의사였던 호츠버그가 <의사의 흰색 가운-그 역사를 돌아보며>라는 글에서 밝힌 바에 따르면 흰색 가운은 100년밖에 안되고 전에는 성직자와 같은 검은색 정장을 입었다.
호츠버그는 흰색 가운을 입은 것에 두가지 사실을 원인으로 들었다.
첫째 의사들이 실험실의 과학자들을 모방한 것이었다. 18, 19세기의 과학자들은 실험실에서 일할 때 몸에 불결한 물질이 묻는 것을 피하려고 흰색 가운을 걸쳤다. 과학자들이 흰색 근무복을 선택한 이유는 공정함과 관계있다.
candor는 공정, 공평을 뜻하는데 그 뜻은 진리 truth다. 기원은 라틴어의 ‘candidus’로 원래는 흰색을 가리켰는데 로마제국의 공무원들이 흰색 외투를 입었던 데서 유래한다. 실험실에서 일하는 모든 과학자들의 업무는 원래 사물의 진리를 탐구하는 것이므로, 흰색 가운을 근무복으로 택하게 된 것은 자여스러운 일이었다. 오늘날의 실험실에서도 이런 전통은 변하지 않고 전해 내려온다. 20세기 이전에는 과학자의 지위가 의사보다 훨씬 높았으며 사람들의 존경을 훨씬 더 많이 받았다는 사실이다.
둘째 19세기의 영국의사 리스터가 처음으로 수술할 때 소독하는 조치를 취한 것과 관계있다. 항생제가 아직 발견되지 않았던 당시에 이런 조치 덕분에 수술중에 감염되는 일이 많이 줄어들었다. 사람들은 이로 인해 청결이 중요하다는 사실까지 알게 되었는데 복장의 색깔 가운데 깨끗함과 오염되지 않음을 가장 잘 표시해주는 것이 바로 흰색이었으므로 근무 중에 깨끗한 흰색 가운을 입게 된 것이다. 흰색 가운은 소독과 청결 조치에 아무 문제가 없음을 보여주어 사람들을 더욱 안심시킬수 있었다.
새부리 가면을 쓴 의사와 이발소 의사, 시대의 창, 쑤상하오 지음 김성일 옮김, 페이지 162-164
당연한 수술로 별 위험 없이 수행되는 복부수술도 시행초기에는 첨단적인 것으로 사망률도 높고 수술방법도 표준화되어 있지 않아 많은 사람들의 우려를 자아내었다. 그렇다고 첨단기술 의학을 무조건 찬양하는 것도 올바른 자세는 아닐 것이다.
외과수술이 점점 안전한 것으로 인식되고 확인되기 시작하였으며, 또한 수술의 영역도 더욱 확대되면서 의료계내에서나 사회 속에서 외과의사들의 지위도 함께 올라갔다. 그리고 이러한 현상은 의료 전체와 의사 일반에도 해당되는 것이었다. 의학과 의사에 대한 신뢰가 더욱 두터워지고 지위가 올라감에 따라 가정이나 교회에서 가족과 성직자들에 의해 행해지던 역할 가운데 많은 부분이 병원과 의사들의 차지가 되었다. 즉 사회의 의료화(medicalization)가 본격화된 것이다. 그것은 20세기에 와서 더욱 뚜렷해지는 현상이지만 질병의 치료뿐만 아니라 출생과 사망 등 인간 삶에 관련된 많은 것들이 의료영역으로 이전하게 되었다.
산과영역도 외과와 마찬가지로 마취술과 소독멸균법 등 새로운 성과들을 받아들였다. 난산뿐만 아니라 순산 때에도 산모가 겪는 통증은 대단하다. 따라서 앞에서 살펴본 대로 심프슨이 분만시의 통증을 줄이기 위한 적절한 마취제를 찾기 위해 온갖 노력을 기울인 것도 놀랄 일이 아니다. 클로로포름이 점차 널리 쓰이게 되었지만 분만통을 줄이기 위해 아편을 사용하는 경우도 적지 않았다. 클로로포름이나 아편류는 태어나는 아기들에게 때때로 부작용을 일으키기도 하였다. 그러나 이 시기의 가장 중요한 변화로 여겨지는 일은 분만이나 산과수술시 통증을 줄이기 위해 사용될 마취제나 진정제를 개발하기 위한 노력이 정당한 것으로 인정받게 되었다는 사실이다. 그러한 사회인식의 변화 없이는 새로운 개발도 기대하기 어려울 뿐 아니라 개발에 성공하였다 하더라도 실제임상에 활용하는 과정에서 커다란 장애에 부딪칠 것이기 때문이다.
