Language Barrier

in immigration •  7 years ago 

대한민국을 떠나 산다는 것은 누군가에겐 선망의 대상이기도 하지만, 한편으로는 많은 어려움을 동반하는 일이기도 해요. 이동네 와서 참 많은것들을 경험하고 느끼는 중인데 어디부터 풀어야 할 지 잘 모르겠네요.

Myth

대한민국에는 영어로 의사소통이 가능한 수준을 목표로 하는 사람들이 많이 있죠. 그래서 사람들은 학원을 다니기도 하고, 때로는 어학연수 프로그램을 이용하기도 합니다. 그래서인지 영어권 국가에서 산다고 하면 많이 하는 오해중 하나가 “영어 잘하겠네?” 입니다. 근데 실제로는 그렇지 않은 경우도 더러 관찰할 수 있어요. (최근에 들어서는 많은분들이 어학연수에 대한 환상에서 벗어나셨죠)

이곳에서 살다보면 몇가지 이해 못하던 것들을 이해하게 되는데, 선진국에서 타지생활 접고 한국으로 역이민 가시는 분들이라거나, 어학연수를 가서 제대로 영어를 못 배워오는 사람들을 조금은 이해할 수 있게 되었어요. 의외로(?) 업무 외적으로는 복잡한 영어를 사용할 기회가 많지 않더라고요.

주로 영어를 사용해야 하는 상황이 마트에 가거나 길을 물어볼때 정도인데요 이런상황에서는 보통 짧은 대화로 끝나게 되고 사용되는 어휘도 폭이 좁죠. 그래도 살아가는데에는 큰 지장이 있지 않습니다. 더구나 시애틀 근방이나 LA, 샌프란시스코 같은곳은 한인 관련 커뮤니티가 잘 형성되어있어서 좀 복잡한 일들을 처리할때는 한인분들과 이야기를 하며 해결할 수 있어요. 그나마 외국인이랑 이야기를 할 때도 초점이 의사소통에 맞추어져 있지, 완벽한 영어를 구사하는것에 초점이 맞추어져 있지 않기 때문에 문법이 틀리던, 조금 적절하지 않은 단어를 사용하던 이해만 가능하면 오케이입니다. 대한민국에 거주하는 외국인들에게 완벽한 한국어를 기대하지 않듯이, 이동네도 마찬가지에요.

아이러니한 이야기지만 이곳에서조차 계속 영어를 배우면서 살아야 합니다. 과외(personal tutor)를 하던, 근처 교육기관의 어학코스 도움을 받던, 도서관등의 공공센터에서 진행하는 어학프로그램에 참여를 하던 말이죠. 게다가 영어를 배우기는 현지보다 한국이 훨씬 좋은 것 같아요. 가격면에서나 품질면에서나 말이죠. 다만 이곳은 배운 영어를 사용하기 좋은곳이죠. 그리고 외국인을 만나도 익숙해집니다. 아니, 그전에 여기서는 제가 외국인이 되는군요(!!)

(집 근처의 도서관, 이곳은 책들이 있는 장소기도 하지만 지역사회의 취미/평생교육이나 외국인들의 정착을 돕기위해 몇가지 프로그램을 운영하기도 해요.)

Language in Life & Culture Barrier

여차저차 언어를 반쯤(?) 해결해서 기초의사소통능력을 갖추게 되면 그 다음 장벽이 있습니다. 바로 생활언어라거나, 문화적 차이가 있어요.

정착 초기에는 집 밖에 나가야 하는것도 큰 맘을 먹어야 하더군요. 마트를 가서 제대로 물건을 살 수 있을까도 고민이고, 뭐 하나 물어보는것도 땀을 뻘뻘 흘리면서 물어보아야 해요. 마트에 갔는데 아무리 찾아도 “깔때기"가 안보여요. 물건이 어디있느냐라는 문장은 쉽게 만들 수 있지만, 정작 깔때기가 영어로 뭔지 모르는 경우가 많죠 ㅠㅠ

“Excuse me, where is…?!!!” (깔때기가 영어로 뭔지 모른다는걸 비로소 깨닫고 더이상 말을 못함)
점원: ”????“

이렇듯 문장조합은 가능하지만 생활과 밀접한 단어를 몰라서 쩔쩔매는 경우가 발생합니다. 구두솔, 뚜러뻥 같은 단어를 처음엔 몰라서 사전을 찾아보기도 했어요. 그리고 뭔가 버릴때 쓰래기통이 있는데, 이게말입니다.. Rubbish, Landfill, Compost, Recycle 등등 알듯말듯 뭔가 어설프게 아는 단어들이 등장하고 대체 뭘 어디에 버려야 하는지 햇갈리더라고요. 음식물 쓰레기는 저곳들 중 어디에 넣어야 할까요? 휴지는?

