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in kr •  4 years ago 

편작이라는 사람은 발해군(勃海郡)① 정인(鄭人)②이다. 성은 진(秦)씨이고 이름은 월인(越人)이다. 젊었을 때 여사(旅舍)의 관리인이 되어 살았다. 여사의 손님 중에 장상군(長桑君)이란 사람이 들리곤 했다. 유독 편작만이 그를 기인이라고 여겨 항상 공경하는 태도로 모셨다. 장상군도 역시 편작이 보통 사람이 아니라는 사실을 알았다. 장상군이 편작의 여사에10여 년을 드나들다가 어느 날 편작을 은밀히 불러 자기 앞에 앉히고 말했다.

「나에게는 의술에 대한 비방(秘方)이 있다. 내가 나이가 이미 늙어 그것을 그대에게 전해주려고 한다. 그대는 절대 이 사실을 다른 사람에게 발설하지 말라.」

「삼가 말씀을 따르겠습니다.」

이어서 장상군이 품속에서 주머니를 꺼내어 그 속에 든 약을 편작에게 주면서 말했다.

「이 약을 먹을 때 풀잎에 맺힌 이슬을 받아서 함께 마시면30일 만에 모든 사물을 꿰뚫어 볼 수 있다.」

장상군이 그의 비방이 적힌 의서를 모두 편작에 건네주고는 홀연히 사라져 버렸다. 장상군은 아마도 보통사람이 아니었음이 틀림없다. 편작이 장상군의 말대로 그 약을 복용한지30일이 되자 담장 뒤의 사람이 보이기 시작했다. 그런 능력으로 병자를 진료하자 오장육부와 병이 어떻게 생겼는지를 볼 수 있게 되었다. 특히 진맥을 잘 보는 명의로 이름을 얻게 된 편작은 의원이 되어 제(齊)나라와 조(趙)나라 사이를 오가며 사람들의 병을 치료했다. 편작이라는 이름은 그가 조나라의 있을 때 얻었다.

때는 당진(唐晉)의 소공(昭公) 때이다. 소공은 기원전532년에 즉위하여526년에 죽는 당진의 군주이다. 당시 당진의 국내 정세는 여러 대부들의 세력이 강해지고 공실의 세력이 약했다. 대부 조간자(趙簡子) 앙(鞅)이 당진의 정권을 잡아 전단하고 있었다. 조간자가 병이 들어5일 동안이나 사람을 알아보지 못하자 당진의 대부들이 두려워하여 편작을 불러 살펴보게 했다. 편작이 당도하여 조간자를 한 번 쳐도 보고는 밖으로 나갔다. 조간자의 가신 동안우(東安于)③가 뒤따라가서 묻자 편작이 대답했다.

「조공(趙公)의 혈맥이 이미 정상으로 돌아왔습니다. 여러분들은 크게 걱정하지 않아도 됩니다. 옛날 섬진(陝秦)의 목공(穆公)이 이와 같은 병에 걸렸다가7일 만에 깨어난 적이 있었습니다. 잠에서 깨어난 목공(穆公)이 곁에 있던 공손지(公孫枝)④와 자여씨(子與氏)⑤ 삼형제에게 말했습니다.

『나는 상제(上帝)가 살고 있던 곳에 가서 매우 즐겁게 지내고 왔다. 내가 그곳에서 오래 머물렀던 이유는 마침 배워야할 일이 있었기 때문이었다. 상제가 나에게 ‘앞으로 당진에서 큰 난리가 나서 오세(五世)⑥에 이르도록 안정되지 못하다가 후에 영명한 군주가 나타나 패주의 자리에 오르게 되나 그 패주(覇主)는 얼마 살지 못하다가 죽고 그의 아들이 장차 천하를 호령하면서 너의 나라 섬진(陝秦) 사람이라면 남녀 구별 없이 죽이게 되리라!.’라고 말했다.』

