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1년 1월 31일, 석고보드의 수요감소로 인해 US Gypsum은 88년만에 네바다주 엠파이어에 있는 공장을 폐쇄했다.
7월 이후 엠파이어 우편번호 89405의 사용은 중지되었다."
미국의 2008년 금융위기는 대공황 이래 최대의 경제충격이었다. 모든 경제활동이 위축되고, 실업률이 치솟았다. 당시 집을 잃고 쫓겨난 사람들이 1,000만명에 이르렀다. 또한 2008년부터 2010년까지 무려 7800만개의 일자리가 증발했다.
<노매드랜드>는 대규모의 경제위기의 상처가 지속된 2011년을 배경으로 한다. 펀(프란시스 맥도먼드) 역시 남편과 도시 자체의 죽음으로 떠밀려 가듯이 유랑을 시작한다.
사실 펀은 갈 곳이 있는 것처럼 보인다. 펀의 동생, 데이브, 교사시절 학생의 학부모는 도움의 손길을 내민다. 펀은 응답하지 않는다. 방랑벽은 스스로가 선택한 것이라고 다짐한다. 그러나 사람들은 그녀를 노숙자라 부른다.
영화는 미국이라는 나라의 시스템에 대해서 이야기 한다. 1등 국가의 위엄 속에 반하는 이면들이 넘쳐난다. 노매드들은 각자의 사정들이 있지만, 그들의 현재 상황은 2008년의 위기와 무관하지 않아 보인다. 펀이 자신이 집이라고 우기는 자동차 밴은 미국의 대형 인덱스 펀드 금융회사 Vanguard와 이름이 같은 것도 역설적이다.
노매드들은 국가의 보호를 받지 못하는 사람들이다. 모두 노년층이지만 그들은 지금도 일해야 한다. 보조금만으로는 살수가 없기 때문이다. 그래서 사실 그들이 여행하는 이유도 철마다 일자리가 있는 곳이 다르기 때문이다. 그들은 철새 처럼 일을 찾아 곳곳을 누빈다.
"난 노매드들이 하는 일이 개척자들과 크게 다르지 않다고 생각해요.
난 펀이 미국 전통의 일부라고 생각해요. 멋진 것 같아요."
동생이 펀에 대해서 하는 말은 기만적이다. 펀은 침묵으로 일관한다. 영화는 대놓고 항의 하지 않는다. 노매드들의 상황과 사람들의 시선을 보여줄 뿐이다.
제도권 밖, 대자연에서 그들은 잠시 만났다가 다시 헤어지지만 영원한 이별은 없다. 다시 길에서 만날 뿐이다. 그렇게 스스로를 위로하는 법을 노매드들은 찾아낸다. 아니 필연적으로 그렇게 할 수 밖에 없었다고 봐야 한다.
쓸쓸한 음악만큼이나 차가운 앵글이 분위기를 더해주는 영화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