Chapter 1 : 벤조디아제핀, Benzodiazepine
the ninth
플루니트라제팜, Flunitrazepam
상품명 : 라제팜1mg / 성분명 : Flunitrazepam1mg
보호병동에 처음 입원하기 직전에 두 달간 주로 복용했던 플루니트라제팜은 니트로-벤조디아제핀계열에 속하는 수면제다. 약물반감기가 길어서, 심한 불면증환자에게 사용한다.
그 당시 나는 극심한 불면증을 앓고 있었다. 2,3일에 4시간-6시간씩 선잠을 자는 게 전부였다. 날 진료하던 정신과 의사는 졸피뎀 성분의 수면제를 싫어했고, 수면에 도움을 줄 수 있는 다양한 오프라벨(적응증 외) 정신과 약물을 시도했지만 매번 실패했다.
결국 정신과 의사는 플루니트라제팜1mg을 처방했는데 정말 효과가 좋았다. 근데 효과가 너무 좋아서 문제였다. 퇴근하고 집에 오면 7시쯤 되고, 8시쯔음 잠을 잘 수 있는 시간이 되었다. 이때 플루니트라제팜1mg을 복용하면 30분-1시간내로 아주 깊은 잠에 빠져들었다.
처음 2주 동안은 약물이 너무 세서 아침마다 매우 졸려웠다. 적응기가 지나고 나서는 가뿐하게 일어났다. 무엇보다 내가 이 약물이 좋았던 것은 수면제로서의 역할뿐만 아니라 강력한 항불안효과를 주었기 때문이다.
극심한 우울증을 겪어본 사람은 안다. 정말 아무것도 하기 싫은 기분. 그래서 나는 퇴근하고 가능하면 빨리 자려고 플루니트라제팜1mg을 일찍 복용했다. 그럴 때 마다 아무것도 하기 싫은 기분을 느낄 틈도 없이 깊은 잠에 빠져들어서 매우 만족했다.
수면제에 속하는 약물을 처음 복용한 건 플루니트라제팜이 아니다. 이미 정신과를 다니기 이전부터 다른과에서 가끔씩 졸피뎀10mg을 처방받아 복용했었다. 하지만 의존성이 너무 심하게 생겼고, 내성 또한 심각했다.(이 부분에 대한 자세한 것은 졸피뎀에 대해 쓸 때 적겠다.)
플루니트라제팜 또한 의존성이 심한 약물에 속한다. 실제로 나는 의존을 하고 있었다. 하지만 아이러니하게도 졸피뎀 만큼의 의존성은 없었고, 내성도 쉽게 생기지 않았다. 게다가 수면제의 치명적 단점인 몽유병을 겪지 않았다.
임의복용을 한 적도 없다. 내성이 약간 생기긴 했었지만 자는 시간이 늦어졌을 뿐, 약효가 사라진 건 아니었기 때문에 임의로 용량을 높여서 복용하진 않았다.
-플루니트라제팜 처방당시 복용했던 정신과약물 성분과 용량.
항우울제 : 에스시탈로프람 20mg QD (저녁)
항부정맥제 : 프로프라놀롤 20mg TID (아침, 점심, 저녁)
항불안제 : 알프라졸람 0.5mg TID, 0.5mg PRN, 1mg HS (아침, 점심, 저녁, 필요시, 취침전)
항불안제 2 : 클로나제팜 0.5mg BID (아침, 취침전)
수면제 : 플루니트라제팜 1mg HS (취침전)
상품명 : 루나팜1mg / 성분명 : Flunitrazepam1mg
이 약물은 내가 끊고 싶어서 끊었던 약물이 아니다. 상태가 많이 나빠져 어쩔 수 없이 대학병원 정신과 보호병동에 입원하게 되었는데, 그때 내게 절대로 수면제를 처방해주지 않았다. 대신 입원 초기에 로라제팜 수액을 계속 달고 있어서인지 금단증상이 없었고, 보호병동의 안전감 또한 강하게 느껴졌기 때문에 잠을 잘 잤었다.
플루니트라제팜을 선뜻 처방하는 정신과 의사와, 처방을 거의 금기시하는 정신과 의사를 보았다. 내가 아무리 이틀, 삼일을 못잤어도 내게 효과가 좋았던 플루니트라제팜을 처방하지 않는 정신과 의사가 있었다. 그때 나를 진료하던 정신과 의사는 플루니트라제팜에 대해 '치명적인 약물'이라는 말을 했었다. 오히려 졸피뎀10mg이나 트리아졸람0.25mg을 처방했다.
하지만 내 신체가 받아들이기에는 졸피뎀이 여러 측면에서 더 위험했고, 트리아졸람은 너무나 빠른 내성 때문에 좋지 않았다. 결국 취침전 수면보조제로 쿠에티아핀12.5mg을 처방했고, PRN(필요시) 플루니트라제팜1mg을 아주 적게 처방해주셨다.(2주 즉 14일 처방이면 5알정도 처방했다.)
그 정신과 의사의 조언을 받아들여 나는 이틀, 삼일을 못자더라도 플루니트라제팜을 복용하지 않겠다-고 했다. 사실 조언을 받아들였다기보다, 정신과 의사와 환자 사이의 신뢰관계를 잃고 싶지 않았다. 더욱이 정신과 약물에 의존하고 있다-는 모습을 보여주기 싫었다.
결과론적으로 보자면, 오히려 모든 정신과 약물의존에서 벗어나고자하는 나의 의지가 뚜렷한 지금은 잘된 일이었다. 그때 이후로 나는 플루니트라제팜을 복용한 적이 없다. 지금도 불면증을 겪을 때가 종종 있지만 수면제는 이제 더이상 복용하지 않고 있다.
플루니트라제팜은 내게 효과가 확실했고, 여러 측면에서 확실한 도움이 되었다. 하지만 만일 장기복용을 했었더라면 의존성이 심했을 것 같다.
미국에서는 로히프놀이라고 불리우는 약인데, 워낙 사건사고가 많아 이제는 미국에서 처방되지 않는 약이다. 이 약물에 민감하거나 오용할 시 영화 행오버에서처럼 기억을 잃은 상태가 되기 때문에, 데이트강간약의 대명사로 자리잡은 약이다.
나의 진단명 : 우울증(depression), 불안장애(anxiety disorder), 공황장애(panic disorder), 불면증(insomnia)