농촌과 도시가 공존하는 새로운 생태계를 꿈꾼다, 일본 치바현 카모가와 방문기 無印良品里山 Project 2017년 5월 Part 1

in kamogawa •  7 years ago  (edited)

'동아시아 지구 시민촌'이라는 행사에 참여하기 위해 일본에 열흘 넘게 다녀왔습니다. 본 행사는 카나가와현 후지노라는 도쿄에서 그리 멀지 않은 아름다운 산촌에서 열렸습니다만, 떡본 김에 제사 지낸다고, 오래전부터 '놀러 오라고’ 손짓하던 비전화공방 동기, 고스와 나나의 게스트하우스가 있는 나고야로 먼저 들어갔습니다. 그리고, 모든 일정을 마친 후, 도쿄의 하네다에서 상하이로 돌아왔습니다. 나고야에 있는 동안 (정확히 이야기 하자면 나고야 근교의 미나미치타 반도, 나고야 시민들이 당일치기나 일박이일로 다녀 오는 아름다운 해변 마을입니다.), 역시 예전부터 궁금해 하던 애즈원 커뮤니티가 있는 미에현의 스즈카라는 도시에도 다녀왔습니다. ‘애즈원'은 매우 흥미있는 곳이기 때문에 기회가 닿는다면 별도로 자세히 다루는 것이 좋을듯합니다. 한국에서 여러가지 공동체 활동을 하시는 분들이 이곳을 주목하고 있고( http://www.hani.co.kr/arti/PRINT/795039.html 한겨레 신문 종교 전문기자인 조현님의 탐방기) 특히 저도 친분이 적지 않은, 인천 검암의 ‘우동사’ 사람들은 오랜 기간 매우 깊이 있는 교류를 하고 있습니다. 그런 연고로 저도 늘 한번 찾아가 보고 싶었습니다. 그런데, 역시 인연이 재미있게 닿았던 것은, 제가 그곳을 방문하는 것을 알게된 중국인 친구들이 같이 가고 싶다고 해서, 결국, 제가 애즈원에 방문한 최초의 중국인 방문단을 얼떨결에 통역겸 코디로 돕게 된 것입니다. 특히 이 친구들은 저와 같은 후지노 행사에 참여하기 위해 일본을 방문한 참이었고, 상하이에서 멀지 않은 항저우 근교의 아름답고 유서깊은 마을, 롱먼에서 자연농 농장/ 커뮤니티를 준비하고 있는 분들입니다. 원래 안면이 있는 친구들도 있었지만, 얘기만 듣던, 그 지역의 리더도 만나서, 깊이 있는 교류를 할 기회가 되었습니다. 여하튼 저도 한번 방문해 본 적이 있는 이 마을에 거점이 있는 친구들을 적지 않게 사귀게 되었으니, 제가 준비하는 和&同 青春草堂· Harmony & Equality Youth Creative Hut 플랫폼의 제휴 사이트를 하나 더 마련한 것입니다. 현재 본거지로 사용되고 있는 상하이의 총밍섬, 상하이 시내의 몇군데 장소들, 상하이 교외의 학교와 마을들, 쑤져우, 항저우… 느리지만 차근 차근, 자원을 확보하고 연결해 나가고 있습니다.

