태극기나 동성애 혹은 이슬람 반대로 대변되는 한국교회는 알만한 사람들에게는 이미 혐오와 배제의 아이콘이 된지 오래다. 굳이 “네 원수를 사랑하라 (마 5: 44)”는 말씀을 인용하지 않더라도, “네 이웃을 네 자신과 같이 사랑하라 (마 22:34)”는 구절만으로도 혐오와 배제가 성경에서 비롯된 것이 아님을 알 수 있다. 오히려 한국교회의 혐오와 배제는 노골적으로 동성애나 이슬람을 반대하는 트럼프나 이민자에 대한 혐오가 깔려있는 브렉시트(Brexit)처럼, 타자에 대한 혐오와 배제를 통해 지지층을 결집시키는 정치적 제스처에 더 가깝다. 극우 정치를 혐오하는 젊은이들이 한국교회를 등지는 것이나 극우 정치를 지지하는 노인들만 한국교회에 남아있는 실정이 유사하다. 혐오와 배제의 이면에 가득한 정치적 이익의 극대화처럼, 한국교회는 세습과 성추문으로 가득한 욕망 그 자체라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세상에 빛과 소금이 되어야할 한국교회는 세상의 빚(debt: 혐오와 배제를 세상에 빚지고)과 소문(Scandal: 세습과 성추문)이 되었다.
물론 한국교회가 늘 이랬던 것은 아니다. 대한민국의 독립을 위해 태극기를 들었던 삼일운동의 경우, 당시 2%에 불과하던 기독교인들이 주도적 역할을 감당했다. 적어도 알려진 것만해도, 독립선언의 주역 33인 중에 16인이 기독교인들이었으며, 전국적 저항운동의 절반이 기독교인들에 의해 조직되었다. 더욱이 초기 한국 교회는 병원(세브란스 등)과 학교(숭실대, 연세대, 이화여대등)를 설립하여 기독교 문명을 보급하였다. 이를 통해 당시 사회적 약자였던 여자들이 가사영역을 넘어서 전문직업인(의사, 간호사, 교사등)으로 공적 영역에 처음으로 진출할 수 있게 되었다. 1920년대 사회 변혁의 동력이었던 신여성의 등장에 한국교회가 끼친 영향은 매우 크다. 백정 박성춘이 기독교인이 되어 백정 해방운동의 지도자가 되고, 그의 아들이 세브란스 의학교 첫 졸업생으로 첫 의사면허를 받았다는 사실은 초기 한국교회가 얼마나 사회적 약자들을 위해 존재했는지 보여준다. 이 뿐 아니라, 초기 한국교회는 기존의 종교들을 혐오하거나 배제하기 보다는, “하나님/하느님”이라는 용어 논쟁이나 정감록의 “궁궁을을(弓弓乙乙)을 십자가(十)로 해석한 것에서 보여지듯이, 기독교의 독특성을 훼손하지 않고도 타 종교에서도 진리의 파편들을 보았다.
태극기는 민족주의를, 동성애자는 사회적 약자를, 이슬람은 타 종교와의 관계를 상징한다. 오늘의 한국교회는 초기 한국교회보다 훨씬 나은 상황과 조건에 있지만, 민족에 대한 사랑은 반공주의로 희석되고, 사회적 약자와 함께 울던 교회는 사회적 약자를 배제하고 차별한다. 타 종교를 존중하고 그 안에서도 진리를 인정하던 교회는 이슬람으로 대변되는 타 종교를 혐오하고 갈등의 대상으로 바라본다. 세상을 그리스도의 사랑으로 변화시켜야 할 교회는 지금 가장 세속적인 영역 즉 혐오와 배제, 욕망이 가득한 곳이 되었다. 그러므로 필자의 관심사는 한국교회가 초기 한국교회처럼 어떻게 한국 사회에 공적인 기여를 할 수 있는가에 있다. 말씀과 기도로 돌아가자는 클리셰를 반복할 필요도 있지만, 무엇보다도 한국교회는 다원주의 사회에서 기독교의 본질을 유지하면서도 타자와 함께 평화롭게 사는 삶이 무엇인지를 배워야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