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녕하세요, 시사저널e 박현영 기자입니다
얼마전 비트코인을 몰수 가능한 재산으로 보는 대법원 판결이 나왔습니다. 불법음란물사이트를 운영하던 업자가 사이트 이용료로 비트코인을 받았기 때문인데요, 불법운영으로 챙긴 것이니 몰수하는 것이 맞지만 참 아이러니합니다. 가상화폐 범위, 거래에 관한 기본 법률은 나오지 않은 탓입니다. 가상화폐를 몰수하는 법이 있다면 지키는 법도 있어야 하는데 말이죠. 이에 대한 기자수첩을 작성해봤습니다.
[기자수첩] 빼앗는 법은 있는데, 지키는 법은 없다니요
“비트코인은 몰수 가능한 재산” 판결 나왔는데…가상화폐 거래‧보호 법률안은 국회에 계류 中
재산 몰수의 역사는 꽤 깊다. 조선시대 최고 법전인 경국대전의 호(戶)전에는 “백성들이 세금으로 내는 쌀이나 곡식을 받아 중간에 가로챈 자에는 그 재산을 강제로 받아내야 한다”는 규정이 있다. 부정으로 축재한 재산은 다시 뱉어내야 한다는 당연한 얘기를 하려는 게 아니다. 무엇을 부정으로 벌었고, 반납해야 하는지에 관한 얘기다. 경국대전은 ‘백성들이 세금으로 내는 쌀이나 곡식’을 보호해야 할 대상으로 정한 뒤 몰수 규정을 확립해뒀다.
수백 년이 흐른 지금, 그 누구도 쌀과 곡식으로 세금을 내거나 거래를 하지 않는다. 법정 화폐뿐 아니라 주식, 채권 같은 다양한 수단으로 거래를 한다. 그러던 중 새로운 존재가 세상에 나왔다. 가상화폐 또는 암호화폐라고 부르는 그것이다.
가상화폐 광풍이 불기 시작한 지난해부터 가상화폐의 범위와 거래 규정에 대한 논의는 지속돼왔다. 아직 논의가 끝나지 않았는데, 한국 가상화폐 역사에 남을 판결이 먼저 나와버렸다. 대법원이 비트코인을 ‘몰수 가능한 재산’으로 본 것이다.
사건은 이랬다. 불법 음란물 사이트를 운영하던 한 업자가 음란물 이용료로 비트코인을 받아 챙겼다. 불법 사이트 운영으로 벌어들인 수익은 몰수하는 것이 맞는데, 비트코인을 객관적인 수익으로 봐야할지 그 범위가 모호했다. 때문에 1심과 2심의 판결도 갈렸다. 1심은 비트코인의 객관적 가치를 계산할 수 없기 때문에 이를 몰수할 수 없다고 판단했지만, 2심과 대법원은 몰수 가능한 재산으로 봤다.
본래 몰수 가능한 재산이 무엇인지 확인하기 위해선 법 조항을 봐야 한다. 형법 제48조는 몰수의 대상을 규정하고 있다. ‘범죄행위에 제공하였거나 제공하려고 한 물건’ 또는 ‘범죄 행위로 생겼거나 이로 인하여 취득한 물건’이다. 형법에 나오지 않는 물건의 정의는 민법에 나와 있다. 민법 제98조는 물건을 ‘유체물 및 전기 기타 관리할 수 있는 자연력’으로 규정했다. 우리 법에 따르면 비트코인은 유체물도, 자연력도 아니다. 몰수 대상이 아닌 것이다.
하지만 2심과 대법원은 가상화폐를 ‘사회통념 상 경제적 가치가 인정되는 이익’으로 보고, 범죄수익에서 유래된 재산이라고 판단했다. 우리나라는 영미법과 달리 판례가 곧 법이 되지는 않으나 이번 판결이 훗날 비슷한 사례에 영향을 미칠 것은 확실하다. 비트코인을 비롯한 가상화폐는 앞으로도 몰수 대상 ‘재산’이 될 확률이 높다.
그런데 한 가지 의문점이 있다. 몰수 대상이 되는 재산은 보통 그릇된 방법으로 보관되고 은밀한 경로로 거래된다. 부적절한 방법으로 쌓았다고 해서 흔히 부정축재재산이라고 부르는데, 가상화폐는 어떻게 제대로 쌓아두고 거래해야 하는 지 알 수가 없다.
재산으로써 보호 받을 수 있는 지도 불분명하다. 관련 법률이 아직 세상에 나오지 않은 탓이다. 이번 판결은 가상화폐 지불의 원인 자체가 불법 사이트였기 때문에 부정성이 뚜렷했지만 관련 법률이 없는 한 가상화폐 관련 재판이 위기에 처할 것은 뻔하다.
문제는 국회에 있다. 가상화폐의 범위와 거래 규칙에 관한 법안은 진작 나왔다. 박용진 더불어민주당 의원이 대표발의한 법률안은 지난해 7월 31일에 발의됐다. 300일이 훌쩍 지난 지금, 해당 법률안은 아직도 심사 초기단계인 위원회심사 과정에 머물러 있다. 다른 법률안도 4개나 더 나왔지만 딱히 다를 바 없다. 모두 국회에 계류 중이다.
박용진 의원이 대표발의한 법률안은 “가상통화의 정의규정을 마련하고, 가상통화취급업의 인가 등에 대한 규정을 신설함과 동시에 이용자 보호를 위한 의무와 금지행위 등을 규정함으로써 가상통화이용자를 두텁게 보호하려는 것”이라는 문구로 법률안 제안 이유를 설명하고 있다. 해킹이나 투자사기로부터 가상화폐 거래자를 보호하고 거래자가 재산을 지킬 수 있게 한다는 것으로 해석할 수 있다. 다른 법률안 4개의 제안이유도 비슷하다. 거래자 재산 보호가 우선시됐다.
하지만 가상화페는 법적 재산으로써 보호 받기도 전에 몰수의 대상이 되어 버렸다. 지키는 법은 아직 없는데 빼앗는 법이 먼저 나온 셈이다. 투자자들의 반응도 모호하다. 이번 판결을 통해 가상화폐의 재산 가치가 드러났다며 좋아하면서도, 법적으로 규정된 것은 없으니 여전히 걱정에 빠져 있다.
수백 년 전 경국대전도 쌀과 곡식을 재산으로써 보호하고 이를 부정으로 벌어들였다면 몰수해야 한다고 규정했는데, 현 20대 국회에선 아무 소식이 없다. 박용진 의원실 관계자는 발의안이 처리되고 있냐는 기자의 질문에 “현재 국회는 금융위원회 측 분위기를 지켜보느라 발의안 통과에는 아무도 관심이 없다”고 말했다.
가상화폐 거래소 빗썸의 회원수가 320만명이 넘는다. 투기광풍은 지나갔다지만 여전히 국민의 상당수가 가상화폐 투자에 몰입하고 있다. 비트코인으로 인한 법정싸움이 충분히 일어날만한 이유다. 가상화폐에 대한 이혼 재산분할 다툼이 곧 일어날 것이라 감히 예상해본다. 그 전에 가상화폐에 대한 확실한 정의와 거래 방법부터 확립돼야 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