애즈원을 방문한 내용에 대해서, 중국인 친구가 정리한 글도 있고 (https://www.meipian.cn/ljsc0rl), 또 애즈원 공동체에서 저희 방문에 대해서 블로그 기록도 남겨주셨습니다 (http://as-one.main.jp/suzuka/sb1/log/eid1416.html) 중국인 친구들의 애즈원 방문이 꽤 의의가 있다고 생각한 또 하나의 이유는, 이 팀을 포함해서 일종의 커뮤니티/ 공동체를 준비하는 많은 중국인 친구들이 일본의 ‘고노하나 패밀리’라든가 ‘야마기시’ 공동체에 관심을 갖고 있기 때문입니다. 저는 두 그룹 모두 깊은 이해를 갖고 있지는 않지만, 다소 폐쇄적이거나 여러가지 문제점을 갖고 있다는 이야기를 주변 사람들에게 많이 들었습니다. 그밖에도 개성이 강하고, 이상보다는 현실을 중시하는 중국인들의 일반적인 특성상, ‘종교/ 영성’이 매우 강한 그룹이 아니라면 일본의 이 두 사례는 그다지 적절한 모델이 될 수 없다는 것이 제 판단입니다. 애즈원은 야먀기시의 여러 문제점을 토대로 이의 개선을 위해 새롭게 출발한 곳이고, 매우 개방적인 곳으로 알려져 있습니다. 중국인 친구들에게는 이와 같이 보다 세속적이고 개방적인 공동체가 좋은 모델이 될 것으로 생각했는데, 이렇게 중국인들에게 알려지게 될 기회를 만들었으니, 의도한 바는 아니지만, 나름 긍정적인 흐름을 만들어 냈다는 생각에 괜시리 기분이 좋아집니다.

서론이 엄청 길었는데, 여하튼 도쿄로 올라와서 후지노의 행사에 참여했습니다. 저는 2회부터 내리 3년째 참여했고, 아마 앞으로도 이 행사를 계속 좋은 동아시아의 인연을 만드는 기회로 삼게 될 것 같습니다. 행사 자체에 대해서는 나름대로 느낀 바도 있고, 새로운 인연도 만들긴 했지만, 아주 크게 의미를 두게 되진 않았습니다. 이제 저로서도 이곳은 더 많이 나누기 위해서 노력해야 할 곳이지 제가 더 많이 얻으려고 아등바등 할 곳은, 아닌듯합니다. 김재형 선생님의 후기만 이곳에 공유하기로 합니다 (http://cafe.naver.com/pottari/5472).

후지노 행사가 끝나고 시간이 남아서 어디를 방문해야 할지 고민이 많았습니다. 예전에 살던 도쿄의 이곳 저곳을 돌아볼 수도 있지만, 그런 감상이 의미있을 시점은 이미 오래전에 지난 것 같습니다. 새로운 인연을 만들거나, 확인하고, 또 다음 만남을 준비하는 것만이 제 흥미를 끌게 됩니다. 그래서 나름 수소문 끝에 예전부터 가보고 싶던 치바현의 카모가와를 방문하게 됐습니다. 카모가와는 의외로 한국에는 많이 알려져 있지 않지만 일본에서는 도쿄 근교에서도 가장 유명한 반농반X 사이트 중 한곳입니다. 도쿄 도심에서 한시간 반 정도 거리에 위치하고 있고, 일본의 가장 전형적인, 아름답고 순환자급적인 농촌마을, 즉 사토야마와 바다가 어우러져 있는 곳입니다. 이곳이 유명해진 이유는 일본의 유명한 학생운동가 출신의 귀농자, 유기농업 농민인 후지모토 토시오씨와 그의 부인인 유명 가수 카토 토키코씨가 설립한 '카모가와 자연왕국’이라는 유기농 농장 때문입니다. 후지모토 토시오씨는 활동의 후과로 옥살이를 할 정도로, 안보, 전공투 세대를 대표하는 인물중 하나이지만 ‘우치게바’ 등, 폭력집단화한 극좌파 학생운동에 회의를 느끼고, 환경농업 실천가, 사상가로 전환하였습니다. 관련 저서를 집필한 후, 역시 현재 일본을 대표하는 유기농산물 판매 업체 ‘대지를 지키는 모임 大地を守る会’의 초대회장을 역임했고, 더 본질적인 활동을 위해, 1981년에 카모가와로 귀농한, 그야말로 일본의 귀농 1세대로 불릴만한 분입니다. 농장을 중심으로 유기농산물 재배, 도시 소비자와의 교류, 저술활동과 귀농학교 운영 등, 다양한 활동을 펼치던 후지모토씨는 2002년 암으로 세상을 떠났지만, 그와 주위 사람들의 활동 덕분에 카모가와가 지금의 도쿄 근교 지역, 귀농 커뮤니티, 도농교류의 대표지역으로 자리잡게 되었습니다. 지금도 자녀들과 함께 농장을 운영하고 있는 카토 토키코씨는 작년까지 10년간, 매년 도쿄 도심부인 히비야 공원에서 가을마다 ‘땅과 평화의 축제土と平和の祭典: 씨앗뿌리기 작전種蒔き作戦’라는 농업, 환경, 예술 이벤트를 진행해왔습니다. 저도 예전 일본에 체류하던 시절, 매년 나무늘보 클럽, 비전화 공방에 몸담고 있으면서 즐겁게 참가했던 축제입니다. 이 축제는 기획했을 당시부터 딱 10년만 운영하기로 했는데, 이런 축제는 도쿄 한복판에서 전국적인 행사로 거행하기 보다는 각 지역마다 작은 규모로 열리는 것이 바람직하다는 취지 때문이었습니다. 이 분들의 마음이 통했는지, 작년 마지막 행사가 열린 시점에는 이미 지역마다 주로 귀농귀촌 커뮤니티를 중심으로 일본 전역에서 4월22일 지구의 날 행사 등이 열리게 됐으니, 목적을 충분히 달성한 셈입니다.