공손지가 목공의 말을 받아 적어 보관했습니다. 당진은 헌공(獻公) 때 내란이 일어났고, 문공(文公) 때 패주가 되었습니다. 그리고 문공의 아들 양공(襄公)은 섬진의 군사들을 효산(殽山)의 험지에서 전멸시키고 개선한 후에 음란한 생활을 했습니다. 이것은 여러분들도 들어서 익히 알고 있는 일입니다. 지금 조공의 병도 이와 같으니3일이 지나기 전에 깨어나 병이 나아, 그때 필시 여러 대부들에게 전하는 말이 있을 것입니다.」

이윽고 이틀하고 한나절이 더 지나자 조간자(趙簡子)가 깨어나서 여러 대부들에게 말했다.

「나는 상제가 있는 곳에 들러서 매우 즐겁게 보내고 왔다. 여러 신들과 상천(上天)의 중심지인 균천(鈞天)에서 놀았다. 천하의 모든 춤과 함께 광락(廣樂)⑦을 아홉 번이나 연주하였다. 삼대(三代)의 음악과는 같지 않았지만 그 소리는 내 마음을 감동시켰다. 곰 한 마리가 어디선가 나와서 나를 잡아가려 하니 상제가 나에게 활로 쏘라고 명했다. 곰이 화살에 맞아 죽었다. 다시 말곰이 나에게 다가와서 내가 다시 활로 쏴서 맞혀 죽였다. 상제가 기뻐하며 나에게 대나무로 만든 네모난 바구니 두 개를 주었는데 모두가 한 쌍씩이었다. 또 내가 보니 내 아들이 상제 곁에 앉아 있었다. 천제가 나에게 적(翟) 땅이 원산지인 개 한 마리를 주면서 ‘네 아들이 장성하거든 이 개를 주라!’고 말했다. 상제가 또 나에게 이르기를 ‘당진(唐晉)은 세월이 갈수록 점점 더 쇠약해져 이후7세에 이르게 되면 망하고 말 것이다. 영씨(嬴氏)의 섬진(陝秦)이 강성해져 주나라 사람들을 범괴(范魁)의 서쪽에서 크게 무찔러 천하를 차지하게 되나 섬진 또한 나라를 영원히 유지하지는 못할 것이다.⑧」

동안우(東安于)가 조간자의 말을 받아 적어 보관했다. 다시 동안우가 편작이 한 말을 보고하니 조간자는 그에게 전답4만 무(畝)를 상금으로 주었다.

그 후에 편작이 괵국(虢國)⑨을 지나가게 되었는데 그때 마침 태자가 죽었다. 편작이 괵국의 성문 밑에 당도하여 방중술을 좋아하던 괵국(虢國)의 중서자(中庶子)⑩를 만나 물었다.

「태자는 무슨 병으로 죽었습니까? 온 나라 안이 잡귀를 물리쳐 태자의 병을 고치려고 올리는 제사로 크게 소란스럽습니다. 」

「태자의 병은 혈액 순환과 호흡이 일정치 않아 서로 뒤엉키어 밖으로 내보내지 못하고 폭발한 결과 내상을 입어 생긴 병입니다. 정신으로 제어하지 못한 사기(邪氣)가 몸 안에서 계속 쌓여 밖으로 발산하지 못했습니다. 그래서 양(陽)은 느리고 음(陰)은 급하게 되어 갑자기 쓰러져 죽게 되었습니다.」

「태자가 죽은 지 얼마나 되었습니까?」

「오늘 아침 새벽 첫 닭이 울었을 때였습니다.」

「시신은 염을 했습니까?」

「아직 안 했습니다. 태자가 죽은 지 아직 반나절도 안 되었습니다.」

「나는 발해(渤海)에서 온 성은 진(秦)이고 이름은 월인(越人)이라는 사람입니다. 발해의 정(鄭) 땅에 있는 집에 살면서 태자의 위광(威光)을 존경해 왔으나 아직 만나 뵙지 못했습니다. 태자께서 불행히도 돌아가셨다고 하나 제가 능히 살릴 수도 있을 듯합니다.」