차량처럼 무언가 액수가 큰 물건을 구입해야 해요. 근데 여기서 등장하는 단어가 "down payment"이죠, 의료보험을 가입할때는 "deductible” 이라는 단어를 알고 있어야 합니다. 특히한국에 없는 무언가를 표현하는 단어는 그냥 한국어로 번역한다고 해서 해결되는 일이 아닙니다. 그 배경과 제도를 알고 있어야 하죠.

한국에서 또는 교육기관에서 영어를 배울때는 표준어 위주로 배우죠. 그리고 교양있는 말 위주로 배웁니다. 근데 현지에서는 사람들이 교양있는말만 사용할까요? 한국이랑 똑같이 농담이나 비속어도 섞어가면서 소통을 해요. 이곳에 오니 정말 생소한 비표준어, 또는 축약어들이 자주 사용되더군요. 이제는 우리나라사람들에게 익숙한 BOGO 라는 단어부터 시작해서, 일상적인 대화중 마주치는 비표준어들은 땀을 뻘뻘 흘리게 만들어요. 그래서 나중에 혼자 스마트폰이나 노트북을 열어서 단어를 검색해보는 일도 많이 있습니다.

다만 영어로 말을 해야 한다는 상황에 대해 담력이 좀 올라가는점과, 자주 마주치는 상황에서는 어렵지 않게 말이 튀어나오는 변화가 생긴것이 다행이에요.

Language at Workplace

기초의사소통도 문제지만 사내에서 의사소통을 하는것도 또다른 의미의 난관이에요. 특히 엔지니어 중에는 인도/중국계가 많은데, 처음에 이 사람들의 말을 들으면 아무것도 안 들려서 당황하게 됩니다. 우리가 보통 알고 있는 미국스타일의 영어와는 톤이나 발음법이 상이하거든요.

또한 내부용어를 이해하는것도 참 힘들더군요. 기본적으로 통용되는 array, stack, queue 같은 주제들이라면야 어렵지 않게 대화를 할 수 있지만, 특정 조직이나 회사 내부에서만 쓰이는 용어들이 많습니다. 특정 시스템의 코드네임이라거나, 회사 건물명등이 섞인 대화를 들으면 정말 이해하기 힘들어요. 같은 한국어라도 문과생들이 공대생들의 전공대화를 알아듣기 힘들어하듯이, 영어에도 비슷한 현상이 발생하죠.

이제는 많은 한국사람들이 TOEIC은 만능이 아니라는것을 잘 알고 있지만, 이곳에 있다보면 그냥 무용지물이라는 생각이 들어요. 특히 표준발음으로만 테스트하는 TOEIC LC는 이런 상황에서 반쯤 소용없어요, 아니 팀의 구성원 비율에 따라 반 이상 소용없는 경우도 있습니다. 절대 이 시험은 "an English language test designed specifically to measure the everyday English skills of people working in an international environment"(다국적 환경에서 매일 영어를 업무용으로 사용하는 사람들의 능력을 측정하는 시험 - 위키백과에서 발췌) … 가 아니더군요.

Intonation / Dialect

다행인것은, 그래도 한두달 지나감에 따라 귀가 적응을 합니다. 특히 억양차이가 큰 일본계/인도계 영어도 계속 듣다보면 패턴이 익혀지기 때문에 대강 무슨 말을 하는지 알아들을 수 있고, 이해도가 점점 올라가고 있어요. 반대로 "한국인들 영어 발음 알아듣기 힘드네"하고 생각하는 사람들도 있을거에요.

참고로 이곳에서는 (신기하게도) 한국식 발음도 현지사람들이 잘 알아듣습니다. 워낙 다양한 인종이 모여있는곳이다보니 다들 여러 억양에 노출이 되는것 같아요. 그리고 간혹 못 알아들으면 듣는쪽에서 미안해하는 뉘앙스를 많이 풍기더군요. 이동네 사람들은 도대체 얼마나 많은 종류의 영어를 들었는지 인도식, 한국식, 일본식, 중국식 억양도 참 귀신같이 알아들어요! 또한 아시아문화권에서만 쓰이는 영단어들에 대해서도 아는 분들이 꽤 있어요. 이젠 Korean drama = soap opera 라는 생각을 가지신 분들이 대부분인 것 같더라고요. 영어교육을 할 때 발음을 신경써야 하는것은 맞지만 예민하게 신경써야 할 부분은 아닌 것 같아요.
(원래 사전적 의미의 drama는 우리가 알고있는 TV 드라마와 약간의 차이가 있습니다)

Continuous Learning

여러모로 재미있게 지내고 있지만 언어문제는 아마 계속 발목을 잡을 것 같군요. 보통은 은퇴하고나서도 계속 무언가를 배우는것을 보고 "평생교육”(continous learning)이라고 하는데, 비영어권 외국인이라는 입장에서 보면 영어라는 언어와 여기서 파생되는 문화를 정말 끊임없이 배워야 할 것 같아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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