응급실 근무의 묘미는 다양한 병력을 가진 진귀한 케이스를 경험할 수 있다는 것이다.
군대가서 특이한 경험을 하면 나중에 사회 생활을 하면서 술자리에서 술안주로 썰을 풀기 좋은 것처럼 응급실 근무자는 술자리에서 풀어놓을 썰이 무척 많다.
오늘도 흔하게 접하지는 않지만 그렇다고 아예 드물지만도 않은 케이스를 공유해 보겠다.
(직접 진료한 케이스는 아니지만 근무 중 응급실의 다른 구역에서 진료한 환자이다.)
#. 남자 78세
이 할아버지는 10년 쯤 전에 뇌졸중을 앓았다고 한다. 그리고 고관절 골절도 있었던 병력으로 봐서 누워서 지내셨던 것 같다. 병원에 내원하기 1일전부터 열이 나고 숨쉬기 힘들며 가래가 나와서 인근의 다른 병원 응급실에 내원하여 검사를 했더니 폐렴이 의심되고 목에 틀니가 걸려 있는 것이 확인되었으나 수술적 치료가 그 병원에서 불가능하여 본원으로 전원되었다.
뇌졸중이나 기저질환의 악화로 팔다리를 못 쓰고 누워서 지내게 되면 기침 가래를 잘 못 뱉게 되면서 흡인성 폐렴에 걸리기 쉽게 된다. 그래서 요양병원에 오래 누워서 계시던 할머니, 할아버지들이 흡인성 폐렴의 악화로 대학병원 중환자실에 흔하게 전원을 온다. 여기까지는 쉽게 접하는 경우인데 오늘의 주인공인 할아버지는 거기에다 틀니가 목으로 넘어가는 이벤트까지 겹쳤다.
파란색 화살표로 표시한 우측 폐의 하얀 부분은 폐렴이 생기거나 물이 찼을 경우 가슴 X-ray 에서 볼 수 있는 병변이다. 환자의 과거력과 현재 상황을 볼 때 흡인성 폐렴을 쉽게 생각해 볼 수 있는 영상의학적 소견이다. 하지만 여기서 매의 눈으로 놓치면 안 되는 부분이 바로 빨간색으로 표시한 목 주변의 공기 (=피하기종 = subcutaneous emphysema) 이다. 저 부위는 원래 공기가 있어서는 안 되는 부위라 X-ray 에서 저런 병변을 보게 된다면 꼭 목 부분에 대한 추가적인 신체검진과 영상검사를 실시해야 한다.
따로 추가적인 설명이 필요 없을 만큼 틀니가 목에 걸려 있는 것이 명확하게 보인다. 아까 위에서 언급한 피하기종은 틀니가 목 안의 연부조직에 상처를 내면서 그 쪽으로 숨쉴 때 공기가 들어가서 생긴 것으로 추정된다.
환자가 시행한 CT 영상을 확인해 봅시다.
대개 누워서 지내는 환자들은 음식을 먹다가 기도로 넘어가게 될 경우 우측 하부에 흡인성 폐렴이 잘 생기는데 이는 우측 기관지가 좌측에 비해서 각도가 더 직각이고 기관지 구경이 커서 그렇다고 한다. 이 환자의 경우도 우측 폐의 하엽에 염증이 생긴 것을 확인할 수 있다. (이 환자는 좌측 폐에도 약간 동반되어 있다.)
빨간색 화살표로 표시한 이물이 목 안에서 관찰된다. 파란색 화살표로 표시한 피하기종이 우측 목에 주로 분포하고 있는 것을 확인할 수 있다.
목 CT 의 조금 더 아래쪽에서도 피하기종이 관찰된다.
환자는 이후 이비인후과에 연락이 되어 이물 (틀니)을 제거하였다.
이물을 제거 후 답답했던 목이 한결 시원해진 느낌이 든다. 환자는 이물 제거 후 중환자실에서 항생제 치료를 하며 경과를 관찰하고 있다.
대한민국이 고령화 사회로 접어들면서 고령의 환자에서 이런 케이스들이 앞으로 점점 늘어날 것으로 예상된다. 사회의 인구학적 구조의 변화에 더불어 의료 현장 일선에서도 다양한 질병의 변화가 있을 것으로 예상된다.
아무쪼록 환자의 쾌유를 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