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97년 삶의 굴곡이 발생한 시점이 사진처럼 기억된다. 하이에나처럼 웃는 캉드쉬, 환하게 웃는 임창열의 기억은 사진처럼 선명하다. 10년뒤 미네르바와 강만수의 이야기를 돌아보면 또 헛웃음이 난다.
재경부 장관 - 강경식 -> 임창렬
재경부 차관 - 임창열 -> 강만수
경제수석 - 김인호
한은총재 - 이경식
IMF 총재 - 캉드쉬
대학원시절이었다. 학부의 88/89/90 학번 선배들과 일부 동기들의 졸업이 가까올 무렵이었다. 당시만해도 대학의 지식 수준은 기업보다 높았다. 입학하고 취업시즌이 되면 학교에 밀어닥치는 선배와 관광버스가 넘쳐나던 시절이다. 산업은 지속성장을 멈추지 않을 기세였다. 전자업종보다 은행, 증권, 투신사, 단자사, 종금사등 초봉이 3천만원이 되는 괜찮은 직장이 생기기 시작했다. 당시 전자업종인 LG/삼성도 초봉은 1500 내외였다. WTO체제하에 신자유주의 경제, 확장, 글로벌이라는 말이 어디에나 붙어 있던 시절이다. 투신사에 취업한 친구를 축하고, 취업 3~4곳은 일상인 시절이라 어디를 갈까를 고민하던 시절의 마지막이었다. 그러나 한보부터 시작된 부도대란은 결국 I'm F라는 사태를 불러왔고, 심연의 폭박이 표면으로 솟구쳐 오르는 일은 시간문제였다. 결국 세상이 어떻게 쪼개지는지 그 현장을 목격한 셈이다. 2008년까지 생각하면 두 번이나 체험한 셈이다.
출근시점을 조율하던 회사들이 사라지고, 합격을 취소하고, 년 말부터는 모든 것이 정지한듯 보였다. 모두 생존을 위해서 흩어졌다. 아직도 대학 동기들과 연락이 잘되지 않는 이유다. 유학갔던 학생들은 가파르게 오르는 환율로 돌아오고, 해외에서 한국으로 유학온 친구들은 환율로 빠듯하던 생활이 좋아졌다. 일자리를 찾아 서울이 아닌 지방으로 간 친구 녀석도 연락이 잘 되지 않는다. 무역업을 하던 선배는 L/C를 여는데 금액의 30%를 할증해서 현금 담보를 제공하라는 제1금융권의 어이없는 요구에 분노했다. 그 돈이면 L/C를 뭐하러 사용하나. 은행이 정상적으로 돌아가지 않았다. 높은 금리가 실행되도 저축할 돈이 없던 시절이다. 1억짜리 집에 1억500의 빚이 있으면, 경매에 붙여지기 전 인수해서 다시 되팔아 수익을 올리는 사람도 있었다. 500만원의 여유자금으로 경매를 막아준 셈이지만 결과적으로 자본의 침략과 착취가 발생한다. 지금 말하는 갭투자를 다른 방식으로 했다고 보면 된다. 극중 유아인이 20%가 인하되면 집을 사고, 그 집은 벌써 빨간딱지가 덕지덕지 붙어있다. 내가 들은 이야기도 강남의 이야기다.
금태환이 사라지고 신용에 따라서 움직이는 막대한 통화, 은행, 2금유이 만들어 낸 엄청난 통화 창출력이 거품을 만들었다. 신용이 경색되며 터져버린 후폭풍은 풍 맞은것처럼 사회 시스템을 정지시킨다. 대단히 무섭고 두려운 현상이다. 2008년 금융위기로 발생된 경제적 어려움보다 IMF의 현실은 비교하지 못할 정도로 잔인하다. 정글 그 자체다.
이후 기업에 취업해서 엄청나게 오른 환율로 수출기업은 감당하지 못할 수익을 올리고, 국가 기간산업이라고 불릴만한 핵심 산업은 구제금융이 결정되지 않고 방치하며 더 큰 어려움을 자초했다. 어떤 학회 회장을 하던 경영학 교수는 기본적인 해외정부정책 사례를 보며 기아차에 투자했다 타고다니던 차를 팔았다. 이런 정신나간 정부가 어디있냐는 교수님의 말이 참 인상적이었다. 폭락한 원화를 사고, 한국에서 폭락한 가격의 기업을 사면 한국경제의 안정성이 올라간다. 그러면 다시 폭등한 원화를 달고 회수한다. IMF의 조건이란 먹기좋게 털을 뽑는 것에 불과한 사전작업이다. 그 당시 (주)대우에 친척분을 뵈러 갔는데, 사무실에서 담배를 피던 초췌한 모습의 중년 남자 4명이 투자한 광산인지 유전에서 아무것도 나오지 않아 조업을 중단했다는 소리를 들었다. 분위기가 심각해 인사만하고 왔던 기억도 있다.
