절대 권력자는 자기 것을 뺏으려드는 자도 공격하지만, 권력을 뺏을 힘을 가진 자도 미리 싹을 자른다. 권력의 존립을 위해서는 한 치의 양보도 없다. 권력의 비정함은 여기서 나온다. 영조는 평소 사도세자에게 냉정하고 엄격했다. 자식을 죽일 정도였으니 더 말이 필요 없다. 영조는 종묘와 사직을 위한다면서 자식에게 죽음을 요구했다. 하지만 본질을 보면 그가 말한 사백 년 종사는 다름 아닌 자신의 권력이다. 권력의 핵심인 자기 자신에 대한 도전은 털끝만 한 것이라도 용서하지 않는다. 자식이라도 봐줄 수 없다. 평범한 아버지로서는 도저히 납득할 수 없는 일이지만, 권력의 일반적 논리에 따르면 이해하지 못할 일이 아니다. 비정함은 정조 역시 다르지 않았다. 정조는 즉위하자마자 외가를 박살냈고 그 과정에서 어머니까지 속였다. 나중에는 친구처럼 가까웠던 홍국영마저 죽음으로 몰았다. 권력자에게는 친구도 집안도 부모도 자식도 없다. _본문에서(327~8쪽)
“아, 과인은 사도세자의 아들이다!”
사도세자 사망 250주기, 다시 쓰는 묘지명
2012년은 사도세자가 죽은 지 250년이 되는 해다. 사도세자의 죽음을 세자의 시각에서도 보아야 하겠지만 그것을 넘어서서도 볼 필요가 있다. 그동안 사도세자는 ‘불쌍한 사도세자’ 또는 ‘미치광이 세자’였을 뿐 누구도 그의 죽음을 제대로 신원해주지 못했다. 250년이 지난 오늘에서야 우리는 비로소 『권력과 인간』을 통해 사도세자의 죽음을 담담하게 받아들일 수 있는 기회를 갖는다.
전쟁으로 황폐해진 조선이 다시 한 번 기강을 잡는 시기이자 실학의 융성으로 조선의 르네상스라 칭할 수 있었던 영정조 시대. 영조와 정조는 자기 주변 사람에게는 물론 자기 자신에게도 매우 엄격했다. 사치를 멀리하고 소박한 삶을 추구했으며 누구보다 성실했다. 어쩌면 그토록 냉정하고 엄격했기에 최상의 통치가 이루어졌을지도 모른다. 하지만 영조와 정조라는 빛 뒤에는 사도세자라는 그림자가 있었다. 이 그림자를 제대로 이해하지 않고서 영정조 시대를 온전히 이해할 수는 없다. 사도세자 죽음의 이면을 읽어가다보면 과연 우리가 그동안 알던 성군 영조와 개혁군주 정조가 맞는지 자꾸만 의문을 갖게 된다. 그렇게 조금씩 알게되는 영정조 시대의 ‘불편한 진실’. 『권력과 인간』을 통해 만나는 조선의 어둠은 불편하고 아프다. 권력을 위해 서로 이전투구를 하고, 권력 앞에서는 부모도, 자식도, 형제도 없다. 아버지 영조는 아들 사도세자를 뒤주에 가둬 죽이고, 아버지 사도세자를 잃은 아들 정조는 아버지를 신원하기 위해 사실을 교묘히 편집해 아버지상을 새로이 만들어낸다. 그 과정에서 수많은 사람들이 희생되고, 진실은 조금씩 왜곡된다. 『권력과 인간』 속 비정한 세계를 읽어가다보면 가슴 한 켠이 답답해진다. “내가 권력이 되고 권력이 내가 되는” 상황, “원래 자기에게 주어진 것이니 오로지 자기만이 가질 자격이 있다는 식”의 비약. 떠날 때를 알지 못하고 권력에 집착하는 이들의 모습을 보면 그 고위(孤危)함에 마음이 절로 무거워진다. 하지만 이렇게 권력을 통해 인간을 읽는 과정을 통해 독자는 인간을 더 깊이 있게 이해하게 되며, 나아가 더 밝은 역사로 나아갈 수 있는 힘을 얻게 된다. 시대를 넘어 18세기 궁중사를 읽어야 하는 의의를 여기서 찾을 수 있을 것이다.
비정함은 사람을 외롭게 한다. 자기 것을 나눌 사람이 없으니 혼자일 수밖에 없다. 주위에 많은 사람이 모여 웃고 떠들어도 자기가 그들에게 진정을 나누지 않는 한 그들도 진심을 줄 리 없다. 이렇게 혼자인 몸은 자연 위태로울 수밖에 없다. 늘 권력의 안위를 염려해야만 한다. 권력자는 혼자 고위한 데 불과하지만, 의심 많은 권력으로 인해 권력 주변에는 고통이 끊이지 않는다. 권력자의 분노에 두려워하고, 속임수에 실망하면서, 때로는 울고 때로는 가슴을 친다. 그러면서도 권력 주변에서 물러날 때를 알지 못하면 마침내 바닥까지 추락한다. 그것을 뻔히 알면서도 쉽게 떠나지 못하는 것이 권력이다. 너무도 아름다운 보석이어서 떠날 때를 몰라서도 못 떠나고 알고도 차마 못 떠난다
열일곱번째 강의. 평양을 다녀오다
열여덟번째 강의. 광증의 심리학적 문제
4부. 죽음과 사후
열아홉번째 강의. 나경언의 고변
스무번째 강의. 뒤주에 갇히던 날
스물한번째 강의. 세자의 죄명
스물두번째 강의. 왜 하필 뒤주인가?
스물세번째 강의. 죽음으로 가는 길
스물네번째 강의. 아들 죽인 아버지의 심정
스물다섯번째 강의. 금등지서의 비밀
스물여섯번째 강의. 세자 죽음의 책임
스물일곱번째 강의. 처가의 책임
5부. 정조의 길
스물여덟번째 강의. 정조의 어린 시절
스물아홉번째 강의. 소년 정조
서른번째 강의. 작은 임금의 일탈
서른한번째 강의. 삼불필지와 등극 저해
서른두번째 강의. 관련기록 세초
서른세번째 강의. 집권 초의 정조
서른네번째 강의. 정조의 통치 철학
서른다섯번째 강의. 정조의 죽음과 『한중록』
서른여섯번째 강의. 혜경궁, 철의 여인
나오며
보충수업
숙빈 최씨의 출신 논란|연잉군 초상―불안과 우수의 표상|궁중 요리의 진수|사도세자의 친필시|사도세자의 초상|뒤주 소동
부록
Ⅰ. 선행 저술 비판
첫번째 강의. 사도세자 당쟁희생설 비판
두번째 강의. 길 잃은 역사대중화―이덕일의 『사도세자의 고백』에 대한 비판
세번째 강의. 이덕일의 반박에 대한 비판
Ⅱ. 궁궐 안내
첫번째 강의. 조선 궁궐 돌아보기―사도세자 유적 답사
두번째 강의. 임금 침실의 풍경―「대조전 수리시 기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