5.18을 맞아서 포스팅을 많이 한다.
이번에도 5.18 포스팅이다.
내가 읽은 소설 중, 명작 중의 명작이다.
한강의 장편 소설. '소년이 온다'.
가족의 죽음을 맞이하는 그 심정에 감정 이입되어 5.18을 정면으로 마주하게 되는 느낌.
어쩌면 이런 우아한 문체로, 이리 슬피 인간의 내면을, 비극의 역사를 표현할 수 있을까.
한강의 적나라한 묘사와 기묘한 어감의 조화는 책을 단번에 읽게 했다.
우리 시대의 문학이 표현한 상처란....
그후 우리는 이따금 만나 함께 술을 마셨습니다. 서로가 자격증 시험에 떨어지고, 교통사고를 내고, 빚이 생기고, 다치거나 병을 얻고, 정 많고 서글서글한 여자를 만나 잠시 모든 고통이 끝났다고 믿고, 그러나 자신의 손으로 모든 걸 무너뜨려 다시 혼자가 되는 비슷한 경로를 거울 속 일그러진 얼굴처럼 지켜보는 사이 십년이 흘렀습니다. 하루하루의 불면과 악몽, 하루하루의 진통제와 수면유도제 속에서 우리는 더 이상 젊지 않았습니다. 더이상 누구도 우리를 위해 염려하거나 눈물 흘리지 않았습니다. 우리 자신조차 우리를 경멸했습니다. 우리들의 몸속에 그 여름의 조사실이 있었습니다. 검정색 모나미 볼펜이 있었습니다. 하얗게 드러난 손가락뼈가 있었습니다. 흐느끼며 애원하고 구걸하는 낯익은 음성이 있었습니다.
언젠가 김진수는 나에게 말했습니다.
꼭 죽이고 싶은 사람들이 있었어, 형.
아직 완전히 취하지 않은 그의 검고 깊은 눈이 나를 응시했습니다.
언제가 됐든 내가 죽을 땐, 그 사람들까지 꼭 데리고 갈 생각이었어.
잠자코 나는 그의 잔에 술을 따랐습니다.
그런데 이젠 그런 생각도 들지 않아. 지쳤어.
형, 하고 그는 다시 나를 불렀습니다. 맑은 술이 담긴 유리잔을 내려다보며, 마치 내가 그 속에 있어 말을 거는 것처럼 고개를 들지 않았습니다.
우리는 총을 들었지, 그렇지?
나는 고대를 끄덕이지도, 그에게 대꾸하지도 않았습니다.
그게 우릴 지켜줄 줄 알았지.
스스로 묻고 스스로 답하는 일에 익숙한 듯, 그는 술잔을 향해 희미하게 웃었습니다.
하지만 우린 그걸 쏘지도 못했어.
만약, 내가 그 자리에 있었다면...어머니가 죽고, 여동생이 성폭행 당하고, 아버지가 정신병에 걸렸다면.
그리고 38년이 지났다면.
그 심정은 어땠을까.
생각하니.
도저히 아물수가 없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