출산 직후 산모들에게 올 수 있는 위험 역시 출혈과 감염이다. 특히 출산뒤의 산욕열로 많은 산모가 죽었고, 또 큰 고생을 겪었다. 오스트리아 비엔나의 의사 젬멜바이스(Ignaz Philipp Semmelweis, 1818-1865)는 자신이 근무하는 병원에서 분만하는 임산부들이 산과 병동에 들어오기를 꺼려하며, 그것은 그 병동에서 산욕열로 죽는 산모가 많다는 사실 때문이라는 이야기를 들었다. 젬멜바이스는 그러한 이야기를 흘려 듣지 않고 면밀히 관찰 검토한 결과, 산욕열이나 패혈증으로 사망한 임산부를 부검하는 자리에 있었던 의사나 의과 대학생이 분만을 거드는 경우 감염에 의한 사망이 많다는 사실을 확인할 수 있었다. 젬멜바이스는 의사나 학생들이 부검실로부터 병동의 산모들에게 감염증을 옮겨 주는 구실을 한다는 결론을 내리고 그들에게 손을 청결히 씻을 것을 주장하였지만 한낱 웃음거리가 될 뿐이었다. 그 후 부다페스트대학의 산과 교수의 자리를 맡기도 하였지만 그 때도 그의 주장은 받아들여지지 않고 조소와 비난의 대상이 될 뿐이었다.
젬멜바이스는 나중에 세균학자들이 밝혀 낼 증거를 제시하지 못했기 때문에 의사사회의 경멸과 악평 속에 그 부담을 이겨 내지 못한 채 정신병동에서 쓸쓸히 죽어 갔다. 오늘날 부다페스트에는 젬멜바이스 의과대학교가 있어 그의 업적을 기리고 있지만 생존 당시에는 엉뚱한 주장을 펴는 이상한 사람으로 취급받는 비운을 겪었던 것이다.
젬멜바이스의 고통은 그에게만 그친 것이 아니었다. 앞 절에서 보았던 맨체스터의 화이트와 스코틀랜드의 고든(Alexander Gordon)도 마찬가지 주장을 하였지만 아무도 거들떠보지 않았다. 그리고 미국 보스턴의 웬들홈즈도 비슷한 처지를 겪었다. 홈즈는 1843년 보스턴의 어느 의사들 모임에서 「산욕열의 감염성에 관하여」(On the Contagiousness of Puerperal Fever)라는 논문을 발표하였다. 그는 그 자리에서 분만에 임할 의사는 전염성 질병을 앓고 있는 다른 환자를 보아서는 안되며 전염병으로 죽은 사람을 부검하는 자리에도 가지 말 것을 주장하였다. 또한 의사들에게 손톱을 청결히 하고 손을 깨끗이 씻을 것을 강조하였다. 이러한 주장을 들은 의사들은 홈즈가 자신들을 근거도 없이 비방한다고 생각하여 신랄하게 홈즈를 공박하였다. 사태의 심각함을 알아차린 홈즈가 “손이 깨끗한 신사도 병을 옮길 수 있다.”라는 변명조의 답변을 하였지만 분노한 의사들을 달래기에는 힘에 부쳤다.
파스퇴르 등 세균학자들과 리스터 등 임상가들에 의해 마침내 산욕열의 정체가 드러나고 또한 소독멸균법으로 질병의 전파를 방지할 수 있다는 사실이 밝혀졌다. 파스퇴르와 리스터보다 얼마 전도 아닌 젬멜바이스의 시대에는 병원에 따라 10% 이상의 산모들이 감염병으로 사망하였다. 그 때문에 산과병원이나 병동이 폐쇄되는 일까지 있을 정도였다. 실제로 1877년 런던 남쪽의 한 산과 병원은 2년 가까이 문을 닫고 있었다. 병원 당국은 가까운 킹즈컬리지병원에 근무하던 리스터에게 자문을 구하였고 리스터는 자신의 소독법을 소개하여 문제를 해결하였다. 리스터의 소독법이 보급됨에 따라 산욕열로 인한 사망은 급속히 줄어들었다.
외과와 산과의 발전 [外科-産科-發展] (의학개론 1(의학의 개념과 역사), 서울대학교출판부)
젬멜바이스가 수술전 손을 씻는 청결함을 강조하다가 정신병원에 갇혀 불운하게 사망한 역사가 불과 150여년전에 일이다.
아무튼 백색 가운을 입은 것도 소독 청결 이후에 발달했는데 몸의 피부에 백색이 발생하는 것은 좋지 않을 수 있다. 물론 처음에는 붉은색으로 출발하다가 흰색으로 바뀌는 튼살이 존재한다. 흰색 튼살은 절대 좋아질수 없는 편견과 달리 02-3482-9975 자향미한의원의 튼살침인 ST침 치료로 원래 피부 상태에 가깝게 복구가 가능할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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