이 시기를 살아낸 70~74년생들은 세상이 움직이는 이면에 강력하게 움직이는 동물의 세계를 본 셈이다. 보통 많은 책을 읽고 포장된 시스템을 공부하고 체험하며 공부해서 깨달아가는 것을 우연이 그들이 미쳐 돌아가며 벌어진 세상의 틈을 본 셈이다. 누구에겐 천국으로, 누구에겐 지옥으로 펼쳐진 혼돈이 세상이다. 진보적이고 나이가 들어도 보수화가 더딘 이유는 머리에 찍힌 세상의 단면 때문이다. 앞세대가 매 년 오는 황금열차를 타고 세상에 나가는 모습을 보아왔다. 내 차례가 되어서 플랫폼에 섰다. 지난번 바라본 황금열차가 마지막이었다는 사실을 알게된 셈이다. 그런데 폭풍우와 함께 역도 사라졌다. 그래서 인지 영화를 보는 내내 주인공들을 각 세대의 구성으로 인식하게 된다. 지금은 그런 황금열차가 있었다는 사실을 모르는 세대다. 모르는 것이 약일 수도 있지만 지금의 2-30대에게 그런 황금열차를 물려주지 못하는 현실은 40대 이상 기성세대의 몫이다.
한시현팀장 - 전후세대
유아인(과장) - 386후반의 세대
재정국 차관 - 미국식 엘리트 경제교육을 받은 386세대의 초반
10억든 아이 - 오렌지족
살아온 환경이 행동양식에 큰 영향을 준다. 식민지 시대와 전후 시대에 태어나 악착같이 자식들을 위하면 살아온 세대, 그 이후 세상의 발전을 체감하며 먹고살만하는 것이 좋다는 사실을 이해한 세대가 대처하는 방식이 다르다. 나같이 원래 세상에 배고픔은 드물다는 현실을 살아온 세대와는 또 다르다.
IMF 사태를 결정하고 선택하는 과정을 영화에서는 자세하게 그린다. 한시현의 정의로움이 돋보이게 그려졌고, 삼성처럼 그려지는 일성그룹, 김인호를 생각하게 하는 경제수석, 강만수를 생각나게 하는 차관의 고리를 살펴보자.
교과서 어디에도 세상은 권력과 돈이라는 두 바퀴로 움직인다는 말을 하지 않는다. 말하지 안아도 잘 체감한다!? 권력과 돈이 미치면 세상의 많은 사람들의 삶이 나락으로 떨어진다고 말하지 않는다. 불황의 경제학을 체계적으로 가르치는 곳은 드물다. 그런데 핵에 민감한 것을 보면 신기한 일이다. 먹고사는 일에 문제가 생기면 더 많은 사람이 죽은것만 못한 삶을 살아야 한다.
많은 피해가 발생하고, 원인을 찾아가는 고통의 시간이 주어진다. 이런 고통스런 시행착오가 지나간 뒤, 많은 사람들이 모든 것을 제자리로 돌리는 노력을 한다. 세상은 그런 방식으로 운영된 이력을 많이 갖고 있다. 우리가 알아서 공부해야 하는 이유이며, 누구도 시스템 이면의 운행원칙을 말하지 않는다. 이것도 일종의 사회적으로 존재하는 암묵적 카르텔이다. 설국열차의 모습처럼...
어느 누구도 그런 결정을 하도록 권한을 주지 않았다. 따라서 아무런 책임도 지지 않는다. 그 테이블에 앉을 수 있는 자격을 통해서 그들이 원하는 세상을 향해 출발하도록 결정할 권한을 갖은 셈이다. 최근 정치에 대한 관심이 과거보다 더 많이 올라왔다. 의식수준이 과거보다는 올라왔다고 생각한다.
한시현이 자본감시활동을 한다는 것은 새롭게 이해할 필요가 있다. 정치에서 선출직, 임명직이 바뀐다고 나라와 조직이 바뀌지 않는다. 이 영화에서 잠시 드러나는 대통령의 모습이 그렇다. 장관은 보이지도 않는다. 그들 밑에서 조직의 실무를 다루는 수석과 차관들의 행태를 통해 보여준다. 관료라는 이름의 전문직이 국가를 위해서 자신의 책임과 역할을 하지 않으면 나라 꼴이 어떻게 움직일 수 있는가에 대한 시사점이다. 그들은 계속 거기에 머물고 정치인은 지나갈 뿐이다. 그들의 행동이 영화속 유아인, 관료, 기업, 일반들의 삶에 영향을 준다. 사회라는 것을 통해서 우리는 알게 모르게 연결되어 있기 때문이다.
