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근 한국교회의 지나친 정치 참여가 왠지 낯설다. 선지자적 목소리를 냈어야 할 독재정권하에선 정교분리를 외치더니, 이젠 극우 정치의 입장이 어느 새 하나님의 뜻이 되어버렸다. 구국 기도회를 열 때마다, 온 국민이 한 마음이 되기는커녕 증오와 분열로 얼룩진 모습이 볼썽 사나운 지경이다. 하나님의 주권이 정치의 영역에서도 드러나야 하겠지만, 작금의 방식으로는 하나님이 영광 받으실 리 만무하다.
그리스도인이 현실 정치에 참여할 때, 먼저 “가이사의 것은 가이사에게, 하나님의 것은 하나님께” 돌려야 한다. 서구 역사에서 기독교와 정치가 서로의 영역을 동일시할 때 벌어진 참혹한 일들(십자군 전쟁과 같은 종교전쟁이나 이단의 심문과 화형)을 기억한다면, 진보든 보수든 그리스도인은 자신의 정치적 관점을 하나님의 뜻으로 간주하는 것에 신중을 기해야 한다. 또한 교회와 정치는 각자의 영역에서 교회를 교회답게, 나라를 나라답게 하는 일에 우선순위를 두어야 한다.
두번째, 자신과 다른 이데올로기나 가치관을 악마처럼 여겨선 안된다. 한국교회는 자본주의를 하나님의 축복으로, 공산주의를 사탄의 저주로 여기는 경우가 많다. 자본주의에도 인간의 탐욕으로 얼룩진 죄악이 도사리고 있는가 하면, 공산주의에도 사회경제적 약자들에 대한 돌봄의 정신이 있다. 심지어, 트럼프나 한국교회가 김정은을 악마로 본다고 할지라도, “하나님은 그 해를 악인과 선인에게 비추시며 비를 의로운 자와 불의한 자에게 내리신다”는 점을 알아야한다. 구원과 관련된 특별 은혜가 아닌 이상, 하나님께서는 모든 사람들에게 동일한 일반 은총을 주셔서 정치적 참여를 하게 하시고, 이를 통해 역사의 발전을 이룩해 가신다.
그러나 “세상의 소금과 빛”인 그리스도인들에게는 인간의 욕심과 죄악으로 점철된 정치 영역을 하나님의 정의로 회복해야 하는 사명이 있다. 물론 죄로 물든 세상을 회복한다는 것이 성시화를 의미하는 것은 아니다. 청교도들이 추구한 “산 위에 있는 동네(city on the hill)”가 마녀사냥으로 무너져 내린 예를 생각해봐도 그렇다. 기독교 역사는 하나님의 정의를 대변하는 수많은 선지자들(노예제 폐지의 윌리엄 윌버포스, 히틀러 독재에 항거한 디트리히 본회퍼, 흑인 인권 신장의 마틴 루터 킹)을 보여준다. 지금 한국도 어떤 위험과 손해에도 불구하고, 불의에 대항할 수 있는 용기 있는 그리스도인이 필요한 것이 아닌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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