그런데 제가 카모가와를 찾은 연고는 카토상 때문이 아니라, 그분과 함께 활동을 하고 있던 제 또래의 하야시 요시키 林良樹상에게 주목을 했기 때문입니다. 하야시 상은 18년전 카모가와에 귀촌하여 아와머니라는 지역통화를 만들거나, 카모가와에서 흔히 찾아 볼 수 있는 다랭이 논을 카모가와 트러스트라는 이름으로 도시민에게 분양하는 등, 다양한 지역활동을 펼쳐 온 분입니다. 환경운동, 귀농귀촌계에서는 일본내에서도 제법 유명인사입니다. 이 분의 활동을 알게 된 것은, 저도 일본에 있을 때부터 회원으로 활동하고 있는 나무늘보 클럽의 메일링 리스트에 항상 자신의 활동을 소개하고 있기 때문입니다. 나무늘보 클럽은 일본의 환경문화 NGO인데 규모는 작지만 늘 메일링 리스트에서 정보를 공유하는 회원들이 대개 일본 전역에서 크고 작은 자신들의 활동을 적극적으로 펼치는 활동가들이기 때문에, 메일링 리스트만 들여다 봐도, 일본의 환경운동 흐름을 파악할 수 있을 정도로 알찬 단체입니다. 오래전 도쿄에 있을 때, 하야시 상의 작은 교류회에 찾아간 일도 있고, '땅과 평화의 축제'에서도 무대위에서 발언하는 것을 들은 적이 있지만, 직접 인사를 나준 적은 없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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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진: 무인양품 다랭이논 오피스 데크위에 서있는 하야시상 Hayashi-san on the deck and the rice paddy office with his background