「선생은 허망된 말을 하시지 마십시오. 어떻게 이미 죽은 사람을 살릴 수 있단 말입니까? 제가 알고 있는 바는 옛날 상고(上古) 시대 때 유부(踰跗)⑪라는 의원이 병을 치료하는데 탕액(湯液)이나, 예쇄(醴灑), 참석(鑱石), 교인(撟引), 안올(案扤), 독위(毒熨)⑫ 같은 기구도 없이 잠시 옷을 풀어 헤쳐 병세를 살폈으며, 오장의 수혈에 따라 피부를 잘라 살을 열어 막힌 맥을 소통시키고 끊어진 힘줄을 이었습니다. 뇌수를 안마하여 황막(荒幕)⑬을 씻어 통하게 하고 장과 위와 함께 오장도 깨끗이 씻어 정신을 다스리어 신체를 조정했습니다. 선생의 의술이 이와 같은 경지에 도달해 했다면 태자를 살릴 수 있다고 하겠으나, 할 수도 없으면서 태자를 살려낼 수 있다고 말한다면 어린아이인들 믿겠습니까?」

편작이 중서자의 말을 듣고 한참동안 대답하지 않고 있다가 이윽고 하늘을 쳐다보며 한탄의 말을 했다.

「대부께서 말한 의술이란 ‘대나무 구멍을 통하여 하늘을 쳐다보는 격이며 깨진 틈 사이로 아름다운 그림을 보는 일’⑭과 같습니다. 이 월인(越人)의 의술은 맥을 짚어보거나, 얼굴빛을 살펴본다거나, 소리 같은 것을 듣지 않고도 그 병이 어디 있는지를 말할 수 있습니다. 병이 양(陽)에 있다는 사실을 알게 되면 그 음(陰)을 미루어 알 수 있고, 음(陰)에 있다는 사실을 알게 되면 그 양에 대해 논할 수 있습니다. 병의 징후는 그 표면에 드러남으로 천리 밖에 나가보지 않아도 무슨 병이라고 결론을 내릴 수 있는 경우가 지극히 많은데, 구태여 한쪽 편에서만 쳐다 볼 필요는 없습니다. 대부께서 나의 말을 진실되지 않다고 생각하시거든 한 번 시험 삼아 저로 하여금 진맥을 보게 하십시오. 마땅히 그의 귀에는 소리가 울리고, 코는 벌렁거리고 있음에 틀림없습니다. 그의 두 다리를 어루만지면서 음부에 이르게 되면 아직도 따뜻한 온기가 남아 있을 것입니다.」

중서자가 편작의 말을 듣더니 눈에는 현기증을 일으킨 듯 눈까풀을 껌벅거리지도 못하고, 혀는 입천장에 붙어버린 듯 움직이지 못할 정도로 깜작 놀란 표정을 지었다. 중서자가 궁궐 안으로 들어가 편작의 말을 괵나라 군주에게 고했다. 괵나라의 군주가 매우 놀라 궁궐 문 앞으로 달려나와 편작을 보고 말했다.

「평소에 선생의 명성을 들은 지 오래나 아직까지 존안을 뵐 수 있는 기회를 갖지 못했습니다. 이렇게 선생께서 우리 괵(虢)과 같은 작은 나라를 방문해주시어 태자의 병에 대해 말씀해 주시니 변방에 치우친 나라의 군주와 신하들에게는 매우 다행스러운 일입니다. 이제 선생이 오셨으니 죽은 태자가 살아나겠지만, 만약 선생이 오시지 않았더라면 버려져 계곡을 메워 영원히 살아나지 못할 뻔했습니다.」

괵군이 말을 미처 마치지도 못하고 한탄을 하는데, 가슴이 막히고, 혼백과 정신이 흩어지 듯, 자꾸만 흐르는 눈물은 눈썹을 적시고, 스스로를 억제하지 못하여 얼굴 모습은 일그러져 비통한 마음을 멈추지 못했다. 편작이 보고 말했다.

