙 트뤄플'이다. 위에 산삼처럼 생긴 것도 먹어도 된다. 고기의 굽기와 부드러움이 딱 좋다. 소금에 찍어 먹어도 좋고, 옆에 와사비에 버무린 어떤 야채와 먹어도 좋다.
솥밥과 국이다. 한국인은 밥이 있어야 한다, 솥밥은 전복 내장을 넣어 익힌 밥에 전복이 썰어져 올라가 있다. 국은 들깻가루가 들어 있어 고소하다. 만족스러운 맛이다.
내 생각에, 이 식당의 운영자는 부천대학교 앞 대학 거리에서 학생들 지갑 사정에 비해 다소 비싸지만 비싼 가격을 뛰어넘는 맛과 질의 음식을 팔아 성공했다. '이태리백반'과 '(구)꽈리식당'이 그렇다. 학생들이 익숙해할 만한 메뉴를 골랐던 것도 성공 요인이다.
요즘 오마카세 붐에 편승해 덮밥과 전골을 팔던 식당을 한식 오마카세로 개편했지만 그 결과는 아직 더 지켜봐야 할 것 같다. 지금 같아서는 예전처럼 다소 비싸지만, 만족도가 훨씬 높은 가심비와 가성비를 갖춘 식당을 유지했던 게 더 나았을지도 모르겠다.
우선 장소가 고급 음식점이 위치하기에 상권이 적절치 않다. 주차는 아예 불가능하다. 화장실도 불편하다. 학생이나 주변에 거주하는 사람들을 상대로 영업할 때는 큰 문제가 아닐지 몰라도 고급화 전략을 쓴다면 문제가 된다. 이를 극복하려면 탁월한 맛으로 전국적으로 소문나거나, 안 가고는 못 참을 정도로 뛰어난 가성비를 보여줘야 한다. 내 생각에 둘 다 실패한 상황이다.
맛은 위에 말했듯, 훌륭하고 맛있는 메뉴도 있지만, 말도 안 되는 실망스러운 메뉴도 있다. 주방장은 손님과 다른 전문가에게 피드백을 꼼꼼하게 받아봐야 한다고 본다. 가성비를 말하자면 연말 특별 메뉴 가격이 10만 원 정도다. 음료가 필수니 합치면 11만 원이 좀 넘게 나올 것이다. 입문급 오마카세로 과하지 않은 가격이다. 하지만 나는 이 정도 가격에 더 맛있고 양 많은 오마카세를 열 개는 댈 수 있다. 한 번은 몰라도 다시 방문할 것 같지는 않다.
이런 면에서 이 식당이 장기적으로 생존하려면 메뉴를 손보고, 가성비는 더 높이고, 음식에 대한 근본적인 고민을 해 봐야할 듯 하다.
또 하나, 홀수 예약을 받지 않거나, 노키즈존을 운영하거나, 식사 마감 시간의 엄수를 요구하거나, 지각자의 예약을 취소하거나 노쇼에 대해 블랙리스트를 관리하는 것은 영업의 자유다. 다만 이를 알리는 네이버예약 공지 내용의 tone & manner는 손님 입장에서 무례하고 고압적으로 들린다. 같은 내용이라도 훨씬 부드럽고 적대적이지 않게 표현하는 법도 배워야 할 듯하다.
이 가게는 영업 마인드, 경영 전략, 음식의 본질적인 면에서 발전해야 할 부분이 많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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