제가 특히 하야시상에게 관심을 갖게 된 이유중의 하나는 하야시상이 몇년전부터 無印良品이라는 기업과 흥미있는 프로젝트를 진행하고 있는 사실을 알게 됐기 때문입니다. 무인양품은 "이것이면 충분하다"라는 아트 디렉터/ 디자이너의 철학에 따라 미니멀리즘을 추구하는 단순한 디자인으로 유명합니다. 또 킨포크 계열의 소박하고 자연스러운 농촌과 도시 스타일도 함께 보입니다. 얼핏보면 유니클로와 같은 패스트 패션처럼 보이지만, 실은 단순한 생활, 친환경적인 라이프 스타일을 디자인 제품화 시키려는 노력이 구석 구석에서 느껴지는 브랜드입니다. 결국 대량생산과 소비라는 자본주의 사회의 큰 틀에서 벗어날 수는 없겠지만, 시스템안에서 나름의 자구 노력을 보이는 점이 마음에 들어서, 아주 간혹 옷을 사게 될 때 (지금은 옷을 거의 사지 않기 때문에 대부분의 옷들이 10년 혹은 그 이상 된 것들입니다) 찾곤 하는 친근감을 느끼게 하는 제품이었습니다. 그런데 하야시상은 이 회사와 자신의 지역활동을 엮어서 협력 관계를 만들어 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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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진: 도쿄 유라쿠쵸의 무인양품 매장에 소개된 ReMUJI 프로젝트. 아직 충분히 입을 수 있는 옷이 수거되면, 다시 염색해서 새로운 제품으로 판매한다. ReMUJI project sells the collected 2nd handed MUJI product after redyeing if the quality is still enough to be worn.

이를테면, 하야시상이 지역의 농민들과 함께 재배한 쌀로, 지역 브랜드 사케를 만들거나, 역시 직접 재배한 대두로 간장을 만들어서, 무인양품 매장에서 판매하는 것입니다. 제품 디자인, 브랜딩에 모두 무인양품의 전문가들이 참여합니다. 무인양품은 라이프 스타일과 관련된 모든 제품을 생산하기 때문에, 새로운 제품과 소비자들의 라이프 스타일을 연구하는 良品생활연구소라는 곳이 있고, 하야시상이 이들과 함께 지역과 농촌을 살리기 위해서 일자리, 제품, 라이프 스타일을 함께 연구하고 실험하는 것입니다. 또 반농반X의 성지라는 카모가와의 특성을 살려, 무인양품도 아예 폐교를 빌려서 자신들의 직원들이 거주하며 일할 수 있는 '위성 오피스'를 만들었습니다. 그런데, 실은 이곳은 무인양품뿐 아니라, 치바대학교 등, 몇몇 국립대학교의 반농반연구실로도 쓰입니다. 물론 지역을 살리기 위한 연구입니다. 실은 하야시상의 제안에 의해 3년전부터 무인양품이 카모가와 프로젝트를 실행하기 전부터, 반농반IT 생활을 하는 프로그래머나 웹디자이너 등이 이곳에는 많았고, 프리랜서뿐 아니라 아예 몇몇 기업들은 직원들 중 반농반X 라이프 스타일을 실천하고 싶은이들을 위한 사무실/연락소를 이곳에 만들었습니다. 또, 이런 사람들이 모여서 만든 ’해커 팜’이라는 농장도 있습니다.

다시 무인양품의 사례로 돌아온다면, 현재 무인양품은 매년 신입사원들이 다랭이논 트러스트에 참여하게 합니다. 다랭이논 트러스트는 일정한 구역의 논을 분양받은 개인/가족이나 그룹이 매년 회비를 내고, 모내기, 피사리, 벼베기 등, 일년에 7~8회 가량 농작업에 참여하여, 그렇게 생산된 유기농 쌀을 가져가는 프로그램입니다. 앞에서 잠깐 언급했던 한국의 우동사도 논데이라는 거의 유사한 프로그램을 운영하고 있습니다. 무인양품은, 모든 사원들이 농작업이나 지역/농촌과 함께하는 라이프스타일을 체험하게 하려는 것입니다. 물론, 그중에는 이곳 사무실에서 일하게 될, 선택지를 고르는 이들도 나올지 모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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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진: 하야시상이 관리하는 트러스트 다랭이 논. Stepped rice paddy managed by Hayashi-san.