「태자가 걸린 병은 소위 시궐(尸厥)이라는 이름의 병입니다. 그것은 양기(陽氣)가 음기(陰氣) 속에 들어가 위를 움직이고, 중경(中經)과 유락(維絡)⑮을 얽히게 하여 막히게 하고, 한편 삼초(三焦)⑯의방광 부분까지 내려앉았습니다. 그 때문에 양맥(陽脈)은 아래로 떨어지고 음맥(陰脈)은 위에서 다투며 회기(會氣)⑰는닫혀 통하지 못합니다. 음맥은 위로 올라가고, 양맥은 몸 속을 순행하여 아래로 내려와 고동은 하지만 일어나지 못하고, 음기는 바깥으로 올라가 끊어져서 음기로서의 역할을 하지 못하고 있습니다. 사람의 몸 윗부분에는 양기와 단절된 락맥(絡脈)이 있고 아래에는 음기가 끊어진 적맥(赤脈)이 있습니다. 음기가 부셔지고, 양기와 끊어진 맥이 어지러워졌기 때문에 몸은 움직이지 않고 죽음과 같이 되었지 아직 완전히 죽은 상태는 아닙니다. 대체로 양이 음의 지란장(支蘭藏)⑱에들어가면 사람은 죽습니다. 이러한 여러 가지 일들은 다 오장이 몸속에서 역상(逆上)할 때에 갑자기 일어납니다. 훌륭한 의원은 증세를 잡아내지만 평범한 의원들은 의심하고 위태롭다고 생각합니다.」

편작은 제자 자양(子陽)을 시켜 침(鍼)을 숫돌에 갈게 하고, 그것으로 몸의 외부에 있는 삼양(三陽)과 오회(五會)⑲를찔렀다. 이윽고 얼마간의 시간이 지나자 태자가 소생했다. 편작이 다시 또 다른 제자 자표(子豹)를 시켜 오분(五分)의 고약을 바르고 팔감(八減)의 방법으로 약제를 처방하여 번갈아 가며 두 겨드랑이 밑에 바르게 하였다. 마침내 태자가 자리에서 일어나 앉을 수 있게 되었다. 다시 태자의 양기와 음기를 조절하고, 탕약을20여 일간 먹이니 본래의 건강을 찾게 되었다. 이 일로 인하여 세상 사람들이 편작은 능히 죽은 사람도 살려낼 수 있다고 말하였다. 그러나 편작은 자기가 태자를 살린 일데 대해서 다음과 같이 말했다.

「월인(越人)이라고 해서 어찌 죽은 사람을 살릴 수 있었겠는가? 그것은 스스로 당연히 살 수 있는 사람을 월인이 일어나게 하였을 뿐이다.」

편작이 제나라에 들려 제환공(齊桓公)⑳의손님이 되어 묵었다. 환공을 배알하기 위해 조당에 들렸다가 말했다.

「군주님께서는 피부와 근육 사이에 질환이 있습니다. 치료하지 않으면 장차 깊어집니다.」

그러나 환공은 편작의 말을 믿지 못하고 말했다.

「과인은 병이 없습니다.」

편작이 조당 밖으로 물러나가자 환공이 좌우의 신하들에게 말했다.

「의원이라는 사람이 상금 탐하기를 심하게 하여 병이 없는 사람에게 병이 있다고 말해 공을 얻으려고 한단 말인가?」

그리고5일 후에 편작이 다시 조당에 나와 환공을 살펴보고 말했다.

