창업 7년을 뒤로하고 입대한 스물일곱의 나 : 실패할 창업 다음 입대한 나를 기다린 것은 겨울의 촛불이었다

in kr •  6 years ago  (edited)

나의 의경생활 이야기 연재를 시작합니다!

<나의 의경생활 이야기>를 열며

본 기획은  <나의 의경생활 이야기> 시리즈는 의무경찰 1079기로 스물 일곱 나이에 2016년 10월 6일 입대한 제 경험에 근거합니다. 의경 지원자 또는 입대 예정자, 복무중인 의경 대원에게는 꼭 필요한 정보를, 전역자에게는 추억(?)을, 그 밖에 글을 읽어주시는 감사한 분들께는 촛불집회, 탄핵 등 역사적 상황에서의 생생한 맥락을 전하고자 합니다.

나에게는 꿈이 없었다.

고등학교 2학년 때쯤이었을까. 갑자기 턱 끝까지 불안이 밀려온 적이 있었다. 지금도 그 이유는 잘 모르겠다. 확실한 것은 나는 어디서부터 무엇을 해내야 할지 도무지. 아무것도 알지 못했다는 것이고, 꿈이라 말할 것이 없었다는 것이다. 공부를 제법 하는 많은 친구들은 '크고 멋진 것'을 꿈으로 말하기 시작했다. 그 꿈은 '직업으로서의 꿈'을 의미하던 것 같다. 나는 뒤쳐지고 싶지 않았다. 나는 내 마음이 진심으로 설득되지는 않지만 어느새부터 '말하기에 부끄럽지 않은 직업'을 꿈으로 말하기 시작했다.


고3 때 영어 선생님은 수업 시간 중 내게 꿈이 무엇이냐 물었다. "사회과학을 전공하여 정론직필 하는 기자가 되고 싶습니다!" 라고 나는 말했던 것 같다. 그것도 제법 당당하고 확신의 찬 어조로. 선생님은 흐뭇하게 웃어주시며 내게 멋진 꿈이라 말씀해주셨다. 친구들은 박수를 쳐주었다. 그때의 나도 지금처럼 말하기도 글쓰기도 좋아했다. 다만 그렇게 미치도록 좋아해 본 적은 없었다. 자리에 앉은 나는 아무 잘못을 한 것도 없는데, 가슴 한쪽이 시큼거렸다. 죄를 지은 것만 같았다. 양심의 소리를 듣지 않아서인가...! 라는 소년만화 같은 생각은 그 후 3년 정도 지나서 했던 것 같다.


스무 살, 정작 대학에는 예상 밖이게도 소위 말하는 '맞춰서' 경영학과를 가게 됐다. 스물 아홉 아직 졸업 못한, 올 9월부터 다시 다녀야 하는 그 학교다. 지금이야 기자가 되는데, 생각만큼 전공이 절대적이지 않고 여러 길이 있다는 것을 알지만 그때 나는 경영학과에 가는 순간 기자가 될 수 없을 것만 같았다. 근본적으로는 기자가 되고 싶은 것도 거짓 같았다. 가정에는 따뜻한 저녁과 웃음소리가 있었지만, 이러한 고민을 터놓고 말할 멘토는 어디에도 없었다.

2011년 겨울, 나도 어렸는데, 배운 친구들은 더 어렸다.


당시엔 지금 학생부 종합전형의 조상 격인 '입학사정관 전형'이  막 생겨났던 때였고, 대중교육을 지향하며 적정한 대가를 받으면 괜찮은 비전이 있으리라 생각했다. 또 입시와 진로에서 내가 겪은 시행착오를 내 후배들은 겪지 않기를 바랐다. 마침 고2 때부터 알고 지내던 다른 지역 다른 학교 친구들도 비슷한 고민을 했다. 우리는 일단 '시작'하기로 했다. 스물한 살, 2010년 여름부터 우리는 누군가에게 영향을 주는 일을 시작했다. 아직 어린 어른이었던 우리는 더 어린 친구들을 만났다.

"우리는 창백한 스포트라이트가 비추는 경주트랙 이외에 다른 길이 있다는 것을 믿을 수 없다. 정확히는 다른 길이라는 것이 존재하는 지조차 의문이다. 때문에 이따금씩 떠오르는 ‘힐링하는 멘토’들은 마치 ‘전설’ 같다. 그것은 나에게 도무지 일어날 수 없는 일 같다. 불안하고 아픈 우리에게 필요한 것은 방황의 항해가 끝날 때까지 변함없이 우리를 비춰줄 등대다. 스포트라이트가 비추지 않는 트랙 밖에 길을 위태롭게 가더라도 그 길이 틀리지 않았노라고 말해줄 등대다. 때로는 좌절하더라도, 다시 할 수 있다고 우리를 믿어줄 수 있는 따스한 등대의 불빛이다."


그 날로 3년쯤 지나, 일기에 적었던 말이었다.

