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7년 1월에 쓴 글입니다. 이 글에 한탄(?)같은 게 좀 있어서 미리 명시해둡니다.
*소설 <터널>에 대한 스포일러가 있습니다.
감독의 전작 <끝까지 간다>는 엄청난 수작이다. 영화 내내 타이트한 긴장감을 유지하면서도 위트있는 연출로 웃음까지 선사하며, 동시에 우리 사회의 문제점까지 녹여내는 디테일도 겸비했다. <터널>은 <끝까지 간다>의 장점을 그대로 답습했다. 재난 영화 특유의 비극적 요소, 재난 상황서 발생하는 긴장감, 적재적스에 유머를 끼워넣는 위트있는 연출 등 많은 면에서 뛰어나다. 희극과 비극, 현실비판 등 끌어낼 수 있는 모든 것들을 최대한 끌어내 멋지게 버무려냈다.
두 작품 모두 수작이긴 하지만 두 영화가 추구하는 지점은 조금 다르다. <끝까지 간다>가 스릴러라는 장르적 쾌감에 집중한다면, <터널>은 재난영화의 탈을 쓴 사회비판물에 가깝다. 영화 초반에는 정수의 생존기가 주축을 이루지만, 절정부로 갈수록 내부의 이야기는 줄어든다. 그 자리를 메우는 것은 사건을 통해 드러나는 사회의 부조리다. 정수는 죽음 직전의 상황에 몰려있지만, 터널 밖의 사람들에게 중요한 것은 자신들과 연관된 이익이지 정수의 생사가 아니다. 정치인에게는 스포트라이트가, 기자에게는 특종이, 경제인에게는 비용이 사람의 목숨보다 중요했다.
우리는 이러한 추태를 2년 전에 이미 목격한 바 있다. <터널>은 세월호에 대한 노골적인 풍자다. 영화는 우리가 목도했던 사회의 민낯을 때로는 직설적으로, 때로는 위트있게 녹여낸다. 재난 발생 후 드러나는 부조리와 언론의 흐름, 그로 인한 피해자의 가해자화까지도 세월호와 판박이다. 영화는 이를 숨기지 않는다. 김해숙이 분한 무능한 장관은 세월호 사건을 총괄했던 누군가와 닮아있고, 인간의 목숨에 경제적 단위를 들이대는 것도 실제 있었던 일이었다. 세월호 구조 작업에 나선 잠수사가 불의의 사고로 사망했듯, 터널 구조 작업을 돕던 작업 반장 역시 부서진 톱날에 맞아 명을 달리했다. 그 죽음으로 구조에 대한 여론이 흔들리는 것까지 비슷하다.
사고의 무대가 된 터널은 우리 사회의 축약판이다. 이익을 위해 부실시공을 했더니 터널이 무너지고 무고한 개인이 피해를 입었다. 터널의 입구에 달린 ‘행복’과 ‘안전’이란 문구는 비리 앞에 힘없이 허물어진다. 사회는 개인을 배려하지 않는다. 개인이 처한 고통에 공감하기 보다는 경제적 이익을 위해 발파를 진행해 터널을 다시 한 번 무너뜨렸다. 사회초년생 미나의 죽음도, 생사의 고비에 놓은 정수의 상황도 이익에 매몰된 사회에서는 고려대상이 아니다. ‘65%가 공사 재개를 원한다’라는 말로 이러한 인식이 사회에 만연하다는 것도 보여준다. 튼튼할 거라 생각했던 터널이 무너져 정수를 덮치듯, 국민을 지켜줄 거라 믿었던 국가는 국민들을 지켜주지 않았다. 이런 배신감도 우린 세월호 사건서 겪어봤다.