「군주님의 병은 이제 혈맥에 있게 되었습니다. 빨리 치료하지 않으면 병은 더 깊어집니다.」

환공은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그리고 나서 다시5일 후에 편작이 조당에 나와 환공을 보고 말했다.

「군주님의 병은 이제 위장 사이에 있습니다. 치료하지 않으면 장차 저로서도 어쩔 수 없습니다.」

환공은 그래도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편작이 나가자 환공은 편작에 대해 매우 불쾌하게 생각했다. 그 후5일 후에 편작이 조당에 나와 환공을 살펴보더니 아무 말도 하지 않고 행장을 꾸려 다른 나라로 길을 떠나 버렸다. 환공이 사람을 보내 그 까닭을 물어보게 하자 편작이 대답했다.

「병이 피부에 있을 때는 탕약과 바르는 고약(膏藥)으로 치료할 수 있습니다. 그 병이 깊어져 혈맥에 있게 되면 침을 사용하여 치료할 수 있습니다. 그리고 병이 장과 위 사이에 있게 되면 의술을 이용하면 됩니다. 그러나 병이 골수(骨髓)에 들어가게 되면 설혹 그 의원이 사람의 생명을 관장하는 신일지라도 어찌할 수가 없는 법입니다. 지금 제가 서둘러 떠나는 이유는 지금 군주의 병이 골수에 들어가 있어 이제는 저도 치료할 수 없게 되었기 때문입니다.」

성인(聖人)으로 하여금 질병의 증상을 미리 알게 하여 좋은 의사를 찾아 일찍 치료하게 한다면 병은 나을 수가 있고 몸도 살 수가 있다. 사람들이 근심하는 바는 병이 많기 때문이고, 의원이 근심하는 이유는 병을 치료할 방법이 적기 때문이다. 그런 까닭에 병에는 여섯 가지의 불치병(不治病)이 있다.

첫째, 교만방자(驕慢放恣)하여 사리(事理)를 논하지 않은 것이다.

둘째, 몸을 가볍게 하고 재물을 소중히 하는 것이다.

셋째, 의식(衣食)을 적절하게 조절하지 못하는 것이다.

넷째, 양(陽)과 음(陰)을 문란하게 하여 오장(五臟)의 기운을 안정치 못하게 하는 것이다.

다섯째, 약을 복용할 수 없을 정도로 신체가 허약한 것이다.

여섯째, 무당의 말을 믿고 의원의 말을 믿지 않는 것이다.

위의 여섯 가지 중 한 가지만 지니게 되어도 병이 중하게 되어 치료하기 힘든 불치병이 된다.㉑

마침내 편작의 이름이 천하에 퍼지게 되었다. 그가 조나라의 서울 한단(邯鄲)에 들렸다. 조나라는 부인을 소중히 여긴다는 말을 듣고 편작은 즉시 부인병을 치료하는 병원을 열었다. 주나라의 낙양(洛陽)에 들렸을 때는 주나라 사람들은 노인을 공경한다는 소리를 듣고 귀와 눈과 풍습(류마티즘)을 치료하는 병원을 열었다. 다시 진나라의 함양(咸陽)에 들렸을 때는 진나라 사람들이 어린아이들을 사랑한다는 말을 듣고 소아를 진료하는 의원을 열었다. 그는 이와 같이 그 형세와 풍습에 따라 순응했다. 진나라의 태의령(太醫令) 이혜(李醯)는 자기의 의술이 편작을 따라가지 못한다는 사실을 알고 자객을 보내 편작을 죽였다. 그러나 지금까지 전해지는 맥에 관한 세상의 이야기는 모두 편작으로 말미암은 것이다.

태사공이 말한다.

여자는 미인이거나 못났거나 구별 없이 궁중에 있으면 질투를 받게 되고, 선비는 어질거나 불초하거나 구별 없이 조정에 들어가게 되면 의심을 받게 된다.(女無美惡居宮見妬, 士無賢不肖 入朝見疑). 그러므로 편작은 그의 훌륭한 의술 때문에 재앙을 입었다. 노자가 ‘미호(美好)한 것은 상서롭지 않은 그릇이다’㉒라고한 말은 편작의 일을 두고 한 말이다.