첫 2년간은 나름대로 성과가 있었다. 고무된 우리는 본격적으로 '사업'을 하기로 했다. 사무실을 열고 교재와 서비스를 만들었고, 열심히 강의했다. 아직 어린 우리는 실력과 자본이 늘 부족했고, 부족한 것은 긍지(^^;;)로 때웠다. 힘겨울 때는 임대료와 각종 고정비가 큰 부담이었다. 그런데도 '사업자적 필요'와 '교육자적 양심' 사이에서 우리는 거의 늘 후자를 선택했던 것 같다. 지금 와서 보면 우리는 필요 이상 간절하고 절박했다. '덜 걸어도' 충분히 괜찮았다. 나는 군대를 계속 미뤘고, 학교에서 최선을 다하지 않았다. 그렇게 청년 사업가가 되기를 바랐던 우리는 창업에 '뛰어들지' 못했고 창업에 '빠져'있었다.


2010년부터 2016년까지 나와 친구들은 고군분투했다. (내가 입대한 후에도 친구들은 제법 오래 분투했다.) 친구들은 그 사이 군대를 다녀왔다. 어느덧 내 나이도 스물 일곱이었다. 이제는 정말 가야만 했다. 마침표를 찍을 용기를 내야만 했다.


2016년 스물 일곱 10월 5일. 의무경찰 1079기로 입대했다. 입대날 페이스북에 아래와 같은 글을 나름대로 서프라이즈로 남겼다.


오늘 입대합니다.
하고 싶은 것들을 하다보니
남들보다 많이 늦은 나이에 가게 됐습니다.
남겨둔 사람과 일들에 아쉬움이 남지만, 후회는 남지 않으니 참 다행입니다.  21살 나는 친구들과 누군가를 가르치는 일을 시작했습니다. 어린 녀석들이 더 어린 친구들을 만났으니 참 막막하기도 했었지요. 그렇게 한 해 한 해, 6년 동안 새로운 사람들을 만나고 새로운 경험들을 마주했습니다. 세상은 알면 알수록 점점 모르는 것이 늘어가니, 아직 무엇이 제 미래인지는 모르겠습니다. 다만 무엇이 행복인지 이제는 어렴풋이 알 것도 같습니다. 27살 나는 행복할 수 있는 사람입니다.

어떤 작가는 책에서 '일', '놀이', '사랑'이 행복한 삶을 위한 가장 중요한 세 가지라고 하더군요. 만약 그것이 가장 중요한 세 가지라면 저는 그것들을 감히 찾아낸 것 같습니다. 가끔은 일이 고되고 힘들었습니다. 무엇보다도 이것이 업이 될 것이라는 확신은 가지지 못했지요. 돈, 큰 집, 빠른 차를 가지지도 못했습니다. 지금도 그렇습니다. 그렇지만 우리 사람들과 '일하는 것'은 참 즐거웠습니다. 같이 '노는 것'은 더 즐거웠습니다. 사랑은 꼭 에로스는 아니기에, 나는 우리를 '사랑'할 수 있었습니다. 지난 시간 우리로 함께 해 준 이들, 이들은 나의 또 다른 가족입니다.

가끔은 가지 않은 다른 길이 궁금하기도 합니다. 그러나 다시 시간을 되돌려도 다른 선택을 하지는 않을 것 같습니다. 우리가 이룬 성취가 대단해서가 아닙니다. 나는 우리를 찾았기 때문입니다. 일상을 지키는 법을, 낭만과 향기를 곁에 두는 태도를, 노래에 마음을 담는 울림을 어렴풋이나마 알 것 같기 때문입니다.


언제나 새로운 것에 나를 던지려 했었지요. 많은 이들이 하는 경험이지요. 제게는 늦었지만 새로운 경험입니다. 잘 해낼게요 여러분! 여전히 모르는 것이 너무나 많기에 많이 물어볼게요.한 번도 후회한 적 없던 우리의 길과는 잠시 안녕입니다. 안녕은 떠남에도 다시 마주함에도 모두 쓸 수 있다지요. 다시 돌아오는 그 날까지, 저와 여러분 모두 더 좋은 사람이 되어 "안녕" 할 수 있길!


경황이 없어 미처 연락하지 못한 분들이 많습니다. 언제고 꼭 연락하겠습니다. 마음 닿고 여유될 때 편지해주세요. 늦더라도 꼭 답장하겠습니다

이제는 가야합니다.
아쉬움과 남겨진 시간을 뒤로하고, 떠나겠습니다.
내 삶을, 우리를 사랑했습니다. 사랑합니다. 안녕!


함께한 친구들이 논산까지 와주었다. 연병장을 한 바퀴 돌고, 우리는 정말 '안녕'했다. 그 날 나는 울지 않으려 노력했다. 논산 훈련소에서의 첫 밤은 잊지를 못할 것 같다. 낯설고 너무 낯설었다. 10월에도 논산은 제법 추웠다. 내 옆 자리에는 스물여섯 초등학교 선생님이 누워있었다. 잠에 들기 전 그가 내게 사회에서 무엇을 하셨느냐고 물었다. "저는 교육을 했어요. 늘 제가 더 많이 배웠지만요..." 내가 말했다.

2주쯤 지났을까. 창업을 함께한 친구들로부터 편지가 왔다. 첫 줄은 이러했다.

'박근혜 대통령 하야 요구 시위 전국에서 이는 중..'

그 겨울 광장과 거리에서의 운명은 이미 예고되어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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