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패션] GUCCI 브랜드 스토리

in kr •  7 years ago 

안녕하세요. 여러분. @baaam입니다.

세번째로 쓰게 될 브랜드는 구찌입니다. 요즘 구찌가 정말 핫하죠? 구찌의 크리에이티브 디렉터였던 프라다 지아니니가 구찌를 떠나고 알렉산드로 미켈레로 바뀌면서 구찌는 패션계를 뒤집어 놓았죠!!
원래 알렉산드로 미켈레는 구찌의 액세서리 전담 디자이너로 활동하다가 구찌의 CEO인 마르코 비자리는 그에게 패션쇼를 준비할 수 있냐는 질문에 미켈레는 승낙과 함께 성공적으로 마무리 하면서 자연스럽게 크리에이티브 디렉터의 자리를 미켈레가 차지했다고 보면 됩니다. 사실상 미켈레는 오랜 경력이 있었지만 그는 무명이었다고 해요. 무명임에도 불구하고 기회가 왔을 때 놓치지 않은 것도 맞지만 미켈레에게 큰 행운으로 다가 온 것도 맞다고 생각해요!

구찌 컬렉션.jpg

구찌 컬렉션1.jpg

구찌 컬렉션 15FW.jpg

미켈레가 처음으로 선 보인 16FW입니다~~

미켈레 패션관.png

미켈레 패션관1.jpg

미켈레 패션관2.jpg

미켈레 패션관4.jpg

미켈레의 패션 세계관입니다~!

최근 돋보이는 브랜드로는 ‘구찌(GUCCI)’가 있다. 2015년 ‘알레산드로 미켈레’를 새 크리에이티브 디렉터로 영입하며 이미지 변신을 꽤하여 다시금 화제가 되고 있다.
그동안 ‘구찌(GUCCI)’는 섹시하면서도 도회적인 이미지로 많은 사랑을 받았지만, 최근 몇 년간 이렇다 할 변화가 없어 ‘고루하다’는 이미지로 각인 된 후 소비자들에게 외면 받았다.
그러나 ‘알레산드로 미켈레’를 영입한 이후 그동안 주를 이루었던 블랙이나 브라운과 같은 무거운 색감과 클래식한 디자인에서 벗어나 파스텔톤의 컬러 사용과 꽃과 나비, 동물 등의 자수나 패턴을 사용하여 보다 젊고 신선한 새로운 이미지를 부여하며 얼어붙은 경제사정에도 불구하고 10%의 성장률을 기록한 ‘핫 한 브랜드’로 재기하였다.

사실 알레산드로 미켈레는 애당초 크리에이티브 디렉터 후보도 아니었을 뿐더러 그저 구찌에서 13년간 일했던 낮선 무명 디자이너였다. 그러나 ‘구찌(GUCCI)’는 이러한 그를 크리에이티브 디렉터로 임명하는 파격 인사를 단행했고, 사람들은 그가 잘 해낼 수 있을지 반신반의했다. 그러나 그런 우려의 목소리가 무색하게도 그는 지금까지의 ‘구찌(GUCCI)’와 전혀 다른 새로운 느낌의 작품을 선보였고, 다소 올드하게 느껴졌던 ‘구찌(GUCCI)’를 젊게 만들었다.
갑자기 ‘구찌(GUCCI)’를 떠난 프리다 지아니니 때문에 크리에이티브 디렉터에 임명되자마자 일주일 만에 컬렉션을 해야 했던 그는 그동안 절제된 시크함과 섹시한 이미지에서 벗어난 꽃과 나비, 새, 잠자리, 도마뱀 등을 옷과 가방에 자수와 프린트로 화려하게 장식한 화려한 스타일의 새로운 룩을 선보였다. ‘구찌(GUCCI)’의 클래식함을 바탕으로 동식물모티브에 레트로풍의 빈티지함을 가미한 그의 스타일은 ‘그래니 룩’을 연상시키며 차갑고 획일화된 도시 스타일에 지친 사람들의 감성을 어루만지며 세계 패션의 중심이 되었다. 또, 여성스러운 리본과 보타이 블라우스를 입은 남성모델을 컬렉션에 등장시키며 남녀의 경계가 모호한 ‘젠더플루이드’트렌드를 제시하며 세월이 지나도 큰 변화가 없던 ‘구찌(GUCCI)’에 질렸던 사람들에게 신선함을 주었다. 고정관념 깬 화려한 디자인으로 사람들을 열광시킨 그는 한동안 정체 상태이던 매출을 끌어올리는데 많은 영향을 끼쳤다.

‘구찌(GUCCI)’는 창립자 구찌오 구찌가 1921년 설립한 이탈리아 명품 브랜드로 핸드백, 슈즈, 의류, 시계, 파이 주얼리 등을 제작·판매하는 브랜드 이다. 피렌체의 ‘구찌’라는 가죽제품 전문점에서 시작된 ‘구찌(GUCCI)’는 이탈리아 밀라노, 로마 등의 패션 중심지를 비롯해 런던, 뉴욕, 파리 등 전 세계로 매장을 확대하며 성장하여 이탈리아를 대표하는 명품 브랜드로 자리 잡았다.