《편작열전 끝》

주석

  1. 발해군(勃海郡) : 지금의 하북성 창현(滄縣) 일대이다. 한고조 유방이 기원전202년에 거록(巨鹿)과 제북(濟北)의 땅 일부를 떼내어 발해군을 세우고 부양(浮陽)에 그 치소를 두었다.

  2. 정인(鄭人) : 하남성 정주(鄭州) 부근에 있었던 정(鄭)과는 다른 지방으로 당시 발해군 관하의 무정현(武鄭縣) 관할에 정이라는 땅이 있었다.

  3. 동안우(董安于) : 태어난 해는 알 수 없고 기원전496년에 죽었다. 춘추 말기 때 당진 사람으로 조간자(趙簡子) 앙(鞅)의 가신이다. 당진의 육경이 서로 정권을 다툴 때 중행씨(中行氏)와 범씨(范氏)가 란을 일으키려고 한다는 사실을 미리 알고 조간자에게 충심으로 그에 대한 방비를 하도록 권했다. 조간자는 동안우의 말을 듣지 않았다. 과연 두 종족이 연합하여 란을 일으켜 조씨들을 공격했다. 후에 지백(知伯)이 동안우의 지혜를 높이 사 그의 문하로 데려오기 위해 그에게 압력을 가하자 그는 스스로 목숨을 끊었다.

  4. 공손지(公孫枝) :당진(唐晉) 공실의 먼 친척으로 섬진 공자집(公子縶)의 추천을 받아 섬진의 목공에게 출사했다. 자(字)는 자상(子桑)이다. 백리해(白里亥)를 목공에게 천거하였고 후에 백리해의 뒤를 이어 섬진의 재상을 지냈다.

5)자여씨(子與氏) : 섬진의 목공 때 재상을 지낸 차씨(車氏) 삼형제인 엄식(奄息), 중행(仲行), 침호(鍼虎)를 말한다. 섬진의 어진 신하들로 삼량(三良)이라고 칭해졌다. 목공이 죽을 때 차씨 삼형제를 포함한 섬진의 대소 신료들170명을 순장시켜 이후로 섬진은 국력이 극도로 약화되어300여 년 후인 효공 때 상앙이 등장할 때까지 중원의 패권 싸움에 끼워들 수 없게 되었다. 차씨 삼형제의 억울한 죽음을 애도한 시가가 《시경(詩經)․진풍(秦風)》에 《황조가(黃鳥歌)》라는 제목으로 올려져 있다.

  1. 오세(五世) : 당진의 헌공(獻公), 해제(奚齊), 도자(卓子), 혜공(惠公), 회공(懷公)을 말한다. 해제는 여희(驪姬)의 소생이고, 도자는 여희의 동생인 소희(小姬)의 소생으로 모두 헌공의 어린 아들들이다. 헌공이 죽자 두 사람은 모두 대부 리극(里克)에게 살해당했다. 그 뒤를 이은 혜공은 이오(夷吾)을 말하며, 회공은 혜공의 아들이다. 후에 패자가 된 문공(文公) 중이(重耳)에 의해 살해당했다.

  2. 광락(廣樂) : 천상(天上)의 음악으로 매우 성대한 음악을 지칭하는 말이다.

  3. 조씨(趙氏)는 원래 섬진(陝秦)을 세운 진족(秦族)의 지족이다. 조씨의 선조인 조보(造父)는 주나라 목왕의 어자가 되어 서언왕(徐偃王)의 란을 진압하는데 공을 세워 지금의 산서성 홍동현(洪洞縣) 북쪽의 조성(趙城)에 봉해져 조씨들의 시조가 되었다. 여기에서 영씨란 조씨들을 지칭하며 범괴(范魁)에서 주인들을 크게 무찌른다는 말은 기원전372년 조성후(趙成侯)가 주나라와 동성인 희씨(姬氏)의 위(衛)나라 땅을 모두 빼앗아 조나라의 영토로 삼는다는 말을 의미한다.