한국의 대형유통업체인 이마트에 가면 무인양품 컨셉을 흉내낸 PB 브랜드인 ‘자연주의’가 있습니다. 그 조악한 이미지도 우습지만, 철학을 이해하지 못하고 껍데기만 흉내내는 한국 대기업들을 접하다가, 지역과 농촌을 살리면서 자신들의 브랜드와 라이프 스타일을 구축해 나가는 세계적 대기업 무인양품의 저력과 깊이에 놀라게 됩니다. 단순히 물건을 많이 팔거나 신제품을 만들기 위한 값싼 눈요기 거리의 노력이 아니라, 기업운영 철학과 모델에 지역과 농촌을 통합시키려는 진심이 느껴집니다. http://www.hani.co.kr/arti/economy/economy_general/774174.html (무인양품 CEO 한겨레 신문 인터뷰). http://localnippon.muji.com/ (무인양품의 로컬일본 프로젝트 홈페이지)

제가 운이 좋았던 탓에, 무인양품의 디자인과 제작에 의해서 갓 완성된, 다랭이논 오피스에 올라 눈맛 시원한 풍광을 즐길 수 있었습니다. 이 원두막같이 보이는 건물은 일본의 저명한 건축가가 무인양품의 위탁으로 설계한 작품입니다. 일층은 농작업 후의 휴식장소 (실제로 두째날 농사체험을 온 도쿄의 중학생들과 오전 논 피사리 작업을 마치고, 이곳에서 점심 도시락을 먹고, 잠깐 오수도 즐겼습니다 ), 이층은 반농반X 작업자들을 위한 오피스, 널찍한 데크는 문화 공연용으로도 사용이 가능합니다.

https://www.muji.net/lab/blog/kamogawa/030876.html
링크: 다랭이논 오피스 및 데크 오픈을 소개하는 하야시상의 블로깅 You can see various photos and Japanese explanation by Hayashi-san from his blog about this brand new structure

하야시상과 무인양품은 카모가와에서 구축한 모델을, 일본 전역으로 확대하여 농촌과 지역 살리기에 활용하고 싶어합니다. 마을기업이나 사회적 기업이 아닌 대기업이 이런 사업에 뛰어들었다는 것이, 한국 재벌기업의 저질스러운 개발주의와 무차별한 자연의 파괴, 자원의 남용 관행에만 익숙해져 있는 한국인 관찰자에게는 너무 낯설게 느껴집니다

일본의 몇몇 대기업들들중 정도의 차이가 있고, 논쟁의 여지도 있지만, 이렇게 지역과 농촌을 살리기 위한 프로젝트를 자신들의 과업으로 삼은 곳이 있다고 합니다. 이를테면 메가 솔라 태양광 발전을 추진하는 손정의 사장의 소프트 뱅크, 농촌/산촌에서 노인들의 이동을 돕기 위한, 새로운 모델의 경량운송체를 개발하고 있는 토요다 자동차 등이 그 예입니다.

무인양품과의 프로젝트, 반농반IT 등의 흐름이 특히 관심을 끌기에 이곳에 왔지만, 하야시 상이 데리고 다니며 소개하는 이곳 지역 특성은 더욱 매력적입니다.

함께 점심을 사먹은 도농직거래 매장. 실은 유입되는 귀농귀촌자의 수보다 더 빨리 노령화에 의한 사망으로 감소하는 지역 전체의 인구와 채산성이 떨어져서 점점 폐업하는 수가 늘어나는 전업농가들이 있습니다. 따라서 한 때 제법 흥성했던 일본의 도농직거래 매장은 날이 갈수록 팔 수 있을만한 농산품과 제품 (지역 수공업품 등)의 수도 줄어들고 있다고 합니다. 그래서 이 매장을 어떻게 새로운 컨셉과 디자인으로 살려내어 도시민들을 유치할 것인가, 하야시상과 무인양품이 고민을 하고 있다고 합니다. 그런데 이곳에 들러서 우연히 주차장에서 마주친 분들의 조합이 대단히 재미있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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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진: 카모가와의 5세대 - 5 generations in Kamogawa

이미 90대인도 말씀도 흐트러지지 않고, 여전히 농작업을 하시는 현지의 농민, 그리고 귀농 2세대인 하야시상, 그리고 귀농 3세대인 부부가 함께 마주치게 되어 사진을 찍었습니다. 실은 젊은 부부, 뱃속의 아기까지 셈한다면 4세대가 모인셈입니다.

