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려 벽란도를 망친 정부개입과 삥뜯기 암호화폐에 주는 교훈

in kr •  7 years ago 

800년 전의 ‘디커플링’원인은 빈약한 펀더멘털

송상의 고려 방문은 11세기 초에 시작돼서 11세기 중반 이래 급증했다. 1058년 고려 문종은 탐라와 영암의 재목으로 큰 배를 만들어 송과 통교하려 했지만 내사문하성의 반대에 부딪쳤다. “송의 상인 방문이 매년 이어지고 있고 그를 통해 진귀한 보물이 날로 이르고 있어 중국으로부터 사실상 도움 받을 것이 없다”는 이유였다. 송상인의 왕래가 워낙 잦아 공식적인 교류관계를 틀 필요가 없을 정도였던 것이었다.
​ 이런 정황은 중국 측 기록에서도 확인된다. 『송사(宋史)』에는 1079년 송 정부가 명주의 지방관으로 하여금 ‘고려인과의 거래가 일정 규모 이상인’ 상인들의 활동을 엄격히 관리하고 적절한 허가 없이 활동한 자는 도판(盜販)혐의로 처리케 했다고 나온다. 1088년에는 함부로 바다를 건너 고려와 탐라 등지로 가는 자를 중벌로 처리토록 했다. 고려로 향하는 송상인의 수가 적었으면 나올 수 없는 조치였다.
​ 당대 지식인들도 각종 글을 통해 이 같은 분위기를 전한다. 송 대의 대표적인 ‘혐한파’ 지식인이었던 소식(소동파)은 1090년 역대 정부가 누차에 걸쳐 송상인의 고려행을 제한했다는 점을 강조한 뒤 “복건과 양절 지역에 명을 내려 이전에 발행한 고려행 허가증을 회수하자”고 주장했다.
​ 그러던 것이 1170년 이후 급변했다. 고려 명종조 27년간 단 3회 송상인의 방문이 확인되고, 신종조 7년간엔 단 한 차례도 방문이 없었다. 희종조 7년간도 단 1회, 고종조 46년간 단 2회 발견된다. 뒤를 이어 원종 때도 송상인은 1회 방문에 그치고 충렬왕대인 1278년 마엽의 방문을 끝으로 송상의 고려방문은 중지된다.
​ 송상의 고려방문은 12세기 초까지 10년에 7~8회 방문수를 보이다가, 1110~1120년대에는 2~3회로 급감한 후 1130년대 3회, 1140년대 7회, 1150년대 8회, 1160년대 5회로 회복했다가 절벽으로 떨어지듯 1170년대에 급감한다. 12세기 후반 송상의 방문 빈도는 10년에 1회 미만이었고, 13세기 전반이 되면 50여 년간 단 4회 방문 사례만 확인된다.
​ 몽골제국이 본격적으로 팽창한 13세기에도 역사서에 강남상인(송상)의 등장은 뜸하다. 1205년 8월 송나라 상선이 예성강을 떠나던 시점에 감찰어사 안완이 ‘반출 금지물자’ 지참여부를 조사하곤 금지령을 어긴 송상을 혹독하게 매질했다”는 기록이 있다. 그런데 『고려사』 등에 1210년대에는 기사가 1건도 발견되지 않는다. 1220년대 접어들어서야 1221년 10월 송나라 상인 정문거 등 115명이 고려를 방문하고, 1229년 2월 송나라 상인 도강(都綱·상인의 우두머리)이던 김인미 등 2명이 제주도의 표류민 양용재 등 28명과 함께 왔다는 기사가 있을 뿐이다. 1230년대에도 최우와 송상간 갈등 사례 정도만 확인되고 1240~1250년대에는 송상의 고려방문 기사가 전혀 발견되지 않는다.
​ 이처럼 송상의 방문이 급감한 이유는 무엇일까. 초창기에는 여러 원인 중에서 송상들이 고려 정부로부터 일종의 ‘부당한 대우’를 받은 점을 주목했다.
​ 대표적인 것이 1230년대 최우 집권 당시의 일화다. 당시 고려 정부는 송상인들의 우두머리인 도강에게 포(布)를 주고 물소뿔(水牛角)을 사오게 했다. 그런데 송상이 본국에서 물소뿔 매매를 금한 탓에 비단을 대신 가져왔다. ‘계약위반’이라며 펄쩍 뛴 고려정부는 송상의 처를 가두고는 그가 가져온 비단을 압수해 모조리 잘라버린 후 돌려줬다. 결국 송상은 물소 4두를 밀수해 바쳤고 최우는 그에 대한 대가로 인삼 50근과 포 300필을 제공했다. 공교롭게도 이일이 있은 뒤 10여 년간 송상의 방문은 확인되지 않는다.
​ 1260년 10월에도 대부시(大府寺·궁중의 재화를 관리하던 관청)와 내시원(內侍院·내시가 사무를 보던 곳)의 행패로 손해를 본 송상 진문광 등이 견디다 못해 당대의 무신집정이었던 김인준에게 호소를 했다. 『고려사』에 따르면 당시 대부시는 경시(京市)에서 물품을 구할 때 값을 치르지 않고 물품을 강탈하는 것으로 유명했다. 송 상인들은 “돈도 안내고 능라사견(綾羅絲絹·비단) 6000필을 가져가니 빈주머니로 돌아가게 생겼다”고 불만을 토했다. 하지만 이 같은 ‘고초’는 중세시대 전 세계 어디서나 흔한 일이었고, 그보다 큰 이문을 남길 수 있다면 교역감소의 원인이 되진 않았을 것이란 반론에 대한 설명이 부족하다.
​ 몽골제국의 압박에 따른 교역 위축이라는 설명도 있다. 실제 몽골제국은 남송과 고려의 제휴를 우려해 양국 교류를 견제하기도 했다. 1270년 12월 원은 고려에 보낸 조서 등을 통해 고려와 남송, 일본 간 ‘교통’ 현황을 따지고 감시했다. 1230년대 고려와 몽골간의 교전에 고려정부가 강화도로 들어간 것도 강남상인의 한반도 방문 위축에 영향을 미쳤을 것이다.
​ 그러나 1200~1220년대의 경우엔 1218~1219년을 제외하곤 그 같은 불안 요인도 없었지만 송상의 방문은 뜸했다. 전쟁이 영향을 미치긴 했지만 교역위축의 제1요인은 아닐 수 있다는 얘기다. 몽골과의 전쟁 전부터 이미 남송 상인들의 고려 방문빈도는 낮아졌다.
​ 중국 상인들의 한반도 방문이 뜸해진 것은 다른 큰 원인을 찾아야 한다는 지적이 힘을 얻고 있다. 바로 서역인 들이 동방으로 진출하고 중국 중심 동아시아 교역권의 성격이 크게 변했다는 설명이다.
​ 몽골제국의 팽창과 맞물려 서아시아의 각종 물화와 상품이 중국으로 대량 유입되기 시작했다. 위구르 토산품인 옥과 호박, 달서피, 마구, 말, 낙타가 쏟아져 들어왔다. 위구르 인에 의해 중개된 야크 꼬리, 산호, 향약 등도 중국에 유입됐다. 송 정부는 이들 물자를 ‘수출입 금지물자’로 지정해 송나라 내에서 거래되는 것에 제동을 걸기도 했지만 힘이 부족했다.