  4. 괵국(虢國) : 괵국은 주문왕(周文王)의 이모제(異母弟)인 괵중(虢仲)과 괵숙(虢叔)이 봉해진 제후국으로 모두 네 나라가 있었다. 괵중은 지금의 섬서성(陝西城) 보계시(寶鷄市) 땅에 봉해져 서괵(西虢)으로 불리웠고 괵숙은 하남성 형양시(滎陽市)의 동북에 봉해져 동괵(東虢)으로 불리워졌다. 후에 서괵은 서주가 망하고 그 잔존세력이 낙양으로 천도하여 동주시대를 열 때 같이 동쪽으로 이주하여 황하를 가운데에 두고 지금의 하남성 삼문협시(三門峽市)와 산서성 평륙시(平陸市)로 옮겨 북괵(北虢)이라 불렀고 원래의 서괵에 남은 잔존세력을 소괵(小虢)으로 칭했다. 동괵은 기원전 주평왕(周平王) 4년 기원전767년 정(鄭)나라의 무공(武公)에 의해, 소괵은 기원전687년 진(秦)나라의 무공(武公)에 의해 북괵은 기원전655년 당진(唐晉)의 헌공(獻公)이 펼친 유명한 가도멸괵(假道滅虢) 작전에 의해 각각 멸망당했다.

10)중서자(中庶子) : 주나라 때의 관직명이다. 제후들과 경대부들 소생의 서자(庶子)들만을 맡아 교육시키던 관청의 장이다. 상앙(商鞅)이 진나라로 들어 갈 때 위(魏)나라에는 중서자라는 관직이 었었다. 서한 때는 태자부(太子府)에 속해 태자중서자(太子中庶子)라고 칭했다. 그 직책은 시중(侍中)과 같아 태자를 따라 다니며 곁에서 모셨다. 봉록은 일년에600석이었다.

11)유부(踰跗) : 황제(黃帝) 때 전설적인 의원(醫員)을 말한다.

12)예쇄(醴灑)은 단술과 묽은 술, 참석(鑱石)은:돌로 만든 침이고, 교인(撟引)은 신체를 안마 굴신하여 강건하게 하는 도가(道家)의 술(術)이며 안올(案扤)은 몸을 주물러 피로를 다스리는 시술로 곧 안마를 말한다., 독위(毒熨)는 병독이 있는 곳에 약물을 눌러 붙이는 고약을 말한다.

13)황막(荒幕) : 황(荒)은 황(肓)이고, 막(幕)은 막(膜)과 통한다. 즉 흉격(胸膈)을 말한다.

14)若以管窺天(약이관규천),以郤視文(이극시문)。

15)중경(中經) : 몸속에 있는 경맥을 말함, 유락(維絡) :피부와 근육 사이에 있는 맥락(脈絡)

16)삼초(三焦) : 위의 윗 부분을 상초(上焦), 중간 부분을 중초(中焦), 방관이 있는 아랫 부분을 하초(下焦)라 한다.

17)회기(會氣) : 팔회(八會) 중의 한 가지를 말한다. 팔회란 부회(府會) : 태창(太倉), 장회(藏會) :계협(季脇), 근회(筋會) :양릉천(陽陵泉), 수회(隨會) :절골(絶骨), 혈회(血會) :격유(鬲兪), 골회(骨會) :대저(大杼), 맥회(脈會) :대연(大淵), 회기(會氣) :삼초(三焦)를 말한다.

18)지란장(支蘭藏) : 모든 혈맥을 통틀어 일컫는 말. 지는 순절(順節), 란은 횡절(橫節)을 말하며 경맥(經脈)과 지맥(支脈)을 말한다.