이 사진은 일본의 귀농귀촌 역사를 돌아보게 하는 많은 이야기를 담고 있습니다. 본래 일본의 귀농귀촌 흐름이 시작된 것은, 앞서 이야기한 후지모토 상의 경우처럼, 1980년대 초반이라고 합니다. 즉, 전공투 세대인 일본의 운동권 중에 환경, 농업 등에 관심을 가지게 된 사람들이, 도시에 남아서 유기농 생협 운동을 벌이거나 직접 귀농하여 생산자가 됐다고 합니다. 그런데, 귀농 1세대는 농촌으로 돌아와서 자신의 부모님뻘인 현지 농민들과의 가치관의 차이 때문에, 많은 대립과 갈등을 겪었다고 합니다. 특히, 교육을 많이 받은 귀농자들이 현지의 농민들을 낮추어 보는 경향이 있었고, 역으로 농민들은 자기 자식, 조카뻘인 귀농자들이 기껏 대학 공부시켜 놨더니 농촌으로 돌아오는 것이 마땅치도 않고, 세상 물정 모르는 풋내기 짓이라고 생각했을 것입니다. 이런 대립속에 2000년을 전후하여 귀농한 하야시 상과 같은 2세대는 현지 농민과의 조화를 위해 무던히도 노력을 했다고 합니다. 그리고, 마지막으로 2011년 후쿠시마 사태 전후하여 새롭게 귀농한 젊은 세대는 의외로 현지 농민과 조화를 잘 이룬다고 합니다. 역설적으로 농촌 경험이 전무하던, 이들에게 일본 농촌이 가진 자연, 역사, 문화 자원들 그리고 현지 농민들의 삶의 기술과 지혜는 마치 보물창고처럼 느껴졌다고 합니다. 마치 현지문화를 존중할 수 있는 교양수준을 갖춘 선진국의 백패커들이 제3세계의 오지를 여행할 때, 느끼는 감동 같은 것을 맛보는 동시에, 그 이상으로, 실제 귀촌한 그들의 삶의 문제를 해결해줄 수 있는 농민들의 기술이, 사막에서 만난 오아시스처럼 느껴진 것이지요. 그래서 이들은 처음부터, 현지 농민들을 매우 존경한다고 합니다. 노인을 공경하는 유교적 윤리의식, 문화적 다양성 존중에 대한 정치적 올바름 차원을 넘어서, 진심으로 우러 나오는 존중입니다.

처음엔 쉽지 않았지만, 현지 농민들에게도 새로운 이주자들과의 협력이 학습과 성장의 계기가 됐다고 합니다. 사진에서 보게된 것처럼, 우연히 마주친 90대의 농민은 2차대전을 경험한 분입니다. 이곳 카모가와의 특징중 하나는 일본에 장기거주하고 있는 서구인을 포함한 전문직 외국인들의 이주가 적지 않은 것인데, 이중 미국인 청년들이 이분과 함께 논농사도 짓는다고 합니다. 실은 이 농민이 농사기술을 전수한 것이지요. 지역 산촌에서 평생 농사만 짓던 이 농민들은 바로 근처이지만, 도쿄의 글로벌라이제이션에 적응할 일이 많지 않았습니다. 그러던 참에 전쟁통의 적군, 이곳 카모가와를 공습해서 자신의 집을 불태웠던 미국인과 함께 농사를 짓게 된 것은, 국가대 국가와의 관계와는 다른, 친구로서 만나게 되는 외국인의 존재와 평화로운 공존에 대해서 새로운 감각을 일깨웠다고 합니다.

part 2로 이어집니다.

https://steemit.com/kamogawa/@macondo2/project-2017-5-part-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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