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n unexamined life is not worth living (소크라테스, 기원전 470 - 399) 테스형은 캐묻지[숙고하지] 않는 삶은 살아야 할 가치도 없는 것이라고 했다. 즉 살아도 죽은 자이며 좀비같은 자라고 할 수 있다.
최근 좀비 바이러스 영화가 도배를 하다시피 많아지고 있다. 킹덤등을 봐도 전 세계 사람들을 좀비 걸어다니는 시체나 영화 기생충처럼 여긴다는 사상이 내포되어 있다. 스마트폰으로 스몸비(smombie)란 말이 있는데 사실 여러 정보나 즐거움에 가려져 제대로 현 시국을 파악을 못하는 자들이 늘어나고 있다.
정부의 존재 이유는 민생경제를 위해서이다. 그런데 코로나 방역을 앞세워서 경제를 파탄내고 있다. 그 짓을 전세계와 같이 공범으로 하고 있다. 안전이란 달콤한 이유로 국민들을 절벽으로 몰아가고 있다.
히틀러도 안전과 독일인 생활권을 확보하기 위해 전쟁을 일으켰다. 히틀러에게는 유태인이 코로나 바이러스이며 방역하고 검사하며 격리수용소에 보낼 대상이었던 것이다. 하지만 국민을 편갈라서 특정 종교인, 정치 세력을 바이러스처럼 혐호하게 정부는 이간질시키는 짓을 하고 있다.
누차 말했듯이 정부는 2300명 결핵 사망자에 비교하여 6백명도 안죽은 코로나에 대해서는 완전히 박멸시키지 못하면 안달나듯이 한다. 결과적으로 경제 붕괴이며 민생 파괴, 모든 국민의 삶의 질이 나락으로 떨어졌다. 그 방식이 마스크를 쓰면 공공의 선을 위한다는 듯이 사람에 있는 의로움의 마음을 역이용해서 마스크를 안쓰면 큰 탈이 날 듯이 나찌 전체주의 사회로 이끌어 가고 있다.
정말 마스크가 필요한가? 코로나 방역이 경제 폭망, 우울증으로 인간 자살자 수 증가보다 중요한가? 국가는 보건소등에서 암이나 심장질환, 고혈압등 모든 의료적 조치를 할 의무를 방기하고 오직 여러 코로나 바이러스중 하나인 코비드19만 집중하는 이유는 무엇일까?
이것이 4차산업과 결합된 QR코드, 스마트폰 위치추적 감시 통제 사회를 만드는 전조증상임을 왜 숙고하지 않는가?
코로나19는 이해관계자 자본주의의 리트머스 시험지라고도 하고 ‘코로나19가 4차 산업혁명 가속화할 것’이라고 클라우스 슈밥 세계 경제포럼 회장은 말했다. 이는 코로나 19 바이러스를 환자 대조군으로 나눠 미리 쥐등에게 동물실험을 해서 효과를 보는 전세계적으로 거대한 제약 회사와 같은 시험무대라는 것이다.
나는 소크라테스 형의 말처럼 모든 이런 사건에 대해서 숙고하지 않은 삶을 가치가 없다고 생각된다. 너희들에게는 마스크로 간접적으로 들이마시는 이산화탄소로 오염된 산소조차도 아깝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