19)삼양(三陽) : 사람의 수족에는 각각 삼양(三陽)과 삼음(三陰)이 있다. 삼양은 즉 태양(太陽), 소양(少陽), 양명(陽明)으로 맥의 이름을 말함이다.

오회(五會) : 인체에 병근(病根)이 잠복할 수 있는 다섯 곳의 명칭으로 백회(百會), 흉회(胸會), 청회(聽會), 기회(氣會), 노회(臑會)를 말한다.

20)제환공(齊桓公) : 춘추전국시대 때 제나라에는 환공이라는 시호(諡號)를 갖은 군주가 두 명이 있다. 춘추초기 때 관중을 등용하여 맨 처음 패자가 된 소백(小白)과 전국시대 때 전제(田齊)의 환공 오(午)를 말한다. 제환공 소백의 재위기간은 기원전685년-643년이고 환공 오(午)의 재위기간은 기원전373년-355년이다. 열국연의의 원작자인 풍몽룡은 편작의 활약 시기를 제환공 소백의 시기로 상정했으나, 사기열전은300년 후인 환공 오(午) 시대 때라고 기록했다.

21)故病有六不治(고병유육불치), 驕恣不論于理(교자불론우리), 一不治也(일불치야); 輕身重財(경신중재), 二不治也(이불치야); 衣食不能適(의식불능적), 三不治也(삼불치야); 陰陽幷(음양병), 臟氣不定(장기부정), 四不治也(사불치야); 形嬴不能服藥(형영불능복약), 五不治也(오불치야); 信巫不信醫(신무실신의), 六不治也(육불치야). 有此一者(유차일자), 則重難治也(즉중난치야).

  1. 美好者不祥之器

역자주(譯者注)

편작이 진료했던 인물들의 활동 시대가 서로 맞지 않는다. 등장하는 인물들을 시대별로 정리해 보면 다음과 같다.

  1. 조간자(趙簡子) 앙(鞅) : 태어난 해나 조씨들의 수장(首長)으로 즉위한 해는 알 수 없고 기원전475년에 죽었다 그가 죽기 전50년 동안 재위한 당진(唐晉)의 군주들 재위 기간은 다음과 같다.

진소공(晉昭公) : 전532-526년

진경공(晉頃公) : 전526-512년

진정공(晉定公) : 전512-475년

  1. 괵국태자(虢國太子)

괵국에 대한 각주(脚注)의 내용대로4개의 괵국 중 마지막으로 망한 나라는 북괵으로 기원전655년에 당진의 헌공이 펼친 가도멸괵(假道滅虢)이라는 고사성어의 무대가 되는 나라다. 즉 기원전475년에 죽은 조간자와는 거의200년의 시차가 난다.

  1. 제환공(齊桓公)

춘추오패 중의 한 사람인 제환공의 사망연대는 기원전643년이고 전국시대 강씨들로부터 국권을 탈취한 전씨들이 세운 전제(田齊)의 제환공의 사망연대는 기원전355년이다. 한비자 유로(喩老) 편에는 춘추 초기 때의 인물인 채환후로 나와있다.

편작열전에 등장하는 세 사람의 사망연도는 조간자 기원전475년, 괵국태자는 기원전655년 이전, 강제(姜齊)의 제환공 사망연대는 기원전643년, 전제(田齊)의 제환공 사망연대는 기원전355년이다. 그리고 한단(邯鄲)이 조나라의 수도가 되고 함양(咸陽)이 섬진의 수도가 된 일은 모두 기원전453년 이후에 형성된 전국시대 때다.

무서운 의학사, 이재담, 명의가 살수 없는 세상, 편작, 창공열전, 사마천사기, 황제, 호기심천국, 프리드리히2세, 중서자, 괵태자, 육불치, 진월인, 발해, 장상군, 조간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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