1881년 가업으로 밀짚모자를 만드는 가정에서 태어난 구찌오 구찌는 밀짚모자 제조업이 사양 산업이라고 판단하고, 1897년 전 세계 부호들이 모이는 런던의 사보이 호텔에서 벨보이로 일하며 귀족과 상류층의 기호와 문화를 익혔다. 그곳에 오는 부호들의 최고급 여행 가방에 감명 받은 구찌오 구찌는 1902년 고향인 피렌체로 돌아와 가죽공방 기술을 익혔다.
1921년 피렌체 비냐 누오바 거리에 ‘구찌(GUCCI)’라는 자신의 이름을 내건 첫 번째 가죽제품 전문매장을 오픈한 그는 같은 해 빠리오네 거리에 두 번째 매장을 내며 본격적인 사업을 시작하였다. 그가 사보이 호텔에서 근무하며 접했던 영국 귀족 스타일에 이탈리아 장인 기술을 결합한 승마 장갑, 승마 부츠와 같은 승마 용품을 중심으로 한 가죽 제품을 주로 선보였다. 그러나 그가 생산한 승마 용품은 이탈리아 귀족들에게 인기를 얻었지만, 마차의 활용도가 줄면서 승마용품이외의 것이 필요하게 되었고, 고심 끝에 1937년 작업장을 확장하여 핸드백과 트렁크, 장갑, 신발, 벨트 등의 제품을 추가 하였다. 구찌의 가죽 제품은 승마용품에서 영감을 얻은 것이 많았는데, 말 재갈과 등자를 활용하여 가죽 장식품을 만들었고, 그것은 구찌의 고유한 상징이 되었다.

1940년대 제 2차 세계대전으로 인해 물자수급에 어려움을 겪으며 가죽이나 금속을 구하는 것이 어려워졌다. 이때 구찌오 구찌의 첫째 아들 알도 구찌는 대마, 삼마, 황마를 작은 다이아몬드 형태가 서로 연결되는 구조로 직조하여 가죽을 대신할 원단을 만들었고, 그것으로 여행 가방을 제작 하였다. 이것이 바로 구찌의 시그니처 중 하나인 디아만테 캔버스 이다.
이 시기에 구찌오 구찌는 매장 확장에 노력을 기울이며 이탈리아 패션의 중심지 로마 콘도티 거리에 새로운 구찌 매장을 열었다.

1947년 제 2차 세계대전 이후 여전히 물자 수급에 어려움을 겪으며 수많은 가죽 업체가 도산하기에 이르렀다. 디아만테 캔버스를 개발 한 알도 구찌의 아이디어로 ‘구찌(GUCCI)’는 위기를 피할 수 있었다. 그는 일반적인 가죽 대신 돼지 피혁을 활용 하여 유일하게 수입 가능했던 일본산 대나무를 가공하여 장식으로 사용하였다. 이것이 바로 지금까지도 다양하게 재해석 되고있는 구찌의 대표적인 아이템 뱀부 백이다.

구찌오 구찌는 직접 ‘구찌(GUCCI)’를 경영하면서 자신의 세 아들도 회사주주로 경영에 참여시켰다. 1953년 알도 구찌가 뉴욕 58번가 사보이 플라자 호텔에 구찌 매장을 오픈한 것은 뉴욕에 진출한 최초의 이탈리아 브랜드로서 의미를 가진다.

1953년 창립자 구찌오 구찌가 세상을 떠난 후 그의 아들 알도 구찌와 로돌프 구찌가 경영권을 나눴다. 알도 구찌의 탁월한 비즈니스 감각으로 구찌는 전성기를 맞이하였다. 1961년에는 아버지의 이름 구찌오 구찌를 딴 GG로고를 만들었고, 이 로고를 활용한 캔버스 소재로 가방, 액세서리, 옷을 제작하여 ‘구찌(GUCCI)’만의 제품을 만들었다.
같은 해 제작한 둥근 모서리의 숄더백은 영부인 재클린 케네디가 공식석상과 개인 모임에 즐겨 들어 ‘재키 백’으로 유명해 지면서 많은 사람들에게 사랑을 받았다. 1966년에는 모나코 왕비 그레이스 켈리를 위한 플로라 스카프를 제작하며 구찌의 또 하나의 시그니처 플로라가 탄생하게 되었다. 또 미국, 일본, 홍콩 등에 매장을 오픈하며 ‘구찌(GUCCI)’는 글로벌 브랜드로 성장해 나갔다.

미국 비버리 힐즈 매장에는 리타 헤이워드, 마이클 케인과 같은 톱스타들이 찾아와 호사스러운 제품들을 구입하며 럭셔리 브랜드로서의 구찌의 명성은 높아져 갔고, 1981년에는 피렌체에서 첫 기성복 컬렉션을 발표하며, 플로라 프린트 의상을 대거 선보였다.