97년 나라 예산이 71.4조 수준이었다. 200억 달러, 환율 800원이 안되는 시절이면 16조 내외다. 예산의 22% 수준이다. 이명박 시절은 250~300조 내외다. 나라가 망하는 상황이 아니지만 10% 수준을 몇 일이면 흔적도 안남는 강바닥을 파는데 썼다. 금모으기로 22억불을 모았다. 800원 환율이면 2조간 조금 안된다. 그것도 모두 국민의 돈이다. 정부로 부터 지원받은 공적자금 회수율을 보면 더 한심하다. 168조7천원을 1997년에 쏟아붇고, 115조5천억을 회수했다. 무려 53조 2천억을 국민들이 감당한 셈이다. 5천만 국민이 1인당 백만원씩 떼인 셈이다. 16조 정도, 550억으로 잡을 경우 44조(환율 800원)를 투입해 진압을 했다. IMF돈은 다 갚았는데 53조가 아직도 남아 있다. 이 돈은 어디로 갔을까? 상당부분은 자본의 약탈인 셈이다.
한시현의 말처럼 충분히 다른 대책도 가능한 상황이 이었을지 모른다. 태국에서 불붙기 시작한 사태진화를 조기에 했다면 통화스와프만으로도 자본의 약탈과 수탈을 막을 수 있었을지 모른다. 차관의 말처럼 불을 끄는 것이 목적이 아니라는 음모론이 있을 수 있다. 신자유주의의 경쟁과 확장이란 이론에 몰입해 세상을 바꾸고 싶은 관료의 열망이었을지 모른다. 그러나 모든 책임은 국민이 나눠서 골고루 나눠가졌ㄱ다. 옛날처럼 저지른 사람을 효수하고, 9족을 멸하지는 않더라도 책임소재를 밝혀야 원인 재발을 방지할 수 있다. 그런 검증과 사회안전망을 구축하는데 대한민국은 서툴다. 실력이 없는지 안하는지 것인지 요즘 유치원 사태만봐도 알 수 있다.
국민들은 투기성 자금의 공격을 잘 이해하지 못한 시절이다. 천조국 미국은 우방으로 항상 우리를 도와주는 나라라는 신념이 있던 시절이기도 하다. 그런 점에서 반미운동이 한축이었던 386세대는 조금 변태적인 세대다.
아는 사람들의 행동은 너무나 다르게 나타난다. 한가지 확실한 사실은 정글이 펼쳐지면 정글의 법칙을 잘 이해하는 사람들의 몫이라는 것이다. 갑자기 그 당시 소중히 간직해야했던 백불을 어쩔 수 없이 1800원 환율에 바꿔서 쓴 기억이 난다. 그럴 수 밖에 없는 현실이었다.
2008년의 금융위기는 직장을 다니며 체험했고, 2018년도 그 연장선상에 있다. 그 때 뿌려댄 신용(미국을 믿으라)에 근거한 달러 종이를 미국이 다시 거둬들이고 있다. 성장의 시기에 인플레가 발생하는 문제를 조정하는 것이다. 미국의 준비가 대단하다. 이를 통해서 이는 미국의 문제라는 것을 잘 이해할 수 있다. 그런데 우리도 힘들다. 다시 10년 주기설(사실 2번 하고 규칙이 된다고 보긴 어렵다. 음모론에 가깝지만 정말 다시 한 번 발생한다면 주기설을 인정해야 할지 모른다)이 언급된다. 80년대에는 미국에 의해 독일과 일본이 제압당했고, 97년에는 한국과 아시아가 박살났다. 08년에는 자업자득인지 미국이 자중지란에 빠지고, 18년에는 중국이 제물이 되어가는 중이다. 한 가지 다른점은 이 언급된 기간동안에 세상은 팽창만 한것이 아니라 더욱 촘촘하게 연결되었다. 2인3각처럼 하나가 넘어지면 같이 넘어질 우려가 커졌다.
영화의 마지막 부분의 금모으기 운동을 다시 할 여력도 없다. 그리고 국민들도 속는 것에 너덜머리가 나있다. 구제금융으로 회생한 기업들의 행태와 정부의 운영을 봐도 그렇다. 얼마전 2 정권동안 빚 권하는 사회 운동이 끝나고, 새로운 정책이 시작되자 빚 권하는 자들의 반발이 심하다. '빚도 재산이다'라는 파격적인 언행의 경영자는 빚더미에 세금도 체납하고 힘들게 살고 있다. 부도가 나면 채무는 채무자의 몫이다. 기업은 사태에 따라 공적자금이 투입되지만 개인은 채권자가 가장 싫어하는 법적파산외에는 방법이 없다. 신용회복의 과정에서 산산히 부서지는 삶의 상처가 줄어들길 바랄 뿐이다. 과거의 실패를 통해서 배움이 없다면 개인도 국가도 피폐해지는 것을 탓할 일이 아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