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의 봄> 엔딩곡 ‘전선을 간다’에 숨은 사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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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의 봄> 엔딩곡 ‘전선을 간다’에 숨은 사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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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 <서울의 봄>의 엔딩곡은 군가다. ‘전선을 간다’ 개인적으로 한국군 군가 가운데 ‘행군의 아침’과 쌍벽을 이루는 명곡이라고 꼽는 곡이다. 김성수 감독은 왜 이 노래를 엔딩에 넣었을까. 김성수 감독의 말은 이렇다. “전선에서 용감하게 전진하는 병사들에게 ‘총알이 날아오지만 죽어라.’는 식으로 독려하는 노래이다. 노래 가사도 음률도. 전투를 끝내고 허망한 병사들에게 무언가 말을 한다. 그럼에도 계속 전진하라고. 문학적인 느낌이 들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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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 속에서 반란군에게 무릎을 꿇고 만 “대한민국에서 가장 무능한 사령관” 이태신이 광화문 앞에서 바리케이드를 넘어 전두광에게 다가서는 모습에서, 자신의 사령관을 지키기 위해 중과부적의 반란군에 맞서다가 죽어가는 장교의 마지막에서, 장관이 도망가 숨고 장군들이 꼬리를 마는 가운데 반란군에게 총을 빼앗기지 않으려다 사살당하는 병사의 최후에서 이 노래는 어딘가 어울린다. “상처 입은 노송은 말을 잊었나. 전우여 들리는가 저 성난 목소리 전우여 보이는가 한 맺힌 눈동자” 그런데 이 노래에는 꽤 범상치 않은 사연이 깃들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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뜻밖에도 이 노래가 세상에 나오게 된 배경에는 전두환이 자리잡고 있다. 심수봉이 부른 <젊은 태양>의 작사 작곡가이자 1981년 국방부 정훈국 대외홍보 장교로 근무하던 박광주씨에 따르면 광주 이후 피비린내 속에 출범한 전두환 정권이 ‘새로운’ 군가를 만들어 보라고 지시한 바, 이에 따라 대중음악 예술가들이 참여해 군가 공모전이 실시됐다. (중앙일보 2019.12.3. 서소문 포럼) 여기서 나온 군가 중 지금도 유명한 노래가 ‘멋진 사나이’와 ‘전선을 간다’라고 한다. ‘전선을 간다’의 작곡자는 ‘로보트 태권브이’ 주제가를 작곡했던 최창권이며 이 노래는 1982년 임권택 감독의 영화 <아벤고 공수군단>의 주제가로 쓰여지기도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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당시 전두환 정권이 얼마나 ‘똘끼’ 충만했는지는 당시 형편에 이 <아벤고 공수군단>에 빅 모로 같은 헐리우드 스타를 출연시켰고 그것도 모자라 수억 원을 쏟아부어 앤터니 퀸을 불러들이려 시도했던 사실로 미루어 짐작할 수 있다. 대한민국 국군의 활약상을 그리는 영화라면 돈을 허드렛물 버리듯 해도 괜찮았던 것이다. 다만 임권택 감독은 이 영화에서도 이름값을 한다. 반공 영웅 탄생 신화와 빨갱이 응징을 뼈대로 하는 (<인천상륙작전> 같은) 스테레오 타입 반공 영화가 아니라, 아군으로부터 배신당하고 친구로부터도 버림받는 진짜 특공대들의 악전고투를 그려냈기 때문이다. 이 영화에서도 수시로 <전선을 간다>가 흐르는데 서두에 인용한 김성수 감독의 인터뷰 느낌과 거의 유사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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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선을 간다>는 노래가 70년대에 나왔더라면 장태완 장군 (영화 속 이태신 장군의 실제 모델)은 그 노래를 가장 사무치게 불렀을 군인 중의 하나다. 그는 갑종 장교 출신이다. 전쟁 때 총알이 ‘쏘위 쏘위’ 날아다니며 소위들만 골라 죽인다는 말이 있었듯, 포화의 맨 앞에서 돌격하고 지휘해야 하는 초급 장교들의 사망률은 엄청났다. (정규 육사 이전의) 육사 출신 장교들로는 어림도 없었고, 단기 교육을 받은 장교들을 양산해 내야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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갑종 11기인 장태완의 임관은 1950년. 전쟁 터진 해였다. 모르긴 해도 그 동기 중 살아남은 사람과 죽은 사람의 수는 얼추 비슷할 것이다. 어디에 부임하든 동기들의 마지막 장소가 어른거렸고 무엇을 보아도 동기들의 얼굴이 떠올랐을 테니 어찌 <전선을 간다>가 어찌 살갑지 않았을까. “높은 산 깊은 골 적막한 산하... 눈내린 전선을 우리는 간다.... 전우여 들리는가 저 성난 목소리.. 전우여 보이는가 한 맺힌 눈동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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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런데 전혀 엉뚱하게도 군대 근처도 가보지 않았고 군사 훈련 한 번 받지 않은 아내도 이 노래를 잘 안다. 워낙 유명해서 그런 게 아니라 대학 시절 이 노래를 꽤 많이 불렀다는 것이다. 마지막 소절은 이렇다. “학우여 들리는가 저 성난 목소리. 학우여 보이는가 한맺힌 눈동자.” 아내의 학교에서는 이 노래를 학교 대표 투쟁가처럼 불렀다고 한다. 