세계사속 경제사, 돈 성 권력 전쟁 문화로 읽는 3000년 경제 이야기, 글항아리, 김동욱, 페이지 135-13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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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려 벽란도는 세계적인 무역항이었다. 잘 나가고 아라비아 상인까지 들락거렸다. 그런데 무신정권 정부가 무역을 간섭하고 혐의를 트집잡아 삥듣는 방법을 써서 완전히 고려의 무역이 소위 작살이 났다. 예를 들어 김두한이 일제강점기때 종로에서 한국 점포들을 관리를 해주었다. 그런데 일제 일본인보다 관리비가 싸다고는 하지만 속칭 삥을 뜯은 것은 뜯은 것이다.
실제 한국 정부도 비슷한 짓을 하고 있다. 최근 기사를 보니 부동산 보유 세금을 올리는 듯한 내용을 본다. 많은 부동산을 보유한 사람을 도덕적으로 비난해 대적하고 여론 몰이를 해서 이제 세금을 거두려는 모양이다. 물론 갭투자를 하거나 많은 부동산을 가진 사람은 부동산 가격을 올리며 서민 주택 구매에 피해를 주는 사람이다. 그런데 비트코인등 암호화폐 투자자가 어떤 피해를 주는가?
필자는 피해를 주는 것이 전혀 없다고 본다. 암호화폐 거래소가 돈을 벌어 정부가 그것으로도 세수가 충분하다. 또 투자로 암호화폐는 달러에 준하니 외화 벌이를 한다. 김정은 정권이 해킹을 하면서 한국 암호화폐를 훔쳐가려는데 불을 켜고 있다.
아무튼 역사를 보면 정부의 무역 개입이 벽란도 외국과 교류를 끊고 결국은 조선시대부터는 명나라 해금령을 채택해 폐쇄적인 국가가 되어 우물안 개구리로 일제에 먹혀버린 비운의 역사를 시작했다. 어짜피 현 2018년 1월에는 국경은 의미가 없다. 만약 정부에서 암호화폐를 막으면 폴로닉스, 비트렉스 같은 외국 싸이트에 암호화폐 입출금해 옮겨 거기서 거래하면 된다. 그러면 모처럼 채용한 거래소 상담원이나 직원들 대규모 실업 사태가 벌어져 문재인 정부의 일자리 창출은 수포로 돌아갈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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맞아요.
정부가 개입할때 하지 말아야 할때,
무엇보다 이번 흐름은 정부가 도와야 할때라고 생각하는데

또 우물안의 개구리의 역사가 반복될까 걱정이 되네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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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작 잡아야 할 것은 가만히 두고 불필요한 규제에만 열을 올리는 정부... 800년전이나 달라진게 없네요ㅠ 좋은 글 감사드립니다~

옳은 말씀이십니다

@imagediet 님의 좋은 글 잘 읽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