‘구찌(GUCCI)’는 1982년 는 가족경영진의 결정을 통해 디자인부터 생산, 유통에 이르기까지 전 과정을 경영하는 S.P.A로 전환하고, 경영권은 셋째 아들 로돌프 구찌에게 돌아갔다. 그러나 경영권을 둘러싼 가족 간의 다툼으로 인해 경제적인 위기를 겪게 되고, 그 과정에서의 라이선스의 남발로 구찌의 가치는 바닥으로 떨어졌다.

경영권이 로돌프 구찌의 아들 마우리초 구찌에게 넘어 온 뒤, 그는 ‘구찌(GUCCI)’의 옛 명성을 되찾기 위해 노력했다. 가족경영체제에 문제가 있다고 판단하여 전문경영인 체제로 전환하고, 1989년 버그도프 굿맨 백화점의 뉴욕지사장 돈 멜로를 구찌의 디자인 총괄이사로 영입하였다. 이때 톰 포드 역시 디자이너로써 ‘구찌(GUCCI)’에 합류하였다. 변호사 도메니코 데 솔레는 유통을 직접 통제하고, 그동안 남발되었던 구찌 브랜드의 라이선스 사업 정리와 프랜차이즈를 환수를 단행하였다.

전문경영인 체제 전환과 함께 1994년 톰 포드가 크리에이티브 디렉터가 되면서 ‘구찌(GUCCI)’는 제 2의 전성기를 맞이하였다. 그는 컬렉션을 비롯하여 선글라스, 향수, 광고, 매장 등 경영을 제외한 구찌의 총체적인 이미지를 관리하였다. 그는 ‘구찌(GUCCI)’를 섹시하고 모던한 이미지로 구축하는데 심혈을 기울이며 클래식에 뿌리를 둔 섹시함과 품격, 복고와 유행 사이의 절묘한 조화를 이루어 냈다. 그가 1995년에 선보인 구찌의 젯셋 글래머 테마는 좋은 반응을 얻었고 GG로고, 호스빗 등 구찌의 클래식한 시그니처 아이템들을 현대적으로 재해석한 새로운 컬렉션을 선보이며 전통과 새로움을 동시에 부각했다. 무엇보다 톰 포드가 매장과 광고 이미지까지 일괄적으로 감독하면서 새로워진 구찌를 대중들에게 효과적으로 전달할 수 있었다.

수석디자이너의 개념에서 나아가 브랜드 전체 이미지를 만드는 크리에이티브 디렉터라는 포지션을 유행시키며, ‘구찌(GUCCI)’의 성공적인 변화를 이끌었던 톰포드는 재계약에대한 PRP그룹과 이견을 좁히지 못하고 구찌를 떠났고, 그 자리는 액세서리 라인을 담당하던 프리다 지아니니가 바통을 이어받아 기존의 뱀부백을 새롭게 재 해석한 뉴 뱀부백을 선보이며 주목 받았다. 프리다 지아니니가 브랜드를 맡은 후 4년간 구찌의 매출은 46% 신장했고, 구찌는 2007년 시장조사전문회사인 닐슨(Nielsen)이 발표한 ‘세계에서 가장 갖고 싶은 럭셔리 브랜드’로 선정되기도 했다.

가족 기업으로 시작 해 여러 위기와 극복을 통해 현재까지 명성을 이어가고 있는 구찌는 남녀 의류를 비롯하여 핸드백, 신발, 스카프, 시계, 안경 등의 액세서리와 보석, 향수, 홈 컬렉션에 이르는 다양한 제품들을 생산하며 전 세계 2백여 개 이상의 직영 매장을 성공적으로 운영하고 있으며, 명실상부한 명품 토털 브랜드로써 여전히 새로운 신화를 이어 나가고 있는 중이다.

http://www.mezis.co.kr/bbs/board.php?bo_table=news_kr&wr_id=188

http://www.artinsight.co.kr/news/view.php?no=28332

Authors get paid when people like you upvote their post.
If you enjoyed what you read here, create your account today and start earning FREE STEEM!
Sort Order:  

갓찌.......... 18ss티셔츠도 꼭꼭사야할것같습니다 !ㅋㅋㅋ

역시 옷하면 구찌!!ㅋㅋㅋㅋ 진짜 갓찌... 가격은 말해 뭐해...죠...ㅠㅠㅠㅠㅠㅠㅠ

새로운 정보가 많네요! 아직까지는 패션은 너무 어렵습니다..

네!! 앞으로도 자주 놀러 오세요 ㅎㅎ 좋아하는 것은 재미있게 다가가야 해요! 커몬커몬!ㅋㅋㅋㅋㅋㅋㅋ

브랜드를 유지하는 것은, 참 쉽지 않은 것 같습니다 ^^ ;; 크리에이티브 한 분을 다행히 잘 발탁했네요 !

네 맞아요. 브랜드를 유지하는 건 참 쉽지 않은 일이죠... 그런데 돌아오는 유행과 미켈레의 스타일이 잘 접목이 되어서 좋은 기회로 다가온 것도 맞다고 생각이 들어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