아마도 그 노가바의 진원지는 서울대였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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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82년 서울대학교 당국은 서울대학교 중앙도서관 앞 아크로폴리스 광장에 ‘조경사업’을 한답시고 장미꽃을 심는다. 그러나 이 아름다운 장미꽃들 속 삐죽이 돋아난 가시처럼 이는 학교 당국의 꼼수였다. 학생들의 시위로 몸살을 앓던 학교 당국이 화단을 조성하여 학생들의 집결을 방해해 보려던 것이었다. 하지만 사람들은 장미꽃에 속지 않고 그 가시를 저주했다. 특히나 그들은 바로 1년 전 1981년 5월 27일 도서관 6층에서 떨어져서 아크로폴리스 광장을 피로 물들인 동료의 절규를 기억하고 있었다. 서울대학교 경제학과 78학번 김태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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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는 운동권이 아니었다. 기차게 양보 잘하고, 불우한 처지의 이웃이나 동료들을 보면 절대로 그냥 넘어가지 않았던 그냥 착하디 착한 모범생이었다. 유신 말기에 대학 들어와 ‘서울의 봄’을 겪으면서 고민도 깊었지만 자식 장래 걱정하는 어머니 마음 상할까봐 시위에 참여하거나 하지는 않았던 ‘양민’(?)이었다. 그러던 그도 고향 광주에서 일어난 참변에는 몸을 떨도록 분노했고, 그 1주년을 맞아 벌어진 시위를 지켜보던 중 딱 세 마디, “전두환 물러가라 전두환 물러가라 전두환 물러가라”를 절규한 뒤 도서관 6층에서 몸을 던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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온몸이 부러지고 피가 쏟아지는 가운데에도 경찰은 그를 병원으로 옮기는 것보다 시위 진압에 더 열중했다. 김태훈은 아크로폴리스 광장을 피로 물들이며 죽어갔다. 그 와중에 서울대 국사학과 1학년 정창교는 김태훈이 쓰러져 있던 곳을 더듬는다. 핏자국을 지우기 위해 경찰이 뿌려놓은 모래를 들추고 검붉은 피와 흙을 봉투에 담아 기숙사 책상 서랍으로 가져간다. 그리고 밤새 피눈물을 토한다. 어디 정창교 뿐이었을까. 그 광경을 지켜본 사람들은 평생 잊을 수 없는 충격이었으리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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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런데 그 자리에 장미꽃 화단이 조성된다........ 이 그로테스크한 미감(美感) 앞에서 사람들의 입을 통해 비틀려 나온 것이 <전선을 간다>였다. “장미꽃 만발한 아크로폴리스 쇠창살 둘러친 면학의 도서관 (투신과 시위를 막기 위해 창문에 쇠창살이 둘러졌다.) 젊은 넋 숨져간 그때 그 자리 붉은 피 흘리던 날 벌써 잊었나. 학우여 들리는가 저 성난 목소리. 학우여 보이는가 한맺힌 눈동자” (가사는 학교마다 사람마다 다를 수 있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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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대로 된 노래가 없던 시절, 어느 예비역이 이를 갈며 충혈된 눈으로 가사를 바꿔 불렀을 것이 거의 확실한, 그 노래의 절절함으로 인해 거의 모든 학교에 퍼뜨려져 불렸던 노래가 ‘전선을 간다’였던 것이다. 내가 다닌 학교에서도 그랬고 아내가 다닌 학교에서도 그랬다. 그리고 1984년 봄, 아크로폴리스의 장미꽃은 학생들에 의해 철거된다. 가시에 찔려 피를 흘리면서도 학생들은 맨손으로 장미꽃을 걷어냈다. 그때도 이 노래를 불렀을지도 모른다. "학우여 들리는가 저 성난 목소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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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2.12를 거쳐 서울의 봄을 지나 5.18의 비극을 맞고, 전두환이 정권을 잡고 제 스스로 권좌에 걸터앉기까지 광주 시민들을 제외한 한국인들은 제대로 저항하지 못했다. 김재규 수사 발표하던 저 대머리 투스타가 갑자기 왜 대통령이 되는 것인지, 그 군인들이 사람들을 얼마나 때려잡고 무슨 짓을 저지르는지 뻔히 보고도 무기력했다. 마치 들쥐처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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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 이후로도 쭉 들쥐처럼 살았다면 우리는 오늘 영화 <서울의 봄>을 결코 볼 수 없을 것이다. 그 강고하고도 잔인한 정권 앞에서 목숨 걸고 항거하고, 그들의 뒤에서 ‘학우여 들리는가 저 성난 목소리 학우여 보이는가 한맺힌 눈동자’ 전두환이 만들어 준(?) 군가를 바꿔 부르며 돌멩이 던진 이들이 없었다면 우리의 오늘은 무척 남루하고 초라하리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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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래서 그 데모하던 놈들이 지금 뭐하고 있는데?”하는 비아냥에도 공감한다. 그러나 그들이 만들고, 또 만들어가고 있는 ‘지금’에 문제가 많다 해도, 우리의 오늘을 만든 ‘과거’는 그 자체로 의미가 있을 것이다. 어쩌면 또 다른 의미로 부를 수도 있으리라. “그대는 들리는가 저 성난 목소리. 그대는 보이는가 한맺힌 눈동자.” 들리고 보이면 똑바로 살라고. 무게 있게 살라고. 그들에게. 또 스스로에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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