<터널>의 가장 큰 장점은 오버하지 않는다는 거다. 억지 눈물도 없고 억지 감동도 없다. 울어야할 상황에 울고, 감동받을 상황에만 감동을 받는다. 꽤나 많이 삽입된 유머들도 나올법한 상황에서 나오니 영화에 튀는 지점이 없다. 그러다보니 공감도 잘된다. 배두나에게 성질을 부리는 작업반장 어머니의 행동이 이해가 되고, 제2 터널 공사 재개에 사인을 했다는 배두나의 행동을 욕할 수도 없다. 캐릭터들에게 오롯이 공감을 하니 답답함과 분노의 지점도 명확해진다. 그렇기에 구출된 정수가 분노의 대상들에게 대신 쌍욕을 퍼붓고 구조를 보도하는 그들의 말이 개소리로 치부되는 순간 쾌감도 극대화된다.
영화는 ‘정수의 내부 생존기’와 ‘외부에서의 구출노력’이라는 두 가지 이야기를 교차시키며 전개된다. 터널 속은 재난영화지만 터널 밖은 사회비판물이다. 두 이야기는 감정선이나 연출, 갈등 상황 등 많은 면에서 크게 다르다. 터널 안에 홀로 갇힌 정수는 분노, 희망, 절망 등 오만 감정을 폭발시키고, 반대로 세현은 극도로 슬픈 순간에도 감정을 꾹꾹 눌러 담는다. 배우들은 맡은 바 역할을 잘 소화해냈다. 하정우는 순간순간의 감정을 그대로 드러내며 모노드라마를 하듯 터널 속 이야기를 생생하게 살려내고, 배두나는 섬세한 표현력으로 엄청난 슬픔을 연기함에도 영화를 신파로 만들지 않는다. 배우들의 열연으로 잘 만들어진 두 이야기를 감독은 뛰어난 솜씨로 깔끔하게 이어붙였다.
<터널>의 원작 결말은 영화와 다르다. 정수는 구출되지 못하고, 세현은 자살하며 대경은 그들을 기억하라고 외치다 사람들에게 쫒겨난다. 터널은 개통되고 그들의 비극은 잊혀진다. 현실은 원작의 결말에 더 가까웠다. ‘2년이 지났으면 되었다’며 비극을 잊었고, 비극을 잊지 말라며 진실을 요구하는 사람들을 비난했다. 영화의 끝은 사이다였지만, 현실은 아직도 고구마다.
그렇기에 감독은 억지로라도 정수를 살려낸 게 아닌가 싶다. 모두가 죽었다고 생각한 순간에도 정수는 살아있었고, ‘그를 찾겠다’는 대경의 열망은 그를 지옥에서 구출해냈다. 이 해피엔딩을 우리는 현실서 목도하지 못했다. 그래서 영화는 결말을 바꾸어 ‘희박한 가능성이라도 최선을 다했어야 했다.’며 사고 처리를 방관했던 국가를 후려친다.
영화 마지막, 정수와 세현은 다시 평범한 삶으로 돌아간다. 터널로 다시 들어가지만 정수는 불안해 할 뿐 거부하지 않는다. 그의 옆에는 오랜시간 함께했던 세현이 있고, 그를 구출하기 위해 최선을 다했던 대경도 있다. 불안한 순간에도 믿고 의지할 버팀목이 있기에 사람들은 무너졌었던 터널을 건넌다. 그러나 우리는 그러지 못했다. 아이들은 돌아오지 못했고 그 결과에 좌절한 사람들은 더 이상 국가를 신뢰하지 못한다. 해피엔딩에 웃음은 나지만 뒷맛이 씁쓸한 것은 영화만도 못한 지금의 현실 때문일거다. 우리는 언제 국가를 신뢰할 수 있을까
"다 꺼져 개새끼들아!! ...라고 이정수씨가 말하셨습니다."
좋은 글 잘보고 갑니다. 세상이 바뀌었으니 상식이 통하는 날이 오겠지요... 보트&팔로우 하고 갑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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좋게 봐주셔서 감사합니다. 세상이 느리게라도 좋은 방향으로 바뀌었으면 좋겠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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